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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Chateau, 프랑스어로 성城을 의미)는 보르도에서 포도밭과 와인을 제조,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와이너리에 붙는 명칭이다. <출처: 보르도와인협회(CIVB)>
프랑스 보르도 하면 누구나 레드 와인을 먼저 떠올린다. 실제로 보르도에서 만드는 와인의 80% 이상이 레드 와인으로, 보르도는 레드 와인 양조에 관한 한 세련된 기술의 메카를 상징하며 1970년대 중반부터 진보를 거듭하면서 통렬한 타닌이 덜하고, 숙성 초기에도 마시기 좋으면서 오래 숙성이 가능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보르도의 최상급 와인을 한 번 마셔보면 그 복합성에 매료되고 마는데, 이러한 현상 때문에 수세기 동안 보르도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이 평가 받는 와인들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지켜 왔다.
최상급 보르도 와인들은 숙성 초기에 마셔도 충분히 좋은 맛을 즐길 수 있지만, 수 년에서 수 십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더 큰 감동을 준다. 이들은 숙성 초기에 단단하고 구조가 잘 잡혀 있기 때문에 최소한 8년 또는 10년 정도 숙성한 뒤에야 부드러워지고 복합적인 풍미의 범위가 한층 더 넓어진다. 그렇다고 10년이 훌쩍 지나면 절정기가 끝나버리는 것은 아니며, 이런 와인은 대개 수십 년 동안 더욱 매혹적인 모습으로 변화를 거듭한다. 앞으로 살펴볼 보르도의 위대한 와인생산자들은, 바로 이러한 매력을 십분 발휘하며 전세계 와인애호가들이 기회만 되면 마셔보고 싶어하는 와인을 만들고 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와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보르도의 대표적인 마을을 꼽으라면 와인애호가들은 주저 없이 포이약(Pauillac)을 언급할 것이다. 이 지역 와인들은 무른 과일의 신선한 향과 오크, 드라이함, 은은한 시가 향, 살풋한 단맛 그리고 묵직함이 조화를 이룬다. 포이약에는 보르도의 명성 높은 와인들이 대거 몰려 있는데, 1855년 등급분류에서 그랑 크뤼 1등급으로 분류된 5대 샤토 중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투르가 이곳에 있다. 라피트와 로칠드는 각각 마을의 북쪽 끝과 남쪽 끝에 위치해 있는데, 라피트는 생테스테프 마을과, 라투르는 생줄리앙 마을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와인의 특징은 묘하게도 인접 지역과 정반대다. 라피트는 생줄리앙의 부드러움과 정교함을 가진 반면, 라투르는 생테스테프의 단호한 견고함을 지닌다(‘와인 아틀라스’, 2009). | |

보르도 와인산지 지도
샤토 라피트는 루이 15세 당시 ‘와인 왕자’로 알려져 있던 리슐리외 재상의 후원으로 ‘왕의 와인’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훗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1780년대 후반에 샤토를 방문한 이후로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라피트는 원래 귀족 출신의 세귀르 가문의 소유였으며 당시 이 가문은 라피트 말고도 라투르, 무통, 칼롱-세귀르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이 가문의 라피트 소유는 종지부를 찍었고 이후 1868년에 로칠드 남작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샤토를 구입하였다. 샤토 라피트의 와인은 향기가 강하고 세련됐으며 본질적인 우아함을 지닌다. 라피트의 포도밭에는 석회질에 자갈이 드문드문 섞여 있으며, 카베르네 소비뇽 70%, 메를로 20%가 주로 재배된다. 라피트 와인은 부드러운 골격과 최상급의 섬세함 그리고 우수한 균형미를 갖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 |

샤토 라피트 로칠드(좌), 샤토 라투르(우)
라투르의 명칭은, 옛날 중세 성벽의 일부였던 탑(la tour)이 포도원의 한쪽 끝에 우뚝 서 있는 데서 유래한다. 18세기에 라피트와 칼롱-세귀르를 소유하고 있던 세귀르 후작이 이 포도원을 사들였으며, 이후로 그는 모두가 부러워했던 ‘와인의 왕’이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프랑스의 금융 재벌 프랑소와 피노가 라투르를 소유하고 있다. 지롱드강 바로 옆에 자리잡은 자갈투성이의 라투르의 포도밭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그리고 카베르네 프랑이 자라고 있다. 포이약은 메독 와인들 중에서 가장 강인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중에서도 라투르는 무겁기로 정평이 나있다. 15-20년 정도 기다리면 라투르는 절정에 도달하며 강인함, 중후함, 웅장하며 기품 있는 풍미를 드러낸다. 라투르는 매해 탁월한 품질을 유지해 왔으며, 평범한 빈티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전설의 100대 와인’, 2008).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

포므롤(Pomerol)은 보르도의 주요 와인 산지들 중에서 가장 작은 지역이다. 포므롤의 양조장들은 역사적으로 메독 지역 와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와인에는 등급이 없다(등급 분류체계를 만들 만큼 오래 판매활동을 이어오지 못했기 때문). 그리고 샤토들은 소규모 가업 형태여서 주인이 바뀜에 따라 변화가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포므롤의 가장 인기 있는 와인들은 메독의 그랑 크뤼 1등급 와인들보다 더 비싼 값에 거래된다(‘와인 아틀라스’, 2009).
무명이었던 포므롤 와인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40~1950년대 유능한 와인상인 장 피에르 무엑스의 등장과 때를 같이 한다. 1964년 샤토 페트뤼스의 지분을 50% 매입한 무엑스는, 페트뤼스를 ‘가격에 구애 받지 않고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반드시 마셔봐야 하는’ 전설적인 와인으로 만들었다. 그의 아들 크리스티앙 무엑스 역시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품질 개선에 매진해 왔으며, 포므롤의 이웃 지역인 프롱삭에서도 와인을 생산하고 있고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일류 양조장인 도미너스(Dominus)도 매입했다.
포므롤의 점토 섞인 자갈밭에는 대부분 메를로가 자라고 있는데 그 중에는 수령이 1백 년 넘는 나무도 있다.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 중 가장 비싼 페트뤼스는 과실 향, 벨벳 같은 부드러움, 풍만함이 더할 나위 없다. 최상의 해에 생산된 와인은 감초와 잼 같은 매혹적인 향이 글라스에서 뿜어져 나오고, 그 뒤를 이어서 크림 같은 블랙라즈베리의 폭발적인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이보다 더 화려한 레드 와인은 상상하기 어렵다. | |

페트뤼스를 비롯하여, 예전에는 소수의 와인애호가들에게만 은밀하게 알려져 있던 포므롤의 와인들이 지금은 컬트 와인과 같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메독(Medoc)의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 마고(Marguax)는 매우 세련되고 향기로우며 귀족적인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특히 그랑 크뤼 1등급인 샤토 마고는 이 지역의 테루아를 가장 잘 반영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영국의 수상이었던 로버트 월폴 경은 3개월마다 약 100상자의 샤토 마고 와인을 구입하였으며, 당시 프랑스에 파견되었던 미국 대사 토머스 제퍼슨은 1784년 빈티지를 시음한 후 “보르도에 이보다 더 좋은 와인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공산당 선언’의 공동저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주저 없이 “샤토 마고 1848년”이라고 답했다.
한편 샤토 마고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이 와인이 얼마나 선망과 탐욕의 대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샤토 마고는 귀족 출신의 은행가 소유였다가 부르주아 자본가의 손에 넘어가면서 하마터면 공중 분해될 뻔한 위기를 겪는다. 다행히 지네스테 가문에 인수된 이후 운영이 원활해졌으며, 1977년에 멘첼로풀로스 가문이 샤토를 인수한 이후에는 대규모의 자금을 투자하고 뛰어난 양조 컨설턴트 에밀 페노를 영입하는 등 포도밭 및 양조시설을 개선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전설의 100대 와인’, 2008).
마고의 토양은 푸석푸석하고 자갈이 많은 편이라, 포도나무들은 부족한 수분을 찾아 땅속 7미터까지 뿌리를 내린다. 그 결과 와인들은 상당히 나긋나긋하며, 좋은 해에는 향이 풍부하고 우아하며 정교하다. 또한 ‘벨벳 장갑으로 감싼 강철 주먹’으로 묘사될 만큼 힘과 섬세함이 조화를 이룬다. 샤토 마고는 메독의 대표적인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인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도 생산한다. | |

샤토 마고는 와인뿐만 아니라 건축물 또한 매우 탁월하다. 18세기에 샤토 마고를 사들였던 라 콜로닐라 후작은 엄청난 거부였으며, 그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당시 명망 있는 건축가 루이 콩브에게 건물의 신축을 부탁하였다.
샤토 디켐(Chateau d’Yquem)

소테른(Sauternes)과 바르삭(Barsac)은 보르도에서 스위트 와인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지역이며, 메독과 함께 1855 등급분류에 포함되었다. 단 하나의 소테른 와인만이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등급(프리미에 그랑 크뤼)으로 지정되었는데, 바로 샤토 디켐이다. 디켐은 프랑스의 가장 고귀한 디저트 와인으로, 진한 꿀 향을 풍기며 아무리 마셔도 싫증나지 않는 기분 좋은 달콤함을 선사하는데, 이는 와인이 적당한 산도와 알코올을 함유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테른과 바르삭은 주로 세미용과 약간의 소비뇽 블랑으로 와인을 만든다. 9월말 시롱강의 아침안개가 포도밭을 감싸면 포도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귀부균, Noble Rot)에 감염되는데, 한낮의 햇볕을 피해 포도알 속으로 침투한 이 곰팡이로 인해 포도알의 수분이 빠져나가 농축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세미용은 껍질이 얇고 당분을 많이 함유해 곰팡이에 취약하다. 수확기에 일꾼들은 이 포도를 하나하나 손으로 골라내 품질이 완벽한 포도만 추려내는데 이 과정에서 수백만 송이의 포도가 탈락한다(결국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겨우 한 잔의 와인이 생산된다). 디켐은 작황이 좋은 해에는 5천-6천 상자를 생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해에 아예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 디켐은 숙성 초기, 즉 5년쯤 지난 무렵부터 달콤한 살구 향이 폭발적이지만, 풍부한 나무 향과 꿀, 잘 익은 살구, 파인애플, 과일 잼이 뒤섞인 놀라운 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10년에서 20년, 심지어 50년을 기다려야 한다. | |

디켐은 작황이 좋은 해에는 5천-6천 상자를 생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해에 아예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10년에 두 번 정도). <출처: 보르도와인협회(CIVB)>
참고문헌
더 와인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