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방
*주인 없는 방
방 청소를 하기 위해 문을 연다. 가지런히 정돈된 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적막이 반긴다. 주인 없는 방에 무단 침
입한 먼지를 뒤집어쓴 시간을 닦는다. 이 방의 주인이 떠
난 지 벌써 3주째다. 국방의무를 하기 위해 떠난 아들. 가
는 날까지도 크게 걱정 한번 들어보지 못한 아들은 서운했
는지 자꾸만 날을 헤아리곤 했다.
‘잘 해낼 수 있어요.’라고
말은 해도 입대할 날이 다가오자 걱정스러운 모습이 역력
했다. 하지만 가족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 게 은근히 서운
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걱정 안 돼?” 가끔 의중을 묻던 녀석의 섭섭해하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걸레를 든 손에 힘이 보태진다.
매일 빈방을 청소한다. 주인은 자리를 비웠지만,아들은
금방이라도 돌아와 “엄마” 하고 부르며 들어설 것만 같다.
마음대로 돌아올 수 없는 몸이지만 부모의 마음엔 하냥 메
아리 같은 그리움이다. 인적 없는 벌거숭이 민둥산에도 메
아리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움이 밀려와 마음이 허허
로을 때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녀석이 입대하
고 일주일 후에 소포가 도착했다. 전날 도착했다는 경비실
아저씨의 말을 듣고 마음이 조여왔다. 동생의 이삿날이라
집을 비운 게 소포를 하루 늦게 보게 된 셈이다. 눈물 날까
봐 늦게 온 줄 알았다던 경비아저씨의 말이 뒤통수에 박
힌다. 올라와 소포를 어루만진다. 손이 떨린다. 갈 때 입고
나섰던 흰색 반바지와 양말,팬티,운동화,티셔츠가 가지
런히 담겨 있다. 곱게 접어서 서랍에 넣어주던 모습 그대
로 개어져 있어 가슴 한편이 찡하다. 늘 어린아이처럼 굴
어서 걱정스럽고 미덥지 않았는데…
. 그런데 이게 웬 편지
일까? 상자 한쪽 날개에 수성펜으로 급하게 흘려 쓴 낙서
같은 글이 있다.
첫째 날: 러닝은 매우 크고 팬티는 너무 작다.
둘째 날: 할 일 없어 매우 심심하다.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금요일 자대 배치받으면 편지할게요.
녀석다운 일기 형식 편지다. 편지가 쓸 수
없어서였는지 급하게 적은 듯 글씨는 엉망이다. 사흘간의
일과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배고픔이란
단어가 낯설다. 지금처럼 풍족한 세상에 배가 고프다는 말
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소리 같다. 먹고 싶을 때 시간과
관계없이 먹고 잘 수 없는 곳. 규칙과 질서와 서열이 분명
한 곳에서 지키고 따르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늠름해져 돌
아올 아들의 모습을 기 대해본다.
며칠 후 녀석의 친구한테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
다. 입대하기 전 몇 가지 부탁받은 게 있다고 했다. 차분
하게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전해주는모습이 예쁘다. 떠날
때도 엄마나 아빠에게 의지하지 않고 친구들의 배응을 받
으며 갔던 아이다.
그때는 조금 섭섭하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니 차라리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예
의 바르고 듬직하며 야무지단다. 조금은 안심이 된다. 어
른이 되어 자식을 군에 보내고 나니 내 부모님의 걱정을
알 것같다.
이십오 년 전의 일이다. 경기체신청 발령통지서를 받고
찾아갔던 가평. 서울에서 아버지와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
찍 굽이굽이 산골짜기를 돌아 가평에 도착했다. 오후 4시
쯤 다시 청평으로 발령을 받았다. 청평 우체국을 찾아 국
장님께 인사드리고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자취방을 정한
뒤,몇 가지 물건을 사주고 돌아서시던 아버지 등이 굼틀거
렸다. 낯선 곳에 혼자 두고 가야만 했던 아버지는 쉽게 걸
음을 돌리지 못하셨다. 저녁 한 끼도 함께하지 못하고 떠
나시는 아버지를 배응하면서 눈물이 앞을 가려 인사도 제
대로 드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몇 번인가 들어가라는 손짓
으로 헤어짐을 대신하셨지만 분명 아버지도 눈물을 보이
지 않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시는 것 같았다. 바로 가까운
곳에 역이 있어 떠나는 기차를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돌아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내 모습이 빈방에 덩그러니
서 있다 사라진다.
처음 해 보는 객지 생활,환경과 정서가 완전히 다른 곳
에서의 생활을 익히느라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탔던 기억
이 새롭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향수병,그때마다 이불깃
이 젖도록 혼자 울던 철부지였다. 뒷모습이 무겁고 쓸쓸
하게 느껴졌던 그때의 아버지도 지금의 내 나이쯤 아니셨
을까 싶다.
나는 휴무 때마다 고향을 찾았다. 청평에서 나주까지 먼
길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찾아다녔다. 거의 길에서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여행 겸 즐거운 나들이였다.
여자는 사회생활로 처음 집을 떠난다면,남자에겐 군대 생
활이 아닐까 싶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험은 평생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엄마 마실 것 좀 주세요!”
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주인 없는 방에서
기다려주는 물건들,방문을 열 때마다 그들의 소곤거 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런 방이 좋아 독서와 휴식을 빈방의
투숙객이 되어 즐기곤 한다. 언제든지 돌아오면 어제처럼
반겨줄 방을 꼼꼼하게 닦고 나온다. 지루하지 않게 기다리
는 유일한 나만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