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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할아버지 영정

21c-park 2006. 12. 7. 20:26

단군성조 영정

 

 

 

 

 

단군의 영정을 그려 세상에 널리 전한 사람으로는 신라 진흥황 때의 솔거가 유명하다. 그가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려 황룡사에 벽에 노송도를 그렸더니 많은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에도 실려 있거니와,

 

동사유고를 보면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열중하였으나 벽촌에 스승이 없어 천신에게 가르침을 청했더니 어느날 꿈에 단군으로부터 천필(天筆)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에 감격하여 꿈속에서 보았던 단군의 화상을 1000여 폭 이상을 그려 세상에 널리 보급하였다고 한다.

 

지난 1995년 11월 증산도 개벽대치성때 복원한 단군의 어진은 해남에 있는 단군의 영정을 중심으로 새롭게 복원한 어진이다. 해남에 단군의 어진이 모셔지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해남에서 태어난 '이종철'이라는 분이 서울의 휘문 고등보통학교를 다녔는데 황해도 구월산(九月山) 삼성사(三聖祠)로 수학 여행을 갔다가 삼성사의 사당을 가보니 건물이 넘어질 듯 다 허물어져 있고 관리자도 없어 당시 인솔교사인 '김홍암'이라는 분과 함께 영정, 제기, 솔 등을 몰려 가져와 자신의 고향인 해남에다가 단군전을 짓고 모셨다고 한다.

 

현진건의 단군 성조 순례기를 보면 일제는 1911년 황해도 구월산의 단군사당을 강제 철거하고 공매에 붙여 헐어 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이종철 씨가 구월산의 단군영정을 모셔 온 것은 1911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해남에 보존되어 있는 구월산의 단군 영정을 보면 그 근엄한 자태와 성스러운 얼굴모습은 수천 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를 고조선의 시대로 날아가게 하는 신비가 있다.

 

아마 이 영정은 비록 솔거의 친필은 아니고 두세 번 개사된 모습이겠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찬탄케 하는 위엄이 남아 있다.

끝으로 단군어진 복원의 의의를 몇가지 기술해 보고자 한다.

첫째, 단군의 진면목의 복원은 우리의 잃어 버렸던 단군의 역사가 다시 새롭게 드러나게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으며,

둘째, 단군 성조의 역사뿐만 아니라 단군 시대의 우리 민족의 종교, 사상, 철학, 문화가 새롭게 전개되어 주체성을 잃어 버리고 방황하는 우리 민족에게 분명한 이정표를 제시하여 줄 것이다.

셋째, 단군 시대 때 우리 민족은 동아시아의 패주(覇主)로서 역사를 선도하였듯이,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우리 민족이 세계에 우뚝서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이제까지 못난 후손의 부끄러움을 다 털어버리고, 단군 성조 어진 복원과 더불어 우리의 뿌리를 찾고 자긍심을 회복하여 세계속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 대전대 한의학과 윤창렬 교수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