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park 2024. 1. 17. 16:23

결핍의 방

그곳에는 외로움이 삽니다.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일상을 멈추고 그 방으로 들어갑니다. 고요함 속에서 외로움을 즐기려고 합니다.

한때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방에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 방에는 말 없는 말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인생의 중반을 넘기면서 나를 살게 하는 힘의 원천이 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즘은 결핍이 결핍된 시대라고 말합니다.

현실에 맞는 맞춤형 말에 박수를 보냅니다. 넘쳐나는 시대를 살면서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가기도 합니다.

반대로 풍요로움이라는 말이 맞서고 있습니다.

정보물질의 풍요로움이지요. 넘침이 주는 장애입니다.

채우기에 바쁜 사회를 보면서 결핍의 방에 응크린 나를 돌아봅니다.

배움에 대한 갈증과 내세울 것 없다는 초라함에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는 도전과 용기가

절실했습니다.

가끔은 숨어버리고 싶은 적도 있어 그 방에 아예 누워있기도 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경제와 가방끈 짧음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움츠러든 가슴은 막막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뭔가 잘 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자신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단단히 마음을 돌리자 몸과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눈의 건조증이 심해지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을 수 없다는 선고로 생을 포기하는 막다른 골목에서 멈춤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채움에 대한 갈증과 목마름으로 숨이 찼습니다.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습니다. 외로움은 소통 부족에서 오는 사치스러운

현대병이라 합니다.

사치스럽다는 말이 거슬리긴 하지만 한편으론 나를 위로하는 손길로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숨을 크게 쉬면서 노력은 최대로 타들어 가는 가슴을 여미며 결과를 기다리는 것도

그 방이었습니다.

나만을 위한 묘약의 처방을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오래전 뉴스에서 영국에선 외로움 담당 장관이 탄생했다고 하더군요.

이젠 사적 영역까지 국가가 개입해야한다는 사실이 서글펐지만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무한경쟁은 인간을 이기적으로 내몰고 이웃과 단절은 현대인을 군중 속에서 고독한

외톨이로 만드는 사회. 사회가 나서야 할 만큼 외로움이 자리를 넓히고 있다는

사실이 더 아팠습니다.

결핍은 빈 속에 술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세상의 매서운 눈빛만으로도 휘청이게 했습니다.

휘청임을 멈추고 늦깎이 학생이 되고 배움의 끈을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채운다는 것은 오랜 세월을 견디는 일이었습니다.

결핍은 인정사정없이 구석으로 몰아세웠습니다.

단절과 고립에 빠질까 두렵기도 했지만 다 읽지 않은 채 책을 사들이고 책꽂이를 채우면서

읽고 쓰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학업을 이어가고 한 가지 한 가지 자격을 얻는 기쁨은 결핍이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계절을 바꾸는 시간의 손도 바빠졌습니다.

 

서서히 결핍의 방 문고리를 잡는 일이 무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움은 마치 들키고 싶지 않은 허물 같아서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표정으로 흘러나옵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소리 없는 통증이지요. 가만히 앉아서 남의 허점을 기웃거리고

쓸데없는 생각으로 힘을 빼기는 싫습니다.

 

그럴 때마다 결핍의 방에서 벳속까지 젖어 드는 외로움과 함께 글을 씁니다.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희망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가는 연습을 합니다.

결핍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등을 밀어줍니다.

내 속의 나에게 말을 걸어 차분하게 하얀 백지를 채워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곳 입니다.

마음 길을 따라가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고요의 숨소리까지 흡입하는 듯 고독을 좋아하는 외로움은 까다롭습니다. 무언가에 푹

빠지고 싶으면 대화보다

침묵이어야 합니다. 결핍에는 쉼표가 있어 막무가내로 달리지 않는 신중함이 있습니다.

도전과 노력만이 외로움과 결핍을 다듬고 채우는 지름길입니다.

자신과 싸움이라 목마름을 견디는 결핍의 시간은 그래서 외롭습니다.

오랜만에 외로움의 손을 잡아봅니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손끝이 화끈거리며 호흡이 빨라집니다.

두려움이 감싸고 있어 차갑고 딱딱합니다.

기분을 점검하는 일은 필수입니다. 소심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는 그때의 외로움은 용감합니다.

한때 결핍이 많아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은 적도있습니다. 이제 결핍의 방을 잠그지 않겠습니다.

수시로 오갈 수 있도록 열어둘 생각입니 다. 낮은 자존감으로 말도 섞지 못하던 골목도 보입니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허리 굽혀 인사합니다. 그런 골목이 없었다면 나태와 자만의 늪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천하의 무법자로 날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족함은 제게 끊임없이 할 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게 했습니다.

게으른 외로움이 아닌 부지런한 외로움과 함께 한 시간은 내 생의 긴 터널에서 계속 꿈꾸게 합니다.

그런 터널을 건널 수 있게 해준 결핍이 있어 더없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