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고대의 수학

21c-park 2007. 6. 27. 08:54

【고대의 수학】

수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래 되었다. 교역·분배·과세 등 인류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계산을 수학이 담당해 왔으며, 농경생활에 필수적인 천문 관찰과 역(曆)의 제정, 토지의 측량 등은 직접적으로 수학이 관여해왔다. 수학이 학문 또는 과학으로서 주목된 것은 고대 그리스(희랍)시대, 대체로 서력 기원 6세기경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찍 문명의 꽃을 피운 고대의 인도·중국·바빌로니아·이집트 등에서는 수학을 비롯하여 괄목할 만한 문화가 발달되었다.

1.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이집트의 나일강, 바벨로니아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양강, 인디아의 갠지스강, 중국의 황하 등의 유역에서 문명은 흥하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나일강은 정기적으로 범람하므로 그 피해를 막기 위하여 통치자는 이것을 정확히 예견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정확히 정기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天空에 눈을 돌려서 그 결과 曆을 만들어 냈으며, 이집트인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에 이미 1년이 365일과 1/4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 당시의 지배자는 국민이 입은 피해의 정도에 맞추어 그 세금을 절감해야 했으므로 이로 인하여 수의 계산기술도 상당히 진보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세계최고의 수학서는 대영 박물관의 Rhind 수집품 중에 있는 아메스의 파피루스이다. Rhind 는 1858년에 이것을 구입했다. 이 파피루스에 기재된 고문서는 1877년 독일의 고고학자 아이젠로올에 의하여 현대어로 번역되었다. 아메스의 파피루스에 의하면 이집트 사람들은 이론적인 성과를 몰랐던 것으로 생각되며, 그 증거로 거기에는 定理가 없음을 들 수 있으며 일반법칙도 거의 없었다. 대개가 같은 종류의 문제를 몇 개고 계속 풀고 있는 것이다. 이 작업에서 귀납적으로 쉽게 일반법칙을 발견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하지 않고 있다.   아메스의 파피루스에는 神官문자로 분수의 계산을 표기하고 있고, 또한 1개의 미지수를 가지는 1차방정식 및 2차방정식에 귀속되는 문제도 다루고 있다. 조잡한 경험적 기하학의 시초는 계산법과 마찬가지로 먼 옛날임이 틀림없을 것 같다.   또 아메스의 파피루스에는 여러 가지 기하문제 등이 있고, 원주율 π로서는 (16/9)2 = 3.1604… 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원과 동면적인 정 4각형의 존재도 인정했던 흔적도 있다. 이집트의 고문서에는 등차급수, 등비급수 등에 해당되는 예를 볼 수 있다. 아메스의 파피루스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아마도 기하학적 지식을 표시하고 있는 최고의 증거품일 것이다. 고대의 과학은 미신과 결부되어 있다. 바벨로니아의 기하학적 도형이 길흉을 점치는 데에 사용되었던 증거도 있다. 그들의 도형 중에는 평행선, 정 4 각형, 오목각을 포함하는 도형 등이 있다. 바빌로니아의 기호 *는 원의 6등분과 60진법의 기원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여기서 6개의 부분으로 나누는 것을 바벨로니아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마차의 살이 6개로 되어 있었다는 고서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1차방정식, 2차방정식도 풀고 있었다.


 

2. 그리스의 수학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에서 기하학을, 바빌로니아에서 대수학(代數學)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탈레스나 피타고라스, 또 플라톤도 이집트에 유학하여 그 문화에 접하였다. 그리스는 이들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문명의 한 시기를 형성하였다. 예술에도 과학에도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특히 수학에서는 불멸의 업적을 남기고 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스토이케이아)》, 아르키메데스의 많은 연구업적, 아폴로니오스의 《원뿔곡선론:Konikon biblia》, 디오판토스의 《수론(數論)》 등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 등으로 대표되는 여러 학자들의 관심사는 철학과 수학이었다.   이오니아란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소아시아의 서안지방의 고대지명이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파인 이오니아 학파의 창시자는 탈레스(B.C. 640- 546)이다. 기하학을 그리스에 소개한 것도 탈레스이며 또한 그는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측정하여 그 실제의 높이를 재어 아마시스 왕을 경탄시켰다고 한다. 탈레스는 그 본질에 있어서 추상적인 직선과 각의 기하학을 창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이집트 사람들은 주로 실험적 성질을 갖는 면적과 입체의 기하학을 취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탈레스가 발견한 정리로는 다음과 같다.

◆ 두 직선이 만날 때 그  맞꼭지각은 같다.

◆ 이등변삼각형의 밑각은 같다.

◆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두 변의 길이와 그 끼인각이 같으면 두 삼각형은 합동 이다.

◆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그 두 내각과 끼인 변의 길이가 각각 같으면 두 삼각형은 합동이다.

◆ 반원에 내접하는 각은 직각이다.

◆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직각이다.

◆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대응하는 변이 모두 평행 되게 놓여 있으면 두 삼각형은 서로 닮음이다.

탈레스는 위의 정리들에 엄밀한 증명도 붙였고 또한 이들을 실용적으로 응용한 제 1인자이었다고 한다. 예컨대 삼각형의 합동에 관한 정리를 이용하여 해상에 떠 있는 배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 등이었다. 탈레스의 학문을 이어받은 것은 피타고라스(B.C. 580 - 500 ? )이었다. 그는 사모스섬에서 출생하여 이집트에 유학했고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톤에 학교를 세웠으며 그 곳에서 이오니아 학파의 합리주의를 더욱 더 철저히 했고 우주의 조화, 합리성의 이상으로서의 수학을 목표로 하여 「만물은 수이다. 」라는 근본원리를 주장하였다. 수학이라는 말도 이 학파가 창시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법칙으로 그들이 배워야 할 것으로서 기하학, 산술, 천문학 및 음악을 들었다. 또한 그들은 비밀결사를 만들었으며 그들의 교재는 비법이었고 외부로의 누출이 금지되었다.


(1) 피타고라스 학파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 학파의 독특한 방법은 기하학과 산수와의 연락을 꾀한 것이다. 즉 산수적 사항을 기하학 중에 유사한 형으로 포함되어 있고, 역으로 기하학적 사항은 산수 중에서 유사한 형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피타고라스는 그의 정리와 연락해서 직각 삼각형의 변의 길이를 나타내는 정수를 발견하는 법칙을 연구했다.

피타고라스의 학파들이 발견한 정리는 다음과 같다.

◆ 직각 삼각형에 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 평행선의 이론으로부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 직각이라는 정리.

◆ 정오각형의 작도법의 발견

◆ 무리수의 발견

무리수의 존재는 눈으로 암시되는 어떠한 기하학적 도형에도 없다. 그것은 순수한 추상적 사색에서가 아니면 발견할 수가 없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무리수를 말할 수 없는 것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 조화수열의 발견

      1, 2/3, 1/2 이  3 음의 가장 잘 조화된 음정이라고 하였다.

◆ 삼각수와 사각수의 관계 발견

삼각수 : 1 3 6 10 15 21

사각수 : 1 4 9 16 25 36 (삼각수의 두 인접수의 합은 사각수이다.)

◆ 정다면체가 5 종류만이라는 발견


(2) 소피스트 일파

기원전 480년에 살라미스만의 대 해전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파하고 에게해에서 페니키아 사람을 추방하고부터 그리스의 상권은 날이 갈수록 융성하게 되었다. 아테네는 큰 세력을 얻었고 학자들이 몰려드는 중심지가 되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도 이곳에 모였고, 아낙사고라스도 아테네에 이오니아 철학을 이식했다. 이 아테네의 시민들 중 일상의 일은 노예에게 맡기고 소피스트 즉, 智者라고 불리어진 직업적인 가정교사로 이루어진 무리가 출현했었다. 소피아는 智를 뜻하므로 소피스트란 智者의 의미나 이들이 변론의 術을 주로 하게 되었으므로 후에는 궤변가라고 불리어졌다.

원에 대한 기하학은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제외된 것이었는데 이제야 그 시초가 열렸다. 소피스트들의 연구에서는 다음의 유명한 세 문제가 그 초점이 되었는데 어느 것이나 모두 눈금 없는 자와 컴파스만을 사용해서 작도하는 문제였다.

(i)임의의 각 또는 원호를 3등분할 것.

(ii)정육면체의 배적문제. 즉, 주어진 정육면체의 2배의 체적을 가진 정육면체를 만 드는 것.

위의 두 문제의 초등기하작도가 불가능하다는 증명은 1837년에 Wantzel P.L. (France, 1814 - 1848)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니 소피스트들로부터 2000년 이상이 지나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iii)員積문제. 즉, 주어진 원의 면적과 똑같은 면적을 가진 정사각형.

이 문제의 초등기하작도가 불가능하다는 증명은 1882년에 Lindemann F. (Deutschland, 1852-1938)의 「 π가 초월수라는 연구 」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 제논(B.C. 495-435)의 역설◑

◆ 兩分 : 1 개의 선분상의 모든 점들을 유한의 시간 안에 통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 아킬레스와 거북이와의 경주

*거리를 무한히 많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가정은 틀린 것이라는 역설임.

(3) 플라톤 학파

소크라테스(B.C. 469-399)의 제자인 플라톤은 수학을 輕蔑한 소크라테스의 사후에 데오도로스로부터 기하학을 배웠고 이탈리아에서는 피타고라스 학파와 교제하였다. B.C. 389년에 플라톤은 아테네에 학교(Academy)를 열어서 평생교육과 저작에 종사하였다. 이 학교의 현관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출입을 금함」이라고 大書한 일화는 유명하다.

스승 소크라테스와는 반대로 플라톤은 정신 개발상 수학의 가치를 크게 인정하였다. 플라톤은 전문적인 수학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수학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는 거의 없지만, 수학의 연구를 고무하고 기하학에 사용되는 방법의 개선을 시사했다. 그는 이제까지 기하학자들이 본능적으로 사용한 논리를 의식적으로 불안이 없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그와 더불어 용의 주도한 정의와 공준, 공리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4) 알렉산드리아 학파

유클리드(B.C. 330 - 257?)의 생애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그의 저서인ㅒ「원본(Elements)」 13권을 저술한 것은 그가 35세 - 40세 때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내용은 대체로 플라톤 학파의 테아이테토스나 에우독소스 및 그 이외의 학자들이 얻은 결과에 자기 자신이 얻은 결과들을 병합하여 집대성한 것이고 이것을 플라톤 학파의 교리에 따라서 공리, 공준, 정의, 정리의 형으로 배열하고 정리에는 엄밀한 증명을 붙인 것이다.


◐ 유클리드의 공준 ◑

1. 한 점으로부터 다른 한점으로 직선을 그을 수 있다.

2. 선분은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3. 주어진 점을 중심으로 하고 주어진 반지름을 갖는 원을 그릴 수 있다.

4. 직각은 서로 같다.

5. 한 직선이 다른 두 직선과 맞나서 어느 한 쪽에서의 두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은 두 내각을 이루면, 그들 두 직선을 한없이 연장

시킬 때 그들의 내각이 있는 쪽에서 그들(두 직선)이 반드시 만난다.


지식의 어떤 부분을 둘러보아도 고대의 저술가 가운데 초등기하학에 있어서 유클리드만큼 근대 교육에 권위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유클리드에게 "「원본(Elements)」에 의하지 않고 기하학을 배울 지름길은 없을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유클리드는 즉석에서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을 배워서 무엇에 쓰느냐고 묻는 청년한테 "돈 3 펜스를 갖다 주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B.C. 287- 212)는 당시의 수학자인 동시에 물리학자이었고 그 광범한 여러 가지 실용문제에 응용했다. 특히 대중탕에서 순금의 비중에 관한 발견을 이루고 나체로 시가를 구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는 주로 원과 구에 대한 결과를 얻었는데 다음과 같다.

◆ (구의 표면적 )=(대원의 면적의 4배)

◆ (구의 체적) = (반경의 3 자승의 4π/3 배)

◆ 30/71 < π< 3/7 : 이 결과는 정다각형의 변의 수를 점차 증가시켜감으로써 얻어진 것이라고 한다.

◆구의 체적 및 표면적은 각각 구에 외접하는 원기둥의 체적 및 표면적의 2/3이다.


플라톤이 그의 강당의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 붙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유클리드도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기하학원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수학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체계화한 것으로서 유럽에서는 19세기 말경까지 교과서로 쓰이고 있었다. 이 책은 공리에서 출발하여 차례차례로 정리(定理)를 증명하여 체계화하는 오늘날의 수학의 형식에 가까운 것을 이미 BC 3세기경에 보여주었다. 내용은 피타고라스를 비롯하여 많은 선인들의 업적이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는데 제1권에서 제4권까지가 평면기하학(平面幾何學), 제5권이 비례론(比例論), 제6권이 닮은꼴의 기하학, 제7권에서 제9권이 산술(算術), 제10권이 무리수(無理數), 제11권에서 제13권이 입체기하학(立體幾何學)이고, 끝으로 정다면체(正多面體)에 관한 문제가 설명되어 있다. 전체 13권 중 8권이 기하학인데, 당시의 수학 전반에 걸쳐 있다. 이 체계에는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여러 가지 결점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수학에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아르키메데스의 포물선 구적(抛物線求積)은 포물선(곡선)과 그 현(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인데, 그리스 특유의 엄밀한 논법으로써, 오늘의 적분학의 기초에 관련되는 생각을 보이고 있다. 그의 원기둥과 구(球)의 문제도 훌륭한 업적이며, 역학(力學)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폴로니오스는 《원뿔곡선론》(8권)에서 원뿔의 절단 자취로서의 원뿔곡선을 논하고 있다. 이 방면은 기하학원본에는 빠져 있는 분야로서 후세의 해석기하학(解析幾何學)에서 2차곡선론이라고 불리는 것의 대부분을, 해석기하학의 방법을 방불케 하는 생각을 써서 집대성하였다. 그리스 수학은 이론적으로 매우 뛰어났으나, 수나 계산 방면에는 큰 진전이 없었다.

디오판토스의 대수 방면의 연구도 역시 이론적인 면이 뚜렷하였다. 그 후 10세기경까지의 유럽은 인도나 근동 여러 나라에서 발전한 산술·대수를 수입하는 상태였다. 인도에서는 7세기에 아리아바타(�yabhata:475∼553)가 저서 《아리아바티암:�yabhatt�m》(499)에서 기수법(記數法)과 천문학적 관측론을 상술(詳述)하고 있다. 오늘날 아라비아숫자라고 불리는 것이 발명된 것도 이 때의 인도이다. 이탈리아의 피보나치가 이것을 유럽에 소개한 것으로 되어 있다. 15, 16세기경에는 르네상스의 부흥기를 겪으면서도 수학의 면에서는 그리스 시대나, 17세기 이후에 보이는 뚜렷한 발전은 없었다. 다만, 이탈리아에서의 3차, 4차방적식의 해법이라든가, 프랑스에서의 대수학을 계통적으로 기호화한 점이 주목될 뿐이다. 유럽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철학·천문학·물리학 등의 발전과 더불어 근대, 현대에 이어지는 이른바 ‘과학혁명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이들 각 세기의 수학의 특징을 세기별로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7세기의 수학】

이 세기에는 과학혁명기다운 눈부신 발견과 창의가 차례로 쏟아져 나왔다. J.케플러, J.네이피어, P.페르마를 비롯하여 R.데카르트, B.파스칼, I.뉴턴, G.W.라이프니츠 등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이들은 예외없이 물리학·천문학·철학 등의 여러 분야까지 겸하여 연구한 천재들이었으며, 이런 면에서 후대의 수학자들과는 다소 그 면목을 달리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나 창의적 발견에도 이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방법론서설》을 지은 철학자 데카르트는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서의 불후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 기하학을 대수학과 결부시켜서 대수학적 방법을 창설하였다. 이것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의 발견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각각 독립적으로 미적분학을 창시하여 근대해석학의 발단을 열었다. 수백 년 동안 진전이 없었던 수학이 급속히 진보하여 근대해석학의 발단을 열었다. 기하학·대수학의 세계에서 해석학(解析學)으로 비약하여 물리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뉴턴은 1671년 미적분학을 체계화하였다. 우주의 중력(重力)의 법칙의 발견, 빛의 입자설(粒子說) 등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저서 《프린키피아: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l》는 1687년 간행되었다. 후에 라이프니츠와 뉴턴은 미적분학의 창설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양자는 각각 독립으로 그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이 해명되었다. 라이프니츠는 수학의 기호화(記號化)에도 큰 공적을 남겼다. 현재의 미적분학 기호는 그에 힘입은 바가 크다. 법률학·철학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18세기의 수학】

18세기는 17세기에 창설된 해석학의 발전 시대였다. 스위스의 베르누이 일가와 프랑스의 수학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베르누이 일가의 업적과 함께 스위스의 L.오일러의 수많은 독창력이 해석학의 면목을 일신시켰다. 또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던 프랑스인 J.L.라그랑주는 오일러와 더불어 변분학(變分學)을 만들었다. 해석학에 크게 공헌한 P.S.라플라스, 화법기하학(畵法幾何學)을 창시한 P.G.몽주도 이 시대의 사람들이었다.

 

 

【19세기의 수학】

17세기를 새로운 수학의 창설의 시대, 18세기를 그의 발전의 시대라고 한다면 19세기는 현대에 이어지는 충실과 창설이 또다시 계속되는 시대라 할 수 있다. 이 세기는 대체로 모든 과학이 완성의 단계를 향하여 달린 시대라 하겠다. 수학에서 18세기는 프랑스인들의 활약이 큰 데 비하여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독일사람들이 놀랄 만한 진전을 보여주었다. J.K.F.가우스를 비롯하여 K.바이어슈트라스, G.F.B.리만, J.W.R.데데킨트, G.칸토어, F.클라인, D.힐베르트 등이 현대 수학의 건설에 큰 소임을 담당하였다. 가우스의 정수론(整數論)을 비롯하여 많은 분야의 연구, 프랑스의 A.L.코시의 해석학의 연구, 헝가리의 J.보여이의 비유클리드기하학의 연구, 노르웨이의 N.H.아벨의 대수학과 해석학에 대한 공헌, 프랑스의 E.갈루아의 방정식론·군론(群論)에서의 업적, 바이어슈트라스, 리만의 해석학, 리만 기하학의 창시 등이 이 19세기 수학의 핵심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수학】

금세기에 들어와서 수학 분야에서는 많은 새로운 사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부단히 발전하여온 여러 분야의 업적도 크지만 이 발전을 이룩하게 되는 바탕, 이를테면 수학의 기초에 대한 반성과 비판 자체가 또한 수학의 대상(對象)으로 부상한 것이다. 즉, 수학의 기초에 눈을 돌리게 되어 이 기초의 확립에 큰 성과를 올렸다. 칸토어가 집합론(集合論)을 창시한 것은 19세기 말 무렵인데 이 개념이 수학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여 수학의 구성을 일신시켰다고도 생각된다. 데데킨트는 절단(切斷:Schnitt)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수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힘을 경주하였다. 클라인은 해석학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에를랑겐 목록:Erlangen Program》을 발표하여 기하학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또 그는 수학교육에도 참신한 의견을 제창하였다. 힐베르트의 기하학의 공리계(公理系)의 연구는 현대의 공리주의수학(公理主義數學)의 기초를 이루었다. 현대의 수학은 그의 기초를 확립하는 작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종래의 성과 위에 새로운 성과를 축적해나가고, 수학의 많은 분야의 통일화와 응용을 꾀하는 등 부단한 진보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수학과 사회】

역사적인 소개

  1. 집합론의 배경.

  집합론이 비록 "새로운" 수학의 초석으로서 인식될지라도, 직관적인 집합 의 생각에 있어서 본래는 새로움이 없다.  초창기의 시대부터 수학자들은 한 종류 또는 다른 종류의 대상들의 집합을 생각하는 데에 이끌려 왔고, 현대의 집합론의 기본적인 개념들은 대단히 많은 고전적인 논의에 있어서 함축적이다.  그러나, 19세기 말경에 비로소 Georg Cantor (1845-1918)의 업적에서 집합은 수학적 이론의 주요한 대상으로서 받아들여 졌다.  이상하게도, 처음 Cantor가 집합의 성질을 연구하게 된 것은 삼각 급수의
매우 기술적인 분야 안의 그의 논문이었다. 처음에, 그는 그 자신을 급수의 수렴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실수 집합의 어떤 특별한 집합에 국한 시켰다. 그러나 Cantor는 그의 발견이 꽤 일반적으로 집합에 적용됨을 빨리 이해 했었다. 1872년과 1897년 사이에 발간된 주목할 만한 논문들에서 그는 집합에
관한 그의 생각을 입문시킨 구체적인 문제들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더 나아가고 오늘날 집합론의 기초가 된 강력한 일반적 개념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동시대의 사람들의 눈에 Cantor가 취한 가장 대담한 단계는 유한 집합의 사용보다 덜 자연스럽지 않게 생각한 무한 집합의 사용이었다. "무한"의 질문은 수학의 가장 민감한 문제들의 하나로 오랫동안 여겨졌었다.  독자는 틀림없이 단위선이 1/2, 1/4, 1/8, 1/16 등의 점에 의해 부분구간으로 나누어 지는 Zeno의 유명한 "Paradox"을 알고 있다. 각 부분구간은 - 아주 작든
지 간에 - 뚜렷한 0이 아닌 길이를 가지고 있고, 무한히 많은 부분 구간이 있다. 즉, 외관상 무한히 많은 영이 아닌 길이는 함께 합쳐져 유한의 길이를 생산할 수 있는 역설적 결론이다. 그런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 고전적인 수학자들은 무한히 많은 대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고안되어진 "Actual" 무한과 어느 주어진 유한의 양을 단순히 초과하는 잠재력을 가진 "Virtual" 무한으로 구분지었다. "Virtual" 무한은 안전한 즉 허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간주되었고, "Actual" 무한은 금지되는 것으로서 간주되었다.
그래서 Cantor의 이론-무한의 집합을 (여기서는 무한의 개념이 분명히 "Actual"의미로서 이해되어졌다) 금지 없이 사용한- 은 즉시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의해서 인정되지 않았던 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회의로 받아들여졌고, 때때로 대놓고 적의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890년 쯤에 Cantor의 이론의 더 "Palatable" 부분이 넓게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수학적 이론의 넓고 다양한 것에 대해 훌륭한 뼈대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세기가 바뀌기 전에 심지어 집합론의 가장 혁명적인 측명이 대단히 많은 수학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 졌었다. 주로 그것은 특히 해석학에서 매우 귀중한 도구로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몇몇 눈에 띄는 수학자들의 업적, 특히 Dedekind는 집합론을 수학의 "Unifying"분야와 기초적인 것으로서 가장 유망한 역할에 던져 주었다. 초창기의 시대부터,
수학자들은 작은 수의 기초적 원리하에서 전체의 분야를 통일할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고대의 많은 학파들은 Euclid에서부터 중세에 걸쳐 수학의 여러가지 분야들은 기하학에 포함되어 질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는 기하학적 비로서 생각되어 질수 있다). Weierstrass와 Dedekind, 다른 사람들
의 업적에서 모든 고전적인 수학이 자연수(양의 정수)의 산수에서부터 이끌려 질수 있다고 제안했던 19세기에 더 많은 통일의 성공적인 시도가 있었다. 그것은 모든 실수는 유리수의 수열 ("Cauchy sequence"라 불리우는)로서 여겨질수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즉, 실수의 연구는 유리수의 그것에 축
소된다. 그러나 유리수는 쉽게 정수의 쌍으로서 여겨질수 있다. 그래서 결국 미적분학을 포함하고 해석기하학을 경유하여 모든 기하학을 포함하는 실수는 자연수의 위에 기초되어 질수 있다. 수학의 기초에 관한 생각의 진보에 있어서 이 결정적인 시점에 그의 작은 책 Was sind and was sollen die
Zahlen (1988)에서 Dedekind는 자연수의 개념은 집합론의 기초 원리에서부터 이끌려 질수 있다고 밝혔다. 이것을 보여주는 현대적 방법은 다음과 같다;
  "0"을 공집합이라 하자. (즉, 원소를 가지지 않은 집합, 기호는 φ로서 정의된다);
"1"은 집합 {φ}로서 정의된다. 즉, 하나의 원소 φ를 포함하는 집합. 그리고 나서, "2"는 집합 {0, 1}로 정의하고, "3"은 {0,1,2}로서 정의된다.  등등.
  모든 자연수의 성질들은 이 정의들과 기초적인 집합론을 사용하여 증명될수 있다. 세기가 바귈때 쯤 그 때에, 집합론은 수학적인 사회의 카다란 부분으로서 없어서는 안될 도구로서 인정 받아졌을 뿐 아니라, 게다가 수학적 과학 중에서 제일의 우치에 대한 신중한(Antender)였다. 반어적으로, Cantor의 생각이 결국 인정 받았다고 보여질 바로 그때 쯤에, 어떤 "Paradoxes"의 첫번째가 알려 졌는데, 그것은 마침내 집합론의 "Cantorian" 형식에서 집합론의 기초적인 견고합에 신중한 의심으로서 던져졌다. 이 파라독스는 너무 거친 반발이어서 자세하게 그것들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2. THE PARADOXES.

  1895년과 1910년 사이에 집합론의 여러 부분에서 약간의 모순이 발견되었었다. 처음에는 수학자들이 그것들에 거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paradoxes"과 불려졌고, 수학적 호기심보다 약간 더로서 여겨졌었다. 파라독스 중에서 가장 일찍인 것은 1897년에 Burali-Forti에 의해서 발표되었으
나, 그것은 이미 2년더 일찍 Cantor 그 자신에 의해서 발견되어 졌었다. Burali-Forti 파라독스는 다소 기술적인 집합론의 영역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초적인 정의들의 약간의 변경으로 충분히 그것을 고칠것이라고 희망했었다. 그러나, 1902년에 Bertrand Russell이 집합론의 가장 기초
적인 면을 포함하는 파라독스의 한 의견을 주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시되어 질수가 없었다. 몇년이 지남에 따라 또 다른 모순들이 발견되어 졌었는데, 그것은 수학의 많은 "safest" 개념들에 도전 같이 보였었다. 집합론의 "paradoxes"는 두가지의 종류가 있다. 그 하느는 논리적 paradoxes라 불리우고, 다른 하나는 어의적 paradoxes라 불리운다. "Logical"과 "semantic"이란 이름에 대한 이유는 이들 파라독스의 약간의 예를 봄으로써 우리에게 선명하게 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logical"파라독스는 잘못된 논리로부터 나오고, "semantic"파라독스는 잘못된 언어의 사용에서 나온다. 이과의 나머지 부분에서 집합론의 단지 기초적인 개념을 포함하는 가장 유명한 파라독스의 두개를 소개할 것이다.


  첫번째는 "logical"파라독스이고, 두번째는 "semantic"파라독스이다. 둘다 그것들의 종류의 전형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질지 모른다. 논리적 파라독스의 가장 단순한 것은 Russell's paradox인데,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질수 있다.
  A가 한 집합이라고 한다면, 그것의 원소는 그들 자신 원소일지 모른다. 이 상황은 수학에서 자주일어난다. 예를 들면, A는 선의 집합일지 모른는데, 각 선은 점들의 집합으로서 여겨진다. 여기서, A가 그 자신의 원소일 가능성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모든 집합의 집합은 이 성질을 갖는다.  S를 그들 자신이 원소가 아닌 모든 집합의 집합이라 정의하자. S는 그 자신의 원소일까?  글쎄, S가 S의 원소라 한다면-S의 정의에 의해서- S는 S의 원소가 아니다. S가 S의 원소가 아니라면, (다시, S의 정의된 방법 때문에) S는 S의 원소이다. 그래서 S가 S의 원소일 필요충분조건은 S가 S의 원소가 아닐때 임을증명한다. - 가장 기본적인 종류의 모순이다.  보통, 수학에 있어서, 우리가 이런 종류의 모순에 도달할 때 우리의 가정의 하나가 잘못이 있다고 인정해야만 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그 자신의 원소로 존재하는 집합을 말하는데 무의미라든가 "그들 자신의 원소가 아닌 모든 집합들의 집합"으로 그런 것들이 없다든가라고 결론을 이끈다. 우리는 이 문제로 곧 돌아올 것이다. 잠시 어의적 파라독스에 관하여 몇 마디 하자. 어의적 파라독스의 전형적인 것은 Berry's paradox이다.  논의를 하기 위하여, 영어의 모든 단어가 적당한 표준 사전에 기록돼 있다고 인정하자. 영어의 20단어보다 적은 것으로 서술할수 있는 모든 자연수의 집합을 T라 하자. 영어 단어의 수는 단지 유한하기 때문에 20개 보다 적은 결합되는 거런 단어는 유한개 많이 있다. - 즉, T는 유한 집합이다. 그러면, 분명하게 모든 T의 원소보다 콘 자연수가 존재한다. 즉, 영어의 20단어보다 더 적은 것으로 묘사할 수 없는 최소한의 자연수가 있다. 정의에 의해서, 이 수는 T안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거것을 16개의 단어로 묘사했다. 즉, 그것은 T안에 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명백한 모순을 대하였다. 위의 논의는 과실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집합 T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런 집합 T가 단순하게 존재할 수 없음을 결정적으로 결론 짓는다.  파라독스 전에는, 집합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결코 제출되지 않았었다. Cantor는 "전체로서 생각되어 질수 있는 우리의 지각의 뚜렷하고, 구별되는 대상의 모임"으로서 집합을 "정의"하였다. 더욱 명학하게, 캔터와 그의 추종자들은 우리가 대상의 성질을 모사할 수 있다면, 그 성질을 소유하는 모든 대상을 집합을 또한 말할 수 있다는 "command-sense"개념을 받아들였다.
파라독스는 만약 단지 어떤 "성질"을 파라독스 집합으로 이끈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집합의 이 소박한 개념을 증명의 유일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1900년대 초 동안 집합론의 기초를 깰려는 목적을 가지고 일어나는 여러가지 운동에서 중심적 관심의 화제는 집합의 존재였다. 무슨 성질이 집합을 정당하게 정의하는가? 무슨 조건하에서 성질이 집합의 모든 것을 정의 하는가? 존재하는 집합으로부터 새로운 집합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가?

  3. 공리의 방법.

  파라독스의 출현은 오늘날까지 완전하게 풀리지 않고 있는 수학의 기초에서 위기의 시작을 표시했다. Cantor의 "정의"에서 구체화돼던 것 처럼 집합에서 직관적인 개념은 집합론에 대한 만족적인 기초를 명확하게 증명하지 못했다. - 전체로서 수학에 대하여 적었다. 특별한 타입의 개념과 정의를 제거함으로서 파라독스를 없애려는 하찮은 노력도 실패했다. 완전히 새로은 접근을 필요로 했다.
  1905년부터 연구가들이 이 문제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방법을 제시했고, 발전시켰다. 그 대부분은 세개의 콘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그것은 "aximatic", "logistic", "intuitionist"라 불리우는 학파, 주요 그룹들이다. 이 과의 나머지에서 우리는 이 세 방향의 사상을 소개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주로 공리방법을 개발하는데 보게 된다. 수학의 공리 방법은 기원전 300년 쯤에 Euclid의 Element가 나오고, 고도로 발전된 형식으로 나왔다. Euclid에 의해서 알려진 이 공리 방법은 오늘날 수학의 모든 분야의
특징적인 양상이 되었다. 그러나 기하학 이외에 적용된 것은 최근 부터다. 따라서, 공리 체계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인 이해와 일반적인 연역적 생각은 대부분 기하학 분야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공리 방법의 개발을 자극한 기하학에 있어서의 주요한 발전을 보는 것이 좋겠다.
  Euclid와 그의 시대에서, 공리와 공준은 "truths"을 표현한다. 진문을 넘을 수 없는 예를 들면, 기하학의 명제의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이 신념 때문에 Euclid의 "parallel postulate"에 관한 수천년 동안의 논쟁이 있게 된 것이다. 이 공리에 의하면 두 직선 A와 B가 제 3의 직선 C와 만날때 A와 B는 반드시 만난다. 이 명제는 "obviously true"같았지만, 그것이 다른 공리만큼 간결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Euclid부터 1700년대 까지의 기하학자들은 대대로 여러가지 가정을 써서 이것을 증명할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
다. 단지 19세기 중엽에, 이 문제는 Bolyai와 Lobachevski에 의하여 해결되었다. 즉, 두사람 모두 평행선 공준대신에 그것과 모순되는 가정을 세움으로서 "non-Euclidean" 기하학을 발전 시켰다. 비 Euclid 기하학은 Euclid기하 만큼 합리적이란 것이 증명되었다. 즉, 그것은 Euclid적인 해석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즉, "point", "line", "angle"등을 적당히 다시 해석함으로써 Bolyai 또는 Labachevski의 공준이 Euclid의 기하학에서도 성립한다) 따라서 평행선 공준은 Euclid의 체계 속에서 다른 공리와 공준에 대하
여 독립일 뿐만 아니라, 반면으로 Euclid기하 만큼 모순이 없으면서 우리의 일상 생활이 경험하는 공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기하학이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공리란 것이 "universal truths"가 아니라 우리가 한 이론에서 그 전제로서 어떤 명제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했다. Euclid의 원리에 있어서의 최대의 결점은 Euclid가 공리에 의하여 제시한 것이 아닌, 암암리에 가정한 여러 가설이다. 예를 들면 어떤 증명에서 두개의 원은 각각 다른 쪽의 줌심을 통과 할 때 두개의 공통점을 가진다고 했지만, 공리에는 이런 점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았다. 또 다른 데에서는 Euclid는 두 점 사이의 한 점에 대해; 그는 "betweenness"라는 개념을 정의하지 않았고 또 그 성질을 공리로 세우지도 않았다. 또 다른 주장에서는 원론은 rigid motion을 말하고 있지만, 개념을 정의하지 않았고 공리에서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Euclid에는 논리적 추론의 연쇄가 가끔 중단되는데, 그 까닭은 직관적 인정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결점이 발견되었을 때 수학적 이론은 공간적 또는 기타의 직관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전개될수 있어야 하겠다는 이해가 생기게 되었다. 즉, 어떤 대상과 관계 (예를 들면, "점", "선", "사이" 등)는 "무정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그 성질이 완전히 명시되어 있어야 하며 연역적인 방법은 개념과는 독립이어야 한다.  1882년에 M. Pasch가 처음으로 기하학의 구성을 발표하여, 직관에의 호소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명백히 말하고 체계적으로 실천하였다.
  19세기 말에 공리론적 방법의 현대적 개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개관에 있어서 Euclid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즉, 어떤 명제들이 "공리"로 채택되고 그 이론에서의 그 외의 명제는 논리적 추론을 통하여 그 공리에서 유도될 때 그 수학적 이론을 "공리론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학적 "증명"의 형식적 성격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었다. 가능한 한 공리는 충분히 자세하여야 하며, 논리적 연역의 법칙은 충분히 공명정대하여, 증명의 과정에서 직관이나 꾀가 잠입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증명이 맞았느냐 틀렸느냐 하는 것을 계산기계가 증명해 줄수 있어야 한다.
  수학이 영어와 같은 일상 용어로 구성되는 한, 인간의 이해를 위하여 명제의 해석과 복합 문장의 구조의 발견이 필요하다. 따라서, 수학적 �명에서 직관이 완전히 제거되러면 형식적인 수학적 언어가 절대로 필요하게 된다. 이 언어의 "규칙"은 엄격하게 조직화되어 모든 명제가 뜻이 애매하지 않게 그리고 그 구성이 명백하게 되어야 한다.  형식적 기호의 언어의 창조는 현대수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발전의 하
나이다. 그 언어가 어떤 양상을 띠느냐 하는 것을 여기서 좀 보자.  대부분의 수하걱 명제는 다음과 같은 양상을 띤다.

  "X is parallel to Y,"
  "y lies between x and z,"
  "X is an open set,"  etc
  이것들은 대상에 관한 명제 또는 대상의 짝에 관한 명제 또는 더 일반적으로 순서를 가진 n겹의  대상들에 관한 명제들이다. 이 명제들은 기본적 술어라고 하고 X,Y,x,y,z 같은 문자는 변수라고 한다. 한 술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문자뒤에 변수를 열거하는 것이 편리하다. 따라서, "X는 Y에 평행이
다"를 A(X,Y)로 "y는 x와 z사이에 있다"를 B(x,y,z)로 나타내는 것과 같다. 수학적 추론의 과정에서 술어의 "뜻"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수학을 아는 학생들은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평행"이란 말의 "뜻"은 기하학의 논리진행 과정에서는 아무 작용도 하지 않는다. 작용하는 것은 "X는 Y에 평행이
다"라는 명제와 다른 명제와의 사이의 관계 뿐이다. 여기서 다른 명제란 "X는 V와 만난다"라든가 "Y는 Z에 수직이다"라든가 하는 따위다. 따라서 초보적인 술어를 원자적 공식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다시 나눌 수 없는" 완전한 것이어서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다른 것과 구별이 가능할 뿐이다.
  모든 수학의 분야는 유한개(보통은 매우 소수개다)의 서로 다른 기본적 술어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를 들어서 평면 Euclid기하학은 다음과 같은 기초적인 술어만을 가지고 표현된다.


           P(x): x is a point.
           L(x): x is a line.
  (1)     B(x,y,z): y is between x and z.
           E(x,y): x equals y.
           I(x,y): x belongs to y.
          C(u,v,x,y): the segment uv is congruent to the segment xy.
          D(u,v,w,x,y,z): the angle uvw is congruent to the angle xyz.

  집합론은 앞으로 다시 생각하는 바와 같이, 하나의 술어만으로 오나전히 구성된다. 즉, x∈A (x는 A의 원소다)이다.  술어만으로는 수학의 모든 명제를 나타내기에 충분하지 않다. 명사만으로 영어의 문장을 쓰기에는 부적절한 것과도 같다. 예를 들면 "만약 x가  y에 평행이고, y가  z에  수직이면 x는 z에 평행이다"라는 말을 한다고 하자.  이런 명제는 술어를 논리적 연계사로 이어 놓고 있다. 따라서, P와 Q가 우리의 언어의 명제들이라면 다음도 그렇다.
         P: not P.
         P∧Q: P and Q.
         P∨Q: P or Q.
         P⇒Q: P im;ies
         P⇔Q: P if and only if Q.

  끝으로 예를 들어 "x가 점"이고 "y가 점"이면 "z는 x와 y사이에 있다"고 하는 "점 z가 있다"라고 말하려고 할 때를 생각하자. 여기서는 한정기호를 필요로 한다. P(x)가 변수 x를 가진 명제라면 다음도 명제다.

        ∀x, P(x): for every x, P(x).
        ∃x∋P(x): there exits an x such that P(x).

  이것으로 우리의 형식적 수학언어는 전부다. 알려진 수학의 전부는 기본적 술어와 론리적 연계사와 한정기호로 나타낼 수 있다. 이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간단한 예를 들자. "만약 x와 y가 서로 다른 점이라면 x와 y사이에 점 z가 있다"를 기호로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

  (2) [P(x)∧P(y)∧ E(x,y)] ⇒ [∃z∋(P(z)∧B(x,z,y))],

  여기서 술어의 뜻은 (1)에서 설명한 대로다. 형식적인 언어의 사용에서 얻는 많은 이익 중의 하나는 이 언어에서의 해석의 과정을 정확하고 공명정대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이다. 약간의 명백하고 뜻이 애매하지 않는 "규칙"이 명제 T가 명제 S에서 추론되는 것을 결정한다. 약간의 규칙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3) 규칙 A: from P and -> Q we may infer Q.
        규칙 B: from p and Q we may infer P ^ Q.
        규칙 C: from  ( P) we may infer P.
        규칙 D: from P(c) we may infer ∃x -> P(x).

  이 규칙과 약간의 다른 규칙을 초론의 규칙이라고 한다. 주어진 전체에서 출발하는 형식적인 논증은 형식적 언어 표현의 계속이며, 그 각 표현은 전체일 수도 있고, 그 앞 표현(또는 표현들)에 초론의 규칙을 적용하여 유도된 것일 수도 있다.

  (예) 전체가 L(x,y)인 형식언어를 생각하자. L(x,y)는 x<y를 나타낸다고 하자. 이 언어에서 다음은 매우 간단한 논증이다.

 

    Premises
    1) a < b.
    2) b < c.
    3) [(a<b)^(b<c)] -> (a<c).

    정리  ∃x∋[(a<x)^(b<x)]

    증명.  번호           표현                 이유
           1.                 a < b                설명 (i)
           2.                 b < c                설명 (ii)
           3.                (a<b)^(b<c)        번호 1,2; 규칙 B
           4.        [(a<b)^(b<c)]->(a<c)  설명 (iii)
           5.                 a < c                번호 3,4; 규칙 A
           6.              (a<c)^(b<c)          번호 5,2; 규칙 B
           7.      ∃x∋[(a<x)^(b<x)]       번호 6, 규칙 D

  여기서 추론의 규칙이 각 표현에서 완전히 기계적으로 적용되었다는 점을 주목하여라. 모든 의도와 목적에 대하여, 표현은 기호의 무의미한 나열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대하여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증명을 수행하는 일과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직관이 완전히 형식적 수학의 증명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공리론적 이론에 있어서 공리들이 형식적 언어로 바꿔졌을 때 그리고 그 모든 증명이 형식적 증명일 때 형식화했다라고 하다.  모든 공리적 이론은 형식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오늘날 이상적이지만, 그것은 사실 너무 번거롭다. 기호에 의한 명제는 해독하기 어렵고 형식적 증명은 무척 길어진다.
  따라서 수학자들은 공리론적 이론이 형식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그냥 형식화하지 않는 대로 논리를 전개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그렇게 할 것이다.


  4. 공리적 집합론.

  1900년대 초기의 많은 수학자들은 역설을 피하는 길은 공리론적 기초 위에 집합론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집합"이란 말과, "의 원소"란 말은 여기서는 무정의 개념이다. 그것은 마치 "점"과 "선"이 기하에서 무정의 개념인 것과 같다. 그 뜻은 여기서 아무 의미가 없고, 그 성질은 형식적인 공리로서 주어져야 한다. 특히, Cantor의 집합론에서의 모든 유익한 결과는 증명되도록 하고 역설은 증명될 수 없도록 공리가 선택되어야 한다.
  집합론의 첫 공리화는 1908년에 Zermelo에 의하여 주어졌다. Zermelo의 체계는 Skolem과 Fraenkel에 의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Zermelo는 그의 논문을 형식적인 방법이 널리 이해되고 인정되기 전에 썼다. 따라서 그의 집합론은 형식적 언어로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체제가 기하학에 있어서의 낡은 공리론적 취급에 가까운 것이었다.  Zermelo의 체계에는 하나의 원초적인 관계가 있다. 기호로는 ∈로 쓴다. x∈Y란 표현은 "x는 Y의 원소다"라고 읽는다. 변수 x,y,z,X,Y,...은 기호
∈의 오론쪽 도는 왼쪽에 위치시키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집합"이라고 부르는 대상이다.
  독자들은 아마 두개의 대상, 즉, 집합과 원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은 이 구별은 불필요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원소와 집합의 관계는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 원소와 집합의 관계는 정확하게 ∈의 관계다). 도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수학에서 거의 모든 집
합은 집합의 집합이다.   예를 들자, 평면 해석기하에서 선은 점의 집합이다. 점은 두 실수의 짝
(그 두 점의 좌표)이다. 실수는 유리수의 열(즉 집합)이다 등. 따라서 공리론적 집합론에서 이룩한 유익한 단순화는, 집합의 원소를 다시 집합이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집합은 사실은 집합의 집합이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렇게 단순화하면 어떤 해로운 결과라도 생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원시적인 개념의 수를 줄이고 집합론의 공리의 개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기호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작은 문자와 콘 문자를 써서 x∈Y와 같이 쓰는 습관이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x∈y 또는 X∈Y라고 쓸 수 있다. 여기서 모든 변수는 집합을 나타낸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합의 거의 전부는 특수한 종류의 대상 전부로 되어 있다. 즉, 주어진 조건을 만족하는 대상 전부로 되어 있다. 집합이 생기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 이것이다. 우리는 x에 관한 조건을 쓸 수 있다. S(x)란 기호로 스기로 하자. 그리고 S(x)를 만족하는 모든 대상 x의 집합을 생각하게 된다.

    (예) "x는 무리수이고, 0≤x≤1이다"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대상 x의 전부(다시 말한다면 0과 1사이의 무리수 전체의 집합) "x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는 대상 x전체의 집합.
  이것은 집합이 생기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게끔 집합론에 하나의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 조건 S(x)가 주어졌을 때, S(x)를 만족하는 대상 x전체의 집합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2절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만일 이런 원칙이 아무런 제한 없이 적용된다면
우리는 역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예를 들면, 자기자신의 원소가 되어 있지 않은 집합 전체의 집합을 만들 수가 있다.) 따라서 이 역설을 제거할 수 있는 제한을 고안하지 않으면 안된다. Zermelo는 다음과 같은 제한을 생각했다. S(x)가 x에 관한 조건이라고 하자. S(x)를 만족하는 모든 x의 집합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A가 주어진 집합이라면, A안에 있는 s(x)를 만족하는 모든 x의 집합을 만들 수가 있게 된다. 따라서 막 말해서, 대상의 성질이 "새" 집합을 형성하는 데에 사용될 수는 없고 다만 이미 그 존재가 확
정되어 있는 한 집합 A에서 주어진 성질을 만족하는 원소 전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Zermelo는 이 원칙을 그의 체계의 공리의 하나로 채택했다. 그것은 집합안에서 원소를 선출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선출의 공리"라고 불렀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A가 한 집합이라고 하자. A의 모든 대상 x에 대하여 의미가 있는 하나의 명제를 S(x)라고 하자. 그러면 S(x)를 만족하는 A의 원소 x들만으로 된 집합이 존재한다.

  이 선출의 공리로 그 존재가 가정된 집합을 보통 다음과 같이 적는다.

               {x∈A|S(x)}
  [이것을 "S(x)를 만족하는 모든 A의 원소 x의 집합"이라고 읽는다.]
  따라서 여기서 주의할 것은 Zermelo의 체계에서 {x|S(x)} [S(x)를 만족하
는 모든 x의 집합]을 만들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임의의 집합 A에서
{x∈A|S(x)}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선출의 공리는 어떻게 하여 역설을 피할 수 있는가? 먼저 Russell의 역설에서 무엇이 생겼느냐를 생각하자. Russell의 역설에서 문제의 집합은 "자기자신이 원소가 되어 있지 않은 모든 집합의 집합"이었다. 그것은 기호로는 {x|x∈x}로 적을 수 있다. 이미 주의한 바와 가이 이 집합은 Zermelo의 체계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 까닭을 다음에 생각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x∈A|x∈x} 을 만드는 일이고 여기서 A는 그 존재를 보여줄 수 있는 집합이다. 만약 {x∈A|x∈x}를 Russell의 역설의 {x|x∈x}에 대치한다면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즉, S가 {s∈A|x∈x}라고 하고 논리의 단계를 차례로 밟아 보자.   S∈S는 불가능하다. 왜냐 하면 S∈S이면 S∈S이니까 모순이다. 따라서 S∈S이다. 왜냐하면 S∈S이라면(S∈S와 아울러) S∈S, 그것은 모순이다.

  즉, Russell의 설은 만약 A가 임의의 집합일 때 집합 {x∈A|x∈x}는 A의 원소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기타의 논리적 역설도 마찬가지로 극복할 수 있다. 논리적 역설에서의 문제의 집합은 공통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즉, 그것들은 너무 크고 너무 많이 내포하고 있다. Russell의 역설에서는 "자기자신이 원소가 되어 있지 않는 집합 전체의 집합"이었고 Cantor의 역설에서는 (그것은 Russell의 것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지만) "모든 집합의 집합"이었다. 선출의 공리는 이런 터무니 없이 큰 집합을 만들수 없으며 존재하는 집합의 부분집합을 만드는 데에만 사용된다.
  의미론적 역설을 피하는 문제는 더 어렵다. Berry의 역설에서의 문제의 집합은 너무 큰 것은 아니었다. 문제거리는 오히려, 집합을 결정한는 조건 S(x)안에 있는 듯하다. 선출의 공리에 의한 제한도 효과적인 경계선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만약 S(x)가 "x는 영어에서 20개 미만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라면 Berry의 역설에서 문제의 집합은 {x∈N|S(x)}이다. 여기서 N은 자연수의 집합이다. 만약 S(x)를 x에 관한 받아드릴 수 있는 조건이라고 인정한다면 이 집합은 Zermelo의 체계에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의미론적 역설을 막으려면 집합을 결정할 수 있는 "조건" S(x)의 타입에 대하여 제한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Zermelo는 이 선출공리에서 S(x)가 A의 모든 x에 대하여 의미가 있을 때에 한하여 {x∈A|S(x)}를 만들 수 있다고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하나의 새로운 의문을 제
기한 것 뿐이었다. 즉 "의미가 있을 때"란 무엇이냐?  S(x)가 의미가 있는지 어쩐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이미 주의 깊은 독자는 느꼇을 문제다. "조건 S(x)" 즉, "대상 x에 관한 명제"란 무슨 뜻한가? "X에 관한 명제"란 개념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집합론을 공리화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모든 직관에의 의존에서 해방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Zermelo는 여기에 대한 만족할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는 그의 체계를 형식언어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22년 Skolem과 Fraenkel은 집합론의 형식적 공리화의 작업을 하면서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을 발견하였다. "x에 관한 명제"란 단순히 형식언어에 의한 하나의 "자유"변수 x를 가진 명제다.  Zermelo의 체계에는 기본술어는 하나만이고, 기호 ∈로 적는다. 따라서 형식언어에 의한 명제는 x∈Y, u∈V와 같은 술어들, 논리적 연계사 및 한정기호만을 써서 나타낼 수 있다.
  만일 선출의 공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명제" S(x)를 형식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으로 제한한다면 곧 모든 의미론적 역설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x는 영어의 20단어 미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라는 문장은 형식언어로 쓸 수는 없다. 이같이 하여 의미론적 역설을 피하는 길은 수학적 견지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철학적으로 이상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수학적으로는 수학에 필요한 모든 집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넓은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의 집합" "모든
나전어 동사의 집합" 같은 것을 만들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더 좋은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Von Neumann은 두 사실이 결합하여서 론리적 역설을 낳는다는 것을 주목했다. 첫째 사실은 우리가 이미 본 문제의 집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둘째 사실은 이 "큰" 집합이 집합의 원소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두 사실 중 Zermelo는 첫째 사실만을 사용하였다. 즉, 그는 너무 큰 집합을 만들 수 없다고 함으로서 그 역설을 피한 것이다. von Neunmann은 이 사실의 둘째도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터무니없이 콘 집합의 존재를 허용하려고 한다. 다만 그것이 집합의 원소가 될수는 없다고 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von Neumann의 체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Zermelo의 경우와 같이 기본 술어는 하나만이다. 즉, 술어 x∈Y이다. 변수 x,y,X,Y등은 우리가 류(Class)라고 부르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 원소 - 그것은 류의 원소가 되는 류라고 정의된다 - 및 어떤 류의 원소도 될 수 없는 류다. 따라서 Zermelo의 선출공리는 다음과 같은 "류공리"로 대치할 수 있다.


  S(x)가 대상 x에 관한 임의의 명제라면, S(x)를 만족하는 모든 "원소" x의 류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만약 S(x)가 x에 관한 임의의 명제라면, 우리는 류    {x|x는 원소이고 S(x)가 성립한다}를 만들수 있다.
  이 체계에서 russell의 역설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Russell의 역설의 여러 단계를 밟아 보자. S는 {x|x는 원소이고 x∈x}이다.  S∈S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S∈S라면 S∈S이니까 모순, 따라서 S∈S이다. 그러면 S는 원소가 아니다. 왜냐하면 S가 원소라면 S∈S일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Russell이 설은 위에 정의한 류 S가 원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의미론적 역설도 Zermelo의 체계에서와 같이 류 공리에 형식언어에 의하여 표현할 수 있는 "명제"만을 허용함으로서, 제거할 수 있다.
  von Neumann의 체계는 Godel과 Bernays에 의하여 수정 발전되었다. 그것이 Zermelo의 체계보다 나은 점은 류 공리가 선출공리보다 직관적인 집합론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사실 S(x)가 x에 관한 임의 명제라면, 류 공리는 S(x)를 만족하는 모든 원소 x를 포함하는 류의 존재를 보장한다. 수학에 있
어서, von Neumann식의 체계는 "모든 원소들의 류"에 관하여 말할 수 있게 해 주고 또 원소가 아닌 류들 사이의 계산이 가능하게 해준다. 이 체계의 큰 약점은 원소가 될 수 있는 류의 원소가 될수 없는 류와의 구별-그것은 고도로 인공적인 것이지만- 그 구별을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불리함은 von Neumann타입체계의 더 큰 융통성과 자연성으로 의심받음없이 더 가치가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von Neumann의 공리체계의 약간 수정한 형식을 사용할 것이다.

  5. OBJECTIONS TO THE AXIOMATIC APPROACH. OTHER PROPOSALS

  공리적 집합론 주된 목적은 무엇이고, 이들 목적은 성공적으로 어느 정도 달성되어져 왔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20세기 초에 수학자들이 집합론의 공리론적 기초를 연구하던 환경을 회상해야 한다. cANTOR의 사상이 이미 현대수학의 구조 안에 구석 구석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따라서 현역의 수학자들에게는 없을 수 없는 도구가 되어 있었다. 대수학과 해석학은 집합론의 틀 안에서 구성되었다. 이 방명의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새 업적이 Cantor와 그의 후계자들이 도입한 방법을 써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역설이 발견되고 Cantor의 체계의 기초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그 체계를 버리기를 꺼렸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역설에 이겨내는 어떤 방법이 발견되어 전부는 아니더라도 Cantor의 결과의 적어도 대부분은 보존될 것을 믿고 있었다. Hilbert는 이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쓴 일이 있다. "Cantor가 우리를 유도한 낙원에서 우리는 쫓겨나는 일
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역설들이 발견되고, 그것을 피하려는 모든 처음의 시도가 실패했을 때 직관적인 집합론을 그대로 보존할 수는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던 최선의 것은 현대 수학의 새 업적들을 구출할 수 있고 고전적인 수학
의 적절한 구조를 제공할 수 있으리만큼은 직관적인 집합론이 살아 남아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Zermelo의 체계와 von Neumann의 체계는 이 제한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희생된 직관적인 집합론의 분량은 꽤 많았다. 예를 든다면 Zermelo의 체계에서는 이미 본 바와 같이 집합을 구성하는 직관적인 방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출의 공리로 대치되었다.
  거기서는 "성질"은 집합의 부분집합을 결정하는 구실 만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더 나아가서 허용될 수 있는 성질은 일곱개의 기호 ∈∧∨  ⇒∃∀와 변수 x,y,z,...만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보통 집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예를 들어 "모든 사과의 집합"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집합"과 같은 것-은 공리론적 집합론에서는 집합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사실 공리론적 집합론이 제공하는 "집합"은 우선 공집합 φ, 그 다음에는 공집합을 가지고 구성할 수 있는 {φ},{φ,{φ}},...와 같
은 것 만이다. 그런데 수학 전체가 집합의 이와 같은 수척한 개념의 기초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공리론적 집합론이 우리의 직관적 집합 개념을 병신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반대론은 중요한 철학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수학적 "진리"에 관한 보다 넓은 논의의 한 부분이다. 그 논의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수학적 개념이란 인간의 마음의 소산(즉, 발명)이냐? 그렇지 않으
면 그것은 우리와는 관계없는 플라톤적인 개념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어서 수학자들에 의하여 발견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 이 후자의 견해를 "플라톤적 실재론"이라고 하여 고전적인 수학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다. 우리는 이 대립하는 두 견해가 하나의 구체적인 개념 - 자연수의 개념 -에 대하여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여 보자. 플라톤적 실재론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 "둘", "셋" 등은 자연속에 존재하고 그것은 첫 인간에 세기 시작하기 전부터 존재한다. 따라서 가령 우주의 어떤 곳에 인
간 이외의 지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르더라도 그들은 자연수를 발견했을 것이고, 그 성질은 우리가 발견한 것과 같을 것이다. 그 반면, 후자의 견해에 따르면 세 마리의 소, 세 개의 돌, 또는 세그루의 나무는 자연 속에 존재하지만, 자연수 3은 우리 마음의 창조이며 우리는 자연수를 구성하는 과정을 발명한 것이다(0에서 출발, 매회 1을 더하여 감으로서 1,2,3,...을 만든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만드는 개념적 두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적 실재론은 공리론적 집합론의 상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플라톤적 실재론의 견지에서 볼 때 수학적 대상은 우리에게 그 모든 특징 및 그 모든 성질과 더불어 기성품으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수학적 정리가 "참"이란 말은 그 정리가 적절한 수학적 대상을 바르게 표현했다는 뜻이 된다. 예를 든다면, 2+2=4라는 정리는 살술에서 증명 가능한 형식적인 명제일 뿐 아니라, 그것은 수에 관한 "정말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가령 우리가 수학적 대상이 그 모든 성질과 더불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하
는 것을 인정한다면, 특히"집합"의 개념은 고정된 잘 정의된 개념이고 우리의 편리에 따라 변경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Zermelo와 von Neumann이 만든 집합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표현하는 것을 의히하는 여러 정리는 거짓이 된다. 결국 우리가 풀라톤적 실재론을 엄격히 받아들인다면 Zermelo와 von Neumann의 체계를 수학적으로 무효인 짓이라고 배척하지 �을 수 없게 된다.
  Russell의 타입의 이론은 아름답게도 단순한 사상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Russell은 여러 가지의 새로은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마침내 도달한 이론이란 것이 너무도 거치장스러워 힘을 쓰지 못했고 너무 복잡하여서 불쾌한 것이 되었다. 첫째
로 집합의 "수준"이라는 계급에 대응하는 논리적 술어에 수준이라는 계급이 있어야 했다. 다음에는 의미론적 역설을 피하기 위하여 같은 수준에 있는 집합들이 "순서"에 의하여 다시 나눠져야 했다. 끝으로 Russell은 소위 "약분 가능성의 공리"라는 공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지금가지 Zermelo가 세운 가정과 마찬가지로 매우 임의적인 것이고 직관에 근거를 두지 않은 것이었다. 이같은 단점이 있기 때문에 타입의 이론은 비록 그것이 아직까지도 흥미 있고 연구 분야이기는 하지만 수학자들의 사이에서 널리 인정을 받지 못했다.
보다 급진적인 방법은 자칭 직관주의자라는 수학자들의 한 집당에 의하여 취해졌다. 직관주의자들이 볼 때 많은 현대 수학은 Cantor의 집합론의 대부분도 포함하여서 논리의 법칙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데 기초를 두고 있고 그것은 잘못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집합론에 대한 직관주의자들의 태도를 요약하는 것은 매우 쉽다. 그것은 거의 완전한 배척이라는 태도다.  직관주의의 척학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그 논리에 대한 태도를 이해해야 한다. 직관주의자가 볼 때 수학자들이 쓰는 논리의 법칙은 실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증명의 어떤 방법들이 수학자들에 의하여 공통적으로 사용되게 되고, 여러 해를 거치는 동안에 규칙이라고 하는 전체 속에 규칙으로서 끼게 된다. 이런 규칙은 그 처음의 관계에 있어서는 바른 것이었지만 그것이 규칙화되고 벌써 적용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상황에 대하여서도 무비판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15세기 이전까지에 있어서는 모든 수학의 근본이었던 Euclid의 기하에 있
어서는 모든 정리는 유한개의 대상망능 포함한다. 그리고 이 대상(기하학적 도형)은 직접작도에 의하여 주어졌다. Euclid가 사용한 논리의 법칠은 이런 관련에서는 완전히 옳다. 다만 무한을 포함하는 대상의 영역에 그것을 옮겨 놓을 때 거기서는 대상은 구체적인 작도로 주어질 수 없는 것이고 거기서는
이들 규칙은 바르지 않다고 직관주의자들은 말한다.  예를 들어서 Law of the excluded middle을 생각하자. 이 규칙은 "만약 S가 명제면 S혹은 S의 부정의 어느 한 쪽이 참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특히
A가 한 집합이고 P(x)가 A의 모든 원소 x에 대하여 의미가 있는 어떤 명제라고 하자. 배중률에 의하면 A안에 P(x)가 참인 x가 있든지, 아니면 A의 모든 X에 대하여 P(x)가 거짓이던지 그 어느 한쪽이다. 만약 A가 유한집합이어서 P(x)가 참인지 아닌지를 A의 각 원소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다면 이 규칙은 옳다고 직관주의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이 규칙이 탕생했을 때의 관련은 그런 것이었다고 직관주의자들은 말한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만약 우리가 A의 모든 원소 x를 조사하여 P(x)가 침인지 아닌지를 경정
한다면 (그러기 위하여서 A는 유한집합이어야 한다) 두가지 결과가 나올 가능성 밖에 없다. 즉, 한 x에 대하여 P(x)가 침임을 우리가 발견했던지, 아니면 A의 모든 x에 대하여 P(x)가 거짓이던지.
  따라서 우리의 경헙은 유한집합인 경우에는 배중률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가령 무한집합인 경우를 생각하자.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영역이고 또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이다.
  거기서 배중륙을 기대한다는 것은 완전히 근거가 없는 일이다. 직관주의자들은 이같은 토대 위에서의 배중률을 거부한다. 고전적 논리학에서의 다른 규칙도 역시 마찬가지로 거절 당한다. 그것은 경험의 영역을 넘어 섰기 때문이다.
  Euclid 기하학 및 일반적인 초기수학에서의 증명은 구성적 성격을 가졌다. 예를 들자. Pythagoras 정리는 대응하는 부분이 합동이기 때문에 면직이 같게 되는 도형의 작도를 통하여 증명되었다. 작도가 완성되고 나면 남은 문제는 합동인 부분을 지적하고 그로 인하여 결과에 도달하는 것 분이다. 따라서, 직관주의자들은 말한다. 논리의 규칙이란 원래 이같은 작도와 결정의 상황속에서 생기는 상태를 진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예를 들자, 배중륙은 만약 대상의 유한개의 집합이 주어지고 (자나 컵퍼스를 쓴다든가
하여서) 각 대상이 어떤 성질 P를 가지고 있느냐 않느냐를 테스트하는 방법이 주어진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각 대상에 대하여 그 테스트를 적용하여서 대상중의 하나가 요구조건을 만족 한다든가 또는 모든 대상이 요구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것을 알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 분이다.  직관 주의자들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수학의 정리는 일정한 정신 속의 구성(작도)이 일정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사실로서 표현한 것이 불과하다. 모든 증명은 구성적(작도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수학적 대상
이 존재한다고 말하려면, 실제로 대상을 구성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서 증명하여야 한다. 주어진 대상의 짝들 사이에서 한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하려면 문제가 되고 있는 대상들의 모든 짝에 대하여 테스트 하는 방법을 포함하여야 한다. "논리의 규칙"이란 수학적 구성을 실행하는 과정의 단순한 관찰에 불과하다. 구성적인 수학과 관련된 범위를 넘어서까지 이 법칙이 적용된다고 믿을 근거는 우리에게는 없다. -사실 이와 같은 관련 밖에까지 이 규칙을 적용하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수학에 있어서 논리는 부수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이 직관주의자들의 집합개념이 우리의 것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
를 들어 Cantor의 원리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대상의 성질을 진술하면 그 성질을 가진 집합이 존재한다는 원리다. 지금 이 원리는 -Zermelo와 von Neumann의 한정된 표현과 아울러 -돼 먹지 않은 것이라고 직관주의자들은 본다. 대상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구성 되어야만 존재한다. 따라서 집합
은 우리가 그 집합을 구성할 방법이 진술될 때에만 존재한다. 이것이 직관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직관주의자들의 집합론의 전부 소개하는 것은 우리 이 책의 법위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직관주의적 수학에서 중요한 특수한 집합을 소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spread라고 하는 것이다. spread란 것은 그 모든 원소를 만들어 내는 규칙을 말한다. 따라서 spread란 "이미 형성된"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형성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 모든 원소는 우리가 오래 오래 이 규칙을 적용하기만 하면 드디어 형성할 수가 있다.  파라독스는 파라독스 안의 문제가 어려운 집합이 직관주의적 수학에서는 생산되지 않고 본질적 논의는 직관주의적 논리를 사용해서 표현되어 질수 없기 때문에 직관주의적 집합론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6.CONCLUDING REMARKS

  20세기의 초 동안에는, 우리가 봤던 것 처럼, 비 전통적인 집합의 이론을 세우는 여러가지 방법이 다른 수학자 들의 "schools"에 의해 개발되고 제안되었었다. 우리는 공리론적 집합론의 기본 원리를 요약해 보았고 Russell의 타입의 이론과 집합에 대한 직관주의적 접근을 요약해 보았다. 그러나 그 밖에도 여러가지 사상이 나타났지만 이 짧은 서론에서 언급할 수가 없다.  집합을 다루는 모든 방법 중에서 공리론적인 방법이 현대수학의 욕구에 가장 잘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Zermelo와 von Neumann의 체계에서 "집합"의 개념은 수학의 목적을 위해서는 충분히 광범위한 것이고, 따라서, 수학적
장치에 있어서는 실제로 그것은 Cantor의 집합개념과 다르지 않다. 증명의 방법과 부호의 사용과 엄밀성- 이 전부가 현대수학의 관습과 호응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공리론적 집합론이 대부분의 현역 수학자들이 볼 때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점이다.
  공리론적 집합론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어떤 철학적인 견해차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공리론적 집합론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철학적 입장은 그와 동시에 현대수학의 많은 부분의 타당성을 부인하게 된다. 예를 들면 직관주의학파은 현대해석학의 많은 부분을 그것이 구성적인 원리 위에 서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하게 된다. 이와 같은 비판은 도전적이고 우리에게 생각할 재료를 제공하지만 그것이 수학의 놀라운 새 세대의 업적을 파괴할 힘은 못 가지고 있다.  과거 70년 가량 동안에 집합론은 기초적이고 통일하는 구실을 하는 수학의 분야라는 인정을 널리 받게 되었다. 우리는 자연수가 어떻게 구성되느냐 하는 것과 집합론의 범위 안에서 유도된 그 성질도 이미 보았다. 거기서 유리수에로 발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실수 복소수 그리고 Cantor의 유명한 "초한기수"에 발전할 수 있다. 함수, 관계, 연산등의 개념도 집합으로 쉽게 정의된다. 따라서 수학의 모든 분야가 집합론 안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사실 절대로 필요한 일이다. "집합론이 수학의 전체의 체계에 대하여 얼마나 안전한 토대를 제공할 수 있느냐?" 특히 공리론적 집합론이 견실성을 가져다고 절대로 확언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안에서 발전시킨 모든 것-즉 모든 수학-이 견실성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위에 우리가 무엇을 건설하든 그것은 무가치한 것이다.
  사실은 집합론의 공리의 견실함의 증명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현대 논리학의 약간의 결과의 견해에서는 너무 놀랄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1931년에 K.Godel은 자연수의 보통 산수의 견실함의 유한성 증명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증명했다.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 상황은 너무 같
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가지는 공리적 집합론의 견실성의 최선의 보장은 보통의 방법에서 얻어질 수 없는 낯익은 모순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더 나아질수 없다.  상대성 견실성에 관계된 결과를 약간의 흥미가 있다. 최근에 Zermelo의 집합론의 공리가 견실하다면 von Neumann의 공리도 또한 결실함이 증명되어졌다. 아마도 결정적 해석에서 수학의 견실성의 어느 보장은 기초적인 직관과 경험적 증거의 적당한 결합에 의지해야만 할 것이다.오늘날의 과학이나 기술의 진보는 수학의 도움 없이는 결코 이룩될 수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기초가 되는 수학은 말할 나위도 없고, 확률론·수리통계의 진보나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오퍼레이션 리서치(operations research)의 발전, 계산기기의 발명과 더불어 그 응용범위는 더욱 확대되었고,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인문과학·사회과학·생산기술이나 경영의 문제까지도 그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數學基礎論 )

 

수학의 기초에 관한 연구로서 현대수학의 한 분과. 원래 경험적으로 발생한 수학이 이른바 그리스 수학, 그의 대표적 소산으로서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스토이케이아)》에 이르러 비로소 연역적(演繹的)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흔히 《원본》이라고도 불리는 이 체계의 공리(公理), 공준(公準)에 대한 비판이 비(非)유클리드기하학의 발견으로 발전하여, 근대의 공리주의(公理主義)의 사상에 도달하였다. 한편, 19세기 말에 G.칸토어에 의하여 제창된 집합(集合)의 개념은 수학의 기초에 관계되는 매우 유용한 개념이라는 것이 인식되었다. 이를테면 자연수에 관한 G.페아노의 공리계(公理系), J.W.R.데데킨트의 자연수론, 무리수론 등에 기본적이고 유용한 공헌을 하였고, 나아가 수학의 각 분야에 침투하였다. 한편, 1901년 B.러셀이 칸토어의 정의에 의한 집합론의 역리(逆理, 또는 背理)를 발견하여 이것이 많은 수학자에 의하여 수학의 기초를 반성, 비판하는 동기가 되었다. 즉, 집합의 개념이 스스로 그의 역리를 이끌어내고, 형식논리 자체의 기초에 반성과 비판을 유발하여 드디어 수학기초론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수학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입장에 따라 수학기초론은 러셀의 논리주의(論理主義:logicism), L.E.J.브로우베르의 직관주의(直觀主義:intuitionism), D.힐베르트의 형식주의(形式主義:formalism) 등으로 갈라져 나가게 되었는데, 현재 연구가 활발한 분야이다.

【논리주의】 이것은 수학을 논리학의 한 분과로 보는 입장이다. 수학은 임의의 사물과 그의 성질에 대해서 항상 성립하는 사항을 형식적으로(내용과는 관계없이) 다루는 학문이며, 그렇다면 이야말로 옛날부터 논리학이라고 일컬어져 온 분야가 아니겠느냐라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논리학은 수학의 청년시대이며, 수학은 논리학의 장년시대’라고 말한다. 이 입장에서 이른바 기호논리의 형식으로 수학을 재구성하려고 한 결과 환원공리(還元公理)·무한공리(無限公理)·선택공리(選擇公理) 등을 가정하였는데, 그 자신도 불만족하다는 뜻을 표명하고 있다.

【직관주의】 이것은 수학적 진리나 대상이, 수학을 생각하는 정신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활동력에 의해 직접 다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입장이다. L.크로네커, H.푸앵카레, L.E.J.브로우베르 등에 의하여 대표된다. 예를 들면, 브로우베르는 배중률(排中律)의 무제한 사용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성질 P를 가지는 자연수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의 어느 한쪽이다’라는 명제는 그 성질 P를 가지는 자연수가 실제로 구성되거나, 또는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모순을 유도하는 증명이 실제로 제시되었을 경우에만 옳다. 어느 쪽의 사실도 미확정인 경우에는 위의 명제는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배중률은 일반적인 논리법칙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수학을 재구성하자면 종래의 수학의 어떤 부분에까지 미쳐야 하고, 어떻게 수정해야 하느냐가 흥미있어 보인다. 그는 형식주의를 표방하고 나온 힐베르트와 대립하며 극적인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형식주의】 힐베르트에 의하여 대표되는 공리주의가 이에 해당된다. 철저하게 형식화된 수학의 공리계의 무모순성(無矛盾性)을 증명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모순성의 증명이란, 이미 무모순이라고 알려진 확실한 기초 위로 환원하는 것인데, 수학적 증명의 거의 모든 근거가 되고 있는 논리나 집합론적 방법까지도 이의 무모순을 환원할 만한 기초란 무엇인가, 또 그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여 그는 ‘유한(有限)의 입장(立場)’, ‘초수학(超數學:metamathematics)’ 등을 제창한다. 이 형식주의는 수학기초론에서 K.괴델의 불완전성정리(不完全性定理), 자연수론의 무모순성의 증명, 기타 공리적 집합론 등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數學記號)

수학에 쓰이는 기호. 수학은 본질적인 것만을 파악하여 기호적으로 표현한다. 적절한 기호법의 고안은 수학의 진보를 크게 도와왔다. 수학은 더욱 표의화(表意化)하고, 도식화(圖式化)하여 학문으로서의 특색을 발휘하고 있다. 각종 주요한 수학기호는 [표]와 같다.

 

 

 

(數學的歸納法)

수학용어. 자연수 n에 관한 어떤 명제 P(n)에서 명제 P(n)이 임의의 자연수에 대하여 성립하는 것을 증명하려면, 다음 2가지를 증명하면 된다.

⑴ P(1)이 성립한다.

⑵ 명제 P(k)가 성립한다고 가정한다면, P(k+1)도 성립한다.

이와 같은 ⑴, ⑵의 2단계에 의해서 주어진 명제 P(n)이 모든 자연수에 대하여 성립함을 보이는 증명법을 수학적 귀납법 또는 완전귀납법이라고 한다. 이를 테면, n이 자연수일 때, 등식 1+3+5+…+(2n-1) = n2 ……①

이 성립함을 수학적 귀납법으로 증명하면,

⑴ n=1일 때, ①의 좌변은 분명히 1이며, 우변은 12=1이므로, n=1일 때, 등식 ①은 성립한다.

⑵ n=k일 때, 성립한다고 가정하면,

1+3+5+…+(2k-1)=k2

이 식의 양변에 2k+1을 더하면,

1+3+5+…+(2k-1)+(2k+1) =k2+(2k+1)

이며, 이 식의 우변을 정리하면, (k+1)2이 된다. 따라서,

1+3+5+…+(2k-1)+(2k+1)=(k+1)2

이며, 이 식은 ①식에 n=k+1를 대입한 것이며, 여기서 n=k일 때 성립한다고 가정하면 n=k+1일 때도 성립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⑴, ⑵에 의해서 등식 ①은 모든 자연수 n에 대하여 성립한다. 이 추론은 자연수 전체의 집합을 정의한 페아노의 공리계(公理系)의 제5공리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 논법이다. 이 때문에 페아노의 제5공리를 수학적 귀납법의 공리라고 한다.

 

 

(數學原理)

 

1910~13년 B.러셀과 A.N.화이트헤드가 공저(共著)한 수학서. 수학의 원리를 논리학의 원리[자동률:A=A, 모순율:∼(A=B∧A≠B), 배중률:A=B∨A≠B] 및 집합과 논리의 관계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수학의 전체계를 공리론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만든 책으로, 근세 기하학의 선구적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수학원리 안에 쓰인 ‘환원(還元)의 공리’나 무한집합의 ‘존재공리’ 등이 논리법칙으로부터 연역적으로 유도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수학 구성을 더 번거로운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의 ‘형이론(Theory of Types)’이 괴델의 논문 <공리적 집합론에 있어서의 선택공리의 무모순성의 증명>(35), <일반 연속체 가설의 무모순성의 증명>(35)에 인용되는 등 책 안의 정밀한 분석결과는 많은 수학자들의 연구에 인용되고 있다.

 

 

(數學的構造)

어떤 집합에 부여된 수학적 성질. 간단히 구조라고도 한다. 즉, 군(群)·환(環)·체(體)는 어떤 집합이고, 그 원소 사이에 연산이 규정되어 있으며, 이 연산은 몇 개의 연산규칙(演算規則)을 만족하고 있다. 또 거리공간(距離空間)은 그 원소 사이에 원근관계가 규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위상공간(位相空間)은, 위상을 정의하는 것에 의하여 위상구조가 주어져 있는 집합이다. 이와같이 수학에서는 집합을 취급하는 데 단순히 집합 그 자신만을 고찰하지 않고, 그 집합 또는 그 원소 사이에 어떤 성질이 주어져 있는 것에 대하여 논의한다. 이 때, 어떤 집합에 주어져 있는 수학적 성질을 일반적으로 수학적 구조라 한다. 이 구조는 대수적 구조(代數的構造), 순서구조(順序構造), 위상구조(位相構造)로 되는데 이들의 구조를 논하는 것은 최근의 수학 연구의 기초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數學的確率)

 확률론 용어. 선험적 확률이라고도 한다. 3개의 동전을 던질 때, 일어나는 모든 경우는, 앞면을 H, 뒷면을 T라 하면, {HHH, HHT, HTH, HTT, THH, THT, TTH, TTT}의 8가지이고, 그 어느 경우가 나타나는지는 같은 정도로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중에서 2개가 앞면, 1개가 뒷면인 경우는 {HHT, HTH, THH}의 3가지로서, 그 확률은 3/8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같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n가지 있고, 그들은 어느 두 경우도 동시에 일어나지 않고, 각 경우가 모두 같은 정도로 일어난다고 기대할 수 있을 때, 사건 E가 일어나는 경우의 수가 r가지이면, p=r/n을 사건 E가 일어나는 수학적 확률 또는 선험적 확률이라고 한다. 0??이므로 0??이 된다.

 

'일반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학야화  (0) 2007.06.27
가장 신비로운 숫자  (0) 2007.06.27
수학의 역사  (0) 2007.06.27
재미있는 수학이야기  (0) 2007.06.27
수학의 철학  (0) 2007.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