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혼족과 혼밥족이 늘어나면서 부각되는 단어가 ‘수다’이
다. 이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없어서는 안 될 치료로서
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여성의 수다를 마케팅 도구로 삼아라.”
여성은 천성적으로 남성보다 훨씬 적극적인 정보 전달자이기
때문에 구전 마케팅 의 효과를 노린 광고다.
수다의 긍정적인 부분을 활용해 돈을 버는 방법이기도 하
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형태의 광고 가운데 하나로 꼽는
다고 한다. 정보 가치의 한계를 극복한 상업 도구로서 수
다의 활용법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초고령화에 접어
들면서 이제는 말할 사람과 공간이 필요한 세상이다. 사람
대신 기계가 차지하는 일자리 때문에 기계에 주문하고 기
계와 소통해야 하는 최첨단의 길은 어쩌면 외로움으로 가
는 지름길인 셈이다. 수다가 절실한 소통의 도구로 뜨고 있
다. 마케팅 도구이면서 우울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소통의
방법이기도하다.
수다 하면 왠지 선입견이 좋지 않다. 시끄럽고 뭔가 미
적지근한 불청객이 붙어 있는 느낌이 든다. 한꺼번에 쓸데
없는 말을 쏟아놓을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
는 흔히 여자 서너 명만 모여도 ‘수다를 떤다.’라고 말한다.
여자와 수다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오래전부터 수다 하면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여자다. 수다는 ‘쓸데없이 말수가많
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진정 수다를 쓸데없는 말로
밀쳐두어도 되는 걸까.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어 매우 외롭고 쓸쓸한 사람에게
말은 얼마나 절실할까. 말할 사람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도 없어 입에서 곰팡이가 필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말
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특히 고독증이나 우울증이 있
는 사람에겐 말할 대상이 필요하다. 말없는 시간을 오래 보
내다 보면 자칫 막다른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둘 이상
의 사람이 모여 즐겁게 수다 떠는 모습을 비유해 왜 '수다
꽃’이라 했겠는가. 수다꽃은 예쁘기보다 시끄럽고 선입견
은 좋지 않지만,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건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 난 수다와 거리가 멀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수다를 즐긴다. 가슴이 답답
할 때,고민거리가 생겼을 때,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전화로 또는 만나서 수다를 떤다. 털어놓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잠시 그런 생각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일부터 아주 소소한 것까지 주고받으면서 친
밀감이 형성되고 믿음을 싹트게 한다. 수다는 이런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이루어진다. 신뢰가 형성되면 미세
한 마음의 떨림까지 전하게 된다. 혼자서는 극단적인 선택
을 할 것도 곁에 말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걱정거리
가 얇아지고 작아져 조금 숨통이 트이게 된다.
내게도 수다를 많이 하는 친구가 멀리 살고 있다. 우린
자주 만날 수 없어 서울에서 이사할 때 편지로 하자고 약속
했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전화를 이용한다. 지금은
시외전화 정액요금제를 신청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수다
보따리를 푼다. 그런 작은 배려로 시작하는 우리의 수다는
한 시간 이상 계속된다. 일상의 크고 작은 일이나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나누면서 아픔과
고통,기쁨과 즐거움을 함께한다. 우리는 뒷일을 걱정하거
나 후회하지 않는다. 내 삶의 적나라한 아픔에 관심을 두고
이해해주는 친구가 있어 우울한 기분도 잠시면 해결된다.
같은 말도 전하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다. 말을 재미
있게 할 줄 모르는 나와 다르게 친구의 말은 유머와 재치가
있어 맛깔스럽다. 그런 친구의 유머와 말솜씨가 부럽다. 뼈
있는 말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말솜씨는 마치 음식 솜씨
와흡사하다. 그런 말솜씨를 닮고 싶지만,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닌 것 같아 포기했다.
좋은 친구는 삶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경직된 시
간을 유연하게 해준다. 말은 그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듯이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베풀 줄 안다. 칭찬에 넉넉
한 사람을 볼 때마다 가족들의 배려와 사랑이 함께였음을
알 수 있다. 친구의 그런 점은 나의 불만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 준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잘 어울리는 친구다. 거
리낌이 없이 말해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준비
된 친구. 잃어버린 내가 아닌,보이지 않는 나의 장단점을
수다 속에서 새롭게 찾아가게 한다. 마음을 기대고 공허한
가슴을 채워주는 따끈따끈한 수다. 우리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김치 같은 것은 아닐까.
적절한 수다로 고통의 언덕을 넘을 때마다 마음을 곱게
빗질하는 친구가 있어 쓰린 삶에 활력을 넣어준다. 말솜씨
좋은 친구의 따뜻한 위로는 수다 속에서 익어가고 어둡고
지친 날에 색다른 즐거움을 얹어준다. 수다라는 말을 거부
감 없이 수용하고 소화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수다쟁이
아줌마가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