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park 2024. 1. 17. 16:10

*푸른 너울

서로 품고 있다. 아파트는 바다를바다는 아파트를.

는다는 건 서로 사랑한다는 증거. 수줍은 듯 해무에 가려진

바다는 수평선의 황홀함을 은근히 과시한다.

누가 먼저 사랑을 고백했을까? 서로 사랑하지 않고

어찌 이렇게 큰 품을 열 수 있단 말인가.

내 공간내 취향을 중요시하는 시대에 인간과 자연의 드라마

같은 특별한 조화로움이다. 부산 해운대 시누이의 아파트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아파트와 바다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을 맞추며 서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품을 펼치며 무언가를 썼다 지우

느라 쉴 틈이 없는 바다. 진정한 사랑은 말보다 더 뜨거운

진실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바다는 하늘의 감정을 실시간 전송하겠다고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했을 것이다.

그 조건을 어기거나 결말낼 일은 없어 다행이다.

숨겨진 서가를 열어 자랑하고 싶은 바다의 속셈을

눈치첸 건들바람이 갑자기 파도의 길이를 늘려 옆으로 연

대를 이루며 지나간다. 잔주름을 잡는 실바람작은 파도

를 몰고 오는 남실바람흰 거품을 일으키는 산들바람이 다

투어 모양을 뽐낸다. 바다의 이웃들이 쉴새없이 다녀간다.

바다의 결을 밀어 올리는 바람시원함을 걷어내는 뜨거운

구름이 빚어내는 순식간의 짙은 어둠직선이거나 사

선으로 긋는 비 등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바다의 단련된 근

육이 보인다. 소란한 듯 다정한 친구들이다.

끝없는 수평선 가까이 해운대 해수욕장이 보인다. 아직

끝나지 않은 휴가철이라 밤은 축제마당이다.

젊음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취기처럼 흔들리는 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그리움을 퍼 올린다.

야경을 친구삼아 해변을 따라 광안리 해수욕장까지 걸

었다. 광안대교가 우리를 따라오며 눈을 떼지 말라고 소리

치는 것 같다. 해운대보다 조용해 어른의 취향에 맞춘 것

처럼 안정된 분위기가 안성맞춤이다. 시간이 지나자 반짝

이는 윤슬이 고혹적인 모습으로 인사를 한다. 왼쪽으로는

굽 높은 하이힐 같은 광안대교가 성큼성큼 걷는 것처럼 느

껴 진다.

정장과 잘 어울리는 하이힐의 화려함은 밤이 되자 절정

이다. 바다는 화려한 외출을 눈감아준다. 반짝반짝 불빛을

품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하염없이 걷고 있다. 어둠을 덮고

누운 바다는 숨죽이고 있는데 밤 외출에 나선 저 구두는 어

디로 가는 걸까. 철썩철썩 파도 소리에 맞춰 밤새도록 끊

이지 않는 걸음에 현혹되어 잠마저 반납한 채 바라본다.

상쾌한 아침 이다. 밤새 발이 부르트도록 걷는 것 같았는

데 다리는 제자리에 있다. 어젯밤 현란하던 구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긴 대교가 바다를 가로지르며 여전히 사람

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바다는 아침이 되자 광안대교의 걸음을 붙들어 맨 채 가끔

어두운 표정을 짓지만 평화롭다.

너울이 펼치는 율동과 퍼포먼스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매혹적이면서 현란하지 않고 고요하다. 지친 기색 없이

흐트러짐 없는 반듯함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한편으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엿보인다.

해안선을 따라 산을 끼고 누워 있는 이 기대를 찾았지만

바람 한 점 주지 않고 따라오는 햇빛의 눈총만 따갑다.

늘 한 돼기 만들어주지 않겠다는 하늘의 고집을 꺾지 못하

고 중간쯤에서 돌아왔다. 나무들의 수런거림이 있고 바다

가 들려주는 파도의 악보 없는 연주가 걸음을 가볍게 한다.

커피향이 짙은 기장의 웨이브 원 커피 집그곳에도 바다

가 먼저 도착해 있다. 한 줄기 푸른 바람을 넣어 마시는 커

피가 달다. 분위기를 마시는 사람들과 소문을 듣고 달려온

발길들. 하염없이 줄이 길다. 바다와 이웃이 되겠다고 달

려온 사람들의 숨소리가 가쁘다. 뜨거운 햇살이 바람 없는

바다의 등을 달구는 솜씨에 윤슬이 더욱 빛을 발한다. 바다

는 자태를 뽐내지만 사람처럼 이기적이지 않고 편안하다.

나흘 동안 이곳저곳을 다녔지만바다와 눈을 맞추지 않은

곳이 없다. 질서정연하여 평화롭다.

뜨거운 포옹이거나 입맞춤도 아닌데 눈을 뗄 수 없었던

바다와의 눈 맞춤은 심심하지 않았다. 따뜻한 이웃과 시시

각각으로 변모를 돕는 친구가 많아 실시간 중계에도 지루

하지 않았다. 다시 바다의 잔잔한 속삭임에 주파수를 맞춘

. 눈에 담아온 바다의 이웃들을 품속에 내려놓는다. 바다

의 푸른 너울이 나의 품속에서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