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쟁병기/하늘밀리

F-4 팬텀(Phantom) II

21c-park 2007. 6. 27. 16:31

F-4 팬텀(Phantom) II

한창때의 F-4 팬텀의 생산라인 모습. 한때 1개월에 72대를 생산하기도 했었다.

소개
F-4 팬텀Ⅱ에 대한 내용의 많은 부분은 미국 군용기 관련 최고의 홈페이지인 'Joseph Baugher씨의 American Military Aircraft'에서 저자인 Joseph Baugher씨의 허락을 받고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Joseph Baugher씨의 American Military Aircraft 싸이트는 정말 미국이 개발한 군용기에 대해 정교하게 소개하고 있는 곳입니다. 매니아시라면 꼭 가보시길...

▷ Joseph Baugher씨의 American Military Aircraft 싸이트 주소 : http://home.att.net/~jbaugher/

▷ Joseph Baugher씨의 E-mail : jbaugher@worldnet.att.com

개관
F-4 팬텀(Phantom) II는 쌍발 엔진에 의해 추진되는 대형의 전천후 전폭기로 제공, 적방공망 제압, 지상에 대한 근접항공지원, 장거리 폭장능력에 의한 적 후방차단, 전술정찰, 폭격기에 대한 호위임무 수행을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애초 해군의 함대방공요격기로 맥도넬더글러스社(현재 보잉社로 합병)에 의해 개발된 F-4 팬텀 Ⅱ(A/B기종, ※ 편집자 註 : 흔히 F-4 팬텀 Ⅱ라는 닉네임중 로마숫자 Ⅱ는 그 훨씬 이전 FH-1 전투기에 이미 팬텀 이란 명칭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나, 흔히들 F-4 팬텀 Ⅱ란 명칭보다는 F-4 팬텀이란 명칭을 많이 사용한다.)는 1954년 시제기에 대한 제작 발주가 되어 1958년 F-4A가 최초로 비행하였으며, 양산형 F-4B가 1960년부터 미해군미해병대에 인도 되었으며, 1961년부터 실전배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미공군은 팬텀기의 강력한 엔진추력과 장거리 항속능력에 주목하여 1962년부터 CAS, 후방차단, 적 방공망 제압용도로의 시험평가를 실시했다.
결국 기존의 해군용의 팬텀Ⅱ의 성능에 레이더기능등을 보강하여 F-4C(팬텀Ⅱ)로 명명된 미공군용의 첫번째 기체가 1963년 5월 27일 처녀비행을 실시 하게 되었다.
또한 F-4 팬텀기는 서방세계에서 제작되던 것중 가장 강력한 제트엔진으로 1개당 17900파운드의 추력을 가진 제너럴일렉트릭社의 J79-GE-17엔진 2기(F-4E)를 장착하여 동시대의 어떤 전투기종보다도 높은 무장장착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단순비교하자면 F-4E기는 제2차세계대전당시 미국의 주요 폭격기로 활약한 B-17 폭격기나 동시대에 미국이외의 중소국가에서 많이 사용된 F-5A기보다 2배이상인 7톤이상의 범용폭탄을 장착할수 있다.(※ 편집자 註 : 그렇다고 F-5A가 F-4의 50%에 해당하는 폭장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수는 없다. F-5의 경우 워낙 전투행동반경이 짧은 관계로 최대무장을 장착할 경우 날아갈 수 있는 거리도 대단히 제약이 되며, 근본적으로 F-5A/E/F의 에이비오닉스는 F-4의 그것에 비할바가 못된다.)
이것은 대량폭격시대의 총아인 B-52 폭격기 무장 적재량의 20%가량에 해당되는 것이다.
한편 1970년대 주한미공군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팬텀기 12대에 범용폭탄을 가득 장착하고 폭격할 경우 평양을 완전히 초토화 시킬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F-16F-15E의 범용폭탄 최대 적재능력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없는 관계로 비교가 어렵다.
아무래도 요즘의 F-16F-15E가 주로 스마트 병기들을 운용하기때문인가 보다.)
적의 미사일싸이트와 같은 방공망 제압을 위해 개발된 F-4 시리즈의 최신형인 F-4G Wild Weasel기의 생산이 1979년에 종료될 때까지 미국에서의 총 5000대 이상의 F-4기가 생산되었으며, 그중 미공군에 2,600대, 미해군과 미해병대에 1,200대가 공급되었고, 나머지는 미국의 우방국인 이스라엘, 그리스, 터키, 스페인, 한국, 서독, 호주, 일본, 영국등에 수출되었다. F-4의 생산기록은 이후 제작된 어떤 기종에 의해서도 당분간 깨지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물론 F-16 Block 60/62기종이 얼마나 제작될지가 관건이 되겠지만...
어쨌든 현재까지 F-4 팬텀기가 F-16기종보다도 더 많은 대수의 생산기록을 가지는 것은 F-16기미해군에 일부 훈련용및 전투 시뮬레이션용으로 공급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공군에만 공급된데 비해 F-4기는 미공군미해군, 미해병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특히 양산 직후부터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또한 이스라엘공군에 의해 중동전에 참전하면서 많은 소요가 있었던 데 따르는 것으로 보여진다. F-4기의 생산은 절정기에 한달에 72대가 제작되었던 적도 있다.
F-4의 일부기종은 1991∼2년 '사막의 방패' 작전 당시와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미공군 소속기로 이라크 지역에 대한 정찰및 방공망 공격임무에 투입되어 사용되어졌으나 현재 미군의 F-4기는 전량 도태된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영국해군이 운용하던 F-4역시 전량 퇴역조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도 한국, 일본, 이스라엘, 그리스, 터키등에서는 실전배치하여 운용중이다.

F-4A의 모습(上)과 F-4B의 모습(下)<

F-4C

개관
F-4 시리즈가 미공군 주력기로 자리잡기 이전까지 미공군의 주력기는 F-105 썬더치프였다.
이후 미공군은 해군이 신형 함상전투기로 F-4B 팬텀기를 도입하여 운용중인 것과 같이, 강력한 성능을 가진 신형의 주력전투기를 개발하여 획득하기를 원했으나, 당시 미국방장관이었던 맥나라마는 미해군과 미공군이 각각의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은 예산상의 낭비를 초래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이에 제동을 걸었으며, 미공군은 이를 받아들여 독자 전투기를 개발하는 대신 강력한 성능을 가진 미해군의 F-4 팬텀에 주목하게 된다.
결국 미공군은 1961년 F4H-1 팬텀Ⅱ(※ 편집자 註 : 미해군이 양산 시제형으로 개발하여 생산한 1호기부터 47호기까지를 F4H-1F로 분류하였고, 이후 양산형인 48호기부터는 F4H-1으로 분류하였으나, 1962년 이후부터 F4H-1F는 F-4A로 F4H-1은 F-4B로 분류된다.)기에 대한 평가시험을 하는 것에 동의한다.
F4H-1과 F-106A와의 비교평가에서 F4H-1은 F-106A에 비해 더 높은 속력과 더 높은 비행고도와 더 긴 항속거리(25%)를 가지고 있슴을 입증했으며, 거기에 덧붙여 더 많은 무장을 장착할 수 있슴을 보여 주었다.
또한 F4H-1을 정찰용도로 사용할 경우 기존의 야간 촬영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RF-101A/C보다 훨씬 더 유용한 기체가 될것으로 판단했다.
분명한 것은 그때가지의 미공군 주력기인 F-105 썬더치프보다는 F4H-1이 훨씬 우수한 기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장점들이 드러나자 당시 미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미의회에 F4H-1의 미공군용 버젼인 F-110의 개발승인을 요청했으며, 이 안이 채택됨에 따라 미공군은 전투기용도의 F-110A와 정찰기 용도의 RF-110A기를 개발키로 하고 닉네임을 '스팩터(Spectre)'로 붙였다.
이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방부는 2대의 미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F4H-1을 미공군에 시험평가용으로 보내도록 명령하여 1962년 1월 24일 두대의 F4H-1기가 미공군의 버지니아주 소재 랭글리 공군기지로 공급되었다.
이들 기체에는 이미 분류번호인 F-110A라는 마킹이 기수부분에 'USAF'마킹과 함께 칠해져 있었다.
이 기체들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상적인 것으로 두대의 F4H-1기들은 미공군의 요구 사항을 훨씬 튀어넘는 성능을 과시했다.
1962년 3월 미 국방부는 팬텀Ⅱ의 육상용 버젼이 미공군의 주력전투기와 주력 전술정찰기로 선정되었다고 발표하였으며, 3월 30일 미국방부는 맥도넬더글라스社에 한대의 F-110A와 또 한대의 YRF-110A기에 대한 제작 요구서를 발송했다.
미공군은 당연히 F-110에 대해 공군요구사항에 적합하도록 변경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8월 29일 Specific Operational Requirement 200을 통해 F4H-1에 지상공격능력은 추가하고 함상용 전투기에 장착되는 어레스트 후크와 캐터펄트 부착 장비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으며, 또한 뒷쪽 좌석에도 조종기능을 포함 시킬것을 요구했다.
이밖에 해군용의 F4H-1에 사용되던 고압의 대형 타이어는 공군 사용환경에 적합치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대신 저압의 광폭 타이어를 달도록 했으며, 또한 타이어 브레이크 장치에는 Anti-skid wheel brake를 채택하도록 요구했다.
1962년 9월 18일 맥나라마 국방장관의 주도하에 미 국방성은 미해군/미공군/미육군이 항공기의 분류명을 공통화 시킬 것을 지시하여, 미해군의 F4H 팬텀은 F-4로 개명되었으며, 양산형인 F4H는 F4B로 개명되었다.
미공군도 미국방성의 지시에 따라 F-110A는 F-4C로 RF-110A는 RF-4C로 개명하였다. 이와 함께 닉네임도 '스펙터'에서 해군과 같은 '팬텀'으로 변경하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된 F-4C는 1963년 5월 27일 최초로 비행하였다.
F-4C는 외관상 F-4B와 매우 흡사하나 상기에 밝힌 것과 같은 공군 요구사항이 반영되었고, 또한 공중급유기의 형식의 해군의 프로브 타입으로부터 칵핏 뒷쪽 동체에 수납되는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이밖에 후방좌석의 계기판은 조종기능이 추가됨에 따라 변경되었으며, 더 높은 시계성의 확보와 조종의 용이성을 높이기 위해 계기판의 위치도 아랫쪽으로 이동되었다.
한편 미공군의 F-4C기는 지속적으로 전자장비들이 교체되었다. 그 내역은 아래와 같다.

▷지상 매핑능력 웨스팅하우스社(제너럴 일렉트릭社 계열이었으나 후에 노드롭社에 매각.
다시 노드롭은 그루만과 합병하여 노드롭-그루만으로 개명됨.)의 AN/APQ-100( F4H-1에는 AN/APQ-72레이더 장착)
AIM-7 스패로 미사일을 유도하기위하여 AN/APA-157 일루미네이터(AIM-7 스패로는 표적에 지속적으로 照射해주어야만 한다.)
▷저고도에서의 핵무기 투하 능력을 가진 AN/AJB-7 전고도 핵무기 투하 시스템
▷AN/ASN-48 (LN12A/B) 관성항법 시스템 장착
▷AN/ASN-46 항법 컴퓨터 장착
▷ASN-39 (ASN-46) dead-reckoning 항법컴퓨터
▷ALR-17 전자 대응수단 레이더 경보 시스템
▷APR-25 레이더 추적/경보 시스템
▷APR-26 SAM 발사 경보 시스템
▷APN-141 (APN-159) 레이더 고도계
▷A24G 중앙 공중 데이터 컴퓨터
▷ASA-32A 아날로그식 미사일 콘트롤 시스템
▷SST-181X Combat Skyspot radar bombing system(일부기종에만 장착)

F-4C의 모습(上)과 F-110A로 도장된 F-4C의 초기모델(下)

F-4C에 장착된 엔진은 1기당 10,000파운드(애프터버너 사용시 17,000파운드)의 추력을 가진 제너럴일렉트릭社製 J79-GE-15엔진이었다.
이밖에 조종좌석은 마틴-베이커社製의 Mk H5 사출좌석을 사용했다.

무장
F-4C는 그당시 '현대전'의 개념을 반영하여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았다.
4발의 AIM-7D 혹은 AIM-7E 스패로 미사일을 동체하부에 장착할 수 있으며, 4발의 AIM-4D 팰콘이나 AIM-9B 혹은 AIM-9D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주날개 하부의 파일론에 장착할 수 있다.
이밖에 空對地 미사일로는 AGM-12 불� 미사일과 AGM-45 쉬릭, AGM-65 마베릭을 장착했다.
이밖에 비유도식의 로켓발사용 포드와 일반폭탄, 집적탄등 최고 16,000파운드의 병장을 장착 할수 있다.
후에 기관포의 결여가 문제가 되어 동체 하부 중앙부에 별도의 SUU-16/A 포드(M61A1 20mm 개틀링건과 1200발의 탄환 적재)를 장착하도록 하였으며, F-4C의 경우 모두 세개의 SUU-16/A 포드(후에는 SUU-23/A)을 장착 할 수 있다.
내부 연료탱크 용적은 1979갤론으로 총 6개의 연료탱크가 동체내에 2개가 주익에 위치한다. 이밖에 F-4C는 외부에 600갤론 용량의 외부 연료탱크를 동체 하부 중심에 장치된 랙과 370갤론 용량의 외부 연료탱크를 각 1개씩 주익 하면에 장착 할 수 있다.

배치
미공군은 F-4C 팬텀을 신속하게 실전 배치하기 위하여 일단 27대 이상의 F-4B를 미해군으로부터 임대받아 배치하여 주로 공군 조종사들의 훈련용으로 사용하였으며, 이후 곧바로 미공군용의 F-4C가 양산에 돌입하여 배치되었다.
미공군 부대중 가장 먼저 F-4C기를 운용하게 된 부대는 맥딜(MacDill)에 위치한 제12훈련비행단으로 1964년 1월 F-4C기를 인도 받아 기존의 F-84F 썬더스트릭기를 대체했다.
미공군에 F-4C기가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해군으로부터 임대받았던 F-4B기들은 곧바로 해군으로 돌려보내졌다.
1964년 12월 2일에는 F-4C기에 의해 KC-135기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18시간동안 10,000마일을 무착륙 비행하여 전투기부문의 신기록을 세웠다.
1965년 7월 10일 두대의 F-4C가 베트남전에서 두대의 MiG-17기를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사용하여 격추시킴으로써 최초의 전과를 기록하였다.
1965년 7월 24일에는 제47전술전투비행전대소속의 F-4C기는 월맹군의 地對空 미사일에 의해 격추됨으로써 소련製 SAM에 의해 격추된 최초의 미공군기가 되었다.
이당시 F-4C기들의 전형적인 무장은 4발의 사이드와인더미사일+4발의 스패로미사일+750파운드의 폭탄을 적재하는 것이었다.
미공군은 F-4C기중 몇기에 AN/APR-25 레이더 추적및 경보 시스템을 장착하여 적 레이더 싸이트 공격기로 사용하였다.
F-4C기는 총 583대가 생산되었으며, 1966년 5월 4일 생산을 종료되었고, 1972년부터는 제1선에서 퇴역하여 미주방위군 소속 기체로 운용되었으며, 1978년 6월부터 재고기종으로 보관되기 시작했다.

결함
베트남에서의 최초 2년동안 F-4C기는 그때까지 작전에 참가했던 총 54기중 약 40%가 격추되었으며, 대부분이 SAM이나 MiG와의 교전중 격추된 것이나, 이중에는 자체 비행중 비행불능으로 추락한 경우도 있다.
특히 이런 사고는 CAS를 위해 저공비행하는 도중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10,000피트 이하에서 기체가 스핀 될 경우 F-4C기의 비행자세를 회복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여 이때 조종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사출좌석을 이용해 탈출하는 것 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F-4C기는 현대적 공주전에서는 기총이 필요 없을 것으로 판단한 미공군의 실수로 인해 미사일만을 장착하여 MiG기와의 근접 교전시 대단히 애를 먹었다.
이후 전술한 바와 같이 SUU-16A 건포드를 동체하부의 중앙부에 장착하였으나, 이것은 위치상의 문제로 조종사가 마음대로 조준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스핀시 F-4C의 자세를 회복시키는데 장애요소가 되었다.
또한 초기 F-4C기들은 날개내부의 연료탱크에 누유 현상이 발생하곤 하여 각기체의 연료탱크는 1회 비행후 조심스럽게 분리되어 점검을 받아야 되었으며, 이는 미공군의 유지관리비용에 악영향을 미쳤다.
F-4C기의 AN/APQ-100 레이더의 고장율은 대단히 높았으며, 초기의 F-4C기들은 주익의 골재들이 약한 문제도 가지고 있었다.
F-4C의 주익부 골격은 후에 보강설계되어 기존의 F-4C전체에 개수가 가해졌다.
또한 초기에 생산된 F-4C기의 내부 전장 연결부에 결함이 발견되어 초기 생산된 385대가 전부 부품 교체조치된 적도 있다.
1969년 미공군은 마침내 전·후방좌석에서 모두 조종이 가능하도록 설계변경한 것을 실수로 인정하고 이후 뒷좌석에서 조종기능을 제거하였으며, 후방 탑승 요원은 무기관제임무만을 맡도록 조치하였다.
몇대의 F-4C기에서는 엔진 베이部에 화재도 발생하여 이의 해결을 위해 1970년 1월부터 10월까지 재설계 작업이 실시되었다.

RF-4C의 모습

RF-4C

개관
RF-4C기는 비무장의 정찰기로 F-4C의 기체를 이용해 개발한 것이다. 애초 F-4C에 장착되어 있던 무장 시스템과 레이더는 제거되었으며, 대신 사진촬영정찰을 위한 장비들이 장착되었다.
F-4C와 RF-4C간의 가장 두드러진 외관상의 차이점은 기존의 사격관제 레이더 대신 카메라를 수납하게 된 노우즈 부분이 더 길고 두드러진 모양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해병대 용의 RF-4B와 의 차이점은 F-4B와 F-4C의 차이점과 동일하다.
RF-4C의 시험기체인 YRF-4C의 첫비행은 1963년 8월 9일 실시되었다. 이 기체의 기수부는 RF-4C와 마찬가지로 확대되어 있는 형상이었으나, 실제로 내부는 비어있었다.
곧이어 2번기인 YRF-4C 1963년 9월 30일 비행 테스트를 실시하였으며, 이 기체의 기수부에는 1번기와 달리 파노라믹/프레임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으나 완전한 시스템을 장착 하지는 않았다.

장비
RF-4C는 총 3개의 카메라 장착대를 기수부에 가지고 있다. 전방 카메라 장착대(레이더 바로 뒷쪽)는 1개의 앞쪽으로 기울어진(혹은 수직으로 장착된) KS-87 카메라가 장착되며, 제2장착대 혹은 저고도 장착대는 바로 전방카메라 장착대 뒤에 위치하며 KA-56 저고도 카메라가 장착된다. 이 자리에는 KA-56대신 KS-87카메라를 수직/좌향/우향으로 기울어지게 장착할 수도 있다.
이밖에 이 자리에는 KA-1이나 KS-72 카메라를 장착할 수도 있다.
제3카메라장착대(고고도 카메라장착대)는 노우즈의 칵핏 바로 앞쪽 아랫부분에 장착된다. 여기에는 한개의 KA-55나 한개의 KA-91 고고도 파노라믹 카메라가 장착된다.
이밖에 여기에는 두개의 KS-87 카메라가 45˚각도로 장착할수 있으며, 또는 KC-1이나 T-11 매핑 카메라를 장착할 수도 있다.
RF-4C는 야간 사진촬영을 위해 플래쉬 이젝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후방동체의 윗쪽에 유압식으로 여닫히는 도어의 뒷쪽에 설치된다.
RE-4C의 초기버젼(시리얼넘버 71-0259까지)은 플래쉬 이젝터가 동체의 양쪽 - 26개의 M112 카트리지가 한쪽에 10개의 M123 카트리지가 나머지 한쪽에 - 에 장치되어 있었으나, 이후 버젼(72-0145부터)에서부터는 20개의 M185로 구성된 LA-249A 이젝터 한가지만이 한쪽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RF-4C에는 F-4B의 기수부에 장착된 AN/APQ-72레이더보다 훨씬 더 작은 크기의 TI社製의 AN/APQ-99 모노펄스 J-밴드 레이더가 장착된다.
이 레이더는 지형회피, 지형 참조모드를 사용 할 수 있으며, 지형 매핑 기능을 가진 것이다. 이것은 후에 다시 TI社의 AN/APQ-172로 교체된다.
AN/AAD-5 또는 AN/AAS-18 적외선 탐지 장비가 기수부 랜딩기어 수납部 바로 뒷쪽에 장착된다. AAD-5는 비디오 신호를 필름기록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장비이며, AN/AAS-18은 개선된 광학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SO2498 필름 350피트가 내장되어 있다.
일부의 RF-4C기는 AN/AVQ-9 적외선 탐지장비와 레이져 표적 지시기를 가지고 있다.
RF-4C는 또한 굳이어(Goodyear)社의 AN/APG-102 측방 감시용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으며, 이 레이더의 안테나는 아랫쪽 기수部의 카메라 정찰 장착대 바로 뒷쪽에 장착된다. 이 시스템이 장착된 기종중 일부는 후에 이것 대신 600갤론 외부장착 연료탱크를 개조하여 만든 AN/APD-10 장거리 안테나 시스템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이 시스템에는 UPD-8 데이터링크가 포함되어 있으며, 또 이 데이터링크는 방향을 변환할 수 있는 안테나가 있어 레이더가 수신한 이미지를 지상기지국으로 실시간으로 전송 할 수 있다.
ARC-105 고주파수 무선 시스템은 수직미익의 양옆에 장치된 대형의 감추어진 안테나에 의해서 작동된다.
RF-4C의 ECM 장비는 RF-4C의 긴 사용기간동안 인상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갔으며, 그 내역은 아래와 같다.

▷레이더 추적/경보 수신 시스템은 ALR-17/31/46/50/126으로 교체되어 나갔다.
▷실시간 데이터 전달 기능을 가지고 있는 데이터 링크가 포함된 전술 전자 정찰 센서인 리튼社의 AN/ALQ-125 Terec(페이브 오닉스) 장착
▷Lear Siegler社의 AN/ARN-101디지탈 모듈러식의 항법유니트 장착
▷전자식 광각 카메라 시스템(EWACS - Electronic Wide-Angle Camera System) 장착
▷AN/AVQ-26 페이브 택 적외선 탐지장비/레이져 표적 지시기 장착
▷성능향상형 APQ-172 전방감시 레이더 장착

1970년에는 20대의 RF-4C기에(18대의 Block 40과 2대의 Block 41)에 'Towel Rail'이라는 별칭을 가진 안테나를 가지고 있는 ARN-92 LORAN-D 항법시스템이 장착된다.
이것은 소위 'All-weather Blind Navigation'능력이 있는것 이다.

무장
애초에는 RF-4C기들은 무장을 장착하지 않았었으며, 동체 하부에 있던 스패로 미사일 장착용 슬롯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비상시에 RF-4C는 핵폭탄을 동체 하부 중앙에 탑재할 수 있었으나 이것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최초 배치후 수년이 지나서 RF-4C기들은 자체 방어를 위해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로 무장을 하기 시작한다.

이력
RF-4C의 첫번째 양산 기체는 1964년 9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SHAW 공군기지의 제33훈련비행대에 배속되었다.
RF-4C를 최초로 운용하게 된 비행전대는 제363전술정찰단 소속의 제16전술정찰비행전대였으며, 1965년 8월부터 운용에 들어 갔다.
베트남전에 최초로 배치된 것은 1965년 10월 제16전술정찰비행전대가 베트남으로 옮기면서 였다.
RF-4C는 주로 1972년까지 베트남지역과 라오스 지역에 대한 주간 정찰용으로 사용되었다.
RF-4C는 베트남전의 가장격렬했던 시기에 사용되어져 상당수의 기체가 격추되었으나 임무비행수에 비해서는 격추율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RF-4C는 총 503대가 제작되었으며, 마지막 기체가 1973년 12월 공급되었다.
RF-4C는 10년이상이나 제작되었으며, F-4E를 제외한 어떤 기종보다 오랜 기간동안 제작되었다.

결함
AN/APQ-102 측방감시 레이더의 성능은 초기 전투시에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며, 몇 년이 지나서야 이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AN/AAS-18 적외선 센서 역시 초기 장착품은 결함이 있었고 차츰 개선되어졌다.
이밖에 RF-4C는 F-4C가 가졌던 문제점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기체의 자세불안정으로 인한 진동 때문에 촬영한 사진의 영상이 깨끗지 못한 경우도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F-4D

개관
F-4D는 F-4C의 개량형으로 외관상 F-4C와 큰 차이점은 없으나, 내부적으로는 대단히 다른 특성을 띄고 있다.
F-4D는 F-4C와 같은 엔진과 동체를 사용하며, 내부연료탱크는 RF-4C와 같게 설계되었다.
F-4C와 F-4D는 내부적으로 에이비오닉스에 많은 차이점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F-4C에 장착되던 AN/APG-100레이더가 더 작고 가벼우면서도 우수한 AN/APQ-109A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AAA-4 적외선 탐지 및 추적장비용의 노우즈하부의 포드(Chin 포드)는 삭제되었고, 콜린스社의 ASQ-10 소형 통신/항법/식별 자이가 기본 장착되었다.
F-4C의 리튼社製 ASN-48 관성항법시스템은 성능이 향상되었으나, 중량은 가벼워진 ASN-63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AJB-7 전고도 폭탄 투하 시스템이 제공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레이져유도식의 스마트폭탄의 투하를 위한 ASQ-91 무장 투하 컴퓨터에 연동되는 시스템이다.
F-4D는 F-4C와 마찬가지로 스패로 미사일을 운용 할 수 있었으나,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의 사용기능은 제거되고 대신 휴즈社가 개발한 AIM-4D 팰콘 미사일을 장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애초 폭격기요격용으로 개발된 적외선 추적식 미사일로 베트남전에서의 성과는 대단히 미미했으며, 1967년 10월 26일부터 1968년 2월 5일까지 겨우 4대의 MiG-17기와 1대의 MiG-21기를 격추시켰을 뿐이다.
특히 팰콘 미사일은 운동성이 좋지않아 Dog-Fight 상황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사이드와인더미사일이 다시 F-4D에 채택된다.
블록 27기종 이후부터는 제거되었던 노우즈하부의 포드(Chin 포드)가 다시 장착되기 시작했으나, 이것은 종전과 같이 AAA-4 적외선 탐지/추적용 장비를 수납한 것은 아니고 ALR-25/26 레이더 경보시스템의 안테나와 전방 증폭기가 수납된 것이었다.
후에 이 시스템은 다시 핀 안테나를 가지고 있는 APS-107A와 Chin 포드에 안테나를 가진 ALR-69(V)2로 교체되게 된다.
이탈착이 가능한 외부장착식 재머는 ALQ-87 FM 재머, 웨스팅하우스社의 ALQ-101 소음/현란식 재머, 웨스팅하우스社의 ALQ-119 소음/현란식 재머등을 포함한다.
다중 이젝터 랙(multiple ejector rack)은 동체 하부 중앙선 파일론에 장착되고, 3중 이젝터는 주익 하면에 장착된다.

F-4D의 모습

무장/에이비오닉스
F-4D 역시 F-4C와 마찬가지로 내부장착 기관포를 장비하고 있지않았다. 후에 기관포의 결여가 문제가 되어 동체 하부 중앙부에 별도의 SUU-16/A 포드(M61A1 20mm 개틀링건과 1200발의 탄환 적재)를 장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기체의 운동성저하와 무장적재의 감소등 성능에 않좋은 영향을 끼쳤다.
F-4D는 최초부터 뒷좌석은 무기관제요원 전용으로 설계되었고, 종종 뒷좌석쪽에는 유도폭탄 시스템 - 그당시 GBU-8, 이후에 GBU-15 - 의 씨커로부터 자료를 받는 TV 디스플레이가 장착되기도 했다.
F-4C는 무장 투하(발사) 조력 시스템으로 고정된 조준기와 간단한 투영차트에 의존하였으나, 이것만으로는 정밀공격이 불가능하다.
F-4D에는 기체의 속도, 고도, 상승속도와 투하된 유도병장의 타겟까지의 공격거리등에 대한 레이더로부터의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AN/ASQ-91 무장 투하(발사) 컴퓨터가 새로이 장착되는등의 에이비오닉스의 일신으로 본격적인 정밀 공격기능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空對空 능력을 향상 시켜주기위한 AN/ASG-22 조준기를 설치하였다. AN/ASG-22는 속도, 질량, 공격각도를 산출하여 레이더로부터 산출된 표적의 속도, 방향, 거리를 조합하여 공격에 필요한 선도각을 계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력
F-4D는 1964년 3월에 최초로 주문되었으며, 1965년 12월 7일 처녀비행을 실시하였고, 1966년 3월부터 공급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기체는 독일의 비트부르크에 위치한 제36전술전투비행단에 공급되었으며, 이어 1967년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세이모어 존슨 공군기지(Seymour Johnson AFB)에 위치한 제4전술전투비행단에 공급되었다.
F-4D는 총 793대가 미공군용으로 제작되었다.
미공군에서는 제3,4,8,12,18,33,35,36,48,49,50,52,56,57,81,354,366,401,405,432,474,475,479 전술전투비행전대에 배치되었다.
1977년부터는 미방위군에 공급되기 시작했고, 1980년부터 재고보관이 시작되었다.

베트남전
1967년 봄부터 F-4D는 기존의 F-4C를 대체하여 배치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주둔군의 첫번째 F-4D 운용비행대는 제8전술전투비행전대이며, 1967년 6월 5일 최초로 Everett T. Raspberry 소령과 Francis Gullick대위가 탑승한 F-4D기가 하노이 부근 상공에서 MiG-17기를 격추함으로써 최초의 전과를 기록했다.
베트남에 배치된 F-4D기는 45기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개량기종
F-4D기종중에는 실험적으로 신형의 유도병기의 운용용 포드를 장착한 것들이 있다.

AN/ASQ-152(V)-2
몇대의 F-4D기에는 웨스팅하우스社製의 AN/ASQ-152(V)-2 페이브 스파이크 레이져 지시기(Pave Spike laser target designator)가 장착되었다.
실린더 형상의 AN/ASQ-152(V)-2 포드는 스패로 미사일의 장착위치중 한군데에 장착되는 것으로 TV 광학장치를 이용하여 주간 공격능력만을 제공했다.
이 시스템을 장착한 F-4D기들은 AGM-65 마베릭 미사일 운용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AN/AVQ-10
AN/AVQ-10 페이브 나이프 레이져 표적 지시기(Pave Knife laser target designator)는 AN/ASQ-152(V)-2에 비해 야간 운용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특별히 개조된 F-4D기의 주익하면에 내장된다.
이것은 TV 카메라와 레이져 디지네이터를 수납하고 있는 헤드부를 가지고 있으며, 저광량 TV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론적으로는 야간 운용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조종사의 폭격 싸이트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되며, 이것을 이용하여 후좌석의 무장관제요원이 계기판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표적을 찾아 항공기를 그 표적을 향하게 하도록 되어 있다.
AN/AVQ-10를 장착한 최초의 전투임무는 1968년 5월 23일 시작되었으며, GBU-10/B 레이져 유도폭탄 운용에 사용되었다.
제8전술전투비행단의 제433전술전투비행대 소속의 F-4D기에 장착되어 1972년 5월 10일 하노이 부근의 Paul Doumer Bridge 폭격에 동원되었으나, 사실상 파괴에 실패하였다.

AVQ-11
두대의 F-4D에는 AVQ-11 페이브 스워드 정밀 공격 센서(Pave Sword precision attack sensor)가 장착되었다. 이것은 O-2A기에 탑재된 AVQ-12 페이브 스팟 레이저 지시기(Pave Spot laser designators)에 의해 지시된 표적에 대해 레이저 스팟 추적기를 위한 씨커 헤드를 가진 개량된 싸이드와인더와 함께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개조된 SSU-11 건포드내에 수납되어 오른쪽 전방의 스패로 장착위치에 달리거나 오른쪽의 내장형 파일론에 장착된다.

Pave Fire system
한대의 F-4D기에는 페이브 화이어 시스템(Pave Fire system)이 동체중앙부 포드에 장착되어졌다. 이 시스템은 야간에 급강하 폭격(Dive-toss)을 위해 장착한 것으로 저광량 TV와 레이져 거리측정기가 탑재되어 있다.
이 시스템을 장착한 F-4D는 중고도로부터 표적을 포착하고 지시하여, 급강하 한후 일반 폭탄을 투하하기 이전에 상승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표적에 대한 지시기능이 기대보다 못하였으며, 이후 이 시스템을 장착한 기체는 등장하지 않았다.

AVQ-9
11대의 F-4D에는 AVQ-9 페이브 라이트 레이져 지시기(Pave Light laser designator)가 장착되었다.
이것은 F-4D의 후방좌석 왼쪽 기체부에 장착되어져 다른 전투기가 표적을 공격하는 동안 AVQ-9를 장착한 기체의 파일롯이 표적부근에서 왼쪽으로 선회비행을 하면서 레이져를 이용하여 표적을 '조명'하도록 되어 있다.
제8전술전투비행단 소속 기체에 장착되어 사용되었다.

AN/ARN-92 LORAN-D
AN/ARN-92 LORAN-D는 총 72대의 기체에 장착되었다. 이것은 후좌석 뒷쪽 위에 'Towel Rail'안테나를 장착하여 다른 기체와 미약하게나마 식별이 구분된다.
이것을 장착한 팬텀을 페이브 팬텀이라고 칭했으며, 이들 기체는 호지명線에 대한 공격시 야간 정밀 항법 기능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제8전술전투비행단의 제25, 제497전술전투비행전대와 제432전술전투비행단의 제555전술전투비행전대 소속 기체들에 장착되었다.
이기체들은 후에 제301전술전투비행단의 제457전술전투비행전대와 제52전술전투비행단의 제23전술전투비행전대, 제924전술전투비행대의 제704전술전투비행전대로 배속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EF-4D
4대의 F-4D기체들에는 EF-4D라는 분류명칭이 붙여 졌으며, 이 기체들은 Wild Weasel V로도 불려졌다. 이 기체들은 AN/APS-107 레이더 추적/경보 시스템과 표적 포착 시스템을 갖추고 AGM-78 스탠다드암 미사일로 무장하여 적 레이더 싸이트를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기체들에는 후에 F-4G기에 장착된 맥도넬더글라스社製의 AN/APS-38 경보/공격 시스템이 장착되어 테스트되기도 했다.

F-4E

개관
잘 알려져 있다시피 F-4D까지의 팬텀기들은 내부 장착 기관포를 가지고 있지않다. 그것은 그당시 미래의 공중전 환경에서 기관포는 무용지물일 것으로 판단한 공군 수뇌부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사일로만 장착한 전투기들이 베트남 상공에서 있었던 초기의 공중전에서 기대치보다 떨어진 스패로미사일,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팰콘미사일등의 저성능과 Dog-Fight상황에서의 기관총 부재등으로 MiG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임시방편으로 건포드를 착하게 된다.
그러나 대형의 건포드는 그렇지않아도 저공에서의 운동성에 문제점을 드러낸 팬텀기의 운용에 장애요소가 되었으며, 이를 장착시 추가 무장장착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1964년부터 팬텀기의 내부무장으로 M61A1을 장착하는 연구가 시작되고 신형의 F-4E기에는 기본무장으로 장착되었으며, 이기종은 다른 어떤 종류의 F-4 팬텀기종보다 더 많이 제작되게 된다.
M61A1의 장착에는 장착공간의 부족등이 문제점으로 떠 올랐으나 다른 기종에 비해 확대된 형태의 노우즈를 가지고 있던 F-4C의 노즈부 형상이 참고가 되어 F-4E기에는 AN/APG-30 레이더를 노우즈부에 장착하고 그 하부 포드部에 6연장의 M61A1 발칸을 탑재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F-4E의 모습.<확대해 보실려면 Click을!>

각 기체별 특성

시작기 - 최초양산기체
미공군은 우선 YRF-4C기를 F-4E의 개발을 위한 기체로 선정하여 새롭게 시스템을 배치했다. 컴퓨터와연계된 건싸이트는 방위군에 재배치되어 있던 F-100D기체로부터 떼어져 장착되었다. YF-4E로 명명된 이기체는 중앙동체하부에 테스트 장비를 장착하고 1965년 8월 7일 최초로 비행하였다.
50번의 시험비행후 첫번째 YF-4E기는 애초의 J79-GE-J15엔진을 떼어내고 J79-GE-J17의 프로토타입인 J79-GE-J1B엔진을 장착하였다.
이후 다시 한대의 F-4C와 한대의 F-4D가 YF-4E로 개수되어 변경된 노우즈 하부 장착식의 건포드가 장착되었다.
F-4C로부터 개수된 YF-4E 2번기는 레이더는 장착되어 있지않았으나, F-4D로부터 개수된 YF-4E 3번기는 레이더도 장착되었으며, 두 기체 모두 엔진은 J79-GE-J1B를 장착하였다.
후에 이 두기체 엔진은 엔진베이쪽을 더 높은 열에 견디도록 티타늄 보강재등으로 교체되어 J79-GE-J17로 교체되었다.
1966년 8월 애초 F-4D로 계획되어 있던 주문이 변경되어 96대의 F-4E로 대체 주문되었다.
첫번째 F-4E 양산기(시리얼 66-0285)의 비행은 1967년 6월 30일 R. D. Hunt와 Wayne Wight에 의해 실시되었다.
노우즈 하부 마운팅 식의 건포드가 장착됨으로 해서 기존의 레이더의 크기가 너무 커 탄환 공급시스템등의 설치에 문제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더 작고 가벼우면서도 좋은 성능을 가진 X-밴드 사용의 AN/APQ-120 레이더를 장착하게 되었으나, 초기의 30대는 레이더의 시험평가가 늦어짐에 따라 레이더 세트를 전혀 장착하지 않은 상태로 실전 배치되어, 공급이 원활해진 이후에야 장착되었다.
F-4E기는 AN/APS-107 레이더 추적/경보 시스템(RHAW-radar homing and warning system)을 장착하고 있으나 초기에는 RHAW의 성능이 기대에 못미쳐 최초 67대의 F-4E기에는 RHAW기능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 상태로 공급되었다.
F-4E기의 후방동체에는 노우즈部에 M61A1 20mm 발칸포와 639발의 탄환을 적재한 탄환드럼이 탑재됨에 따른 중량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95갤론 용량의 연료탱크가 추가로 붙여져 내부 연료탱크의 용량은 1993갤론으로 증대되었다.
F-4E에서 운용될 예정으로 있던 semi-recessed AIM-7 스패로 미사일(기존의 것은 지속파에 의한 표적에의 지속적 조사가 필요했었으나, 이것은 다중표적 처리에 제한을 가하게 됨으로 중간에는 조사를 멈추고 종말유도단계에서만 조사를 해주는 방식을 semi-recessed방식이라고 한다.
이지스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스탠다드 미사일의 경우 이런 방식을 택하여 3개의 일루미네이터만으로도 10개이상의 표적에 대한 동시처리능력을 갖게된다.)의 운용은 보류되었으며, 초기 팬텀기에 서용되던 외부 무장대역시 제거된다.
엔진은 J79-GE-1B의 양산형인 J79-GE-17가 장착되었으며, 이엔진의 개당 추력(후기연소 사용시) 17,900파운드에 달한다. 초과중량을 해결하기 위하여 해군용의 팬텀기의 영향으로 제공되던 기계식 주익 접이장치는 제거되었으며, 비상용의 램-에어터빈도 삭제되었다.
1967년 9월 11일 처녀비행을 실시한 F-4E 두번째 양산기체(66-0286)는 첫번째 양산기에는 없던 slotted stabilator(※ 편집자 註 : 이게 뭔지 아는 분은 알려주기 바란다.)가 증가된 노우즈部 중량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수직미익의 효율성을 높이기위한 방편으로 부착되었으며, 애프터버너部의 길이가 증대되어 이전 버젼의 팬텀기와 구별된다. 길이가 길어진 애프터버너는 'turkey feather'로 불리기도 하며 F-4E의 특징이다.
세번째 F-4E 양산기체는 테스트를 위하여 1967년 10월 2일 네바다주의 닐스 공군기지로 공급되었다.

Block 31/41
소형의 경보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이 기체에서는 비상 램-에어터빈을 삭제한 것이 실수였던것으로 판명되어 Block 40부터는 보조파워유니트가 스태빌레이터에 추가된다. block 41기종부터는 동체 블레이더내의 연료탱크가 자체누유방지 연료탱크로 교체되면서 연료탱크용량이 1364갤론에서 1225갤론으로 감소되었다.

Block 42
Block 42 기종부터는 종전의 AN/APS-107 레이더 추적/경보 시스템보다 진보된 AN/APR-36/37 레이더 추적/경보 시스템이 장착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4개의 안테나에의해 보조되는 것으로 후방동체의 끝단부에 각 1개씩 두개, 윙팁部에 각 한개씩 두개가 장착된다.

Block 48
Block 48에서 메인 윙박스는 더 얇은 표면으로 교체되었다.
노드롭社에서 설계한 ASX-1 표적 식별 시스템, 전자-광학 표적 포착과 추적 센서는 왼쪽 주익의 리딩에지部 내부에 위치한 포드에 추가되었다.
이밖에 ASN-63 관성항법시스템과 ASQ-91 무기 투하(발사) 컴퓨터, ASN-46A 아날로그식 항법시스템은 삭제되었다.
ASG-26 컴퓨터연계 광학식 건싸이트는 개량되었으며, 사용하기 더 쉬어졌다.
Block 48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초기 팬텀기의 꺾어진 리딩에지부형상이 슬랫(Slat)으로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팬텀기의 가장 큰 취약점중 하나인 전투기동능력을 향상시키기위해 취해진 설계변경으로 이것은 유압장치에 의해 조절된다.
슬랫이 붙여진 첫번째 F-4E기의 시리얼은 71-0237이나 슬랫을 장착하고 최초로 비행한 기체는 시리얼 71-0238으로 1972년 2월 11일 최초 비행에 성공했다.
슬랫을 부가함으로써 팬텀기의 전투기동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공군의 초기의 F-4E기들에도 이를 장착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미공군의 이런 결정에 따라 1972년부터 슬랫 개량공사용 키트들이 주문되어 기존 배치된 F-4E기에 대한 장착공사는 시리얼 69-7524번 기체에 대해 1972년 9월 28일 실시되었으며, 총 304대의 F-4E기가 개수공사를 받았다. 이 수량은 시범비행단이 보유하고 있던 F-4E기를 제외한 전 기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Block 54/56
Block 54기종에는 고성능의 안테나와 동축 케이블이 부가되었으며, Block 56기종에는 AN/APR-36/37 시스템이 고속의 디지탈 처리능력과 조종석 디스플레이에 자동 재밍장치 콘트롤능력이 부가된 AN/ALR-46 레이더 추적 경보 시스템으로 교체되었다.
이것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프로세서를 장착하여 새로운 징후에 대한 대처능력이 뛰어났다.
같은 시기에 모든 F-4E기들은 두개의 전자 재밍용 포드 - 일반적으로 웨스팅하우스社의 ALQ-131을 장착 - 를 장착 할 수 있도록 와이어링을 설치하는 개수 공사와 AN/APX-80 피아식별장치를 장착과 선택적으로 스패로미사일 장착 슬롯에 이탈착 가능한 스트라이크 카메라를 붙일수 있는 기능을 부여 받기위한 개수공사를 받았다.

Block 53
Block 53에는 Mk III 미끄럼 방지기능식 브레이크 시스템(anti-skid brake system)이 랜딩기어에 도입되었다. 또한 건사이트용 카메라, 마베릭 미사일 발사능력이 추가되었으며, 엔진은 저배기가스 성능의 J79-GE-17C 또는 J79-GE-17E으로 교체되었다.
엔진의 교체는 기존의 J79-GE-17엔진이 검은색의 배기가스를 많이 내뿜어 쉽게 지상 대공포의 표적이 되는 일이 발생하여 조치된 것이다.
같은 시기에 노우즈 하부에 장착된 기관총 관련 설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초기에 장착된 M61A1 20mm 개틀링 건의 포구의형상은 사격시 발생가스를 엔진 흡입구쪽에 흡입되는 문제를 유발시켜 엔진에 안좋은 영향을 끼쳤다.
이밖에 포구의 잘못된 디자인은 엄청난 소음을 유발시켜 실제 F-4E기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F-4E이 존재를 적에게 알려주는 꼴이 되었다.
이것은 20mm 발탄포의 여섯개의 포신에 각각 길이가 긴 블래스트 디퓨져(blast diffuser)를 장착하여 발사시 분출되는 개스를 측방향으로 분산시키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이밖에 램-인렛(Ram-inlet)이 건포드 앞쪽에 사격시에는 열리고 사격시와 사격이 끝난후 30초 동안 개방되는 구조로 장착되었으며, 발사 서킷에 연동되는 Derichment system을 부가하여 사격시 발생하는 개스를 엔진의 흡입구에 도달하기 이전에 공기와 홉합하게 함으로써 엔진내에서 불꽃이 발생하거나 발칸포의 개스유입으로 엔진 속도가 저하되는 일을 방지하도록 하였다.
내장된 20mm 발칸포와 관련된 개선작업은 Midas 4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 개선작업은 Block48 부터 진행되어 초기의 모든 모델들에 대해 개수작업이 실시되었다.
외관상으로는 포신에 부가장치를 다는 등의 영향으로 건포드의 길이의 증가등이 유발되었다

기타 장비

AVQ-23A/B
AVQ-23A/B 페이브 스파이크 표적 지시기/거리 측정기 시스템(Pave Spike laser target designator and rangefinder system)이 �대의 F-4E기에 장착도어 제작되었으며, 이 시스템은 초기에 제작된 몇기의 F-4E기에도 개수 장착되었다.

AVQ-26
AVQ-26 페이브 택 포드(Pave Tack pod)는 야간에 레이져 유도 폭탄을 자동적으로 투하 할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 최초의 지시시스템으로, 애초에 180기의 F-4E기에 장착될 예정이었으나, 시스템의 개발이 지연됨에 따라 실제 장착대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을 F-4E기에 완전히 적용시키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이것을 달기위해서는 600갤론 용량의 보조연료탱크 장착을 포기하거나 다른 유용한 폭탄의 장착을 포기하여야만 했다.

AN/ARN-101(v)
Lear Siegler社의 AN/ARN-101(v) 디지탈 항법/공격시스템을 180대의 F-4E에 장착하는 작업이 1977년 가을부터 진행되었다.
이 시스템을 장착하는 항공기는 doghouse안테나와 동체에 장착되는 블레이드형 안테나에 의해 구분된다.

이력
F-4E기의 제작은 12년간 계속되었으며, 다른 어떤 팬텀 기종보다 많은 대수가 공급되었다. 총 1387대의 F-4E가 제작되었으며, 이중 993대가 미공군에, 394대가 외국의고객에게 공급되었다.
또한 미공군이 보관중이던 24대는 외국에 임대되었으며, 191대가 미공군 보관분으로부터 외국에 양도되었다.
F-4E기종중 최종 제작분은 한국공군에 공급되는 기체들이었으며 1979년 10월 25일 맥도넬더글라스社의 라인에서 출고되었다.
미공군의 시범비행팀인 썬더버드(Thunderbirds)는 1969년 6월 F-4E기로 장비하였으나 이기체들은 슬랫이 장착되지 않았었고, 레이더와 M61A1 발칸포 역시 삭제되고 대신 중량의 균형유지를 위한 추가 수납 된 것이었다.
이들 기체에는 오일이 채워진 가짜 스패로 미사일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선더버드는 1974년까지 이 기체들을 사용하였으며, 1973년 당시의 중동전(※ 편집자 註 : 이스라엘에 의해 Yom Kippur War로 칭해지는 전쟁)의 여파로 유가상승이 발생하여 다량의연료를 소모하는 F-4E대신 F-5기종의 연습기종인 T-38 탈론 복좌훈련기로 대체되었다.
F-4E기는 베트남전 기간중 21대의 MiG기를 격추하였으며, 이중 10대는 스패로미사일, 5대는 M61A1 발칸포, 4대는 사이드와인더, 1대는 사이드와인더와 M61A1 발칸의 조합 공격에 의한 전과이다. 나머지 1대는 F-4E와 교전중 무기로부터의 공격없이 기동 불안을 추락하였다.
그러나 베트남전 기간중 대부분의 F-4E는 지상공격임무에 투입되었다.
1975년초부터 116대의 F-4E가 F-4G Wild Weasel기로 개수되었다.
F-4E기는 1975년부터 F-15기에, 1979년부터 F-16기에 일선 전투기의 지위를 넘겨주게 된다.
유럽에서는 독일의 스팡달름(Spangdahlem)기지에 위치한 제52전술전투비행단 소속의 F-4E기가 1978년에 F-16기로 대체되면서 자취를 감추었으며, 태평양지역에서는 마지막 두대의 F-4E기가 1989년 F-16C/D기로 대체되었다.
미공군 최후의 F-4E 운용부대는 세이모어 존슨 공군기지에 위치한 제334 전술전투비행전대와 제4전술 전투비행전대였으나 1990년 12월 28일 F-15E 스트라이크 이글로 대체되었다.
주방위군에는 1985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했고, 1987년부터 미공군에 재고보관 되기 시작했다.

RF-4E의 모습. 사진은 서독공군 기체이다.<확대해 보실려면 Click을!>

RF-4E
RF-4E기는 F-4E의 비무장 정찰기종이다. 이것은 미공군용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수출용으로 한정되어 개발된 것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정부와 의회의 승인하에 몇개국가로 수출되었다.
RF-4E기종은 RF-4C가 가지고 있던 정찰장비와 F-4E부터 채택된 J79-GE-17엔진을 장착한 것으로, 엔진은 F-4E와 마찬가지로 나중에 배기가스가 줄어든 J79-GE-17C 엔진이 장착된다.

서독공군 소속 기체
서독공군(Luftwaffe)이 이 기종의 최대 고객이었으며, 첫번째 기체 역시 서독공군에 의해 1969년 1월 주문되었다.
서독공군에 수출된 기종에 장착되는 일부 장비들은 미국이 수출을 금지함으로써 서독製 장비로 교체되었다.
RF-4E기는 페어차일드(Fairchild)社의 KS-87B 혹은 KS-72 카메라를 제1번 장착대에 장착하며, 제2번장착대에는 세개의 KS-87이나 혹은 두개의 KS-27 혹은 KS-87카메라를 장착 할 수 있다.
세번째 장착대에는 한개의 KA-91이나 혹은 KS-55A 또는 두개의 KS-87카메라를 장착 할 수 있으며, 대신 KC-1이나 T-11 매핑 카메라를 선택 장착 할수도 있다.
야간 촬영을 위해서 RF-4E기는 RF-4C와 마찬가지로 장착된 위치로부터 윗쪽으로 발사되는 포토플래쉬 카트리지를 후방동체부에 수납 할수 있다.
RF-4E기에 장착되는 센서로는 AAS-18A 적외선 정찰 시스템과 굳이어(Goodyear)社製의 UPD-4 측방감시 레이더가 있다.
이밖에 서독공군의 RF-4E에는 空對地 데이터 링크가 장착되어 실시간으로 지상 야전사령부로 촬영결과를 송신 할 수 있다.
서독공군용의 첫번째 RF-4E기체는 1970년 9월 15일 최초로 비행을 하였으며, 1971년 1월 20일부터 브렘가르튼(Bremgarten)에 위치한 제51 임멜만부대(AKG 51)소속으로 임무에 사용되었다.
다른 기체들은 AKG 52소속으로 1971년 9월 17일 배치되었다. 총 88대의 RF-4E기가 서독공군에 배치되었다.
Peace Trout(평화의 송어, 이렇게 이름이 붙여진 걸 보니 아마 독일은 송어로 유명한가보다, 왜 슈베르트의 곡중에도 '송어'라는 제목이 붙은 곡이 있지않은가.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 F-16 Blcok 32기종을 판매하면서 붙인 Peace BridgeⅠ/Ⅱ라는 명칭은 너무 멋대가리 없게 생각된다.) 프로그램하에 서독공군의 RF-4E기들에는 APR-39를 근간으로 하는 ELINT(electronic intelligence) 시스템이 노우즈부의 카메라 장착대에 붙게된다.
1978년에 서독공군은 RF-4E기들에 지상공격능력을 부가하기로 결정하여 모든 RF-4E기체에는 독일産의 Messerschmitt-Bolkow-Blohm製의 무기 장착 시스템 - 무기장착용 파일론으로 하드포인트와 와이어링설치, 전·후방 조종석에 무기선택용 스위치가 붙은 무기 투하용 싸이트 설치 - 이 장착되었으며 1982년에 이 계획을 완료하였다.
이에 따라 RF-4E기들은 최고 6발까지의 영국製 Hunting BL-755 집적탄이나 5000파운드가지의 폭탄이 장착될 수 있다.
그당시 RF-4E기들은 신형 카메라와 AN/ALE-40 채프 발사기를 장착하게 된다.
서독공군의 RF-4E기들은 1993/94년까지 활동하였으며, 제51비행대 (AKG-51)와 제52비행대(AKG-52)의 의 RF-4E기들은 토네이도 GR1A기로 교체되었다.
이에 따라 일부 RF-4E 기체들은 그리스로 넘겨졌다.

기타 공군 기체
이밖에 이스라엘, 이란, 그리스, 터키 공군이 RF-4E를 공급받았다. 서독공군에 공급된 RF-4E 기체들은 초기의 미공군의 RF-4C 기체와 미해군의RF-4B기체의 노우즈부가 섞인 듯한 각진 모습의 노우즈로 설계되었으나, 이스라엘과 이란, 그리스, 터키에 공급된 RF-4E기들은 미공군의 RF-4C와 같이 더욱 유선형의 노우즈를 가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란은 서독 다음으로 큰 RF-4E의 고객으로 총 27대의 기체가 주문되었다. 첫번째 RF-4E기가 맥도넬 더글러스社의 세인트루이스 공장에서 출고된 것은 1970년 늦가을이었으며, 처녀비행은 1970년 12월 14일 실시되었다.
이란에는 1971년에 첫번째 기체가 공급되었으며, 15대가 추가로 공급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11대는 1979년 있었던 이란 회교혁명의 영향으로 취소되었다.
이란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조치로 인하여 이란의 RF-4E기들은 이란이 보유하고 있던 F-4E기들로부터 일부 부품을 떼어내서 장착하는 등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 된 바 있다.
이스라엘에 Peace Echo I 프로그램에 의해 RF-4E기가 처음으로 공급된 것은 1971년 2월 이었으며, 총 12대의 RF-4E기가 1971년부터 1976년 사이에 이스라엘로 공급되었다. 이 기체들은 전량 신규 제작분으로 이스라엘에 의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으며, 개선프로그램에는 기체의 보강과 새로운 에이비오닉스의 장착등이 포함되어 있다.
업그레이드 작업의 결과로 이스라엘에 공급된 RF-4E기들은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운용능력을 갖게된다.
그리스 공군은 신규로 제작된 8대의 RF-4E기를 공급받아 기존의 RF-84F 썬더플래쉬 기종을 대체 하여 1978∼1979년까지 제348 비행전대(Mira 348)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대체된 RF-84F기는 퇴역조치되지않고 훈련용으로 1990년까지 사용되었다.
그리스의 RF-4E기들은 수직미익과 공기흡입구에 장착된 레이더 경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공군의 RF-4E기중 적어도 두대의 RF-4E기들이 추락하였으며, 1993년에는 독일 공군에서 퇴역한 RF-4E기들이 그리스에 공급되었다.
터키에는 8대의 신규제작된 RF-4E기가 공급되었으며, 1978년 11월 최초로 공급되어 제113비행대에 소속되었다.

 F-4F

개관
F-4F기는 미공군의 F-4E기를 서독공군에 대한 수출형으로 제작한 것이다.
독일 공군은 프랑스 다소社의 미라지 F.1과 록히드社(록히드마틴社의 전신)의 CL-1200 랜서로부터 팬텀기의 단좌형인 F-4E(F)까지 모두 검토한 끝에 복좌형의 F-4F기를 도입하기로 하고 175대를 주문하였다.

F-4F의 모습. 위의 두사진은 스페셜마킹이다.<확대해 보실려면 Click을!>

배경
1960년대에 맥도넬더글라스社는 미국 정부의 IFX(미국이외의 나라에 수출할 전투기 개발계획)에 참여하여 팬텀의 단좌기 형식을 제안하였다. 그당시 미국정부는 IFX 계획의 최종 선발社는 미국의 대외 수출전투기종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었고, 많은 전투기 제작업체들이 참여하였으나, 결국 노드롭社의 F-5E기가 선정되었으며, F4-E(F)로 명명된 단좌형의 팬텀기는 '없었던'일로 되었다.
그러나 F-4E(F)계획은 서독정부의 신형전투기 입찰계획에 의해 다시 회생하였다.
F-4E(F)기가 IFX 프로그램에 제안되었다는 사실로 알 수 있겠지만, 이것은 기존의 팬텀기의 성능을 다운그레이드 시킨것으로 스패로미사일의 운용능력을 제거하고 기타 에이비오닉스도 간략화 시킨 것이다.
그러나 서독정부가 단좌형 대신 복좌형의 F-4E기의 간략화형을 구매하기로함에 따라 F-4E(F)기는 양산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서독공군의 신형 전투기 구매계획에 의한 팬텀기는 F-4F로 명명되었다.

특징
전술한 바와 같이 F-4F기는 F-4E기의 간략화형으로 더 가볍고, 더 저렴했으며, 일부 부품은 서독내에서 제작되었다.
제 7번 동체연료탱크는 삭제되었으며, 스패로미사일관련 기능은 모두 삭제되었고, AN/APQ-120 레이더의 기능도 간략화되어 스패로 미사일과 팰콘용의 CW 조사 기능이 제거되었다.
또한 신장형의 공중급유봉 역시 초기에는 장착되지 않았었으나, 공중급유용 배관장치는 장착된채 제작되었다.
Unslotted Tailplane(※ 편집자 註 : 이게 뭔지 정확히 아시는분은 연락 바랍니다.) 형식은 경량화와 비용절감을 위해 제거되었다.
또한 초기의 F-4F기는 마베릭 미사일과 쉬릭미사일과 같은 空對地 병장이나 핵폭탄의 운용능력은 삭제되어 있었다.
이런 결과 F-4F기는 F-4E기 대비 약 3300파운드의 중량 절감이 이루어 졌다.

이력
F-4F기는 1973년 5월 18일 최초로 비행하였다.
주요부품들은 독일의 메사슈미츠社와 포커社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엔진은 J79-GE-17엔진의 독일內 라이센스 제품으로 MTU社(Motoren-und-Turbinenen- Union Munchen GmBH)에서 제작하는 J79-MTU-17A을 장착한다.
F-4F의 공급은 1973년 9월 5일부터 시작되어 1976년 4월까지 지속되었다.
이 기종들은 이전의 F-104G의 임무를 대체하여 배치되었으며, 2개 비행단에는 요격용으로 또 다른 2개 비행단에는 지상공격용으로 배치되었다.
이중 12대는 TF-4F로 비공식적으로 명명되어 미국에서 F-4F기를 조종하게 될 독일 공군 조종사의 훈련용으로 사용되었다가 후에 다시 F-4F로 변경 작전용으로 운용되었다.
1980년 11월과 1983년말 사이에 독일 공군의 F-4F기체는 공중급유기능을 갖추게 되었으며, 디지탈 무장 컴퓨터와 전자 대응수단, 조종석 디스플레이, 전천후 운용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었으며 스패로미사일과, AGM-65 미사일, AIM-9L 신형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운용능력을 갖추었다.
이 이후의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에 의한 기체는 F-4F/ICE(Improved Combat Efficiency)로 분류된다.

F-4G
미국 공군은 베트남전을 수행하면서 새로운 임무를 하나 더 추가 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효과적인 공중 공격을 수행하기 위한 적 防空網에 대한 분쇄로 1960년대 기간중 대부분의 이 임무는 F-105F 썬더치프에 對레이더 장비를 갖춘 F-105 Wild Weasel Ⅲ기가 맡았었다.
그러나 F-105계열의 전투기 제작이 중단됨에 따라, 미공군은 우선 36대의 EF-4C기를 Wild Weasel Ⅳ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보유하고 있던 스탠다드 암 미사일을 운용할 수 없는등 본격적인 Wild Weasel로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미공군은 적절한 기종을 찾게 되었고, 결국 F-4E기를 Wild Weasel 플랫폼으로 선정하여 이것에 각종의 對레이더 제압용 시스템을 탑재 F-4E Wild Weasel Ⅴ으로 명명하게 되며, 후에 F-4G로 다시 명명된다.

이 기체에는 F-4E에 장착되어 있던 M61A1 20mm 개틀링건을 삭제하고 그대신 전방/측방 감시용 레이더 안테나와 AN/APR-38 레이더 경보 수신기를 위한 라인이 수납된 Under Nose Faring이 장치된다.. 이 시스템은 비행전대 수준에서의 기술과 장비로 재 프로그램이 가능하며, 적 방공레이더 시스템을 식별하고 조종사에게 보여줄수 있다. Under Nose Faring의 앞부분에는 램-인렛(ram-inlet.. ※편집자 註 : 쉽게얘기해서 바람구멍이다.)이 있어 찬공기를 들어오게 하여 노우즈部에 설치된 내부의 에이비오닉스를 냉각시켜주는 효과를 갖게 해준다.
이 기체에는 총 52개의 수신/송신용 안테나가 장치된다. 주 수신기는 Under Nose Faring에 장치되며, 일부는 핀(수직미익)의 윗쪽에 장착된 포드에 수납되며, Low-밴드 全방향성의 시그날 수신용으로 사용되는 동체로부터 튀어나온 8개의 블레이드형 안테나와 다섯개의 방향성 안테나는 후방 조종석의 디스플레이에 '징후'와 '방향'을 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F-4G의 화력관제 레이더는 F-4E에 탑재된 기존의 AN/APQ-120 레이더에 디지털 프로세서가 추가된 것이다.
적 대공병기로부터의 대응을 위한 장비로는 주익 밑의 파일론에 기체 후방으로 발사되는 30발의 채프/플레어 로켓을 장착한 Tracor ALE-40가 주로 사용되었다.
후방 조종석에는 3개의 메인 디스플레이 - 비행위치 지시기, 파노라믹 분석 디스플레이, 추적 지시기 - 가 설치된다.
비행위치 지시기는 전방 조종석에도 똑같이 시현되는 것으로 시스템에 의해 식별된 각각의 '징후'의 거리와 방향을 표시해 주는 것이다.
각 징후의 Type이 디스플레이에 분류된후 이중 가장 위험스러운 표적으로 판명된 징후는 그것을 둘러싼 밝은 삼각형 표시에 의해 강조되어져 디스플레이에 나타난다.
최초에 F-4G가 장착한 병장은 AGM-45 쉬릭과 AGM-78 스탠다드 암 미사일이었다. 쉬릭 미사일은 HARM 미사일의 전 모델로 스패로 미사일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여 만든 최초의 對레이더 미사일로 적 레이더싸이트에서 방사되는 레이더파를 따라 적 레이더를 파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145파운드의 탄두와 18∼25마일의 사정거리를 갖는다. 1965년부터 베트남戰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적 방공레이더싸이트가 쉬릭미사일의 공격 징후를 감지하고 레이더를 일시간 끄거나 다른 주파수로 변조하면 쉬릭 미사일은 레이더 싸이트의 위치를 '분실'하여 쓸모없는 지역에 쳐박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이 간파되어 한마디로 거의 실적을 올리지 못한 실패작이다. 스탠다드 암 미사일은 艦對空 미사일인 스탠다드 미사일을 공중발사용의 對레이더 공격용으로 만든것으로 쉬릭보다 더 긴 사정거리(35마일)와 더 큰 탄두(215파운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씨커는 쉬릭과 같은 것을 사용했으나 후에 업그레이드된 것이 탑재 되었다.
이것 역시 그다시 높은 성공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후에 AGM-88 함미사일이 등장함에 따라 이 미사일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못했다.
이밖에 F-4G은 지상공격용으로 AGM-65 마베릭, Mk-84, 록크아이, CBU-52, CBU-58과 자체 방어용으로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최대 4발)을 장착했다.
사이드 와인더 대신 동체의 슬롯部에 AIM-7 스패로 미사일 4발을 장착하는 것도 가능하나 왼쪽 슬롯에는 많은 경우 ALQ-119혹은 ALQ-141 재밍 포드가 장착되었다.
F-4G는 팬톰기종중 가장 최근까지 미공군에서 사용하여 '사막의 폭풍'작전 기간중에는 F-16C와 짝을 이루어 이라크의 방공망 격파에 투입되어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다른 F-4 팬텀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은 1995년이후 제일선 전투기의 위치에서 은퇴하여 그 임무를 F-16CJ/DJ Wild Weasel기에 인계하였다.
애초에는 F-4G 전량이 F-16CJ/DJ Wild Weasel기와 대체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이 1992년 취소됨에 따라 일부 수량은 2000년까지 현역에 남아 있게 될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註 : 현재는 결국 모든 F-4G도 도태되어 보관기종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F-4G기는 미국이외에 사우디아라비아에도 공급되었으며, 이 기종은 ALQ-131/ALQ-184 전자대응수단 포드를 장착하고 있다.

 

F-4EJ(F-4J)
F-4EJ는 영국에서 사용하던 F-4J와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F-4EJ로 분류하기도 하는 기종이나 흔히 그냥 F-4J로 부른다.
F-4EJ는 F-4E를 베이스로 일본 항공자위대용으로 개발된 것으로 1945년 일본패망이후 일본은 외국에 대한 선제공격권을 박탈 당하였기 때문에 F-4EJ기에도 F-4E기의 육상공격능력과 공중급유기능과 AN/AJB-7 폭탄투하시스템은 삭제되었다.
기타 F-4EJ는F-4E와 마찬가지로 AN/APQ-120 사격관제레이더와 M61A1 20mm 개틀링 기관포(탄환 640발)을 장착하였으며, AIM-7 스패로미사일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운용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 많은 시스템이 일본産의 시스템으로 변경/ 장착되었다. 예를 들어 J/APR-2 기미부 경보 레이더가 장착되었으며, 일본産의 BADGE (Base Air Defense Ground Environment)가 장착되었다.
외관상으로는 F-4E와 거의 흡사하나, F-4EJ는 주익부의 슬랫과 안정기가 삭제되었다.
F-4EJ는 1968년 11월 1일 최초로 주문되어 2대가 맥도넬더글러스社 세인트루이스 공장에서 제작되어 1971년 1월부터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그 다음 11기는 맥도넬더글러스社에서 제작된 부품을 일본內의 미쓰비시중공업 공장에서 조립하여 항공자위대에 공급되었다.
최초의 미쓰비시중공업製의 F-4EJ기의 처녀비행은 1972년 5월 12일 실시되었으며, 총 127대의 F-4EJ기가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제작되었다.
F-4EJ기는 1981년 5월 20일까지 제작되었다.
이밖에 F-4EJ기의 정찰기형인 RF-4EJ기는 맥도넬더글라스社에서 직접 제작되어 일본 항공자위대에 공급되었다. F-4EJ기가 F-4E기를 베이스로 제작된데 비하여 RF-4EJ기는 RF-4C기를 베이스로 제작되어 1974년 11월부터 1975년 6월까지 총 14대가 항공자위대에 공급되었다.
RF-4C와는 달이 레이더 추적/경보 시스템은 삭제된 채 공급되었다.
F-4EJ는 1972년 8월부터 일본 항공자위대에 배치되어 활동에 들어 가 제301, 302, 303, 304, 305, 306 항공대등에서 운용되었으며, RF-4C기는 제501항공대에서 운용되었다.
총 154대가 공급된 F-4EJ(RF-4EJ포함)기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손실 및 자체적인 도태프로그램에 따라 1992년까지 125대로 그 댓수가 줄었으며, 1999년도에는 106대수준으로 감소될 예정이다.
현재 대부분의 F-4EJ기는 수명 연장 개수 프로그램에 의해 F-4EJKAI형으로 개수되었다.

뉴따바루(新田原) 공군지기의 제301비행대.<확대해 보실려면 Click을!>

고마쯔 공군기지의 제302비행대 기체.<확대해 보실려면 Click을!>

 

전투경기 출장을 위해 특별도장한 제301비행대기체

500파운드 폭탄을 장착한 F-4EJ기

 

비행개발실험단의 창설40주년 기념도장

항공자위대창설 40주년 기념도장을 한 하마마쯔 공군기지의 제306비행대 기체

F-4EJ KAI
F-4EJ KAI는 1984년 7월부터 실시된 기존 F-4EJ기에 대한 현대화 및 수명연장 프로그램에 의해 개수된 F-4EJ기를 분류하는 명칭이다.
이 개수 프로그램은 항공자위대가 보유중인 모든 F-4EJ기에 대해 실시되어 F-4EJ기의 수명을 21세기 초반까지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F-4EJ KAI의 개수 내역은 아래와 같다.

▷ 기존의 AN/APQ-120 레이더는 더 작고 가볍지만, Lookdown, Shootdown기능이 부가된 AN/APG-66J 펄스도플러 레이더로 교체(이것은 F-16A/B형에 탑재되던 AN/APG-66레이더의 일본內 라이센스 제품이다.)
▷ 신형의 중앙 컴퓨터
▷ Kaiser社製의 HUD
▷ Hazeltine社製의 AN/APZ-79 IFF(피아식별장치)
▷ Litton社製의 LN-39 관성항법 장비(일본내 라이센스제작품)
▷ 신형의 J/APR-6 레이더 추적/경보 시스템
▷ 웨스팅하우스社製 AN/ALQ-131 EMS 포드(옵션)

F-4EJ kai기는 종종 F-15용의 610갤론짜리 보조연료탱크를 동체중앙부에 장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연료탱크를 장착할 경우 원래 F-4용의 연료탱크보다 HIGH-G 를 유발하는 고기동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게되는 단점이 있다.
이밖에 KAI형은 웨스팅하우스社의 AN/ALQ-131 최신형 다중모드 전자 대응수단 포드를 장착할 수 있다. 이것은 광범위한 모듈을 가지고 있으며, 소프트웨어적으로 신속히 재프로그램밍 할 수 있어 새로운 유형의 징후에 대해 대응 할 수 있는 것이다.
F-4EJ KAI는 AIM-7E/F 스패로 미사일AIM-9L/P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사용 할 수 있으며, 여기에 더하여 미쓰비시社에서 개발한 ASM-1 對艦 미사일(※ 편집자 註 : ASM-1미사일은 발사중량 1345파운드로 닛산자동차에서 개발한 고체연료추진 로켓에 의해 추진된다.
이것은 레이더 고도계와 결합된 관성유도시스템에 의해 중간 코스보정을 실시하며, 종말유도는 노우즈부에 장착된 액티브 레이더 씨커를 사용한다. 탄두로는 440파운드중량의 고폭발탄을 장착한다. 현재는 ASM-2도 개발되어 있다.)을 장착 할 수도 있다.
원래는 F-4EJ KAI에는 주익에 슬랫을 부착하기로 했었으나 기체가격의 상승요인증가로 취소되었다.
F-4EJ기가 KAI형으로 업그레이드된 것과 마찬가지로 14대가 제작된 것중 남아있는 RF-4EJ기에 대해서도 업그레이드가 실시되어 현재 보유중인 기체들은 모두 RF-4EJ KAI형으로 개수된 것들이다.
RF-4EJ KAI형의 개수내역은 아래와 같다.

▷ 애초의 AN/APQ-99 레이더는 TI社의 APQ-172레이더로 교체되었다.
▷ 새로운 관성항법 시스템
▷ 적외선 정찰 시스템
▷ 디지털 칵핏 디스플레이
▷ 기존의 VHF 통신장비는 UHF식으로 교체

맥도넬더글러스에서 제작되어 공급된 RF-4EJ기 이외에 추가의 정찰기가 필요해진 항공자위대는 기존의 F-4EJ 17기를 정찰기형으로 개수키로 결정하고 이의 개량을 自國의 미쓰비시중공업에 발주한다.
이것 역시 RF-4EJ로 명명되나 기존의 RF-4EJ와는 약간 다른 에이비오닉스를 갖게된다.
APQ-172레이더는 RF-4EJ KAI형과 동일하나 여기에 더하여 톰슨-CSF의 라파엘 포드와 미쓰비시에서 개발된 대형의 ELINT 포드가 장착되며, M61A1 20mm 개틀링건도 장착되었다.
F-4EJ KAI는 1990년 11월 24일 최초로 항공자위대에 공급되어 제306항공대에 배치되었다.
현재 3개 항공대에서F-4EJ KAI기를 운용중이며, 이 기종들은 2000년 이후에도 사용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F-4K의 모습. 왼쪽은 영국공군의 FG.Mk1, 오른쪽은 영국해군의 FG.Mk1의 모습이다

F-4K
F-4K는 팬텀Ⅱ기의 영국해군용 수출명칭이다.
영국해군은 Hawker Siddeley P.1154기를 영국해군의 항공모함 함재기로 구입할려고 했었으나, 고비용등의 문제로 포기하게 됨에 따라 기존의 노후화된 함재기의 대체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결국 맥도넬더글러스社의 영국해군용 팬텀Ⅱ의 개발제안을 받아들여 1964년 7월 1일 영국 해군은 공식적으로 작전요구사항을 맥도넬더글라스社에 발송하게 된다.
영국해군용의 팬텀기는 애초에 미해군에서 이미 함재기로 사용되던 F-4B를 베이스로 할 예정이었고 영국해군은 자신들의 팬텀기의 분류명칭을 F-4B(RN)으로 하기로 잠정 결정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맥도넬더글러스社의 제의에 의해 F-4EJ기를 기본으로 개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으며 분류명은 F-4K로 변경되었다.
곧바로 개발시제기인 YF-4K-26기 두대와 양산시제기인 F-4K-27기 두대가 제작되어 각종 시험평가에 들어갔다.
애초 영국 해군은 총 143대의 F-4K를 구매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은 137대로 변경되었고, 그리고 나서 다시 110대로, 최종적으로는 50대에 옵션 7대로 감축되었다.
F-4K는 여러가지 면에서 기존의 팬텀기들과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이것은 영국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소형의 항공모함에의 사용에 적합하도록 하기위한 측면이 강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영국이 自國産의 부품을 최고 40∼45%까지 사용되어야 한다고 요구했기때문이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변경은 F-4EJ에 사용되던 J79 터보젯엔진을 롤스로이스社製의 RB.168-15R Spey 201 터보팬 엔진으로 교체한 것이다.
이것은 J79엔진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작은 크기의 영국 항공모함에서 F-4K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위한 필수적인 조치였다.
파워의 증대이외에도 Spey 터보팬 엔진은 특성상 더 낮은 속도로 항공모함에 접근 할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는 더 작은 크기의 활주갑판을 가진 영국 항공모함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출력이 증대된 만큼 Spey 엔진은 더 많은 양의 공기를 흡입해야 했기 때문에 공기흡입구의 크기를 20%가령 크게하여 설계를 변경하여야만 했으며, 후방동체를 더욱 아랫쪽으로 처지도록 재설계하였다.
한편 Spey 엔진을 탑재함으로써 J79엔진을 탑재 한것보다 10%의 행동반경 증대와 15%의 항속거리 증대효과를 얻을수 있었다. 그러나 최고속도및 운용고도등의 성능은 기존의 J79탑재 기체보다 열세였다.
에이비오닉스 역시 영국 해군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져 F-4EJ에 장착되었던 AN/AWG-10 사격관제시스템은 Ferranti社製 AN/AWG-11 사격관제시스템으로 변경되었다.
개발시제기인 YF-4K 두대에는 계획대로 Spey 201엔진이 장착되었으나, 시스템의 대부분은 아직 미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YF-4K 1번기의 최초비행은 1966년 6월 27일 세인트루이스의 맥도넬더글러스 공장에서 실시되었으며, 2번기의 처녀비행은 8월 1일 실시되었다.
이두기체는 엔진테스트를 위해 곧바로 캘리포니아주의 에드워드 공군기지로 보내졌다.
F-4K 양산시제기 1호는 1966년 11월 1일 최초 비행하였다. 두기의 양산시제기는 Spey 엔진이외에 영국製의 시스템을 대거 장착하였다.
영국製의 부품들은 양산시제기에의 조립장착을 위해 세인트루이스로 보내졌다.
영국 해군은 48대의 F-4K를 주문하여 FG.Mk 1으로 분류명칭을 붙였다.
여기에서 FG는 Fighter와 Ground-attack의 이중 목적기로의 의미를 뜻한다. F-4K기는 발전시제용 YF-4K와 양산시제용 F-4K와는 달리 Spey 202/203 터보팬 엔진을 장착하며 대부분의 시스템을 영국産으로 장비하게된다.
F-4K기는 후방동체부에 항공모함의 데크요원들이 기체의 스태빌레이터가 항공모함의 캐터펄트에 올바른 각도로 되어 있는지를 쉽게 체크 할 수 있도록 사분원(四分圓)을 장치하였다.
F-4K는 세개의 착륙접근용 조명기를 노우즈 랜딩기어 커버부에 수직으로 설치하였다. F-4K에는 미제 AWG-10의 영국제 라이센스 제작품인 Ferranti社製의 AN/AWG-11 사격관제시스템에 더하여 Plessey社의 PTR-373 송수신기, Dowty Electronics社의 UHF 스탠바이 수신증폭기, PTR-374 D403P UHF 공중 비상 송수신기를 가지고 있다.
처음의 3대가 1968년 4월 29일 Yeovilton에 배치되어 시험평가및 영국해군의 승무원 교육용으로 사용되었다.
영국해군이 작전용으로는 1969년 3월 21일 최초로 배치되어, 1969년 가을까지 미해군의 항공모함 사라토가에서 인증을 받았으며, 이기체는 1970년 6월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인 HMS 아크로열에 실리게 된다.
팬텀 FG. Mk1의 최초 기본 임무는 空對空 요격이었으며, 제2임무는 지상 공격이었다.
팬텀 FG. Mk1의 배치이후 공교롭게도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 세력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HMS 이글(Eagle)은 팬텀의 운용을 위한 개수작업에 소요되는 비용이 살인적으로 소요되어 취소되었으며, HMS 빅토리우스(Victorious)는 선상화재로 퇴역하였으며, 단지 HMS 아크로열만이 FG.Mk1 팬텀기를 운용하게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단지 29대의 FG.Mk1이 영군해군에 배치되었으며, 나머지 대수들은 이미 영국 공군용으로 공급된 FG.Mk2 에 추가하여 영국 공군 소속으로 돌려져 스코틀랜드의 제43비행전대로 배치된다.
기존에 영국공군의 FG.Mk2 기체들이 주로 스트라이크/어택의 용도로 사용되었던데 반하여 해군으로부터 공군으로 인도된 Mk1기종들은 방공임무를 부여 받게 된다.
FG.Mk1의 최종기체는 1969년 11월 21일 공급되었다.
나중에 영국 해군의 팬톰기들은 마르코니社의 ARI 18228 레이더 경보수신기를 수직미익의 꼭대기에 마련된 하우징에 수납하게 되며, 또한 많은 영국군 보유 팬텀기들은 사이드와인더미사일의 확장 포착모드를 포함하는 3단계에 걸쳐 레이더의 업그레이드를 실시한다.
F-4K기들은 내부 장착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았으며, 미공군이 그랬던 것처럼 SUU-23/A 기관포 포드를 장착할수도 없었다.
그러나 영국 공군에 배치된 F-4K기들은 후에 건포드를 장착하게 된다.
1978년, 영국 정부는 전통적인 활주이착륙식의 고정익기를 운용하는 항공모함을 더 이상 유지 할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HMS 아크로열호를 퇴역조치 한다.
이에 따라 HMS 아크로열호에서의 F-4K 팬텀기의 이착륙은 1978년 11월 27일을 끝으로 종결되었으며, 따라서 FG.Mk1을 운용하던 제892비행전대도 1978년 12월 15일 해체된다.
영국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FG.Mk1은 1978년말까지 모두 영국 공군으로 재배치되었으며, 이후 영국해군은 HMS 인빈시블급에 헤리어기만을 제트기로 운용하게 된다.(인빈시블級에는 HMS 인빈시블, HMS 아크로열, HMS 일러스트리어스가 있으며, 이중 HMS 아크로열은 종건의 팬텀기를 운용하던 아크로열과는 다른 것으로 1985년 신규건조된 것이다.)
영국 공군에 재배치된 FG.Mk1기체들은 1975년 방공임무를 부여받고 스코틀랜드에서 창설된 제111비행대로 배치되었으며, 아이슬랜드-영국(Iceland-UK)라인의 방공임무에 투입되었다. 제111비행전대 소속의 기체들은 1990년에 토네이도 F3(F Mk.3)로 교체되었다.
이밖에 초기에 영국해군용의 FG.Mk1기체를 받아 방공임무에 투입하였던 제43비행던대 소속의 팬텀기들은 1989년 7월 1일 마지막 비행을 실시하였으며, 곧바로 F3 토네이도기와 교체되었다.
영국해군은 총 7대의 F-4K기를 손실하였으며, 영국 공군에 넘겨진 이후 추가로 8대가 추락하였다.
FG.Mk1 기체들은 현재 더 이상 비행하지 않고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체들은 외국으로의 판매(양도)등에 대비하여 괜찮은 수준의 관리를 받고 있다고 한다.

Kurnass 2000(팬텀 2000)
Kurnass 2000은 이스라엘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팬텀기체들에 대한 업그레이드 프로그램 명칭으로, 이 프로그램에 의해 개수된 기체들은 이스라엘에서 Kurnass(영어로 Heavy Hammer라는 의미라고 함.)라고 불리운다.
이 프로그램이후 이스라엘 공군 보유의 팬텀기들은 2014년∼2017년까지 사용될 예정이다.
Kurnass기들은 아래와 같은 개장이 이루어진다.

▷ Kaiser社製의 광각 HUD.
▷ 신형의 임무컴퓨터
▷ HUD용 비디오카메라
▷ 신형의 통신장비
▷ 기체의 강화
▷ 연료탱크 누유 해결
▷ 후방좌석 뒷부분에 신장식의 공중급유장치 장착
▷ Nord en社製 합성 개구레이더

최초의 Kurnass기에 대한 업그레이드는 Central Maintenance Unit에 의해 실시되어 1987년 7월 15일 최초 비행을 하였고 1987년 8월 11일 이스라엘 공군에 의해인증되었다.
나머지 기체들의 Kurnass기로의 개장공사는 IAI(Israel Aircraft Industries)의 Bedek 항공디비젼에 의해 1989년 8월 11일이후 실시되었다.
Kurnass기에는 원래 Norden社의 합성개구다용도레이더(Synthetic Aperture Multi-Mission Radar)가 장착 될 예정이었다.
이것은 원래 그루만社의 A-6F 업그레이드계획과 A-12 개발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나 A-6F 업그레이드계획과 A-12 개발계획이 취소되어 Kurnass기에의 사용도 한때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결국은 Kurnass기들에 장착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합성개구레이더는 지상공격을 위한 지상 매핑 기능을 가진 것으로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의 AN/APG-70 레이더 보다 더욱 강력한 지상 공격능력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IAI측은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사격관제 장비의 도입으로 Kurnass기는 오늘날 사용되는 대부분의 對空/對地 유도 병기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밖에 Kurnass 2000 프로그램에는 엔진의 교체도 포함되어 있다. 1986∼1987년에 Bedek은 J79-GE-17엔진대신 P&W社의 PW1120 터보팬 엔진을 장착하는 개장공사를 1대에 대해 실시하여 1986년 7월 30일 최초 비행을 실시하였다. 이때는 우측의 엔진베이에만 PW1120 터보팬 엔진을 장착하였고 두개 모두를 PW1120 터보팬 엔진으로 장착한 최초 비행은 1987년 4월 24일 실시되었다.
PW1120 터보팬 엔진을 장착한 팬텀기는 후기연소없이 음속을 돌파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였다. 즉, 슈퍼크루징이 가능한 것이다.
또 기존의 F-4E 팬텀에 전투중량비 출력이 17% 증대되었다. 이밖에 회전율과 상승율도 각각 15%, 36% 증대되었으며, 중가속성능도 27% 증대되었다.
PW1120 터보팬 엔진을 장착한 팬텀기는 1987년 파리에어쇼에서 선보여지기도 했으나, 결국 이 기종은 이스라엘 공군에 실전배치되지 못했다. 이미 최초 획득하여 상당히 시간이 경과한 기체에 신형의 엔진을 교체/장착하는 것은 비용대 효과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때문 인것으로 보인다.
Kurnass 2000 프로그램은 이스라엘이 보유중인 거의 대부분의 F-4E 팬텀기에 대해 실시되어 1994년까지 완료되었다.

각국의 F-4
영국의 운용 기록은 F-4K부분을, 일본의 운용기록은 F-4EJ부분을, 독일의 운용기록은 F-4F부분을 참조 바란다.

한국공군의 F-4D. '방위성금헌납기'란 표식이 확실하게 보인다

야간 엔진 시험중인 한국 공군의 F-4E

진도대교위를 비행중인 한국 공군의 F-4E

○ 한국
한국공군은 1960년대 후반부터 팬텀기를 도입/운용 하기 시작한 주요 팬텀 사용국가 이다. 한국공군으로의 팬텀기 공급은 미국의 Peace Spectator 프로그램에 의해 최초로 시작된 것으로 이당시 1968년 북한으로부터의 대남도발이 격화됨에 따른 한국정부의 우려가 미국에 전달됨에 따른 것이다.
이당시 인도된 기체들은 신제품이 아닌 미공군이 사용하다 보관하던 중고기체로 1969년 8월 4대의 F-4D가 최초로 한국에 도착하여 곧바로 대구에 위치한 제110전투비행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1972년 18대의 F-4D(역시 미공군이 사용/보관중이던 기체)가 한국이 보유중이던 F-5A/B 36기를 베트남에 제공키로 한데 다른 보상으로 제공되어 제157전투비행대에 배치되었다.(※ 편집자 註 : 이 기체들은 계약상으론 엄연히 미국이 한국에 임대해주는 방식이었으나, 임대기간이 '영구'로 명시되어 있다.)
이후 몇대의 F-4D가 다시 한국공군에 임대되었으나 이중 6대는 다시 1982년 한국공군에 완전히 양도하였고, 1987년 12월부터 1988년 4월 사이에 24대의 F-4D가 한국공군에 추가로 공급되었다.(※ 편집자 註 : 이것도 역시 거의무상이거나 저렴한 가격에 양도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기체에는 Pave Spike 레이져 지시기가 장착되어 있다.
한국공군은 1969년부터 1988년까지 총 90대의 F-4D 팬텀기를 획득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중 몇대의 F-4D기는 기체 전방부 양쪽에 '방위성금헌납기'라는 마킹을 한 모습이 TV에 등장하여 어린 마음(내가 국민학교 시절이었으니까, 그때부터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굉장한 관심을 가졌었다고 할수 있다. 그 당시 내가 전투기나 탱크에 대해서 어쩌구하면서 친구들한테 얘기하면 대부분의 애들은 내말이 거짓말이거나 좀 희안한 애로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에 그랬다면 아마 '왕따'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에 내가낸 방위성금이 훌륭하게 쓰이는 것 같아서 괜히 기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
물론 한국이 보유한 팬텀기가 다 중고기체였던 것은 아니다.
1974년 미국의 Peace Pheasant II 프로그램에 의해 37대의 F-4E 팬텀기 신품을 구매하여, 청주에 위치한 제152전투비행대대와 제153전투비행대대에 배치하였다. 이들 기체들은 맥도넬더글러스가 제작한 F-4E기중 거의 최종 시리얼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후 F-4E기 역시 F-4D와 마찬가지로 미국 잉여기체를 양도 받는등 모두 103대의 F-4E를 도입하였다.
한편 1989년 한국 공군은 보유중인 F-4D/E 전투기에 대한 업그레이드 의사를 표명한바 있으며, 1993년에는 독일의 DASA로부터 38대의 F-4E 전투기에 BVR 능력을 부여해주는 내용의 업그레이드 사업 제안을 받은바 있고, 미국의 록크웰社로부터는 웨스팅하우스製의 AN/APG-66 레이더 장착을 근간으로 하는 사업제안도 접수한바 있으나, 이 모든 계획내지 제안은 한국 공군의 예산문제로 실행되지는 못했다.
한국공군이 보유중인 F-4D 팬텀기의 일부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Pave Spike 레이져 지시기가 장착되어 있으며, 또한 일부의 F-4E기는 AN/AVQ-26 페이브 택 레이져 디지네이터 포드를 장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최근에는 약 30대의 F-4E 전투기에 대해 이스라엘 라파엘社의 AGM-142 팝아이 미사일의 운용능력을 갖도록 하는 업그레이드가 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운영중인 기체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으나, 미국 Rice University의 Richard Stoll 정치학 교수가 1994년도에 작성한 'Poli 378 - American National Security Policy'에 의하면 한국공군이 도입한 기체중 1992년 현재 총 96대의 F-4D/E기가 운용중이며(※ 편집자 註 : 1999년 현재는 몇대가 운용중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구형의 F-4D는 일선에서 퇴진한 것으로 봐야 할것이며, 따라서 F-4E기 60기정도가 일선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또한 총 18대의 RF-4C기가 운용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1990년 후반 주한미공군 소속의 제560전술정찰비행대가 철수할 당시 보유중이던 12대의 RF-4C기는 한국공군에 양도 되었다. 이 기체들은 AN/ALQ-131 재밍포드를 장착하고 있으며 수원에 위치한 제131전술정찰비행전대에 배치되었다.

공군 창군 50주년 기념 에어쇼에 등장한 F-4E
1999년 10월 3일 서울공항에서는 공군 창군 50주년 기념에어쇼가 개최되어 우리나라 공군기와 미공군기의 전시및 각종 시범비행 행사가 있었다.
거기에 가서 찍은 F-4E의 사진을 공개한다.
아쉬운 것은 내가 사용하는 스캐너의 성능이 후져서 사진들이 그다지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찍어 올리는 것이고, 그동안 궁금했던 부분도 찍은 것이라 애정이 간다.

건군 50주년 기념행사에 전시된 F-4E기의 모습(左)와 리딩에지部 슬랫의 모습(右

비상착륙용 어레스팅 후크의 모습(左)과 노우즈콘 아랫부분의 20mm 발칸포구의 모습(右).
우측사진의 경우 애초에는 내부의 20mm 발칸포의 6연장 포구조임쇠의 하단부의 모습까지 명확히 촬영되었으나, 스캐너가 후진 관계로 그냥 검게 표시되어 있다. KF-16에 장착된 발칸포의 경우 대략 2시방향에 위치한 포신에서 포탄이 발사되나, F-4E의 경우 대략 6시방향에 위치한 포신에서 포탄이 발사됨을 알 수 있었다

○ 이스라엘
이스라엘 공군은 아마도 미공군 만큼이나 F-4기를 실전에 많이 투입한 나라로 F-4기에 대한 수많은 운용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소련 기술자들에 의해 운용되는 SAM과 직접 대적한 유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최초 1968년 44대의 F-4E기와 6대의 RF-4E기가 도입되어 1969년 당시 이스라엘 수상이었던 골다 메이어 여수상(※ 편집자 註 : 대처가 鐵나비라면 골다메이어는 우라늄 나비라고 불릴 만하다.) 앞에서 이스라엘 공군 F-4배치 기념 세레모니를 개최한 이후 최소 240대이상이 도입되어 1969년 수에즈운하를 둘러싸고 이집트의 SAM기지 공격에 F-4기를 동원 1969년 11월 11일 최초로 이집트 공군의 MiG-21기를 격추시킨 이후로 1982년 베카계곡 전투시까지 F-4기에 의해 116차례의 MiG기와의 공중전에서의 승리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같은 기간중 주로 이집트와 시리아에 배치된 소련製 SAM에 의해 최소 55∼70기이상의 F-4기가 격추되기도 했다.(※ 편집자 註 : 이스라엘공군은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애들이다. 1970년에는 F-4E기에 이집트에 배치된 SAM에 대한 방어능력을 향상시키기위해 새로 장착한 경보장치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한 훈련을 실제로 이집트의 SA-2 싸이트를 공격하는 것으로 실시했다. 이때 SA-2에 대한 공격이 효과적으로 수행되자 당황한 소려은 다시 신형의 SA-3를 자국 기술자들과 함께 배치한다. 뿐만아니라 자국 공군 조종사와 기술자를 한때 5000명까지 이집트에 주둔시키면서 이스라엘 공군기와 전투를 벌였다.
팬텀기는 1969년부터 1972년사이의 War of Attrition 기간 동안 총 8대가 격추되었으며, 이중 3대는 이집트 공군의 MiG-21기에 의해 나머지는 SAM에 의해 격추되었다.
같은 기간동안 이스라엘의 F-4 팬텀기는 11기의 MiG기를 격추했다. 즉 3:11의 전적율을 기록한 셈인데 주로 MiG-21과 MiG-17을 상대로 한 이 기록은 이후에도 대체로 유지된 듯 하다.) 하여간 중동전은 소련제 미사일의 Up-grade와 미제 전투기의 對空미사일에 대한 경보능력및 대응수단의 발전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현재 F-4E기와 이스라엘 자체의 업그레이드 버젼인 Kurnass 2000기(※ 편집자 註 : 이스라엘 공군은 IDF의 주도로 F-4의 에이비오닉스와 엔진등을 대폭적으로 교체하는 등의 성능향상 프로그램인 Kurnass 2000을 통해 자국이 보유중인 F-4기 전량을 개수하여 2014∼2017년까지 일선전투기로 운용할 예정이다.)를 총 112대, F-4E(S)기를 2대, RF-4E기를 14대 실전 배치하고 있으며, 기타 약간 대수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공군의 팬텀기들은 2000년 이후에도 신규로 도입되는 26대의 F-15I 썬더와 함께 이스라엘 공군의 스트라이크기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호주공군의 F-4E

○ 호주
호주공군은 애초 장거리 전폭기로 F-111기를 도입할 예정이었으나 F-111의 도입이 지연되는 바람에 미공군으로부터 24대의 F-4E기를 임대받아 일시 사용하였으나 F-111기가 도입됨에 따라 1973년 5월 21일 F-4E기 전량을 다시 미공군에 반납하였다.

○ 이집트
1979년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 그리고 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은 '캠프데이비드' 협상을 통해 이스라엘-이집트간의 대결종식을 이끌어 내게 된다.
이로써 이스라엘과의 평화는 얻게되었지만, 주변 아랍국과의 관계는 악화되어 이집트에 무기구매를 위한 자금을 지원하던 산유국들도 더 이상의 무기구매자금을 지원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집트는 미국으로부터의 차관공여등에 의해 다량의 무기를 도입하기 시작하여, 주로 MiG기를 운영하던 이집트 공군은 당시 보유중이던 MiG-21과 MiG-23기등을 미국에 제공하는 대가로 35대의 F-4E 팬텀기를 받기로 한다.
그러나 F-4 팬텀기를 처음 운영하게된 이집트 공군은 유지보수등에 어려움을 느껴 이를 다시 터키공군이 보유중이던 F-16기와 교체하기를 희망하였으나, 이후 미공군등의 정비교육 지원등으로 상황이 나아지면서 현재는 그대로 보유 운영중이다.
공급된 F-4기중 3대는 추락하여 파괴되었다.

이란공군의 F-4E

○ 이란
이란은 1979년 호메이니에 의한 회교 혁명 이전까지 팔레비 국왕에 의해 철저한 親美정책을 견지했었으며, 미국의 주요 무기 수출 대상국이었다.
F-4 팬텀기 역시 이런 배경하에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은 대수를 도입하여, 최초 16대의 F-4D기를 1967년도에 주문 한 이후 총32대의 F-4D, 177대의 F-4E, 16대의 RF-4E가 직도입되었으며, 8대가 미공군으로부터 임대사용되었다가 되돌려 졌다.
F-4E는 애초 208대가 주문되었었으나, 1979년 회교혁명이후 이란에 대한 미국의 무기 공급이 금지되어 177대만 도입되고 나머지 38대는 도입되지 못하였다.
RF-4E기 역시 총 27대가 주문되었으나 이중 11대는 1979년 이란혁명이후 공급이 취소되었다.
1979년 회교혁명이후 서방세계의 무기공급이 모두 중단됨에 따라 F-4 팬텀기의 유지운용도 매우 어려워져,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고작 보유대수의 40%만이 운용 가능한 상태였다. 또한 운용 가능한 기체들도 스페어파트의 부족등으로 AN/APQ-120 레이더를 제대로 가동할수 없어 스패로 미사일은 운용불가한 상태에서 전투를 치뤄야 했다. 그러나 당시까지 팔레비왕조의 광적인 군비확장 정책에 의해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잘 훈련되고 장비된 이란군은 이라크에 대해 우위를 보였고 잘 훈련된 이란 공군 조종사들이 버틴 이란 공군 역시 1982년도까지는 그런대로 이라크 공군에 비해 높은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장기 소모전의 양상을 보이면서 1982년까지 F-4팬텀기중 약 60대가 손실되었으며, 1982년 이후에는 F-4 팬텀중 단지 25∼35대정도만이 사용 할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편집자 註 : F-4팬텀기는 고성능 전투기이긴 하지만, 대단히 복잡하며 유지보수를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전투기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팬텀기를 1시간 동안 공중에 띄우기위해 지상의 정비창에서는 무려 135M/H가 소요된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라크 공군이 1982년 이후 프랑스로부터 미라지 F-1기종과 마트라社의 R550 매직 미사일등을 도입하여 운영하기 시작하는등 공군력 강화에 나서면서 공군력에서의 전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1986년 이후에는 이라크 공군이 하루 최대 600소티의 항공작전에 나서는 동안 이란 공군은 고작 20∼30 소티정도의 작전을 수행 할 정도로 추락하였다.
결국 1986년경에는 RF-4E기는 전혀 사용할수 없었으며, F-4E기 역시 20대정도만이 운용 가능한 상태였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이란은 합법적, 비합법적 경로를 통해 F-4팬텀기 부품등을 전세계 무기상들로부터 구매하기위해 노력하였으며 우습게도 견원지간이었던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중동 재패를 염려하여 AN/APQ-120레이더등 필수적 부품을 비밀리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중 가장 골때리는 것은 역시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서 자행된 이란에의 무기 공급 사건일 것이다.
애초 누구보다 이란 회교정부를 경원시해 왔던 미국은 이라크쪽으로 전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이란의 회교정권에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는 판단하에 비밀리에 호크 對空 미사일과 토우 對戰車 미사일및 F-4 팬텀기의 부품들을 비밀리에 이란에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이란으로부터 받은 무기대금을 산디니스타 反美 정권이 집권중인 니카라과에서 활동하던 親美 게릴라 단체인 콘트라스에 불법 지원한 것이 1986년 미언론에 의해 들통나 레이건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때 미군부의 이란-니카라과 프로그램을 진두 지휘했던 노스중령은 미국민 사이에서 '영웅'시 되기도 하여 미국인들의 전쟁광 근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1984년 5월 5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국경 상공을 비행하던 이란 공군의 F-4E기가 사우디의 F-15기에 의해 격추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왜 이것이 진풍경이냐하면 맥도넬더글라스社製 전투기가 또다른 맥도넬더글라스社製 전투기를 격추시킨 전세계 空中戰 사상 유일한 기록히기때문이다.
이란 공군의 F-4E기들은 정작 이라크 전투기들과의 전투에는 거의 나설 수 없는 형편이 되었으나, 1988년 이란-이라크戰이 종결될때까지 호르즈해엽을 통과하는 유조선들을 공격하는데 동원되어 로켓등을 유조선에 발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현재 몇기정도의 F-4기들이 유지되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 그리스
그리스 공군(Hellenic Air Force) 역시 팬텀기의 주요 고객으로 미공군및 서독공군이 사용하던 팬텀기를 구매하기도 했으며, 신제품 상태로 도입하기도 했다.
1971년 미국의 'Peace Icarus' 프로그램(※ 편집자 註 : 미국의 對外전투기 판매 프로그램은 흔히 Peace 어쩌구로 시작된다. 이집트에 F-4기를 공급할때는 Peace Parao였으며, 우리나라에 40기의 F-16C/D Blcok32를 공급할때는 Peace BirdgeⅠ/Ⅱ라는 명칭을 썼었고, 이스라엘에 F-4 팬텀기를 공급할 때는 PeaceⅠ/Ⅱ/Ⅲ등의 명칭을 사용했고, 독일의 팬텀 RF-4E기에 대한 개량작업을 지원할 때는 Peace Trout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미국은 정말 평화의 전도사임에 틀림없나 보다. 그러나 웃기는 건 이 Peace 어쩌구 프로그램들은 100% 살상용 전투기 계획들이었다는 점이다.)에 의해 36대의 F-4E기가 그리스 공군에 공급되기로 결정된 이후, 많은수의 F-4E기와 RF-4E기들이 도입되어 오늘날도 F-16과 함께 그리스공군의 일선 전투기종으로 활동하고 있다.

터키공군의 F-4E

○ 터키
터키공군(Turk Hava Kuvvetleri)은 1973년 미국이 Peace Diamond III 프로그램에 의해 40대의 신형 F-4E기를 공급키로 결정하여 1974년 8월 터키에 기체가 인도된 이후 Peace Diamond IV 프로그램에 의해 미공군이 사용하다 은퇴시킨 F-4E기 몇대를 추가로 도입하였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도입하여 총 205대의 팬텀기를 도입하였으며, 현재도 스페인이 도태시킬 예정인 33대의 F-4C기와 4대의 RF-4C기를 획득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관련 소식' 게시판 관련 항목 :
이스라엘 IAI의 터키 F-4 전투기 업그레이드 관련.

스페인공군의 F-4C

○ 스페인
스페인 공군(Ejercito del Aire (EdA))은 1971년과 1972년 사이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록히드社(현재의 록히드마틴社)製의 -104G 스타파이터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36기의 F-4C를 도입하였으며, 이와 함께 F-4C의 지원용으로 보잉社의 KC-97L 공중급유기도 3대 도입하였다.(※ 집자 註 : KC-97L기는 후에 KC-130H기로 대체된다.)
대부분의 F-4C기는 스페인이 1970년대 후반 F/A-18A/B기를 도입하게 됨에 따라 도태되기 시작하여, 1979년 4월 일선에서 완전히 은퇴하게 된다.
스페인 공군의 F-4C기는 취역기간중 총 7대가 손실되었다. 나머지 기체들에 대해선 현재 터키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반

기본임무 : 전천후 전폭기
제작사 : McDonnell Aircraft Co., McDonnell Corporation./ 미쓰비시중공업(라이센스제작)

크기및 성능

(F-4E기준)

전장 : 19.1m
전고 : 5m
주익너비 : 11.8 meters
최고속도 : Mach 2이상
운용고도 : 60,000피트(18,182m)
최대이륙중량 : 62,000파운드(27,900kg)
최고항속거리 : 1,300마일(내부연료탱크)

엔진

모델 : 2×J79-GE-15(F-4C/D), 2×J79-GE-17(F-4E/G), 2×J79-MTU-17A(F-4F), 2×RB.168-15R Spey 201(F-4K)
출력 : 17,900파운드(8,055kg)

무장

(F-4E기준)

4×AIM-7 스패로미사일
4×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AGM-65 마베릭미사일
AGM-88 함미사일
일반폭탄 : 1×동체중앙 랙, 4개의 파일론×랙(최대 12,500파운드(5,625kg)중량의 일반폭탄
집적탄 : 15×CBU-52, 15×CBU-58, 15×CBU-71, 15×CBU-87, 15×CBU-89, 12×MK-20, 6×BL-755

시스템

(F-4E기준)

APQ-120 사격관제레이더(휴즈社)
AJB-7 폭탄시스템
ASQ-91 무장투하시스템
ASX-1 TISEO-Target Identification System Electro-Optical(노드롭社)
ASN-63 관성항법시스템
APR-36 레이더 추적/경보시스템
ALQ-87 FM 발사용 재머
ALQ-101 ECM 포드(Westinghouse noise/deception jammer)
ALQ-119 ECM 포드(Westinghouse noise/deception jammer-3 밴드 커버)
ALQ-130 ECM 포드
ALQ-131 ECM 포드
ALQ-140 적외선 대응수단 (샌더스社)

일반정보

(F-4E기준)

가격 1840만 달러
승무원 : 2
최초배치일 : 196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