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실/국내음악

처녀뱃사공'의 실제인물

21c-park 2009. 1. 21. 17:14

 

처녀뱃사공'의 실제인물 '이필남씨' 아라리요(謠)

 

 

(의령=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6.25전쟁 이후 어려운 시대상황을 고스란히 대변한

국민애창곡 '처녀뱃사공'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경남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가

 고향인 이필남(72.함안군 법수면 윤외리)씨가 연합뉴스와 단독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금과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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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뱃사공

 

윤부길 작사 / 한복남 작곡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앙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 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 보내마
어머님 그 말씀에 수줍어질 때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오리지널  황정자 노래

 

 

나훈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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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머니와 의령서 나룻배 저어

(의령.함안=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제가 바로 그 '처녀뱃사공' 맞습니다"

6.25전쟁 이후 어려운 시대상황을 고스란히 대변한 국민애창곡 '처녀뱃사공'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70대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화제의 '처녀뱃사공'은 바로 경남 의령군 정곡면 석곡리가 고향인 이필남(72.함안군 법수면 윤외리)씨다.

1959년 가수 윤항기, 윤복희 남매의 아버지 윤부길(작고)씨가 노랫말을 쓰고 작곡가 한복남(작고)씨가 곡을 붙인 뒤 인기가수 황정자씨가 불러 히트한 이 노래는 1970년대 남성 듀오 '금과 은' 등이 불러 국민애창곡으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이씨는 "애닯은 사연을 담은 노랫말 모두가 바로 내가 54년전 당시 윤부길씨 일행에게 말했던 그 내용 그대로다"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1954년 당시 18살이던 이씨는 한국전쟁이 끝난 그해 1953년 겨울,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 남강(낙동강 지류) 나루터에서 뱃사공으로 지냈다.
딸만 4명을 낳은 부모님은 당시 아들을 낳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공을 들이기 위해 2년전부터 마을 사공일을 자청했고 나루터 근처에 집을 지어 농사일을 함께 하며 살았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졸지에 홀어머니를 모신 가장 겸 처녀뱃사공이 됐다.



국민애창곡 '처녀뱃사공' 노래비 (함안=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경남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변에서 설치된 '처녀뱃사공' 노래비. 2000년 10월 함안군이 국민 애창곡으로 사랑받는 이 노래의 원조가 바로 이곳 악양나루터에서 있었던 실화였음을 알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웠다.<<지방기사참조>> choi21@yna.co.kr

이씨는 "당시만 하더라도 어린 처녀가 뱃사공일을 하는 것은 엄두도 못내던 일이어서 의령 고향마을이나 함안 악양마을 등에서는 내가 처녀뱃사공으로 일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며 "강건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나룻배에 싣고 눈물을 흘리며 노를 저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씨는 "1954년 2월 늦겨울 해질무렵 함안 대산에서 일행 4명을 태운채 강을 건너는데 그중 가장 나이가 든 사람이 '왜 어린처녀가 뱃사공을 하느냐'며 물어 너무 부끄러워서 오빠는 군에 갔고 군에서 제대하면 어머니가 시집을 보내준다고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고 전했다.

고 윤부길씨가 쓴 노랫말에 '군인간 오라버니 제대하면 시집보내마 어머니 그 말씀에..'라는 내용과 딱맞는 대화가 두사람간에 어렵게 오간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날 저녁 일행은 이씨집에 하룻밤을 묵었는데 당시 일행 중 한사람의 손에는 일명 '앵금'이라고 불린 해금이 손에 있었고 일행은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는 것.

이후 이씨는 2년 가량 홀어머니와 함께 사공일을 더 하다 혼기가 차기 시작하자 적곡리 당시 북실마을안에 들어가 살았고 24살때 결혼해 강 건너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 악양마을에 줄곧 지냈다.

이씨는 "당시 언니들은 시집가고 어린 동생은 형부집에 보내 할 수 없이 홀어머니와 함께 운명적으로 처녀뱃사공이 됐지만 그동안 차마 자식들에게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며 "이제 아버지를 그리며 이렇게 진실을 말하니 속히 후련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씨가 54년전 처녀뱃사공으로 일한 사실을 어렵게 털어놓은 것은 바로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함안천 건너편에 세워진 '처녀뱃사공 노래비'의 유래가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씨는 "세월이 많이 지나 사실을 말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앞으로 후손들에게도 영원히 잘못 알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진실을 전하기 위해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choi21@yna.co.kr

연합뉴스

함안 '처녀뱃사공' 조작..의혹 투성이

기사입력 2008-09-01 11:55 |최종수정2008-09-01 12:51

 


국민애창곡 '처녀뱃사공' 노래비 (함안=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경남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변에서 설치된 '처녀뱃사공' 노래비. 2000년 10월 함안군이 국민 애창곡으로 사랑받는 이 노래의 원조가 바로 이곳 악양나루터에서 있었던 실화였음을 알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웠다.<<지방기사참조>> choi21@yna.co.kr


박기준씨 6.25참전 안해, 대산장도 없어

(함안.의령=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국민 애창곡 '처녀뱃사공' 진원지를 주장하며 노래비를 세우고 2년째 전국 규모의 기념가요제까지 개최하고 있는 경남 함안군이 노랫말에 맞춰 유래를 억지로 짜맞춘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자신이 진짜 노랫말 속 '처녀뱃사공' 이라고 밝힌 의령출신 이필남(72)씨와 함안.의령군에 민원을 제기한 정옥진(72) 향토연구가, 의령군, 함안.의령지역 주민들의 증언과 자체 조사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다.

함안 '처녀뱃사공' 노래비에 새긴 유래 (함안=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국민 애창곡 '처녀뱃사공' 진원지를 주장하며 노래비를 세우고 2년째 전국 규모의 기념가요제까지 개최하고 있는 경남 함안군이 군내 대산면 악양리 국도변에 세운 '처녀뱃사공 노래비'. 비석 뒤에는 군이 노래비를 건립하게된 유래를 적어놨는데 군에 입대한 뒤 소식이 끊겼고 6.25전쟁 중 전사했다고 비석에 적은 박기준씨는 이미 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이전 좌익세력에 참살된 것으로 밝혀지는 등 곳곳이 조작되거나 의혹 투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지방기사참조>> choi21@yna.co.kr


함안군은 2000년 10월2일 처녀뱃사공 노래비를 세우면서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고 윤부길(가수 윤항기, 윤복희의 부친)씨가 6.25 피난시절을 끝내고 서울로 가면서 함안 가야장에서 대산장으로 가던중 대산 악양나루터에는 군에 간 뒤 소식이 끊긴 박기준(6.25 전쟁 중 전사)씨를 대신해 여동생 등이 오빠를 기다리는 애절한 사연을 들은 윤씨가 1959년 노랫말을 지어 '처녀뱃사공'이 발표돼 국민 애창곡으로 널리 불려지게 됐다'고 유래를 빗돌에 새겼다.

하지만 이같은 군의 주장은 곳곳이 허위로 판명됐는데 우선 비문에 새겨진 처녀뱃사공의 오빠 박기준씨는 확인결과, 6.25전쟁 중 전사한 것이 아니라 전쟁 발발 훨씬 이전인 1949년 2월15일 당시 함안 법수 대동청년단장을 지내다 좌익들에게 참살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박씨가 6.25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살해된 사실은 당시 상황을 잘알고 있는 함안과 의령지역 주민들은 물론 심지어 박씨 친척들도 "처녀뱃사공 비문에 새겨진 '박기준'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비문에 새겨진 박씨가 실제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함안군은 최근 군에 처녀뱃사공 노래비문의 잘못을 민원으로 제기한 정씨에게 '비문에 등재된 박기준은 6.25전쟁 당시인 1950년 9월에 사망한 전몰군경(마산보훈지청 확인)'이라며 달랑 답변서 1장만 보낸 뒤 의혹을 키우고 있다.

반세기 만에 만난 '처녀뱃사공'과 친구 (함안=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국민 애창곡 '처녀뱃사공' 진원지를 주장하며 노래비를 세우고 2년째 전국 규모의 기념가요제까지 개최하고 있는 경남 함안군을 상대로 '처녀뱃사공'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인근 의령출신 정옥진(72.사진 왼쪽)씨와 그의 이웃 초등학생 친구이자 진짜 '처녀뱃사공'이라고 밝힌 이필남(72)씨가 50여년전 당시의 일들을 회상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지방기사참조>> choi21@yna.co.kr


또 의령과 함안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함안 악양나루의 경우 강이 아닌 작은 수로에 불과할 만큼 폭이 좁고 얕아 상시 사공을 두고 노를 젓는 나룻배를 띄우지 않고 줄배나 장대를 이용했다는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있다.

정씨는 "강이 아니라 함안수로로 지적한 부분에 대해 함안군에서 아무런 언급이 없고 제대로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내가 생생히 보고 경험했던 진실을 그대로 지적하는데 행정이 이렇게 눈가리고 아웅해도 되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씨는 또 처녀뱃사공이 있었다는 악양나루 근처 박씨 일가의 경우 머슴들을 둘 만큼 부유한 집안이어서 당시 천한 업으로 여긴 사공일을 집안의 어린 여자들에게 시키거나 직접 나서서 할리가 만무하다는 것.

또 함안군이 당시 전쟁이 끝난 그해 윤부길씨 등 유랑극단이 가야장터에서 대산장터로 가기 위해 배를 탔다고 하지만 실제 대산장은 이 시기보다 훨씬 이후인 1962년부터 섰기 때문에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점도 의혹이다.

"함안 '처녀뱃사공'은 짝퉁이다" (함안=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국민 애창곡 '처녀뱃사공' 진원지를 주장하며 노래비를 세우고 2년째 전국 규모의 기념가요제까지 개최하고 있는 경남 함안군에 '처녀뱃사공'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인근 의령출신 정옥진(72)씨가 "진짜 처녀뱃사공은 바로 의령군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어린 처녀로 뱃사공을 한 초등학교 친구인 이필남"이라고 말하고 있다.<<지방기사참조>> choi21@yna.co.kr


자신이 '처녀뱃사공'이라고 밝힌 이씨는 "당시 함안군의 노래비 제막식날 행사장에서 내가 진짜 주인공이라고 말했더니 군 관계자가 '다 안다.하지만 다 된 밥에 이렇게 하면 곤란하다'며 만류해 집으로 쫓겨 나다시피 했다"고 불쾌했던 그때를 회상했다.

이씨는 "당시 남자들도 꺼린 뱃사공을 어린 처녀가 홀어머니와 함께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내가 바로 그 험한 운명을 받아들였다"며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더이상 진실이 왜곡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안군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의령군 관계자는 "최근 민원을 제기한 의령출신 정씨와 처녀뱃사공이라고 밝힌 이씨의 주장이 거의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만큼 함안군측의 사실유무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지켜본 뒤 조만간 입장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choi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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