현대전쟁병기/하늘밀리

♤ F-14의 전신 F6D미사일리어와 AAM이글

21c-park 2007. 6. 27. 16:28

♤ F-14의 전신 F6D미사일리어와 AAM이글

1950년대 말 미해군은 장거리 공대지/함 미사일을 장착한 소련의 장거리 폭격기에서 발사하는 사정거리가 수백km가 넘는 미사일의 위협에 직면하였다. 당시 기술로는 작은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것은 무리여서 미사일 발사모기가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미리 탐지해서 격추시킬 수 있는 장거리 수색/추적/공격 능력을 갖춘 함상 전투기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미 해군은 유사시 핵공격 수단으로는 항공모함 밖에 없었고 소련에서도 유사시 미 항모전단의 공격에 대비하여 수백기의 장거리 폭격기와 수백기의 장거리 미사일로 미 항모전단을 격멸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었다. 제아무리 미 항모전단이라도 이러한 미사일러쉬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으므로 장거리 수색/추적이 가능한 레이더와 장거리 대공미사일이 해답이라는 결론에 따라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F6D '이글' 미사일리어

1958년 밴딕스/그루만팀이 개발한 미사일이 선정되어 XAAM-N-10 이글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이글은 핵탄두에 최대속도는 마하 3.4에 육박했고 사정거리는 무려 160km에 달했다. 유도방식은 발사후에 무선유도방식에 따르고 중반이후 미사일 내부에 탑재된 레이더로 스스로 목표를 찾아가는 액티브 호밍방식으로 현재 F-14톰캣이 운용하는 AIM-54피닉스와 그 성격이나 제원이 매우 비슷했다.
한편 이글을 탑재할 전투기는 1959년 미 해군이 제시한 요구사항에 맞춰 6개의 제작사에서 설계안을 내놓았다. 1960년 7월 그중 더글라스사의 D-9766이 선정되어 F6D라는 제식명칭을 부여받았다.
F6D는 대형 레이더 안테나와 화기관제장치를 장비하고 있었으며 주익에 6발까지 이글AAM을 탑재할 수 있었고 함대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까지 진출하여 4~6시간 동안 초계비행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항속력을 갖출 예정이었다. 최대속도는 마하 0.9의 아음속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아무리 초음속 전투기라도 이미 미사일 공격이 시작되면 늦으므로 F6D는 초음속 능력을 포기하고 대신 장거리 초계능력을 살려서 미사일 러시를 막자는 구상이었다.

F6D의 주안점은 항속능력인 만큼 엔진도 연료소모가 적은 터보팬 엔진인 JTF10A 2기를 장비할 예정이었다. 이 엔진은 세계 최초의 터보팬 엔진으로 나중에 TF30-P-2란 제식명칭으로 F-111과 F-14에도 탑재되게 된다. 그리고 장시간 비행을 위해 조종사2명과 미사일관제사 3명이 탑승하고 레이더는 1956년 부터 웨스팅하우스사가 개발중이었던 APQ-81을 장비할 예정이었던 이 레이더는 16개의 목표물을 추적하여 동시에 8개의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뛰어난 성능을 갖춘 F6D와 이글이었지만 전혀 범용성을 갖추고 있지 않고 오로지 함대방공만을 위한 기체였으므로 생산대수도 적을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비용대 효과면에서 아주 나쁜 평가를 받게 된다. 결국 1961년 케네디 정부가 들어서면서 취임한 로버트 맥나라마 국방장관에 의해 모든 계획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미 해군에는 계속해서 다수의 목표추적/공격능력을 갖춘 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조합한 함대방공 전투기 구상은 미 해군의 숙원사업으로 계속 남게 된다.

♤ 또 다른 시작 TFX와 FADF 그리고 VFX에서 F-14로

F6D의 개발중지 이전에도 미 해군은 제공전투가 가능한 새로운 함대방공 전투기인 FADF(Fleet Air Defence Fighter)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것은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본격적인 전투기로 F6D도 이 전투기의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었다.
한편 미 공군은 F-105 선더치프의 후계기를 찾고 있었는데 마하2.5의 최대속도에 핵폭탄을 비롯한 대량의 탑재량과 장거리 침투능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차세대 전투기에 대해서 NASA에서는 새로 개발중인 가변익을 채택할 것을 미 공군에 건의 하였다. 이것이 나중에 TFX(Tactical Fighter eXperimental)이란 명칭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1961년 케네디 정권 출범과 함께 국방장관에 취임한 맥나라마는 포드 자동차의 부사장 출신 답게 국방비 지출에 비용 대 효과를 철저히 검토하였다. TFX와 FADF도 그 도마에 올라서 결국 합쳐지는 운명이 되고 만다. 하지만 두 계획의 차이는 너무 많았다. 결국 맥나라마는 두 계획간의 85%의 유사성을 유지하면서 3,000대 이상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시작해 버렸다.
1961년 이 계획의 새로운 제안요구서가 제출되었고 심사 끝에 1962년 11월에 제너럴다이내믹스/그루먼사의 안이 채택되었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기체가 바로 F-111이었다.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는 F-111, 사진은 공군형인 F-111A이다.

공군형인 F-111A는 비교적 성공작이었지만 해군형 F-111B는 A6D 미사일리어와 비슷하게 피닉스AAM과 장거리 탐색/추적 레이더를 탑재해서 약간은 근접한 성능을 보이지만 그 성능을 위해서 중량이 엄청나게 불어나 버렸고 그 불어난 무게를 줄이기위해 또다시 설계를 했더니 공군형 F-111과의 유사성 28%로 줄어버렸다. 그래서 제작비가 엄청나게 상승해버렸고 결국 해군형 F-111B는 취소되고 만다.
하지만 그루먼사는 F-111B가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 F-111B용으로 개발된 엔진과 무장시스템을 이용한 새로운 함상 전투기 모델인 303안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 303은 VFX-1으로 불리우며 함대방공, 제공전투, 공격기부대 호위, 요격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루먼사는 그동안 보우트와 맥도널사에 패배한 실패를 만회하고자 VFX-1에 회사 자체부담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후 1967년 8월, F-111B가 한창 개발중일 때에 VFX-1의 제안서를 해군에 내밀었다. 해군은 중량때문에 골치아픈 F-111B보다 그루먼의 VFX-1에 큰 관심을 보이고 1967년 11월 부터 1968년 3월까지 F-111B와 VFX의 비교검토를 실시하여 VFX가 F-111B와 당시 해군의 주력 함대방공전투기 였던 F-4J팬텀 보다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거기다가 당시 베트남전의 교훈에 따라 VFX의 기동성에도 주목하였다.

한편 1967년 모스크바 에어쇼에 등장한 MiG-23, MiG-25, Su-15등의 러시아의 신형전투기가 F-4를 능가한다고 알려짐에 따라 미 해군은 그루먼의 VFX를 더 빨리 확보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각 군용기 메이커에 VFX의 요구조건 사양서를 보냈고 곧 설계경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해군은 이미 VFX를 채택하기로 마음을 굳힌 뒤였다.
미 해군의 제안요구로 총 5개사가 응모하여서 최종적으로 그루먼사의 303E형이 채택되었고 F-14A란 제식명칭으로 원형기 6대가 발주되었다.(나중에 6대 추가발주)
F-14가 A6D와 F-111B를 거쳐 개발된 만큼 같은 성격을 이어받았으면서도 그 면모는 일신되었을 뿐 아니라 다목적운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F-14의 장거리 수색/추적레이더인 AWG-9와 AIM-54 피닉스 미사일은 A6D부터 내려온 장거리 함대방공임무에 맞춰진 것으로 현재는 거의 쓸모가 없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MiG-25가 몰고온 이른바 MiG쇼크에 베트남전에서의 참패까지 이 모든것이 F-14안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F-14의 개발작업은 3단계로 나뉘어 시행되었다. 첫 단계는 F-111B의 기술을 이용하여 F-14A를 조기에 개발/실전배치하며 이어서 ATE계획에 따라 개발중인 F401-PW-400 엔진으로 바꾸어 대폭적인 파워 업을 해서 항속성과 기동성이 대폭 향상된 F-14B를 배치하고 마지막으로 ECCM능력을 증대시킨 경량 레이더 FCS를 장비해서 무장시스템이 강화된 F-14C를 배치한다는 계획이었다. 보통 레이더 장비는 기체 개발보다 장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F-14C가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배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F-14B는 원형 1호기 만으로 끝나버리고 F-14C는 실제 제작조차 취소되었다. 현재의 F-14B(F-14A+)와 F-14D는 당시의 F-14B/D의 구상을 그대로 계승한 기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루먼사와 미 해군의 F-14 3단계 성능 향상 계획은 20년이 지난후에야 비로소 실현되었다.

♤ F-14톰캣의 개발과정

F-14A의 개발과정은 당시의 긴박한 사정에 따라 급속도로 추진되어 1969년 3월에 기본설계를 끝내고 5월에는 모크업 심사를 끝냈다. 이어서 6월 부터는 원형기 제작에 들어가 11월에 지상에서의 가변익 작동테스트를 완료하였다. 개발 원형 1호기는 1970년 11월에 완성되어 12월21일 첫 비행에 성공하였으며 이는 당초 계획보다 1달이나 빠른 것이었다.
12월 30일에 두번째 비행을 실시하였으나 유압장치 고장으로 시제기가 추락해서 대파되었으나 조종사는 무사히 탈출하였다. 이에 따라 무리한 일정을 다소 느슨하게 조정한 그루먼은 다시 1971년 5월 24일에 원형 2호기가 첫비행을 하였고, 1971년 말까지 7기의 시제기가 완성되어 비행테스트를 실시하였다.

F-14 시제기의 모습  
한편 양산 1호기(통산 13호기)는 1972년 5월 12일에 첫 비행을 실시하였고 1972년 6월 28일에는 항공모함 포레스탈 호에서 최초의 이착함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실시하였으며 10월에는 미라마 해군 항공대기지에서 전환훈련을 담당하는 VF-124가 F-14로의 기종개편을 개시하였고 같은해 10월에는 첫 실전부대인 VF-1, VF-2가 편성되어 1973년 7월 1일 톰캣 배치와 함께 12월 부터 실전 배치되었으며 1974년 9월 부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에 탑재되어 1975년 4월 말 사이공에서의 미국인 구출작전인 [프리퀸드 윈드] 작전에 처음 출격하였다.

톰캣은 이로서 세계 최강의 전투기의 첫발 내딛게 되며 미 해군은 F-14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지닌 함상전투기"라고 자랑하였다.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비록 퇴역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여전히 실전 배치되어 있는 전투기들 중에서는 가히 최강의 전투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삭감되는 국방예산과 피닉스 무용론이 제기되고 작전환경의 변화로 인해서 점차 F/A-18 호넷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있어 아쉽다.
♤ 톰캣의 예리한 눈 - AWG-9 & APG-71

F-14가 요격전투기로서 최고의 위치에 서있을수 있었던 점은 바로 AN/AWG-9 화기관제레이더 때문이다. AWG-9는 AIM-54 피닉스 공대공 미사일과 더불어 함대방공임무를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AWG-9는 여태껏 수많은 고성능 레이더 들이 개발되었지만, 그 성능은 여전히 손색이 없는 성능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뛰어 넘는 성능의 레이더는 F-22 랩터용으로 개발된 APG-77밖에 없을 것이다.

YF-12, SR-71의 개발도중 미 공군의 의뢰로 제작했던 요격기형 기체이다.

AWG-9는 피닉스 미사일 처럼 원래 F-14용으로 개발된것은 아니다. 냉전시기에 미국과 소련 양국은 유사시 상대방의 본토에 대량의 핵공격을 한다는 것을 기본작전으로 삼고있었기 때문에 미 공군은 강력한 본토방공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마하 3급의 방공/요격전투기인 F-108 래이피어가 개발되었으나 기술적인 문제와 무용론이 제기 됨에 따라 개발이 중지되었다. F-108도 F-14처럼 장거리 목표물에 대한 수색/추적/공격능력이 필요했으므로 휴즈사에서 제작한 ASG-18 화기관제레이더와 AIM-47A 펠컨 공대공 미사일을 장비할 예정이었다.
F-108에 쓰일 예정이었던 이 시스템인 또다른 방공 전투기인 YF-12로 이어저서 ASG-1B로 실용화가 되지만, YF-12 역시 개발만하고 실전배치가 취소되어 또다시 사장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하지만 휴즈사는 이를 계속 보존하여 F-111B에 탑재될 AWG-9의 개발에 ASG-1B의 기술을 투입하지만 F-111B가 또 취소되고 결국 F-14로 이어져서 결국 실전배치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 AWG-9의 성능

AWG-9는 펄스도플러방식과 모노펄스 방식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어 전자전에 강한 레이더이다, 최대 탐지거리는 210km에 이르는 고성능 레이더로 레이더의 안테나 지름이 91.5cm에 달하고, 무게는 800kg에 육박하였다. 원래 덩치 큰 F-111B용으로 개발되어서 그보다 소형인 F-14에 탑재되기 위해 부품을 깎는 다이어트를 거쳐 560kg으로 소형화 시키고 부피도 0.87㎥에서 0.78㎥로 줄어들었으나 오히려 성능은 향상되어서 복수 목표 처리 능력이 18개에서 24개로 늘어나고 스패로우의 운용능력도 추가되었으니 다이어트는 성공한 샘이었다.

AWG-9는 F-14A용으로는 일류급의 레이더이지만 점차 변화하는 전장환경에 따라 F-14D에 와서는 APG-71로 개량되었다. APG-71은 AWG-9를 기본으로 시스템의 디지털 처리 능력을 향상시켰으며 ECCM능력도 한층 강화되었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APG-71의 특징은 바로 지상공격병기의 운용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AWG-9는 공대공 전문 레이더인데 반해 APG-71은 공대지, 공대공 모두 가능한 다용도 레이더이다.

APG-71은 우선 지상목표물에 대한 룩다운 능력을 향상시켰으며 속도탐지능력 확대, 디지털 스캔 관제 방식의 채용 등으로 공대지 능력이 행상되었다. 또한 AIM-120 암람의 운용이 가능하게 되어 F-14D는 APG-71 / AIM-120 암람을 주력 공대공 무장으로 사용하게 된다. APG-71은 레이더 전문 개발사인 휴즈의 APG-63(F-15), APG-65(F/A-18)의 기술을 AWG-9에 응용하여 개량한것이라 볼 수 있다.

♤ 항공모함 항공대의 눈 - TARPS
1970년대 말부터 항모항공단 정찰세력의 중추를 담당하던 RA-5C 비질런티와 RF-8G 크루세이더 함상 정찰기가 퇴역하고 F/A-18 호넷의 사진정찰형이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정찰세력의 확보가 시급한 미 해군은 TARPS (Tactical Airborn Reconnaissance Pod Sytem : 전술항공정찰포드 시스템)를 F-14에 장착하기로 결정하고 1976년 부터 TARPS를 개발해서 1978년초 평가 테스트를 시작하였다. 결과 TARPS의 장착이 결정되어서 6대의 선행양산형 포드와 48대의 양산형 포드를 구입하였으며, 1980년 부터 1981년 까지 49기의 F-14A가 TARPS를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 되었다. TARPS포드는 전장 5.27m, 전폭 0.67m, 전고 0.67m, 총 중량 794kg의 대형포드로 공조장치와 릴레이가 포드의 내부에 장비되어 있다. 그리고 F-14에 장착할 때에 높이 0.23m의 어댑터를 사용하여 동체 아랫면의 5번 무장 스테이션(피닉스 발사대)에 장착된다.

TARPS를 장착한 톰캣. 동그라미 안에 보이는 것이 TARPS 포드임.

포드의 맨 앞에 있는 1번 카메라 스테이션에는 KS-87B 프레임 카메라를 장비하는데, 카메라의 장착 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 정방사각 및 하방 각도 촬영이 모두 가능하다. 2번 카메라 스테이션에는 하방 촬영용으로 KA-99나 KA-93 파노라마 카메라 또는 KS-153A 프레임 카메라를 선택하여 장비할 수 있다. 3번 카메라 스테이션에는 AAD-5/RS-720 적외선 정찰세트를 장착하여 야간 정찰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다. 포드의 3번 카메라 스테이션에는 전력 공급장치와 냉각장치가 장비되어 있다. 4번 카메라 스테이션에는 ASQ-172 테이더 디스플레이가 장비되어 있고 맨 뒤에는 AAD-5 및 KA-99용 윈치가 장착되어 있다.
TARPS 포드가 개발되면서 F/A-18의 TARPS 포드 장착이 고려되었지만 F-14의 행동반경이 더 크기 때문에 TARPS를 장착할 수 있는 F-14가 점점 늘어나게 되서 23대의 F-14A, 11대의 F-14B, 그리고 F-14D는 전기체가 장착이 가능하다. F-14는 포드를 장착한 상태에서도 외부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고 피닉스는 장착이 불가능하지만, 방어용으로 스패로 2발과 사이드 와인더 2발이 장착가능하다. 이전의 RA-5C와 RF-8G는 무장이 불가능한 순수 정찰기였던 것에 비해 매우 효율적이다.

♤ F-14의 또다른 눈 - TCS
AIMVAL/ACEVAL이라 불리우는 모의 공중전 평가 결과 공중전에 돌입할때 필요한 두가지가 밝혀졌다. 첫째로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기전 목표의 환경 및 목표까지의 거리 확인이 필요한것 둘째는 다수의 전투기가 공중전에 들어갈때 적기와 안구기를 먼거리에서 일찌감치 판별할 수 있어야할 것. 또한 AIMVAL/ACEVAL에서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1. 적보다 먼저 눈으로 벌견해야 이길 수 있다.
2. 다수의 전투기가 공중전을 벌일경우 무장발사전에 항상 목표를 식별하지 않으면 아군기를 격추할 위험이 있다.
3. 따라서 육안으로 목표를 포착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공중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
4. 공중전에서는 2명의 4개의 눈이 1명의 2개의 눈을 압도한다.
AIMVAL/ACEVAL에서 미공군의 F-15에 소형 망원경을 장착한데 힌트를 얻어 미해군은 우수한 성능의 AXX-1 TVSU (TeleVision Sight Unit)를 개발하게 되었다. TVSU의 전신은 10년전 F-4 팬텀의 주익앞에 장착된 텔레비젼 카메라인 ASX-1 TISE 0이었다. 노스롭사가 개발한 TVSU는 보통 TCS (Television Camera System)이라고도 불린다.


톰캣의 TCS가 있는 부분 사진.


AIMVAL/ACEVAL이전에도 베트남전 당시 먼 거리에서 육안으로 적기를 확인해야 할 필요성을 경험으로 터득한 미 해군은 TCS의 개발에 힘을 기울여 먼 거리의 목표물을 자동수색, 포착, 조준할 수 있는 줌 렌즈 장착 TV 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TCS는 광각(포착)과 망원(식별)을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으며 TV영상은 조종사 및 RIO(레이더 관제사)의 좌석 앞에 있는 콘솔에 있는 10cm X 10cm 크기의 비디오 디스플레이에 표시된다. 보통 광각으로 수색하다가 목표를 발견하며 RIO가 망원으로 바꾸어 거리측정 및 피아식별을 한다.
TCS는 F-14A의 기수 하면에 있는 ALQ-100 재밍포드를 대형화 하여 장비하며 1980년 테스트 후 기존 기체를 대상으로 개조 장착하였다. TCS는 전파를 전혀 내지 않으므로 극심한 ECM 상황에서도 적기를 원거리에서 조기에 포착, 식별이 가능하고 레이더와 달리 페시브 방식이라 적에게 발견될 염려가 없다.

♤ F-14의 가변익

가변익의 이점은 이착륙 및 상승, 순항시에는 후퇴각을 줄여서 익폭하중을 낮추고 양향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초음속 비행시에는 후퇴각을 크게 하여 충격파의 저항을 줄일 수 있으며 돌풍하중을 낮출 수 있어 초저공 비행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초저공 침투임무를 수행하는 공격기가 폭격기는 모두 가변익을 채택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기체로는 토네이도와 Tu-120 블랙잭 폭격기가 있고, 제공전투기로는 F-14 톰캣이 최초로 적용되었다.
가변익은 F-111 에 처음 적용되면서 실용화 되었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2차대전 당시 독일에서 제작된 메서슈미트 P.1101에서 최초로 시작된다. 이 기체는 비행중이 아닌 지상에서 미리 출격하기 전에 임무에 맞춰 후퇴각을 조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가변익기는 독일의 패전과 함께 미국으로 넘어가 1951년 P.1101을 베이스로 비행중에도 가변이 가능한 X-5실험기가 첫 비행을 하였다. 이 가변익 연구에는 그루먼사도 참여해서 당시 개발중이었던 XF10F-1 재규어 함재기에 적용하지만 중량과 조종성의 문제로 채택되지 못한다. 후에 NASA에서 이 가변익의 문제점을 개선한 새로운 가변익 시스템을 개발하고 F-111의 가변익이 NASA에서 개선한 가변익이 채택되고 여기에 F-111을 제작한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가변익 개발경험이 많은 그루먼사를 파트너로 결정한다.

F-14 가변익의 여러가지 모습

하지만 해군형 F-111B는 실패하지만 또다른 가변익기 F-14의 성공으로 그루먼사는 가변익에 있어서 가장 많은 경험과 기술을 가진 회사가 될 수 있었다. 후에 유럽 3개국이 공동개발한 토네이도의 가변익 부분은 그루먼사와 기술제휴를 맺었다고 한다.
F-14의 가변익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제공전용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가변익은 대부분 전투/폭격기에 적용되어 왔다. F-111을 시작으로 토네이도IDS, B-1B, Su-17, Su-24, MiG-27D, Tu-26, Tu-160 등 다수의 군용기에서 채택하고 있다. 제공전투를 위한 가변익은 MiG-23과 토네이도ADV 두 기종 뿐이다.

MiG-23의 경우 수동으로 각도를 조절하고 토네이도ADV는 비행속도에 따라 자동으로 4가지의 후퇴각으로 조절되지만 반응속도가 느린 단점이 있다. 따라서 급기동이 요구되는 공중전에서 가변익이 이점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동으로 가장 적당한 후퇴각을 자동으로 선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F-14가 그런 경우다. F-14는 조종사가 가변익을 자동모드로 설정해주면 항상 최적의 후퇴각을 유지시켜 준다. 그리고 급기동에 대비하여 6G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강력한 액튜에이터를 장착하고 있다.
F-14의 가변익은 비행중에 후퇴각 20도에서 68도 까지 자유롭게 움직이며 항모상에서 격납 될때에는 최대 75도 까지 후퇴시킬 수 있다. 비행중의 후퇴각 변경은 CP-10661A 중앙 에어데이터 컴퓨터 (CADC)의 분석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 F-14의 양력이 발생하는 동체

F-14는 베트남전의 교훈에 따라 한 쪽 엔진이 피탄되어도 다른 쪽 엔진으로 계속 비행 할 수 있도록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엔진이 2기 일지라도 F-111이나 F-15 처럼 붙어 있으면 한쪽이 피탄되어 다른쪽도 같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또한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는 동체에서 떨어진 위치에 엔진 나셀을 쌍동형식으로 배치하는 것이 유리하며 엔진 압축기 실속현상을 해소하기 위하여 공기흡입구에서 엔진까지 흡입덕트를 일직선으로 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도 쌍동형태의 구조가 유리하다. 두개의 엔진나셀을 이어주는 평평한 동체 구조물은 전체적으로 양력을 발생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어서 동체는 저항만을 일으킨다는 종래의 상식을 깨고 있다.

F-14의 하부동체 구조를 잘 알 수 있는 사진. 비록 피닉스가 6발이나 달려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엔진의 위치는 뚜렷이 알 수 있다.

♤ F-14의 공대공 무장 -> AIM-54 Pheonix

톰캣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공대공 무장은 뭐니뭐니 해도 AIM-54 피닉스(Pheonix)이다. 이 피닉스는 휴즈사(현재 레이디온사에 합병)에서 개발한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장거리 공격을 하는 폭격기를 한방에 격추시키기 위한 미사일이다. 그래서 인지 크기도 아주 무식하게 크다. 피닉스의 유도방식은 액티브 호밍 방식으로 발사모기(F-14)에서 발사 후 목표물과 약 23km앞에서 부터는 미사일 자체에 탑재되어 있는 소형레이더로 목표를 추적하여 정확히 명중시킨다. 이것은 세미 액티브 방식이 발사모기를 위협에 빠트린다는 베트남전의 교훈에 착안한 것이라 생각되는 부분이다.

현재 톰캣이 탑재하는 피닉스는 AIM-54C형으로 최대 6발 까지 장착할 수 있으며 항공모함에서 이함시에는 중량 문제로 최대 4발까지 장착할 수 있다. 장착위치는 엔진나셀 사이의 위치한 무장스테이션에 4발, 주익 뿌리 부분의 파일런에 2발 씩이다. 이 주익 뿌리부분 파일런에는 AIM-7 스패로우, AIM-9 사이드와인더, AIM-120 암람등의 다른 공대공 미사일도 장착이 가능하다. 피닉스는 처음 개발후 10년이 걸리는 테스트를 거쳐서 1974년 초 부터 배치가 시작되었다. 이 피닉스는 F-14의 AWG-9 화기관제 레이더와 만나면서 지금까지 최강의 대공시스템으로 군림해 왔다. 이 두 장비는 개발사를 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F-14에 장착될 물건들이 아니었다. 특히 피닉스는 F-14 보다 먼저 개발이 시작되었다.

AIM-54의 처음 배치후 1970년대 말 부터 개량이 시작되어서 AIM-54B가 배치되었고 갈 수록 소련의 기술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기술우위를 위하여 전파방해 저항력(ECCM)을 높이기 위한 소프트웨어 모듈의 재설계를 진행하였지만 배치되지 않고 이 기술은 AIM-54C로 넘어가는데 그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피닉스들과는 달리 폭격기 뿐만 아니라 폭격기에서 발사하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격추시킬 수 있도록 신관이 개량 되어서, 미 항모기동부대에 대한 위협을 덜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소련의 장거리 폭격기 같은 위협이 많이 줄었고, 원래 폭격기 전용으로 설계된 미사일이라 기동성이 높은 전투기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어서 현재는 무용론 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피닉스는 현재 F-14의 점차적인 퇴역과 함께 AIM-120암람에게 그 자리를 서서히 넘겨주고 있다.

= AIM-54C 제원 =


주임무 : 장거리 공중발사 요격 미사일
제작사 : 휴즈/레이디온 (현재 레이디온)
한발당 가격 : $477,131
추진 : 허큘리스제 솔리드 프로펄랜트 로켓모터
전장 : 13 ft (3.9 m)
중량 : 1,024 lb (460.8 kg)
지름 : 15 inch (38.1 cm)
날개너비 : 3 ft (0.9 m)
사정거리 : 약 100 nm (115 마일, 184 km)
속도 : 마하 4.8
유도 : 반능동/능동 레이더 유도
탄두 : 근접신관, 고폭탄두
탄두중량 : 135 lb (60.75 kg)
실전배치 : 1974

♤ 서방국가 표준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 AIM-120 암람

AIM-120 암람 (AMRAAM)은 1976년 부터 미 해군/공군/해병대에서 공동으로 연구하여 1990년대 초 부터 실전배치되기 시작한 중거리 AAM이다. 암람은 종전의 스패로우 같은 세미 액티브 미사일과는 달리 조준하고 바로 이탈할 수 있는 이른바 Fire and Forget (파이어 & 포겟)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암람이 복합유도 방식을 채택하여 처음에는 전투기의 지시에 따라 코스를 수정하고 중간단계에서는 관성유도 방식으로 비행하다가 최종단계에서는 자체에 탑재된 레이더를 사용하여 목표에 명중시키는 성능을 지니고 있다.
즉 암람은 크기는 스패로에 기술은 피닉스 수준의 기술을 축소해 넣은 것으로 대단히 획기적인 미사일이고, 피닉스 이후 20년 동안의 전자기술의 향상을 엿볼수 있기도 하다. 또한 암람은 로켓모터의 개량으로 순간적으로 마하 4의 속도를 낼 수가 있어서 항속거리 향상에도 기여하였다. 이밖에도 암람은 전방향발사, 전고도발사, 동시 다수목표 공격, 저공침투기요격, 순항미사일요격, ECCM능력 등 최신기술 모두가 적용된 미사일이다.그래서톰캣도 F-14D 부터는 AWG-9 / AIM-54가 아닌 APG-71 / AIM-120으로 교체되었다.

= AIM-120 제원 =


주임무 : 중거리 공대공 전술 미사일
제작사 : 휴즈/레이디온 (현재 레이디온)
추진 : 고성능 다이렉티드 로켓모터
전장 : 12 ft (3.6 m)
중량 : 335 lb (150.75 kg)
지름 : 7 inch (17.78 cm)
날개너비 : 21 inch (53.3 cm)
속도 : 초음속
유도 : 능동 레이더 유도
탄두 : 고폭발성 파편탄두
한발당 가격 : $386,000
실전배치 : 1991 9월
운영가능한 항공기
미 해군 : F-14D & F/A-18
미 공군 : F-15 & F-16
나토 : 독일공군 F-4, 영국공군 Tornado & Sea Harrier

♤ 기타 공대공 무장.

비록 암람이 스패로우를 대체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스패로우는 운용중이다. 그밖에도 주력 적외선 미사일인 AIM-9 사이드 와인더는 M형이 주력이다. (사이드 와인더는 다른 전투기의 무장부분에서 자세히 설명...) 그리고 베트남전의 가장 크나큰 교훈인 고정식 기관포는 기수 아래에 M61A1 20mm 기관포가 장착되어 있으며 이것은 1분단 6,000발을 발사할 수 있으며, 탑재탄수는 675발이다.


피닉스와 스패로우를 발사하는 톰캣

♤ F-14의 공대지 무장 -> BomCat으로의 발전

위에서도 말했듯이 F-14는 작전환경의 변화로 인해 톰캣 자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 중 하나로 위의 레이더와 미사일의 변화가 있지만 지금부터 설명할 것은 더 큰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기존 공대공 임무(함대방공, 요격)만 수행하던 톰캣이 지상공격 병기의 탑재로 지상공격형 톰캣 즉, 봄캣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봄캣으로의 전환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첫번째는 처음에 말한 작전환경의 변화 즉 소련의 붕괴로 인해 장거리 폭격기의 공격을 받을일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미 해군 내부적인 문제인데 그것은 그 동안 미해군 공격전력의 중추를 담당하던 A-6E 인트루더의 퇴역과 F/A-18의 도입으로 약화된 공격전력의 공백을 메꾸기 위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 해군에서 Mk.84급의 폭탄 4발을 탑재하고 지상공격이 가능한 전투기는 F-14밖에 없고 또 F-14는 공대공전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유지비가 너무 비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봄캣의 무장탑재 예를 잘 알려주는 사진들.

하지만 일면에서는 미 해군 수뇌부가 톰캣 파일럿이 많아서 이렇게 톰캣을 계속해서 우려먹는 상황이 나온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봄캣으로의 개조가 더 효과적인것 같다. 톰캣의 봄캣으로의 진화(?)는 1990년 부터 대서양함대의 VF-1/2 와 태평양함대의 VF-21/154부터 느릿느릿하게 진행되어서 1996년에서야 겨우 랜턴포드가 장착되기 시작했다.

♤ 봄캣의 무장 발달사

톰캣이 폭탄 떨구던 1990년 당시에는 운용할 수 있는 폭탄이라곤 Mk.81~84 등의 바보폭탄류에 불과했다. 그것도 설계초기 구상이었던 Mk.82 10발을 탑재 했던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빈약한 탑재량인 4발 뿐이었다. 하지만 미 해군은 4발을 탑재하는 것을 고수했다. 왜냐하면 Mk.81~82는 어차피 호넷이 주로 운용할테니 그보다 대형인 Mk.83~84폭탄을 톰캣이 운용한다는 지상공격 하이-로 믹스 방안이었고 또 Mk.83~84는 파일런 하나에 두발 이상 장착할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봄캣의 폭탄장착방식은 기존 피닉스 런처에 ADU-703 어댑터를 BRU-23 폭탄레크와 결합해서 장착하는 방식으로 피닉스 런처 4개에 각 한발씩이다. 이것을 봄캣 1단계 (페이즈 1)이라 부른다. 페이즈 1은 1987년 실험이 시작되서 1991년 AWG-9 화력제어레이더에 Tape115B라는 대지공격용 소프트웨어가 추가되서 바보폭탄의 운용능력이 완벽하게 부여된다. 봄캣 2단계 (페이즈 2)는 Mk.20 로크아이등의 확산탄과 ALE-50 전술 디코이, 레이저유도폭탄의 '장착'이 포함된다. 여기서 레이저유도폭탄은 단순히 '장착' 만 가능하고 유도는 되지 않는다. 실제로 보스니아 내전당시 레이저 유도폭탄을 투하한 일이 있지만 이것은 F/A-18이 유도하였다.

AAQ-14 목표지시포드를 장착하고 있는 F-14B

그리고 봄캣 3단계 (페이즈 3)는 레이저유도폭탄의 자체 유도기능, 랜턴포드 탑재가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본격적인 정밀타격 전투기가 되었지만 애초에 페이즈 3에서 계획되었던 JDAM, JSOW, HARM, SLAM등의 무장탑재는 수퍼호넷의 등장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봄캣은 레이저 유도폭탄의 자체투하 및 유도기능으로 수많은 레이저 유도폭탄을 유도해주기도 하였다.
랜턴포드는 AAQ-13 항법포드와 AAQ-14 목표지시포드를 모두 탑재하는것이 원칙이지만 톰캣은 탑재한도로 인해 AAQ-14만 장착한다. 이 랜턴포드는 각 봄캣에 모두 장착되는 것은 아니고 마치 우리 공군의 F-16처럼 2~3기에만 장착된다.

◐ F-14 톰캣의 통상적인 무장조합
☞ F-14D는 AIM-7/AIM-54 대신에 AIM-120을 장착할 수 있음
☞ *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은 F-14D 전용조합


함대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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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M-7 2발, AIM-9 2발, AIM-54 4발, 연료탱크 2기 > 적기가 다수일때
AIM-7 3발, AIM-9 2발, AIM-54 2발, 연료탱크 2기 > 통상 공대공 무장 탑재량
AIM-7 4발, AIM-9 4발, 연료탱크 2기 > 최대 항속거리
전술정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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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M-7 2발, AIM-9 2발, AIM-54 2발(X), 연료탱크 2기, TARPS포드 1기 > 피닉스는 탑재 안할 수도 있음
AIM-7 2발, AIM-9 2발, ALQ-167 ECM포드, 연료탱크 2기, TARPS포드 > 1기 걸프전 당시 조합
지상공격
===================================================================
AIM-7 1발, AIM-9 2발, AIM-54 1발, Mk.84 4발, 연료탱크 2기 > 피닉스는 주익 파일런에 장착 *
AIM-7 2발, AIM-9 2발, Mk.83 4발, 연료탱크 2기 > 피닉스 런처에 폭탄 장착, 이 조합이 봄캣의 페이즈 1 당시의 조합.
AIM-7 2발, AIM-9 2발, Mk.82 4발, 연료탱크 2기
AIM-7 3발, AIM-9 2발, Mk.82 4발, 연료탱크 2기 > 스패로 한발은 뒤쪽 피닉스 런처 자리에 장착
AIM-7 2발, AIM-9 2발, GBU-16 2발, 연료탱크 2기, AAQ-14 목표지시포드 > AAQ-14는 주익 파일런에 장착
AIM-7 1발, AIM-9 2발, AIM-54 1발, GBU-24 2기, 연료탱크 2기, AAQ-14 목표지시포드 > 피닉스는 주익 파일런에 장착 *
AIM-7 4발, AIM-9 2발, 주니로켓포드 2기, 연료탱크 2기 근접항공지원이나 고속 전선항공통제 임무시.
♤ F-14의 각 형식

YF-14A의 구체적인 모습을 결정하기 위한 여러가지 제안들

YF-14A
YF-14A는 F-14A의 프로토타입으로서, 2기의 모크업이 제작된 후에 만들어 졌다. 1970년 12월 21일 최로로 비행했으며, 1970년까지 모두 12기가 제작되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종류의 테스트를 위해 사용�으며 기체번호가 157986인 기체는 후에 F401 엔진을 장비한 F-14B의 프로토타입으로 전용되었다. YF-14A는 외관상 기수에 기다란 테스트용 프로브가 달린것이 특징이며, 2호기(147981)는 스핀 시험용 소형 카나드가 기수 앞부분에 붙어 있는 등 각 기체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다.

F-14A
F-14A는 F-14의 최초 양산형이다. 처음에는 A형을 양산하고 이어서 엔진을 강화한 B형, 전자장비를 강화한 C형이 생산될 예정이었지만, B/C형이 개발이 좌절되는 바람에 A형은 1985년까지 생산이 계속되어 총계 545기가 생산되었다. 하지만 같은 A형이라도 생산블록에 따라 각기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A형의 생산블록은 1971 회계연도분의 블록 60에서 1985 회계연도분의 블록 140까지 모두 18개이다.


하지만 뒤에 생산된 블록에 실시된 개수작업이 이미 생산된 기체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실전부대에서 사용되는 F-14A는 거의 대부분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각 블록별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은 비버테일 부분, 에어브레이크, 기수 하면의 센서류, 발칸포용 배기구 등이며, 특히 초기형에서 기수하부에 장비되었던 IRST는 TCS로 불리는 AAX-1 텔레비전 카메라로 교체되어 1983년부터 포인트 머그에서 시험을 거친뒤 133기가 조달되어 F-14A에 장비되었다.
각 블록별 진화를 살펴보면, 1971년 회계연도분의 블록 65부터는 소폭 개량형인 TF30-PW-412A엔진이 장착되었고, 72 회계연도의 블록 70부터는 글러브 페어링 상부에 펜스가 추가되었다. 비버테일과 에어브레이크는 73회계연도의 블록 75부터 개량되었고 블록 85 (74년도)부터는 AN/ARC-159 UHF 라디오가 도입되었다. 블록 90(75년)부터는 기수 끝부분에 AOA프로브 도입, 블록 95(76년)에서는 TF30-PW-414엔진이 장착되었다. 77회계연도의 블록 100에서는 플랩과 슬래트가 개량되고 연료계통 및 AWG-9 시스템의 개량으로 신뢰성이 향상되었다.

79년도의 블록 110 후기부터는 비버테일과 주익글러브 하면에 AN/ALQ-126 안테나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TCS는 블록 125 (82 회계연도)부터 장착되었다. 1988년에는 모든 F-14와 F/A-18에 마틴 베이커제 신형 SJU-17A/V 이젝션 시트를 장착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이것은 실현되지 못하고 F-14D에 와서 적용되었다.
F-14A중 4기는 F-14D용의 프로토타입으로 전용되었다. 그리고 블록85와 블록110의 기체중 18기가 F-14D(R)로 개수되었고 블록115와 블록120의 기체중 32기는 F-14A+(F-14B)형으로 개수되었다. A형은 1991년부터 대지공격력 강화를 위한 개수가 진행되었고, 1997년부터 일부 기체에 랜턴포드가 장비되기 시작하였지만 이것은 비행대 별로 2~3기 정도만 장착된다.

F-14A-GR

F-14가 수출된 유일한 국가가 바로 이란으로서, 이란은 1974년 국경근처에 소련의 MiG-25가 출몰하게 되자 강력한 방공전투기를 원하게 된다. 마침 1973년 파리에어쇼에서 보여준 F-14에 위용에 감탄하여 전투기 도입사업을 벌리게 되고 F-15, F/A-18L(지상형), F-14를 후보로 선정하여 F-14를 선택하고 1974년 6월에 40기를 발주하고 1975년 1월에는 추가로 40기를 발주하게 된다. 이란에 인도된 기체는 블록90에 해당하는 블록5형 30기, 블록10형 32기, 블록15형 18기의 총 80기이며, 테스트 목적으로 그루먼사에 남은 1기를 제외한 79기가 1976년 1월 27일 부터 모두 이란으로 인도되었다.


이란공군 사양의 F-14A는 미 해군의 F-14A 블록90형의 사양이지만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ECCM장비는 제거되었고 레이더 장비도 다운 그레이드가 실시된것으로 전해진다. 이란혁명으로 미국의 지원이 끊겨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버린 F-14A는 대 이라크전에서 몇 안되는 기체가 간이 조기경보기의 형태로 운용되었다. 또한 이 전쟁에서 이라크군의 미라지F1에 2기, MiG-21에 1기가 격추되는 등 최소한 7기가 격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란의 F-14A는 연구목적으로 소련으로 넘겨졌다는 설도 있다.

F-14B
F-14B는 당초 A형 양산이후 바로 신형 F401-PW-400으로 엔진을 강화하여 등장할 예정이었으나 이것이 순조롭지가 못했다. 하지만 1973년 9월 12일의 프로토타입 비행이후 신형 엔진에 따른 각종 문제점이 발생하여 계획이 취소되고 A형이 계속 생산되게 되었다. 이후 1979년 부터 다시 TF30을 대체 할 수 잇는 차기 엔진의 개발이 추진되었고 YF-14A의 7호기를 이용하여 신형 F101-DFE 엔진의 실험기가 만들어졌다. 이 기체에는 [F-14B 수퍼 톰캣] 이라는 명칭이 붙어져 1981년부터 각종 테스트가 실시되었다. 이런 가운데 다시 F-14D용 엔진으로 F110-GE-400이 결정됨으로써 수퍼톰캣은 다시 이 엔진으로 개장하고 테스트를 계속하게 되었다. 이 신형엔진을 장착한 수퍼톰캣은 결국 F-14D의 프로토 타입이 되고 최초비행은 1986년 9월 29일에 실시되었다.


F-14D의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기존의 생산중인 F-14A에 F-14D용 F110-GE-400을 장착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이 신형엔진 장착형은 F-14A+형이라 명명되었다. 이 기체는 1987년 11월 14일에 처음으로 비행하고 1988년 10월 부터 실전배치되었다. F-14A+는 엔진이 변경되고 글러브 베인이 폐지되었으며, RWR을 일부 센서류가 개량되고 기관포 가스 배출구가 개량되었다. 그리고 1991년 5월 1일부터 F-14A+는 F-14B로 명칭이 바뀌었다.

F-14B의 생산은 86회계연도 부터 88회계연도분 36기가 생산되었고, 32기가 기존의 F-14A로부터 개수되어 1991년 걸프전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F-14D
F-14D는 F-14의 개발당시에는 계획에 없던 것이었지만 B형과 C형의 좌절이후 1984년에 개발이 발표되었다. D형은 간단히 말해 F-14B의 에이비오닉스를 완전히 개량한것으로서, [F-14B 수퍼톰캣]을 기초로 만들어진것이다. F-14D형은 기존의 AWG-9 FCS대신에 APG-71 FCS를 도입하여 완전한 디지털화와 함께 본격적인 대지공격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신형 IRST및 TCS, AYK-14컴퓨터, ALR-67 레이더경보 시스템, ASN-139 관성항법장치 등이 도입되고 사출좌석도 마틴 베이커제 신형으로 교체되었다. F-14D의 프로토타입은 A형으로부터 4기가 개수되어 만들어졌으며 최초비행은 엔진개수형 수퍼 톰캣이 1986년 9월 29일, 에이비오닉스 개수형이 1987년 11월 23일이었다. 그리고 양산형이 처음 롤 아웃한것은 1990년 3월 23일이었다.

F-14D의 생산은 당초 127기가 계획되었지만 예산문제로 88,89,90 회계연도분의 37기만이 생산되었으며 이밖에 기존의 A형을 개수하여 90 및 91 회계연도분으로 18기가 더 조달되었다. 이 A형을 개수한 F-14는 F-14D(R)이라 불린다.



기타

F-14는 A,B,D형 말고도 많은 실험형이 제시되거나 만들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들중 하나는 바로 F/A-14D로서 F-14D에 F-15E 수준의 지상공격력을 부여하여 본격 대지공격기로 변신시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은 당초 1995년 부터 4단계에 걸쳐 250기의 F-14에 적용, 4단계말에는 JDAM과 JSOW의 운용능력까지 부여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총계 92억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으로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F-14의 또다른 발달형으로 제안된 것 중 [수퍼톰캣21] 이라는 것이 있다. 이 또한 기존에 생산된 F-14를 개조하는 것이었지만 스텔스성을 대폭 도입해 많은 변화를 보일 예정이었다. 우선 엔진은 F110-GE-129로 바꾸어 수퍼크루징을 가능하게 하고 전자장비도 대폭 개량한다는 계획으로 비용대 효과면에서는 상당히 우수한 것이다. 또한 [수퍼톰캣21]을 더욱 개량한 [어택수퍼톰캣21]도 제안되었다. 이 기체는 스텔스 공격기인 A-12 어벤져에 적용될 예정이던 레이더 및 전자장비를 도입하고 항속거리를 증가시킨 21세기형 공격기이지만 모두 채택되지는 못하였다.

♤ F-14의 실전기록
- 1981년 3월 리비아 앞바다 (시드라 만 : 톰캣 최초의 공중전)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이 국제적인 관행을 무시하고 리비아의 앞바다인 시드라만의 북위 32도 30분 이남을 리비아의 영토라고 선언하며 미국의 심기를 건드란다. 여기까지는 리비아도 잠자는 사자를 건드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그래도 1980년 9월 중순에 시드라만에서 정찰중이던 미국의 RC-135 정찰기를 리비아공군의 MiG-23이 찝적댄 적이 있기때문이었다. 이런식으로 계속 자신만의 기준으로 영해를 주장하는 리비아에게 미국이 방법하기 시작하였다. 통상적으로 미국의 방법하기는 3단계로 나뉘어 진다. 첫째는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은 정치/경제적인 압박, 두번째는 항모를 앞바다에 접근시켜 군사력과시행위하기, 그리고 셋째가 바로 군사력을 동원하여 직접 때리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 사태를 약간은 심각하게 느겼는지 리비아의 앞바다에 제60 기동함대를 파견한다. 이때가 81년 8월의 일이었다.

이윽고 미 해군은 본격적으로 18~19일동안 미사일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 훈련구역은 약간 찌그러진 육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리비아가 주장하는 영해가 약간 끼어있었다. 한마디로 미 해군은 이 영해에 불법침입(?) 하기로 마음먹은것이다. 이렇게 준비를 마친 미국은 이 구역이 선박통행이 극히 적은 곳이고 예전에도 훈련을 실시한적이 있기 때문에 훈련을 실시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훈련 첫날. 이 훈련구역에 접근하는 리비아 공군기는 70대에 달하게된다. 참으로 난리법석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E-2C의 레이더관제사는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하여튼 긴장이 최고조로 달한 8월 18일을 보낸 미 해군은 다음날이 밝아오자 훈련을 위하여 일단 초계임무를 시작한다. VF-41의 F-14A 두 대가 아침 6시 15분에 항공모함 니미츠에서 이함하였다. 이 두대의 톰캣의 1번기에는 VF-41의 대대장인 크리먼 중령이 탑승하고 있었다. 크리먼 중령에게는 실탄사격중에 접근하는 리비아공군기에게는 확실하게 경계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훈련중이 아니라 엄연히 초계중이었다. 초계임무를 시작한지 1시간후 고도 2만피트 상공으로 톰캣에게 접근하는 리비아공군기를 탐지하게 된다. 이 리비아전투기들은 리비아의 지상관제센터의 유도를 받으며 크리먼중령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먼은 니미츠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2번기가 애프터버너를 켜고 급상승하였다. 크리먼은 약 7해리 거리에 국적불명기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를 니미츠에 보고하였다. 하지만 리비아공군기라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얼마 후 1.7해리이 거리에서 확실히 리비아공군기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기종은 Su-22피터J라는 것까지 확인되었다. 긴장감이 흘렀다.

크리먼중령은 피터와 고도를 비슷하게 맞추었다가 고도를 높여 피터를 지나친다음 피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피터에서 붉은 섬광이 나타났다. 미사일이 발사된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피터가 발사한 미사일은 AA-2 아톨이었다. 어떤 미사일이 발사되었건간에 크리먼 중령은 회피기동을 실시하였고 가까스로 미사일이 지나쳐 버렸다. 일순간 공중전에 돌입한 톰캣과 피터는 서로 꼬리를 물기 위해 급기동에 들어갔다. 공중전에 있어서 최초로 가변익기간에 공중전이 펼처지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톰캣 2번기가 피터 1번기의 꼬리를 물었고 톰캣은 좌측 주익파일런에 장착되어 있던 AIM-9L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하였다. 이와 동시에 톰캣 2번기는 수직상승하여 목표물에서부터 멀어졌고, 사이드오인더는 피터 1번기의 배기구에 명중하였다. 그리고 피터 1번기의 조종사는 비상탈출하였다. 한편 피터 2번기를 추적하던 크리먼중령은 당황하였다. 피터 2번기가 적외선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해가뜨는 동쪽으로 기수를 돌린것이었다. 약 10초동안 추적하던 크리먼중령은 결국 AIM-9L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하였고 이는 1,300ft 떨어져있던 피터 2번기의 동체아래에 명중하고 기체가 뒤집히며 실속상태에 빠져 추락하였다. 이렇게 우발적으로 벌어진 공중전은 앞에 쓴 글의 양과는 달리 40초만에 끝났다.

- 1983년 12월 레바논 (레바논 분쟁 : 최초의 TARPS정찰)
레바논에 미 해병대를 파견하고 얼마 안있어 해병대에 대한 시리아 테러조직의 잦은 테러공격이 감행되자 1983년 12월 미 해군의 항모 2척을 중심으로 한 기동부대가 레바논 앞바다에 파견되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TARPS가 실전에 투입된다. 이 첫 탑스캣은 12월 13일 항모 존 F.케네디에서 이함하여 베이루트 공항 주변의 상황을 점검하기위해 촬영을 실시하였다. 촬영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고, 이를 통해 탑스캣의 정찰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그러다가 SA-7의 공격까지 받게 되자 A-6 인트루더와 A-7 커세어를 동원하여 시리아공군의 레이더/지대공미사일 사이트를 공격할 때 뒤따르기도 하엿다. 그러나 공습도중 인트루더와 커세어가 각각 1대씩 추락하였으며 인트루더의 항법사가 포로로 잡히기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 탑스캣의 정찰 횟수는 점차 줄어들게 되고 얼마 후 기동부대가 철수하게 된다. 이유는 바로 기동부대가 보호해야 할 목표였던 미 해병대가 철수를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 1989년 1월 리비아 앞바다 (시드라 만)

1986년 리비아공습작전인 '엘도라도 협곡'이 있은지 3년후, 미국은 공습이후에도 계속되는 리비아의 테러의심행위에  참지 못하고 예전부터 해왔듯이 시드라만에 존 F. 케네디를 포함한 18척의 수상함을 포함한 기동부대가 5개월간의 초계/훈련임무에 들어갔다. 알다시피 이 임무의 주 목적은 바로 리비아성질긁기였고 지난 81년과 86년의 경험을 살려 리비아공군기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리비아 연안으로 접근하였다. 이 훈련(도발)의 훈련구역은 리바아의 트리폴리와 말타의 비행정보구역의 경계에서 이루어졌다. 때문에 이번에도 분명 리비아공군기가 시비를 걸어올것이라 예상한 미 해군 기동부대는 톰캣 전투기 승무원들에게 확실하게 교전규칙을 명시해놓고 있었다. 이 교전규칙들은 해군의 기밀사항에 들어가는 것이라 공개하기는 좀 그렇지만 당시 항공모함 전투군 지휘관이었던 모리스 소장에 의하면 적기가 공격할 것 같으면 곧바로 대응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또한 초계임무에 투입되는 톰캣의 승무원구성이 약간 특이했다. 보통 이런 준실전에서는 베테랑들이 주로 투입되기 마련인데, 이때에는 한기의 톰캣에 신참승무원이 한명씩 배치되었다. 이는 신참에게 좋은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톰캣에는 판단력이 뛰어난 신참조종사와 작전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RIO가 탑승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89년의 리비아연안 훈련은 81년의 공중전과는 달리 미리 계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1월 4일, 슬슬 배가고파질 정오직전에 크레타섬(그리스 남부에 위치한 섬) 남서쪽 지중해 상공에 케네디에서 발진한 VF-32 소속 톰캣 2대가 초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2대가 초계하기 전 날인 1월 3일에는 리비아공군기들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서 (또 머리를 쥐어뜯을 상황-_-;;) 이미 리비아와의 충돌은 예정되어 있었다, 아니 미국이 일부러 조장하였다.(-_-;;) 이 때 리비아측은 시드라만에 인접한 공군기지 두 곳에 전투기들을 증강배치하고 있었고, 미 해군은 리비아영해 코앞에 스모크 플레어를 터트려 가상목표를 삼아 A-6E 인트루더에게 폭격훈련을 실시하기까지 한다.이런 미 해군의 도발적 자태에 발끈한 리비아는 11시 55분 토부룩과 벵가지 사이에 위치한 알 밤바기지에서 2대의 항공기를 발진시킨다. 이것은 곧 초계중이던 E-2C에 감지되고, 호크아이는 전투기인것을 확인, 곧바로 근처를 초계중이던 VF-32 대대장기에게 통보한다. 이윽고 근처에서 폭격훈련중이던 인트루더에게 대피할 것을 명령하였고, AWG-9 화기관제레이더로 리비아공군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약 70해리의 거리에 고도는 8천피트를 유지하고 있던 리비아공군기는 톰캣과의 거리를 점점 좁히고 있었고 약 4분후에 가시거리까지 접근하는 상황이었다. 후방석에 있던 RIO는 레이더를 재시동하면 목표를 더 선명하게 표시할 수 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레이더를 재시동하였고 더 선명하게 표시된 목표를 락온하기 시작한다. 이미 항모 존 F.케네디에서는 방어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한 상태였고 공격명령까지 내려진 상태였다. 톰캣은 가까운거리에 접근한 상태에서 TCS로 리비아공군기들을 비추었고 이는 VF-32의 대대장기에 화상으로 전달되었다. 리비아공군기가 MiG-23MF 플로거D라는 것과 주날개에 공대공미사일이 장착되있는 것을 확인한 대대장은 같이 초계중이던 톰캣 2번기에게 무장안전장치를 해제하도록 명령하였고, 존 F.케네디에 교전수칙을 재확인 시키고, 위험한 상황이면 공격하라는 재확인명령이 떨어진다. 대대장은 AIM-7 스패로우를 락온상태로 전환해서 플로거 2번기에 걸어놓은 상태였다.

잠시 후 대대장은 "FOX one!" 콜사인과 함께 스패로우가 발사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발사후 왼쪽으로 회피기동을 실시하였다. 발사된 스패로우는 플로거 2번기의 채프에 속아서 빗나가 버렸다. 이어 톰캣 2번기에서 발사한 스패로우가 플로거 2번기의 우측공기흡입구에 명중하면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플로거 2번기의 조종사는 탈출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플로거 1번기는 대대장기가 추적하면서 스패로우로 락온하였다. 하지만 플로거 2번기와 공중전을 벌이다가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 미사일을 급히 사이드와인더로 변경하여 발사, 명중시켰다.

이 교전은 E-2C의 기록으로는 11시 55분에 목표물을 포착, 12시 2분에 플로거 2기를 모두 격추하여 끝난, 상당히 급박하고 짧은 교전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공중전이 끝난후 리비아에서는 자국의 비무장 전투기를 격추시켰다고 길길이 날뛰면서 UN 안전보장이사회를 열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상임이사국인 영국,미국 그리고 의외의 국가인 프랑스가 거부권을 행사하여 무산된다. 이 거부권 행사에는 프랑스의 역할이 컸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톰캣이 TCS로 촬영한 TV영상에 담겨있는 플로거의 무장상태를 프랑스가 보았기 때문이었다.

- 1991년 이라크 (제1차 걸프전)
1990년 데저트 쉴드 작전으로 시작된 걸프전에서 톰캣은 그 명성과는 달리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이제 막 병기운용 훈련단계에 들어간 봄캣을 투입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래서 톰캣은 제공임무에만 투입하게 되는데 여기서 톰캣이 주로 맡았던 임무는 원래 목적에 걸맞지 않은 공격부대 호위와 항모전단 초계임무가 다였다. 그나마 톰캣이 격추시킨게 있다면 기껏해야 VF-1 소속의 F-14가 사이드와인더로 Mi-8 헬기 1대를 격추시킨게 다였다. 톰캣이 이렇게 유명무실해진 이유는 바로 다름아닌 같은 가족이라 할 수 있는 공군의 고성능 제공전투기인 F-15C와 해군의 E-2C와는 비교도 안될만큼의 조기경보 능력을 갖춘 E-3의 콤비플레이와 두 전투기의 행동반경의 차이였다. 톰캣은 항공모함에서 출격하기 때문에 지상기지에서 발진하는 이글과는 당연히 항속거리에서 차이가 난다. 이 둘의 평균 비행시간을 보면 톰캣은 3.4시간, 이글은 5.3시간이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을것이다. 톰캣이 이글과 비교해 딸리는 항속거리로 쩔쩔매고 있을 동안 이글과 센트리, 이 두 콤비는 이라크의 공군기들을 전부 작살내면서 톰캣의 제공전투기로서의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의 톰캣의 장착된 AWG-9의 레이더 신호특성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톰캣이 뜨면 이라크 공군기들이 톰캣에게 희생되지 않기 위해 아예 다 피해버렸다는 설도 있다. 하여튼간 제1차걸프전에서는 톰캣이 그다지 큰 활약을 거두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