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詩)

코스모스

21c-park 2006. 9. 9. 22:04

감기가 걸렸습니다.

약을 먹고 얼마를 누워있었을까?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행복하게 들렸습니다.

땀으로 눅눅해진 이불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보니 그 사이 코스모스가 피었습니다.

한들한들 가녀린 몸매로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코스모스.

무엇엔가 끌리듯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만히 코스모스 곁으로 가 향을 맡아봅니다.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속의 냄새 하나가 마음속에 훅 하고 들어옵니다.

바람에 따리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결코 부러지지않고

자신을 만지지 말기를 바라는 듯 결코 위협적이지도 않은 뽀조한 꽃잎을 흔들며

코스모스는 올해도 피었습니다.

친정엄마는 코스모스를 유난히 좋아하셨습니다.

씨를 뿌려두기만하면 어느새 가을이면 이렇게 길 한가득 피어났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언제나 엄마는 코스모스가 피는 가을이면 나를 업고 하염없이 걸으며 노래를 부르시곤 했습니다.

생전 꺼내보지않았던 거울도 꺼내보시고 어쩌다 한번은 코스모스보다 더 향기로운 분도 바르시던 엄마.

그러나 엄마가 코스모스를 좋아하시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언제나 집을 떠나 있던 아버지도 코스모스가 피는 가을이면 잠시잠깐 집으로 오셨기때문입니다.

코스모스가 핀다는 것은 가을이 왔다는 것이고

가을이 왔다는 것은 곧 아버지가 오실지도 모른다는 것이였으니까요.

하루를 기다리고 한달을 기다리고 그 아름답던 코스모스가 하나둘 말라가도 아버지는 오시지않을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그저 코스모스의 씨를 모아 또다시 이듬해 봄에 뿌리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더 많은 코스모스가 피면 아버지가 돌아오실거라 믿으시는 것처럼..

그러나 어느새 그때의 엄마보다도 더 나이를 먹어버린 딸은 엄마의 그리움을 이제서야 이해합니다.

그렇게 그리움으로 바다보시던 코스모스를 엄마는 생을 끈을 놓으시던 마지막 병실에서도 보셨습니다.

머리맡에 놓여진 꽃병속의 코스모슬 보시며

"저기 있으면 안되는데...저렇게 답답하게 있으면 안되는데...밖으로 나가야지..그래야 나비도 찾아오고 벌도 찾아오는 것인디..."

하시며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 하셨습니다.

화병속의 코스모스가 고개를 숙이던 날 엄마도 코스모스를 따라 떠나셨습니다.

또 다시 가을이 왔습니다.

코스모스가 피었습니다.

엄마의 딸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딸은 올해도 핀 코스모스를 보며 가슴 한켠이 아련해 집니다.

웬지모를 그리움에 괜스레 코스모스 곁을 떠나지 못한채 이렇게 한동안 서성입니다.

아무래도 엄마가 너무나 보고싶은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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