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열수필집/3부 안녕 낮선사람 3

위험을 모시다

*위험을 모시다 나긋나긋하게 감기기도 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날을 세우고 몸을 숨길 줄 아는 감정의 혀. 혀는 도끼다. 오늘도 그를 모시고 외출을 한다. 지인을 만나 차를 마시고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오늘따라 유난히 부드럽고 친절하다. 말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대화의 끈을 자연스 립게 이어주어 편안하다. 어떤 날은 팽팽한 긴장을주기도 하는데 돌아오는 시간까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상대가 누 군가에 따라 끈을 당기고 늦추기를 반복하는 도끼. 생각지 않은 말을 쏟아내고 돌아와 후회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함부로 말을 뱉지 않기 위해 감정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말이 좋아하는 것은 입. 혀는 생각이나 감정을 읽는데 촉을 세우고 있다가 혀를 굴려 뱉으면 소리로 전해진..

소소한 것에게 말 걸기

*소소한 것에게 말 걸기 나른함이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데 풋풋한 향이 손짓한 다. 냄새의 근원지를 따라 걸음을 옮겨본다. 허공을 타고 4 층까지 올라와 자극한 것은 풀과 잔디. 막 이발을 마친 잔 디는 오종종히 앉아 있는데 잘려나간 마디는 온몸의 푸른 향기를 들고 아파트를 돌아 나온다.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풀 향은 그리움을 끌어들인다. 이렇 게 시원스러운 향기를 몸속에 키우느라 키를 늘리지 못했 을까.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지키기 위해 키 작음을 탓하지 않고 온몸에 푸름을 채웠나 보다. 쪼그리고 앉아 만지다가 코에 대자 고향 집 동산이 걸어온다. 잔디는 볏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5월에 다갈색의 수상화가 총상 꽃차례로 줄기 끝에 피고 열매는 영과를 맺 는다. 무덤,언덕,정원,재방..

손편지 이야기

*손편지 이야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반. 집을 나서자 찬바람 이 옷깃을 파고든다. 달그림자를 앞세우고 걸으면서 가끔 불이 켜진 아파트를 바라본다. 몇 번의 신호등을 건너 도착 한 경의선 전철은 그날도 여지없이 빈자리가 없다. 잠이 덜 깬 사람들은 못다 이룬 잠을 청하기도 하고 열 심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밀린 숙제를 하듯 소통하는 사 람도 눈에 띈다. 뜨개질하는 여인의 손이 매혹적이다. 화 장할 시간이 없었는지 젊은 아가씨는 부지런한 손놀림으 로 얼굴을 다듬고 있다.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 이 유난히 돋보이는 새벽이다. 오늘은 전철 안에서 2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용문에 있 는 탄약대대 두 번째 강좌로 군부대는 기 밀문제 때문에 컴 ​ 퓨터를 준비해야 한다. 대상에 따라 요즘 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