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쟁병기/하늘밀리

조기경보기 연혁

21c-park 2007. 6. 27. 15:18

도전과 응전

흔히, 나찌의 비밀병기로 대표되는 일련의 내용을 보면 제 2 차대전 당시 추축국의 군사과학기술이 연합국측보다 뛰어 난 것으로 쉽게 오인하고는 합니다.  더구나 실전에 등장한 V-2 로켓은 물론이거니와 타이거전차같이 최고성능의 독일 무기류를 보면 이러한 착각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 버립니다.

[ 대전 말기에 등장한 Me-262 처럼 추축국의 군사기술은 뛰어났습니다 ]

그러나 일부 독일의 무기류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연합국측의 군사기술이 취약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 중 연합군측이 추축국측에 비해 앞섰던 기술 중 하나가 레이더 Radar 로 대표되는 조기경보기술 이었습니다.  특히 독일에 비해 기술적 기반이 취약했던 일본은 미국과 비교하여 이러한 격차가 더욱 심하였습니다.

[ 그러나 연합군도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레이더 ) ]

해군간의 전쟁이었던 태평양 전역에서 미군 함정에는 레이더가 장착되어 적기의 내습을 사전에 어느 정도 감지 할 수 있었던 반면, 일본의 경우는 순수한 자연지능체계 (?) 를 이용하는 구시대적 방법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였습니다.  일본해군의 함정들은 대부분 높은 망루를 갖춘 마스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망루에 방공 초계병들이 올라가 눈과 귀로 하늘을 감시하였던 것이었습니다. 

[ 높은 방공 초계용 망루를 가지고 있던 일본 전함 야마시로 ]

물론 승리의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었지만 미드웨이해전에서 미군은 함정에 달려있던 레이더를 유효 적절히 사용하여 적의 공습에 효과적으로 대처 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순전히 사람의 눈과 귀에만 의존하였던 일본은 그들의 머리위로 미군의 급강하폭격기 편대가 다가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전쟁의 균형추는 무너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 일본은 미군의 고공침투를 감지하지 못하여 패배를 당합니다 ]

그런데 전쟁 말기가 되자 일본은 자연지능체계를 이용한 유도폭탄을 개발하여 연합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바로 카미카제였는데 이로 인하여 연합군측의 피해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대공미사일체계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당시에는 카미카제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 아군 함대로 다가오기 전에 요격하는 것이었습니다.

[ 카미카제는 미친 인간들의 광기를 보여 주었고, 미국은 공포를 느꼈습니다 ]

하지만 당시 함정에 탑재된 레이더의 경우는 카미카제의 접근을 알 수 있었지만,  이를 요격하기 위한 방공전투기들을 충분히 날려 보낼 시간을 갖기에는 탐지거리가 너무 짧았고 둥근 지구의 특성으로 인하여 수평선 너머의 탐색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레이더로 적기의 내습이 탐지되어도 충분한 대응요격기를 항공모함에서 함대외곽으로 날려 보내기는 물리적으로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 카미카제가 요격 당하는 순간 - 미국은 사전에 막고자 궁리하였습니다 ]

그렇다고 레이더 사정거리 밖에 항상 정찰기를 띄어 놓기도 힘들었고 함대상공에 24시간 내내 적기의 내습을 격퇴할 충분한 요격기를 항상 체공시켜놓고 대기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였습니다.  결국 미국은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새로운 방공감시체계를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처럼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의 법칙이 가장 확실하게 적용되는 곳이 밀리터리분야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프로젝트 캐딜락

그것은 레이더를 항공기에 탑재하여 함정에 설치 된 레이더의 탐지거리 밖으로 날려 보내 방공감시망을 구축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카미카제를 막기 위해 수많은 방공전투기를 미리 날려 보낼 필요 없이, 원거리에서 적기의 내습을 경보만 하면 충분히 사전에 대응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 카미카제를 원거리에서 요격하기 위하여 AEW 개념이 정립됩니다 ]

1944년 2월 미해군은 이러한 목적의 조기경보용 레이더 탑재 항공기개발에 관한 연구용역을 매사츄세스 공과대학 MIT 에 의뢰하였고, 이를 캐딜락 계획 Project Cadillac 으로 명명합니다.  MIT 는 거대한 레이더를 장착 할 수 있는 플랫폼용 함재기로 TBM Avenger 뇌격기를 선택합니다.

[ 실험기 플랫폼으로 선정 된 TBM Avenger ]

그 이유는 TBM Avenger 가 당시 함재기로는 그 규모가 커서 레이더를 장착하고도 비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 되었고 조종수와 후방사수가 탑승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오퍼레이터가 탑승 할 공간이 충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MIT 의 생각은 훌륭한 것이어서 100 마일을 감시 할 수 있는 AN/APS-20 레이더를 장착하여 실험에 성공합니다.

[ TBM Avenger AEW 실험기의 비행모습 ]

Avenger 조기경보기 ( AEW - Airborne Early Warning ) 실험기는 조수석의 오퍼레이터가 레이더를 작동하여 수집된 영상과 자료를 후방의 함정에 설치되어 링크된 CIC ( Combat Information Centre ) 에 성공적으로 전송하는 정보를 처리 하는 기술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 TBM Avenger AEW 실험기의 주기모습 ]

실험에 성공한 미 해군은 더글라스의 Skyraider 를 플랫폼으로 이용하여 AN/APS-20를 장착하여 개발한 Skyraider AEW를 미해군과 영국해군에 대량 보급하여 유효 적절히 사용하였습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실전에서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는지 기록으로는 살펴보기는 힘들고 영국 해군까지 사용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 성능에 해군 당국이 만족하였던 것만은 사실 입니다.

[ 본격적인 AEW 기로 등장한 Skyraider AEW 실험기 ]

미 해군은 이러한 성공을 발판으로 단순한 조기경보기가 아닌 공중 작전을 현장에서 직접 통제 할 수 있는 체계까지 구상하였고 캐딜락 계획 2  Project Cadillac II 를 추진하였습니다.  그러나 Avenger 나 Skyraider 는 함재기라는 제약요소 때문에 그 확장성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 AD5 Guppi 로 제식화 한 Skyraider AEW 기 ]

요즘의 나노기술을 이용한다면 레이더와 관계된 센서류 같은 전자 장비를 축소하여 탑재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였겠지만, 당시 기술로는 부착장비의 크기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었으므로 플랫폼의 크기를 키우는 방법으로 이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함재기를 이용하기는 곤란하였습니다.

[ 장거리 정찰용 PB-1W AEW 실험기 ]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장거리 항속이 가능한 미 육군 항공대 ( 공군 ) 의 플랫폼을 이용하고자 눈을 돌렸고 B-17 이 낙점 되었습니다.  미 해군은 AN/APS-20 를 개조한 TBM-3W 레이더를 장착한 B-17을 시험 운용하였고 이를 PB-1W 라고 명명합니다.  비록 성능은 만족스러운 것이었지만 함재기로 사용 불가하였기 때문에 시험적으로 운용되었습니다.

발전과정

결국 이러한 초기 실험과정을 거쳐 AN/APS-20 를 장착한 PB-1W AEW 가 제 2 차대전 말기까지 성공적인 과업을 수행하였으며 동일 레이더를 장착한 Skyraider 뿐만 아니라 Grumman 의 AF-2W Guardian 등이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 AF-2W Guardian AEW ]

이중 50 여대의 Skyraider AEW 형이 또 하나의 해군강국 영국에 제공되었는데, 영국해군은 특히 AN/APS-20 레이더의 성능에 만족하였습니다.  1950년대 후반 Skyraider AEW 가 퇴역하게 되자 영국은 자국산 대잠초계기였던  Fairey Gannet 에 AN/APS-20 레이더를 장착하여 AEW 함재기 ( Gannet AEW 3 ) 로 사용할 것을 결정합니다.

[ Gannet AEW 3 ]

후에 Gannet AEW 3 가 1970년대 초에 퇴역하자 해양초계기로 사용하던 Avro Shackleton 에 AN/APS-20 레이더를 장착하여 계속 AEW 용도로 사용하였을 만큼 영국은 이 레이더에 절대적인 신임을 보내 주었습니다.

[ Avro Shackleton AEW ]

지금까지 설명 드린 것처럼 초기의 AEW 기들은 미 해군의 필요에 의해서 개발되어 실전에 배치되어 왔습니다.  해군은 AEW 기능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독자적인 공중 통제능력까지 포함한 조기경보통제기 AWACS ( Airborne Warning And Control System ) 를 원하였고 앞전에 설명드린 PB-1W 과 같은 시험기체를 운용하여 보기도 하였습니다.

[ PB-1W ]

제 2 차 대전 도중 해군이 실험적으로 운용한 PB-1W 은 미 육군 항공대 ( 공군 ) 의 B-17 이라는 대형 플랫폼을 이용하였던 관계로 여러 명의 오퍼레이터가 탐색내용을 분석하여 현장에서 지시를 할 수 있었지만, 각 오퍼레이터가 일일이 무전으로 연락하는 형태여서 그리 실용적이지는 못하였습니다.

[ PO-1 ]

전후 미해군은 룩히드의 Constellation 수송기에 발달된 전자기술을 응용한 Warning Star ( 제식명 PO-1W ) 를 1955년 개발에 성공하였고 최초의 실용화 된 AWACS 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 AEW 기는 이전의 PB-1W 보다 그 성능이 뛰어나 총 82 기가 제작 되었는데 미 공군도 10 기를 정식으로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 EC-121 ]

PO-1W 의 변형기종인 EC-121 은 전자전용, 정보수집형, 조기경보통제형 등 여러 버라이언트로 개발되었는데 1965년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실전에 적용하여 그 성능을 입증하였습니다.  그중 회전 레이더 돔을 장착하였던 버라이언트는 이후 AWACS 의 기본적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 EC-121 레이더돔 탑재형 ]

하지만 이러한 PO-1W 나 변형기종인 EC-121 은 대형기인 관계로 해군 함재기로 이용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어 결국 대형기를 이용한 AWACS 분야는 미 공군이 주도적으로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고, 소형 함재기 형태의 AEW 기는 해군을 통하여 독자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재기용 AEW

함재기의 명가인 Grumman 은 Guardian 을 대체 할 새로운 조기경보기로 이미 항모용 수송기로 채택하여 운용중인 C-1 Trader 를 플랫폼으로 한 차세대 AEW 를 해군당국에 제안합니다.  C-1 은 장거리 수송에 적합한 안정된 기체구조를 가지고 있어 플랫폼으로 적절하였고 Grumman 의 제안을 받은 미해군은 이를 수용하여 개발에 착수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 50~70 년대 항모용 수송기로 사용 된 C-1 Trader ]

Grumman 은 C-1 의 기체 후위를 개조하고 거대한 고정식 레이더를 기체상부에 얹음으로써 기존에 사용하던 AEW 와 외양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닌 E-1 Tracer 를 제작하였고, 1957년 3월 1일 최초 비행에 성공하였습니다.

[ AN/APS-82 레이더를 탑재한 E-1 Tracer ]

E-1 Tracer 는 새롭게 개발 된 AN/APS-82 신형 레이더를 탑재하였는데 AN/APS-20 에 비해서 많은 기술적 향상이 있었습니다.  그중 새롭게 추가 된 AMTI ( Airborne Moving Target Indicator ) 기능은 수면에 근접하여 저공비행하는 적기의 탐색에 효과적이었습니다.  E-1 Tracer 는 1977 년까지 일선에서 활약을 하였습니다.

[ E-1 Tracer 비행대의 이함대기 모습 ]

함재기라는 제약조건은 조기경보기와 같이 정밀 장비를 탑재하는 기종들에게 있어 그 성능을 향상시키는데 족쇄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와 전자 기술의 발전은 탐지장비 및 센서류를 좀더 컴팩트화 시킬 수 있었고 이러한 기술적 진보로 인하여 플랫폼의 확대에 제약을 받고 있던 미해군도 AEW 의 성능을 능가하여 AWACS 수준에 근접한 고성능 조기경보기를 확보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 차세대 AEW 기 플랫폼으로 지목 된 C-2 Greyhound ]

이러한 기술발전에 따라 차세대 항모용 조기경보기의 플랫폼도 역시 Grumman 의 항모용 수송기로 새롭게 등장하여 사용하고 있던 C-2 Greyhound 가 낙점 되었고, 이전에 사용하던 E-1 Tracer 와는 달리 EC-121 과 같은 회전식 레이돔을 장착하는 새로운 조기경보기의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 너무나 유명한 E-2 Hawkeye ]

이 새로운 기종은 전천후 작전이 가능하고 항모 전투단의 방공 및 함재기들의 작전을 일부 직접 지휘 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이 기종은 미해군이 1965 년부터 채택하여 지금까지 계속 업그레이드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수많은 동맹국에 공급되어 실전에 투입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인근의 일본, 대만, 싱가포르도 현재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 싱가포르 공군의 E-2 ]

특히, 이스라엘은 이 기종을 유효 적절히 사용하여 적기의 내습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아군 전투 비행대에 정확히 알려주어 항공전사에 전설로 남은 베카계곡의 완승을 이끌었습니다.  이 전투는 F-15, F-16, Kfir 같은 서방 전투기의 성능이 뛰어남도 입증하였지만,  조기경보기의 존재 이유를 만천하에 알려 주었던 전투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기종이 바로 그 유명한 E-2 Hawkeye 입니다.

AWACS 그리고

미해군과는 별도로 조기경보능력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지휘통제까지 담당 할 AWACS 를 개발하던 미공군은 함재기라는 제약을 덜 받는 관계로 처음부터 대형 플랫폼을 이용하여왔고, 본격적으로 제식화 하여 사용하던 EC-121 에 커다란 만족감을 표현하여 왔습니다.

[ 미공군 AWACS 플랫폼으로 선정 된 B-707 ]

그리고 좀더 진보한 전자기술 및 센서류의 개발에 힘입어 후속 AWACS 제작에 착수하였는데, 민간항공기로 그 명성과 품질을 인정받은 Boeing 707 을 플랫폼으로 낙점합니다.   B-707 기종 보다 대형인 여타 기종도 있었지만 B-707 이 기존의 군용공항에 사용하기에 적당한 크기의 기종이어서 플랫폼으로 선택된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 E-3 AWACS 의 TAXING 모습 ]

미공군은 기체상부에 직경 30 feet 의 대형 회전식 레이더돔을 설치하였는데 그 탐색거리가 250 마일 정도였고, 성능이 고고도의 우주비행체 뿐만 육상이나 해상의 저고도에서 날아다니는 비행체를 탐색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회전식 거대 레이더돔은 오늘날 AWACS 기를 상징하는 구조물이 되었습니다.

[ 기내 콘솔과 오퍼레이터의 모습 ]

더구나 대형기체의 이점에 따라 장장 8시간이상을 체공하며 작전을 펼칠 수 있었고 15 명 정도의 오퍼레이터들이 탑승하여 컴퓨터로 집중화 된 정보를 즉시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현장에서 작전기들을 지휘하는 관제 역할도 너끈히 수행 할 수 있었습니다.

[ 최고의 전략병기로 자리매김한 E-3 Sentry ] 

이러한 성능에 만족한 미공군은 미군뿐만 아니라 NATO 와 같은 동맹군사조직에 해당기체를 공급하여 일원화 된 정보 수집, 분석, 분배 씨스템을 완성합니다.  바로 오늘날 AWACS 의 대명사로 불리는 E-3 Sentry 입니다.  이 기종은 1970 년 중반이후부터 일선에 배치되어 현재 30 여기 이상이 작전 중에 있습니다.

[ 영국의 Nimrod 조기경보기 ]

오늘날 AEWAWACS 기종은 현대공군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전략병기라는데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미군의 조기경보기를 통하여 대략적인 발전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사실 미국의 전유물은 아니고 여러 나라도 자체 개발하여 실전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 러시아 ( 소련 ) 의 TU-126 Moss (上) 와 A-50 Mainstay ]

러시아 ( 소련 ) 의 TU-126 Moss, A-50 Mainstay  영국 Nimrod 처럼 전통적인 군사강국들이 제작하여 사용하는 기종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제작한 Phalcon, 비록 실패로 끝난 인디아의 Hindustan HS748 그리고 소형항모용 Seaking AEW, Ka-31 AEW 등 회전익기형 AEW 등이 있습니다.

[ 인도의 HS748  (上) 와 미해안경비대의 EC-130 ]

거기에 더해 미해안경비대가 사용하는 EC-130 뿐만 아니라 민수용으로도 사용하는 Fokker S-27, CASA C-212 등의 조기경보기들이 활약 중입니다. 

[ 함정 탑재용 Seaking AEW (左) 와 Ka-31 AEW ]

하지만 지역공군을 넘어 우주로 미래로 라는 모토를 가지고 전략공군으로 발전하려는 한국이 보유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까지 기종선정을 마무리 짖지 못하고 E-X 프로젝트가 표류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