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열수필집/3부 안녕 낮선사람

손편지 이야기

21c-park 2023. 12. 22. 23:38

*손편지 이야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반. 집을 나서자 찬바람

이 옷깃을 파고든다. 달그림자를 앞세우고 걸으면서 가끔

불이 켜진 아파트를 바라본다. 몇 번의 신호등을 건너 도착

한 경의선 전철은 그날도 여지없이 빈자리가 없다.

잠이 덜 깬 사람들은 못다 이룬 잠을 청하기도 하고 열

심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밀린 숙제를 하듯 소통하는 사

람도 눈에 띈다. 뜨개질하는 여인의 손이 매혹적이다.

장할 시간이 없었는지 젊은 아가씨는 부지런한 손놀림으

로 얼굴을 다듬고 있다.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

이 유난히 돋보이는 새벽이다.

오늘은 전철 안에서 2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용문에 있

는 탄약대대 두 번째 강좌로 군부대는 기 밀문제 때문에 컴

퓨터를 준비해야 한다. 대상에 따라 요즘 쟁점이 되는 사

건이나 기사를 만나면 반갑다. 신문을 통해 아니면 책을 읽

으면서 좋은 글을 모아 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노트에 정

리한 내용을 다시 읽어보며 짧은 시간에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해 본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먼 거리도 금세 도착하게 된다.

속한 시각에 부대에서 마중을 나와 주어 가볍게 이동하면

서 마음을 정리한다. 부대에 도착해 대대장님과잠깐 면담

을 하고 강의 장소로 이동한다. 벌써 강당 안에는 젊은 혈

기로 가득하다. 씩씩하고 늠름하기만 한 국군장병들도 긴

장한 모습이다. 대대장님의 인사소개 뒤 바로 편지강좌로

이어진다. 질문하면서 긴장을 풀어가면 조금씩 거리가 좁

혀진다. 편지 형식을 간단하게 알려주고 편지쓰기가 시작

된다.

미래의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고마운 사람에게

조용한 강당에 편지를 쓰는 손길이 바빠지고 생각을 가다

듬는 모습도 진지하다. 자주 쓰지는 않지만부대에서는 가

족과 연인에게 종종 편지로 소통하는 젊은이가 있어 더욱

기대된다. 몰입하기 시작하면 강당 전체에 연필이 걸어가

는 소리로 가득 채워진다. 숨소리도 없이 몰입하면 서로의

마음을들여다보며 정리하는 시간인 듯 정적이 머문다.

나간 일들을 떠올리며가슴속에서 차오르는 말을 정리하

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경건하다. 편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으로 한 사람만 생각하며 쓰는

사람을 위한 글이기 때문에 긴장되는 시간인 듯싶다.

병사들이 편지글 낭독하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망설이

다가 누군가 먼저 하고 나면 서로 읽겠다고 나선다. 남편

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

을 하다 울먹이는 여장교의 모습은 순수하고 맑은 아름다

음이다. 입대 후 어머니의 부음을 받은장병의 안타까운 편

지는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부치지 못할 편지라며 우리에

게 건넬 때 그 슬픔이 와락 안겨와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

. 먼저 간동생에게 후회와용서못다 한 간절함이 담긴

편지는 절망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담겨 있어 아프지만 희

망이 보인다. 키워주신 할머니께 말씽만 부리다 뒤늦은 고

마음과 감사로 가득한 장병의 편지는 한때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내용으로 큰 울림을 준다. 대대장님도

진솔한 손편지에 감동하여 눈물을 흠치신다. 모두가 함께

울고 웃으며 하나 되는 시간이다. 장병들의 아픔과 상처

만날 수 있고개인적인 문제를 알게 되어 관계개선에 도

움이 될 것 같다며 힘을 실어주실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망과 희망을 품고 있는 마음이 희망 쪽으로 기우는 편지쓰

기는 고통 속에서 희망이 피어남을 보여준다.

어머니 의 손처 럼 가슴속 응어 리를 어루만지는 손편지쓰

기는 조미료를 넣지 않은 시골밥상이다. 순수한 마음이 담

긴 그릇이며 긍정으로 이끄는 마중물이다. 상대에게 다가

갈 수 있는 그릇 속에는 낡은 생각낡은 습관을 떨쳐버리

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기회가 숨어 있다. 편지쓰기는

잠든 영혼을 깨우는 소중한 일이다. 마음 세계를 보는 시

간을 통해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소중한 가치로 전해질

때 편지 강사는 행복하다.

미래의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고마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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