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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전경 초판

21c-park 2015. 1. 8. 20:40

 

대순전경초판 


서(序) 

大明은 无光하고 大音은 无聲하니 오직 无光의 光이라야 能히 三元을 通亮하고 无聲의 聲이라야 能히 天地를 撼盪하며 神人은 无功하고 至德은 无名하니 오직 无功의 功이라야 能히 宇宙를 宰正하고 无名의 名이라야 能히 萬化를 調理하나니, 생각건대 甑山先生서 三元에 大巡하사 모든 先天의 謬機를 革除하시고 宇宙를 砧杵하사 後天의 度數를 裁正하시고 神明公事를 行하사 萬古의 冤을 解하시고 埋火袪克하사 相生의 道를 闡明 하사 써 造化仙境의 元基를 奠定하시되, 天下는 知치 못하고 覺치 못하니 非他라. 三元 大巡의 光은 곳 无光의 光이오, 宇宙砧杵의 聲은 곳 无聲의 聲임으로 天下의 視聽에 逸한 所以이며 萬古解寃의 功은 곳 无功의 功이오, 相生大道의 名은 곳 无名의 名임으로 天下의 言思에 絶한 所以이니 視聽에 逸하고 言思에 絶하엿슴이 오직 先生의 神聖하신 功化의 象徵이 라. 이에 視廳의 逸한 곳에서 萬一의 視聽을 求하며 言思의 絶한 곳에서 萬一의 言思를 求하야 써 一心大衆의 歸依方向을 啓導하며 造化仙境의 工作指針을 提供하려 함이 大巡典經을 作한 所以로라.


嗚呼라 典經의 作을 엇지 容易히 云謂하리오. 蕩蕩莫名의 大巡醫世의 理想을 오직 視聽言思의 圈外에서 淺見薄識으로 그 眞諦妙義를 暢明하기에 庶幾를 말하기 어려우며 한 數十載의 下에서 數十載의 前을 講明하기가 더욱 어려울지라. 그러나 性命을 攻함에 毫末의 耿芒을 捕捉하면 大光明이 라 열니며 科學을 治함에 基本의 理法을 透得하면 全問題가 라 풀니나니 三元衆理와 隱顯萬象이 모다 整然한 秩序의 體系를 나지 못하는 닭이라. 이에 先生의 巡遊하시든 地帶를 踏査하고 親灸從徒를 歷訪하며  先生의 在世時에 知面을 有한 樵叟漁老를 追扣하야 모든 法言聖蹟을 蒐輯하기에 全力을 集主한바 六年의 功을 積한 然後에 今日에 至하야 비로소 成編을 보게 되엿노니 九年公事와 一代垂訓에 對하야는 實로 恒河一沙에 不過하야 써 大巡醫世의 理想의 周延內包를 膾列無漏함에는 至치 못하엿스나 此로써 无光에서 耿芒을 捕捉하며 无聲에서 微振을 譜符하며 无功에서 化跡을 追求하며 无名에서 隱諦를 發摘하는 대는 足히 그 基準標 點을 作할 수 잇슬것을 確信하는 바이로라. 十三分章에 簡詳이 不一하니 異蹟과 治病은 蒐輯된 材料가 極多하나明確한 意義를 缺한 것은 此를 省略하엿스며 天地公事는 그 材料를 充分히 蒐集할 길이 업슬  아니라 임의 蒐輯된 者 中에도 그 意義의 明瞭를 缺한 者가 不少함은 遺憾을 不勝하는 바이라. 그러나 十三分章이 서로 脈絡이 關聯하엿스니 引相對照하야 潛心推究하면 旨意의 梗槪를 探索하기가 不難할 줄 밋노라.


己巳(1929)年 三月 旣望(陰16日)에 后學 李 祥昊는 謹序하노라



찬(贊)

先天百代는 天道偏重時代라. 空相의 幻夢으로 虛靈來世의 追求 괴롭더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니며 天地大道 밝엇서라. 現實을 肯定하사 靈肉으로 竝進하시니 現實福祿 無量하리로다. 先天百代는 地運否塞時代라, 界域의 晝限으로 都鄙種族의 差別孔劇터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 運이 열니며 大地긔운 돌앗서라. 山河의 鍾靈을 拔薈하사 統一하시니 四海一家同樂 하리로다. 先天百代는 衆理錯綜時代라, 謬理의 濫張으로 人類理性의 眩惑 極甚터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니며 歸一眞法 나왓서라. 萬古律液 統收하사 集衆宗以大成하시니 人世文運 光明하리로다. 先天百代는 病劫滔蕩時代라, 衰弱의 遺傳으로 社會膏?의 病源 깁헛더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니며 萬國醫院 열녓서라. 醫統을 傳授하사 世界를 醫治하시니 不老不死 康寧하리로다. 先天百代는 寃滿 乾坤時代라. 척神의 橫行으로 人世福祿의 不均滋甚터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니며 解寃日月 밝엇서라. 逆神을 調和하사 世界를 準理하시니 社會正面平成하리로다. 先天百代는 相剋司配時代라. 厲氣의 衝激으로 鬪爭殺伐의 災殃慘酷터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니며 相生惠澤 흘넛서라. 火塊를 埋藏하사 劍戟을 收束하시니 平和烟月悠久하리로다. 大公事를 맛치신 後 大神門을 다드시고 天地에 質正하사 宇宙化機 굿게 定하시니 度數도라 닷는 대로 새긔틀이 열닐지라. 于是乎天地가 大成功하야 禎祥이 무르녹는 造化仙境 열니리로다. 大公事를 맛치신 後 南朝鮮 배 돗을 달고 血食君子 배질 식혀 苦海에 둥덩실 우시니 泛彼中流 저압길에 風波도 업슬지라. 于是乎一心大衆 실어다가 幸福이 무르눅는 造化仙境 다이리로다. 大公事를 맛치신 後 人文公庭 열으시고 化民靖世를 命하사 神明식혀 工作監視하니 天地祿士 모아들어 不日成之 쉬울지라. 于時乎赤衷一心勤勉으로 萬福吉祥 무르녹는 造化仙境 세우리로다.


우리 先生은 大巡의 神이시니 新生命의 光이시며 造化仙境의 長이시라. 往古佛聖渴仰理想의 表極이며 億兆願戴의 主이시니 日月로 同居하사 弘大無邊하신 化權神力으로 新社會를 宰成하옵소서. 天下之大金山下에 龍華道 場 넓은 基址 莊嚴한 法榻을 奠設할 적에 모통이 모통이 仙藥이오. 봉오리 봉오리 송이라. 陽春三月 好時節에 열석자의 구든 期約 花園둘너 入城속에 榮光의 仙顔 빗초이사 衆生의 渴仰 풀어 주옵소서. 己巳 三月 旣望에 大巡典經 成編되야 莊嚴한 儀式으로 發行致誠 嚴肅하다. 且生於數千載之下 而欲講明於數 千載之前 亦己難矣한 소리로 弟子謹簒하고 보니 大神門의 秘鑰이오, 天地公事의 終件이라. 우리先生의 大巡理想 오직 典經 너이니 新生命의 糧食되며 造化仙境의 指針되여 日月同居 先生 모서 爾壽無量할지어다.

己巳(1929)年 三月 旣望(陰16日) 后學 李 正立 謹贊


補註 

第五章 十節:

先生서 金 俊相에게 四聖飮을 주신 지가 임의 二十年이 지냇스나 藥貼을 내여서 藥材를 상고한즉 藥材가 如新하야 腐敗치 아니하고 좀도 일지 아니 하엿더라.


第六章

天地公事라 하면 누구나 다 처음 듯는 말임으로 그 意義를 曉得키 어려울 지라. 例컨데 어느 公會에서 會長이 會員을 召集하야 會議를 열어 모든 意見을 徵取하야 最善의 方針을 決定함과 갓치 先生서 三界를 主宰하사 天地 大神門을 열고 萬古神明을 召集하사 先天 旣往의 모든 非法을 改廢하고 가장 合理的으로 天道와 地義와 人事에 徵取하야 萬世 不替의 眞法을 規定하신 後 天地神明으로 하여금 如律令 攝成케 하신 것이니 곳 大宇宙를 先生의 大理想 속에 料理하심이라. 랴서 先生의 深遠한 抱負와 偉大한 價値를 오직 여긔서 찻게 될 이오. 其外 法言 聖行은 오직 그 斷片的 現露일 이니 그럼으로 天地公事의 妙義를 理解치 못하면 한 先生의 宏謨遠猷를 엿볼 수 업슬지니라.


그런대 九年間을 쉬임업시 가진 苦難을 격그면서 여러가지로 行하신 公事를 從徒들이 만히 參觀하엿스나 모든 것이 超人間的인 神秘에 屬한 것임으로 보는 者가 그 條理를 曉得치 못하며 先生서도 大蓋 그 行하시는 것을 남에게 알니려 하지 아니하시고 매양 隱秘에 붓치심으로 모다 泛然 히 看過하엿스며  그 行하시는 바가 一一이 天地에 應驗하야 奇現象이 낫허나는 것을 한갓 好奇心으로 구경에 貪하야 보앗슬 름이오. 意味잇게 본 사람은 업섯나니 그럼으로 若干事實을 傳하여 온 것도 그 詳細를 일헛스며 公事를 行하실 에 매양 度數를 定한다는 말삼을 慣用하셧는대 그 意味는 엇더한 狀態를 어느 時期에 이르러 豫定대로 現實케 하는 것 卽 이時代를 어느 에 엇더한 狀態로 變動하야 推移케 한다는 것이라.


그러나 그 內容은 漠然히 不知하고 다만 所觀의 奇驗만 傳한 것도 만흐며  從徒중에 漢字에 能하야 흔히 文明을 바더 쓴 者는 金 光贊인대 그도 隨時로 쓰여서 燒火하실 름이오. 別로히 抄記치 못하게 하섯슴으로 이 졔 傳하여온 片言隻行은 頭緖업시 記憶된 者라. 距今 十餘年前에 光贊이 身死하엿슴으로 그나마 詳細히 들을 곳이 업고 처음부터 지 追從한 者는 金 亨烈인대 公事를 行하실 에는 흔이 各地에 巡回하사 그 隨從을 만히 替番하섯슴으로 한사람으로서 公事件數의 終始를 參觀치 못하엿나니 그럼으로 大略 듯는대로 記錄한 것이 실상 恒河一沙에 不過하노니 讀者는 깁히 參商할지어다.


第六章 二十六節

古阜禍亂에 拘囚되엿든 二十人中에 金 亨烈, 金 自賢, 二人 外에는 모다 흣허저 다시는 先生을 르지 아니하니라.


第六章 三十四節,三十五節

先生이 化天하신 後 三年 辛亥 九月二十一日에 車 京石이 藥藏과 机와 모든 備品을 옴겨가고 藥局壁上에 발은 조회지 여간 後에 비로소 布敎 運이 열니기 始作하니라. 그 藥藏을 옴길 에 金 亨烈의 이 身死함으로 京石이 金二十圓을 支拂하야 安葬케하고 모든 器具는 致誠室에 奉安하니라.  그 後로 金山寺 大藏殿과 釋迦佛像이 다른 곳으로 옴기게 되엿스니 先生의 말삼이 一一히 應驗되니라.


第九章 四節, 五節

金 亨烈이 가로대 先生서 公事를 行하실새 丹朱를 紫微垣에 붓치사 七星을 主宰하야 써 一切星宿을 管掌하며 人間의 壽命福祿을 司理케 하섯스니 그럼으로 藥藏에 丹朱壽命과 七星經을 쓰셧다하고 一般門人의 說을 據하건대 丹朱로써 世運을 管掌케하사 現世大局이 그의 碁法에 應하야 機軸을 展開케 하셧스니 回文山을 父山으로 하야 五仙圍碁를 應氣케 하심이 此로 因함이니 大盖 碁法이 丹朱로부터 始作한 닭이라 하니 이졔 諸說 을 綜合하고 先生의 遺物과 法言과 文明을 考察컨데 藥藏에 丹朱壽命과 七星經을 쓰셧고 法言에 丹朱를 解寃한다 하셧스며 中天神山으로 하여금 福祿을 맛허서 均分케한다 하셧스며 山河大運을 돌니실 새 回文山을 父山 으로 하야 그 五仙圍碁를 應氣케 하시고 大運이 碁와 如히 展開되리라 하셧스니 讀者는 天地公事에 丹朱解寃이 큰 意義가 잇슴을 생각할지어다.


第十章 一節

病勢文은 周紙에 써서 물담은 白甁口를 막어서 車 京石의 집에 두신 것인대 化天하신 뒤에 發見되엿스나 그 後로 原紙는 업서지고 다만 口口相傳 된 것이니 次序가 만히 違錯된 듯하며 그 以外 散文도 分明한 記錄이 업 슴으로 듯는대로 記錄하니 誤落이 업지 못할 줄로 思하노라.



大巡典經 目錄


第1章 先生의 誕降과 幼年時代

第2章 先生의 遊歷

第3章 先生의 成道와 奇行異蹟

第4章 門徒의 從遊와 訓誨

第5章 治病

第6章 天地公事

第7章 傳敎

第8章 法言

第9章 開闢과 仙境

第10章 文明

第11章 引古文明

第12章 化天

第13章 先生의 異表



大巡典經 


第 1 章 先生의 誕降과 幼年時代


1. 先生의 姓은 姜이오 名은 一淳이오, 甑山은 그 號이시니 距今 五十 八年前 李朝 高宗 辛未 九月十九日에 朝鮮 全羅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今 井邑郡 德川面 新月里)에서 誕降하시니라.


2. 父의 名은 興周오 母는 權氏니 權氏가 古阜郡 馬項面 西山里 그의 親家에 覲省하엿다가 하로는 하눌이 南北으로 갈나지며 큰 불덩이 가 나려와 몸을 덥흠에 天下가 光明하여진 을 고 일로부터 有身하엿더니 그 誕降하실 에 産室에 異香이 가득하며 밝은 빗이 집을 둘너 하눌에 쳣더라.


3. 漸次 자라심에 相貌가 圓滿하시고 率性이 寬厚하시며 聰明과 慧識 이 超衆하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敬愛를 바드시니라.


4. 幼時로부터 好生의 德이 富하사 種樹하기를 즐기시며 자라나는 草 木을 折치 아니 하시고 微細한 昆蟲이라도 害치 아니하시며 或 危 機에 瀕한 生物을 보시면 힘써 救援하시니라.


5. 書塾에 드러 漢學을 배우실 새 한 번 들은 것은 곳 다르시고 동 무들로 더부러 글을 지으심에 恒常 壯元을 하시니라. 하로는 스승 이 여러 學父兄에게 뮈움을 바들가하여 文章이 次號되는 他兒에게 壯元을 주려고 內意를 定하고 考試하엿더니  先生에게로 壯元이 도라가니 이는 先生이 스승의 內意를 미리 아르시고 文體와 字樣을 變하야 辨別치 못하게 하신 닭이라. 모든 일에 이러케 慧明하심 으로 보는 者가 다 驚異하니라.


6. 家勢가 貧乏함으로 學業은 일직 廢하시니라.



제 2 장 선생의 유력(第二章. 先生의 遊歷)


1. 二十四歲 되시든 甲午에 古阜人 全 琫準이 當時의 惡政을 憤慨하야 東學信徒를 모아 革命을 이르키니 一世가 洶動한지라. 先生이 그 前途가 不利할 줄 아르시고 "月黑雁飛高 單于夜遁逃 欲將輕騎逐 大雪滿弓刀"의 古詩를 여러사람에게 외워주사 冬期에 이르러 敗滅될 을 諷示하시며 妄動치 말라고 曉諭하섯더니 이해 겨을에 果然 東 學軍이 官軍에게 剿滅되고 先生의 曉諭에 조친 者는 다 禍를 免하 니라.


2. 이後로 國政은 더욱 腐敗하고 世俗은 날로 惡化하야 官憲은 오직 貪贓殘虐을 일삼으며 儒者는 虛禮만 崇尙하고 佛徒는 誣惑만 힘쓰 며 東學은 刦難을 經한 後로 萎靡를 極하야 거의 形跡을 거두게 되 고 西敎(基督 新,舊敎)는 勢力을 伸張하기에 盡力하니 民衆은 苦窮 에 져 安堵의 길을 엇지 못하고 四圍의 眩惑에 싸히여 歸依할 바 를 아지 못하야 危惧와 不安이 全社會에 襲來하거늘 先生이 慨然히 匡救의 을 품으사 儒佛仙 陰陽讖緯의 書籍을 通讀하시고 다시 世態 人情을 體驗하시기 爲하야 丁酉로부터 遊歷의 길을 나시니 라.


3. 忠淸道 連山에 이르사 易學者 金 一夫에게 들니시니 이에 一夫의 에 하눌로부터 天使가 나려와서 姜士玉과 함 玉京에 올나오라 는 上帝의 命을 傳하거늘 一夫丨 先生과 함 天使를 라서 玉京 에 올나가 曜雲殿이라 題額한 壯麗한 金闕에 드러가 上帝 謁見하 니 上帝丨 先生에게 對하야 匡救天下하려는 을 賞讚하며 極히 優遇하는지라. 一夫 丨 크게 異常히 녁여 이 을 말한 後에 曜雲이 라는 道號를 先生 드리고 甚히 敬待하니라.


4. 이 길로 京畿, 黃海, 江原, 平安, 咸鏡, 慶尙各地를 轉轉遊歷하시니 先生의 慧識은 博學과 廣覽을 라 더욱 明澈하여지심으로 이르는 곳마다 神人이라는 稱頌이 놉흐니라.


5. 이러케 數年동안을 遊歷하시다가 庚子에 故鄕으로 도라오시더니 이 에 全州 伊東面 田龍里 李 治安이 求婚次로 忠淸道를 向하다가 旅舍에서 先生을 만나 一夜를 同宿하고 翌日 臨發에 先生이 治安다 려 일너 가라사대 그대가 이제 求婚次로 길을 낫스나 반다시 虛 行이 될 것이니 이 길을 가지 말고 다시 집으로 도라가라. 그러면 前日부터 議婚하여 오든 곳에서 君家에 媒介를 보내여 完約을 求하 리라. 만일 이 機會를 일흐면 婚路가 열니기 어려우리니 니 도라 가라 하지거늘 治安이 先生서 自己의 事情을 알고 말삼하심을 神 奇히 녁여 비로소 姓名을 通하고 先生의 住所를 자세히 무른 後에 곳 그 길을 가지 안코 집으로 도라오니 果然 말삼하신 바와 갓흐니 라.


6. 이 後로 治安이 先生의 神異하심을 欽慕하야 自家로 延聘 하엿더니 마참 里中人口를 緊急히 調査할 일이 잇서 治安의子 直夫가 甚히 苦心하는지라. 先生이 籌를 取하야 運算하신 後에 戶數와 男女 人 口數를 자세히 일너주시고 三日內에 一口가 損할 것을 말삼하시거 늘 直夫는 밋지 안니하고 드대여 里中을 도라 一一히 精査한즉 果 然 一戶 一口의 差錯이 업고 한 三日內에 一口가 死亡하는지라. 이에 直夫가 비로소 驚異하야 그 神異하심을 感服하니라



제 3 장. 선생의 성도와 기행이적


1. 先生이 多年間 客地에 遊歷하사 만흔 經驗을 어드신 後에 辛丑에 이르사 비로소 모든 일을 自由自在로 하실 權能을 엇지 안코는  을 일우지 못할 줄을 다르시고 드대여 全州 母岳山 大願寺에 드 러가 道를 닥그사 七月 大雨 五龍噓風에 天地大道를 다르시고 四 種魔를 降하시니 이에 同寺 主持 朴 錦谷이 모든 便宜를 도앗더 라.


2. 壬寅 四月에 先生이 金溝郡(今金堤郡) 水流面 院坪場에 지나시다가 全州郡 雨林面 夏雲洞 金 亨烈을 만나시니 大抵 亨烈은 前者부터 先生 知面이 잇셧는대 先生의 成道하신 所聞을 듯고 뵈압기를 願하든 次임으로 喜不自勝하야 自家에 顧臨하시기를 懇請하엿더니 同月 十三日에 亨烈의 집에 이르사 곳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君 家에 産氣가 잇스니 니 內室에 드러가 잘 도우라 하시거늘 亨烈 이 內庭에 드러가니 果然 그 妻가 第三子를 分娩하엿더라.


3. 亨烈의 妻가 自來로 産後에는 반다시 腹痛이 發하야 累月을 苦痛하는 例症이 잇서서  復發함으로 亨烈이 크게 근심하거늘 先生이 慰勞 하야 가라사대 今後로는 모든 일에 나를 信賴하고 근심을 노으라 하시거늘 亨烈이 命하신 대로 다만 天師만 밋고 근심을 노핫더니 果然 그 妻의 腹痛이 곳 그치고 그밧게 喘氣와 咳嗽 等 別症도 다 나으니라.


4. 先生이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졔 末世를 當하야 압흐로 無極大 運이 열니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야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 니하야 純潔한 마음으로, 天地公庭에 參與하라. 나는 三界大權을 主 宰하야 造化로써 天地를 開闢하야 不老不死의 仙境을 열어 苦海에 浸淪한 衆生을 건지리라 하시고 일로부터 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天 地公事를 行하실새 亨烈에게 神眼을 열어주사 神明의 會散과 聽令 을 參觀케 하시니라.


5. 여름을 지내실 새 亨烈의 집이 貧寒하야 供餽가 粗略하고  圃園 이 瘠薄하여 蔬菜가 잘 자라지 안니함으로 亨烈이 근심하거늘 先生 이 일너 가라사대 山中에는 別味가 업나니 蔬寀나 잘 蕃殖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일로부터 약간 심어 두엇든 악마듸 蔬寀가 人工을 加하지 아니하여도 졔절로 잘 蕃殖하야 採之不竭하니라.


6. 六月 어느 날 亨烈을 命하사 耶蘇敎書 一冊을 求하여 오라 하시거 늘 亨烈이 隣里 梧桐亭 金 京安에게서 新約全書 一冊을 비러다 올 니니 先生이 바더서 불살으시니라. 그 後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고 梧桐亭 車 允必의 집에 가니 京安이 와서 비러간 冊을 돌녀주기를 請함에 亨烈이 對答치 못하거늘 先生이 가름하야 對答하사대 곳 돌 녀주리라 하시더니 마참 한 筆商이 지나거늘 先生이 불너들이사 술 을 만히 주신 後에 그 筆箱을 열어 뵈이기를 請하신 대 筆箱이 곳 열어 뵈이니 新約全書 一冊이 잇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그대는 반다시 耶蘇를 밋지 아니하니 이 冊은 無用이라. 나에게 傳함이 엇 더하뇨. 筆商이 許諾하거늘 先生이 그 冊을 바더서 京安에게 주시 니라.


7. 그 後에 佛書 千手經과 漢字玉篇과 史要와 海東名臣錄과 康節觀梅 法과 大學等 書를 불살으시니라.


8. 九月에 農家에서 麥耕으로 奔忙하거늘 先生이 喟然히 가라사대 이 럿케 辛苦하야 收穫을 엇지 못하리니 엇지 可惜지 아니하리오 하 시거늘 亨烈이, 이 말삼을 듯고 드대여 麥農을 廢하엿더니 癸卯春에 이르러 天候가 順調하야 豊登의 兆가 잇는지라. 金 甫京 等 모든 從徒들과 이웃사람들이 모다 亨烈을 嘲笑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 일은 神明公事에서 決定된 것이니 아즉 結實期에 이르지 못하 야 엇지 豊作을 預斷하리오 하시더니 果然 五月五日 大雨로 因하 야 麥穗가 다 말나서 收穫이 全無하게되고 米價가 高騰하야 一斗에 値 七兩(今金貨一圓四十錢)이 되니 일로부터 모든 사람이 先生 信服하니라.


9. 한 사람이 무러 가로대 今年에는 엇든 穀種을 심음이 조흐릿가. 先生이 가라사대 日本人이 祿을 고 왓나니 日本種을 取하여 심 으라.  生計의 모든 일을 그들에게 順從하라. 祿줄이 라 들리 라. 하시니라.


10. 冬月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더니 마참 大雪이 나리거늘 亨烈이 엿주 어 가로대 傳說에 宋 尤菴의 居住하는 집웅에는 눈이 싸이지 못하 고 녹는다하니 진실로 天地의 至靈之氣를 타고난 사람이로소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진실로 그러하랴. 이졔 나 잇는 곳을 삷혀보라. 亨烈이 밧게 나가보니 날이 차고 눈이 만히 나려 싸이되 오직 그 집웅에는 一點雪도 업고 맑은 긔운이 하눌에 치어 구름이 가리우 지 못하고 碧空이 通하여 보이더라. 일로부터 亨烈이 恒常 留意하 야 삷히니 언졔든지 그 머무시는 곳에는 반다시 맑은 긔운이 碧空 을 通하야 구름이 가리우지 못하고 비록 큰 비가 오는 에도 그러 하더라.


11. 매양 出他하실 에는 神明에게 治道令을 써서 불살으사 여름이면 바람을 불녀 길에 이슬을 러트리시고 겨을이면 진 길을 얼어 굿 게 하신 後에 말은 신으로 다니시니라.


12. 夏雲洞은 山中임으로 길이 甚히 좁고 樹木이 길에 욱어저 얽히여서 이슬이 만흘 아니라 潦霖이 질 에는 길에 물이 흘너 溪流를 일 우되 先生의 신발은 恒常 乾淨함으로 附近 村民들이 모다 神異히 역이더라.


13.  出他하실 에는 반다시 洞口의 左右側에 雲柱가 놉히 치어 八字形을 일움으로 從徒들이 그 理由를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將門이라 하시니라.


14. 癸卯 七月에 米價가 奔騰하고 農作物에 蟲災가 甚하야 人心이 極히 不安하거늘 先生이 여러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辛丑 以後로는 年事를 내가 맛헛스니 今年의 農作을 豊登케 하야 民祿을 넉넉케 하리라. 하시고 크게 雷電을 이르키시니 일로부터 蟲災가 것치고 作物이 大登하니라.


15. 先生의 親弟 永學이 恒常 道術을 通하기를 熱望하여 先生 發願하 더니 하로는 先生이 한 부채에 鶴을 그려서 永學을 주시며 가라사 대 집에 도라가서 이 부채를 부치면서 七星經을 武曲破軍지 닑 고 니어서 大學을 닑으라. 그러면 道術을 通하리라. 永學이 부채 를 가지고 집으로 도라가다가 鄭 南基(先生의 妻男)의 집에 들니니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의 美麗함을 貪내여 앗고 주지 아니하거늘 永學이 不得已하야 그 事由를 말하고 돌녀주기를 懇求하니 南基의 아들은 더욱 貪내여 주지 아니 함으로 할 일업시 앗기고 도라 가 니라.


16. 그 後에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를 부치면서 大學을 닑음에 문듯 神 力을 通하야 能히 神明을 부리며 물을 려 비를 베푸는지라. 南基 가 깃버하야 그 아들을 敎唆하야 先生의 道力을 앗으라함으로 그 아들이 父 南基로 더부러 夏雲洞에 이르니 先生이 그 일을 알으시 고 南基의 無義함을 지즈사 그 아들의 神力을 다 거두신 後에 돌 녀보내시니라.


17. 甲辰 正月에 白 南信이 官厄에 걸니어 깁히 隱居하야 所措를 莫知 하고 金 秉旭을 통하야 先生 解難하여 주시기를 懇乞하거늘 先生 이 가라사대 富貴한 者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十萬兩(今金二萬 圓)의 證書를 가져오라. 南信이 곳 十萬兩의 證書를 올녓더니 그 後로 南信의 禍厄이 곳 풀니는지라. 先生이 그 證書를 불살으시니 라.


18. 十五日에 先生이 술을 마스시고 혼몽히 주므실 새 張 興海의 幼兒 가 急病이 發하야 瀕死함으로 興海의 父 孝淳이 急히 와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누어 일지 아니하시고 혼몽中에 冷水나 먹이라 말 삼하섯더니 孝淳이 病兒에게 冷水를 먹임에 곳 死亡하는지라. 孝淳 은 本來 性質이 慓悍하야 府中人이 天動이라고 號하는 터인대 病兒 의 死亡함을 보고 大怒하야 先生을 원망하야 가로대 이는 故意로 藥을 그릇 일러 죽임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일으키며 말 한마대로 危殆한 病을 곳침은 내가 實見한 바이니 만일 故意가 아 니면 물은 姑捨하고 흙을 먹엿슬지라도 그 神異한 道術로 能히 낫 게 하엿슬것이라하고 드대여 棍棒을 가지고 와서 先生을 亂打하야 流血이 淋漓케한지라. 先生이 비로소 어 이러나시니 孝淳이 先生 을 結縛하야 長房廳으로 갓다가 문득 뉘우친듯이 느며 가로대 이 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幼兒가 急病으로 죽엇거늘 엇지 先生을 원 망하리오하고 前交를 回復하기를 請하며 自家로 同行하기를 求하거 늘 先生이 듯지 아니하시고 徐 元圭의 집으로 가서 留하시고 翌日 에 李 直夫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孝淳이 先生을 容恕하야 長房 廳으로부터 도라가시게 한 것은 白南信에게 바든 돈 二十萬兩의 證 書가 잇슴을 알고 돈을 要求하려 함이러라.


19. 翌日에 孝淳이 元圭의 집에 가서 先生의 안 계심을 보고 大怒하야 殺人犯으로 逃避하엿다하고 四方으로 搜索하더라. 그에 先生의 省率은 全州郡 亂田面 花亭里 李 京五家 狹室에 移居하엿는대 孝淳 의 家族이 花亭里에 와서 行悖하니라. 金 亨烈은 孝淳의 일을 알지 못하고 先生의 消息을 드르려고 花亭里에 오니 孝淳의 家人이 亨烈 을 結縛하야 元圭의 집으로 가서 先生의 行方을 뭇되 가르키지 아 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憤怒하야 亨烈과 元圭를 無數히 毆打하니라. 일로 因하야 先生의 省率은 泰仁 屈峙로 避禍하고 亨烈은 元圭의 집에서 乘夜逃避하고 元圭는 그들의 連日行悖에 견대지 못하야 藥 局을 廢鎖하고 家眷을 거느리고 益山으로 避禍하니라.


20. 이에 先生이 李 直夫의 집에 머무르시니 直夫의 父 治安이 當年 의 命壽를 뭇거늘 先生이 白紙一枚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고 다시 글을 써서 緊封하야 주시며 가라사대 急한 일이 잇거든 열어보라 하신지라. 治安이 깁히 갈머두엇더니 그 後에 그 子婦가 難産으로 危境에 이르럿슴을 듯고 그 일을 가르치심인가하야 그 封書를 가지 고 간즉 임의 順産하엿거늘 다시 갈머두엇더니 歲末에 이르러 治安 이 病들어 危篤한지라. 直夫가 封書를 여보니 小柴胡湯二貼이라 씨엿거늘 그 藥을 써서 곳 快復되니라.


21. 二月에 屈峙에 계실 새 永學다려 大學을 닑으라 하섯더니 永學이 듯지 아니하고 術書에 沈味하거늘 先生이 喟然히 歎息하야 가라사 대 멀지 아니하야 永學을 訣別하리라 하시고 李 道三을 命하사 "골 폭사장전유초(骨暴沙場纏有草) 혼반고국조무친(魂返故國弔無親)" 이란 一句詩를 永學에게 傳하사 써 戒惧 省悟케 하시되 永學이 종시 省 悟치 아니하니라.


22. 그 後에 永學이 病들어 죽게 되거늘 先生이 드르시고 金 甲七을 다 리고 집으로 가실 새 中途에 한 酒店에 드시니 한 사람이 허리가 굽어서 업듸여 기여 다니거늘 先生이 그 허리를 펴지 못한 理由를 무르시니 그 사람이 對하되 十餘年前부터 곱사가 되여서 고치지 못 하엿나이다 하거늘 先生이 손으로 그 허리를 주물너 펴주시며 가라 사대 謝金 五十兩(今三圓)을 가저오라하시니 그 사람이 瞬間에 허 리를 편 後에 짓버 놀며 가로대 先生은 實로 再生之恩이 잇사오 니 그 恩惠를 報答할진대 山岳이 오히려 가뱌우나 只今 몸에 所持 金이 업사오니 무엇으로 酬答하오릿가. 先生이 가라사대 物品도 可 하니라. 그 사람이 對하되 내가 棺材장사를 하오니 棺材로 드림이 엇더하니잇가. 棺材한 벌 價額이 十五兩 이니이다. 先生이 가라사 대 그도 조흐니 잘 가려두라 하시고 집에 도라가시니 永學이 임의 죽엇거늘 그 棺材를 가져다가 治葬하시니라.


23. 十五日 金 甲七을 다리시고 扶安, 古阜等地를 巡遊하실 새 昏夜에 古阜 黑巖酒店을 지나시니 이에 火賊이 熾盛하야 白晝에 橫行함 으로 巡檢 一人이 微服으로 夜巡하기 위하야 이 酒店에 드럿거늘 先生이 酒婦에게 일너 가라사대 져 사람에게 酒食을 주지 말라. 만 일 酒食을 주엇다가 갑을 밧지 못하면 不贍한 營業에 損害가 아니 냐 하시니 巡檢이 그 말삼에 憤怒하야 先生을 毆打하며 無禮한 말 을 한다고 짓거늘 先生이 우서 가라사대 다 죽은 屍體에게 마져 서 무엇이 압흐랴하시고 밧그로 나가시니 酒婦가 巡檢다려 일으되 져 사람의 말이 異常하니 반다시 무슨 닭이 잇슬지라. 나가서 謝 過하고 그 緣由를 무러보라 하거늘 巡檢이 올히 녁여 곳 先生의 뒤 를 르며 謝過한 後에 緣由를 무르니 先生이 가라사대 今夜에는 事務를 廢하고 다른 곳으로 몸을 避하라 하시거늘 巡檢이 命하신 대로 卽時 몸을 避하엿더니 이윽고 夜深하야 火賊이 몰녀와서 酒婦 를 毆打하며 巡檢의 去處를 무르니 이는 여러 火賊이 巡檢을 죽이 랴고 預約한 일이 잇슴이라. 翌日에 巡檢이 先生의 留하시는 곳을 차져와서 再生의 恩을 感謝하니라.


24. 五月에 先生이 屈峙에 계실 새 甲七이 銅谷으로부터와 뵈이거늘 先 生이 무러 가라사대 너의 地方에 農況이 엇더하뇨. 甲七이 對하야 가로되 旱災가 甚하야 移秧을 못함으로 民心이 騷然하니이다. 先生 이 가라사대 네가 비를 빌러 왓도다. 네게 雨師를 붓치노니 곳 도 라가되 길에서 비를 맛날지라도 回避치 말라. 그것은 네가 天地公 事를 몸에  緣故니라. 甲七이 領命하고 도라갈 새 얼마 아니 가 서 비가 始作하야 頃刻間에 河川이 漲溢하는지라. 일로부터 水量이 充足하야 數日間에 移秧을 맛치니라.


25. 六月에 亨烈을 다리고 泰仁 新培를 지나실 새 그 里中에 엇든 집이 失火하야 모진 바람에 火勢가 猛熱하거늘 先生이 민망히 녁여 가라 사대 져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全洞이 焦土될 것이니 맛불을 노아 求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섭으로써 불을 피우시니 瞬息 間에 바람이 자고 불이 지니라.


26. 八月 二十七日에 益山 萬中里 黃 士成의 집에 이르시니 마참 엇든 사람이 怒氣를 고 잇거늘 다시 同里 鄭 春心의 집으로 옴기시니 라. 元來 士成의 父 叔京이 全州 龍進面 龍巖里 黃 參奉에게 債務 가 잇섯더니 黃 參奉이 죽은 後에 그 아들이 專人하야 債金을 督促 하며 만일 갑지 아니하면 警務廳에 告訴하야 獄中에다 썩히면서 밧 겟다고 威脅하는지라. 이날 밤에 士成父子가 春心의 집에 와서 先生 뵈입고 이 事實을 告하며 無事하도록 너 주시기를 懇乞하거 늘 先生이 叔京에게 命하사 白木 一疋을 사오라 하사 衣服을 지어 닙으신 後에 叔京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後로는 근심을 풀라. 일이 順調로 풀니리라. 白木一疋은 곳 債權債務間에 길을 닥는 것이니라 하시더니 그 後에 巡檢이 와서 叔京을 잡어가려 하거늘 叔京이 巡 檢으로 더부러 債主의 집에 가서 償還을 延期하기로 하고 和解를 請하되 債主가 듯지안코 固執하거늘 그 母가 아들을 불너 지저 가로대 저 어런은 네 父親의 친구인대 이졔 獄에 가두려하니 이는 禽獸의 行爲를 하려함이라하고 곳 그 證書를 아서 불살어버리니 債主가 할 일 없서 叔京에게 謝過한 後에 드대여 告訴를 取下하고 債金을 免除하여 버리니라.


27. 九月十日에 咸悅 會仙洞 金 甫京집에 가시니 甫京이 엿주어 가로대 이 附近에는 近日에 盜賊이 出沒하야 밤마다 村落을 刦掠하는대 내 집이 비록 饒足치는 못하나 外間에서는 富豪라 稱함으로 實로 危惧 하와 마음을 놋치 못하오니 請컨대 盜難을 免케 하여지이다 하거늘 先生이 우스시며 그 문 압헤 춤을 밧흐시고 일너 가라사대 今後로 는 마음을 노으라. 盜賊이 졔절로 멀니 가리라 하시더니 果然 그 後로는 盜賊의 자최 업서지니라.


28. 十一月에 全州府에 이르시니 마참 民擾가 이러나서 人心이 洶洶하 거늘 甫京다려 일너 가라사대 金 秉旭이 國家의 重鎭에 處하엿스니 人民의 動搖를 잘 鎭撫하야 써 그 職責을 다하여야 할지라. 그 方 略을 엇더케 定하엿는지 秉旭에게 무러오라. 甫京이 秉旭을 차저 命하신 바를 傳하니 秉旭이 先生 와 뵈입고 가로대 나의 無能으 로는 물틋하는 民擾를 鎭壓할 수 업사오니 오직 先生의 神威만 밋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내가 가름하야 鎭壓하리라 하시고 그날 밤부터 雨雪을 크게 나리시며 天氣를 酷寒케 하시니 防寒의 設備가 업시 露營에 모혓든 群衆은 할 일 업시 解散하야 집으로 도라가고 雨雪은 三日을 繼續함으로 群衆은 다시 모이지 못하고 騷亂은 스 사로 平定되니라.


29. 十二月에 院坪에 계실 새 그에 御使 朴 齊斌이 全北 七邑郡守를 罷免하고 將次 全州에 出道하려함에 郡守 權 直相의 地位도 危殆하 게 된지라. 金 秉旭은 當時 全州 陸軍將校로서 權 直相과 友誼關係 가 잇슬 아니라 한 唇齒의 關係가 잇슴으로 그 일을 근심하야 先生 그 對策을 뭇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無事하도록  르리니 근심치 말라 하시더니 그 後에 朴 御使가 權 直相을 罷免하 려고 全州府에 드러오자 마참 朴御使 免官秘訓이 全州府에 到着 하니라.


30. 乙巳 正月 晦日에 先生이 亨烈로 더부러 扶安 成根里 李 桓九의 집 에 가사 여러날 머무르실 새 桓九가 扶安邑人 辛 元一을 자조 薦擧 하거늘 先生이 元一을 부르시니 元一이 와뵈입고 先生을 自己집으 로 모서다가 供養하니 元一의 父와 弟가 先生을 밋지 아니하고 오 래 머무르심을 슬혀 하는지라. 元一이 請하야 가로대 家親이 本來 漁業을 즐겨하야 해마다 營業하다가 去年에 暴風으로 因하야 큰 損 害를 보앗스니 請컨대 今年에 風災를 업게 하사 漁業을 興旺케 하 여주시면 家親을 爲하야 多幸하겟나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어렵지 안니하니 多益을 어든 後에 돈 千兩을 난호아 오 라. 將次 用處가 잇노라 하시니 元一 父子가 깃버하야 許諾하더니 이 해에 果然 風災가 업고 七山海上에서 元一父의 漁業이 가장 興旺하야 大金을 어든지라. 先生이 元一 父에게 傳人하사 許諾한 돈 千兩을 보내라 하시니 元一의 父가 前約을 어긔고 보내지 아니 하거늘 先生이 元一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는 大人을 欺罔함이라. 내 일은 모든 것을 神明으로 더부러 作定하는 것임으로 한가지라도 사사로히 못하노니 今後로는 君의 父의 漁業이 撤廢케되리라 하시더니 그 後로는 一尾의 魚도 잡히지 아니함으로 드대여 漁業을 廢 止하니라.


31. 三月에 一進會와 全州吏屬이 서로 交爭하야 崔 昌權이 府內吏民을 모아 四門을 堅閉하고 一進會의 入城을 막으며 四方으로 通文을 發 하야 民兵을 募集하야 一進會를 剿滅코져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어렵게 살어난 것이  죽게 되니 救助하여 주리라 하시고 花亭里 李 京五에게 돈 七十兩을 請求하시니 京五가 돈이 업다고 謝絶하거 늘 他處에서 七兩을 辦備하사 가라사대 이 七兩이 能히 七十兩을 代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다리고 全州 龍頭峙 酒店에 이르사 行人을 만히 請하야 술을 먹이시고 조희에 글을 써서 그 집 문 돌져귀와 문고리를 聯結하시더니 이날 夕暮에 이르러 一進會와 吏屬이 和解 하야 四門을 열고 一進會를 入城케 하니라. 이 날에 消費하신 돈이 六兩이라. 先生이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古人은 바독 한 點으로 十萬兵을 물니쳣다하는대 나는 돈 六兩으로 吏會의 交爭을 넛스 니 내가 古人만 갓지 못하다 하시니라.


32. 同日에 火賊이 李 京五의 집을 襲擊하야 돈 七十兩을 奪去하거늘 先生이 드르시고 가라사대 그 돈에 賊神이 犯하엿슴을 알고 活人하 는 일에나 쓰기 爲하야 請求하엿더니 京五가 듯지 안코 업다고 謝 絶하엿다 하시니라.


33. 이 後로 數 朔동안 客望里압 酒店에서 公事를 行하실 새 從徒의 來 往이 頻繁하야 店主 吳 東八이 돈을 만히 모핫더니 그 後에 經用이 不足함을 보고 甚히 冷待하거늘 모든 從徒가 그 無義함을 怒한대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至愚無學한 무리가 엇지 義理를 알리오. 우 리가 만일 그 無義함에 怒하면 그가 반다시 大禍를 바드리니 나의 過次에 德을 흘니지 못하고 도로혀 禍를 치면 엇지 穩當하리오 하시니라.


34. 그 後에 泰仁邑에 이르사 夜半에 여러 從徒를 다리시고 山에 올나 公事를 行하신 後에 일너 가라사대 이졔 大神明이 會集하엿스니 그 解散헤는 慘酷한 膺懲이 잇스리라. 말삼을 맛치시자 문듯 泰仁邑 에서 群衆의 高喊소리가 나는지라. 從徒들이 先生을 모시고 山에서 나려와 事由를 探聞하니 辛 京玄의 酒店이 群衆의 襲擊을 바더 家 藏什物과 酒缸이 모다 破損無遺하엿더라. 元來 辛京玄이 酒業을 經 營함에 邑中 少年의 同情을 어더서 多益을 보앗더니 그 後로 少年 들이 窮乏하여집에 京玄이 甚히 冷待하거늘 少年들이 그 無義함을 怒하야 이럿케 襲擊함이라. 翌日에 先生이 京玄의 집에 가시니 京 玄 夫妻가 號泣하며 他處로 옴기려 하거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元來 利害得失이 모두 自身에 잇고 位置에 잇지 아니하나니 이 後 로는 삼가하야 모든 사람에게 溫情을 베풀라. 그러면 前路가 펴이 고 營業이 다시 興旺하리라 하시니라.


35. 그 날밤에 吳 東八의 酒店에는 밧게 우뢰갓혼 소리가 나며 집이 졔절로 드날녀서 밧게 顚覆되고 人蓄과 家産은 아모 傷害가 업는 지라. 東八이 材木을 收拾하야 집을 改築하다가 二回나 거듭 前과 갓치 顚覆됨으로 할 일 업시 工事를 中止하고 依幕을 치고 지내더 니 하로는 엇든 사람이 지내다가 그 景狀을 보고 矜惻히 녁여 自進 하야 겨우 三四時間을 費하야 집을 改築하여주고 賃金도 要求치 안 코 가니라. 大抵 그 改築에는 普通木工十餘日 품을 要할 工事임으 로 이웃사람은 크게 異常히 녁이되 從徒들은 모다 泰仁 山上에서 말삼하신 일을 生覺하야 그 被禍한 것은 반다시 神明解散時의 膺懲 이오. 다시 그 神奇한 求助를 바든 것은 先生서 矜惻히 녁이사 神將을 보내여 工作케 하심이라고 生覺하니라.


36. 매양 天地公事를 行하실 새 모든 從徒다려 마음을 잘 닥거 압헤오 는 조흔 世上을 구경하라 하심으로 從徒들이 하로밧비 그 셰상이 이르기를 希望하더니 하로는 辛元一이 固請하여 가로대 先生서 天地를 開闢하야 새 世上을 建設한다 하신 지가 임의 日久하오며 公事를 行하심도 累回를 經하엿스되 時代의 現狀은 少豪도 變改함 이 업사오니 弟子의 疑惑이 날로 滋甚하나이다. 先生이시여 하로밧 비 이世上을 뒤집어서 仙境을 建設하시와 남의 嘲笑를 一身에 注集 치 안케 하시고 애닯게 기다리는 우리에게 榮華를 주시옵소서 하거 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人事는 機會가 잇고 天理는 度數가 잇나 니 그 機會를 지으며 度數를 運化함이 當然한 일이라. 이졔 機會와 度數를 어기고 억지로 私權을 쓰면 이는 天下에 災를 침이며 億 兆의 生命을 앗음이니 참아 할 일이 아니니라 하시되 元一이 더 욱구지 請하여 가로되 方今天下가 混亂無道하야 善惡을 가리기 어 려우니 맛당히 速히 殄滅하고 새 운수를 열으심이 올흐니이다 하거 늘 先生이 괴로히 녁이사 七月에 元一과 밋 數三從徒를 다리고 邊 山 開巖寺에 가사 손가락으로 물을 어서 扶安 石橋를 向하야 리시니 문듯 그 方面으로 구름이 모아들어 大雨注下하고 開巖寺 附近은 晴朗하더라. 先生이 元一을 命하사 速히 집에 往還하라 하시 니 元一이 承命하고 집에 도라간즉 그 아우의 집이 大雨에 倒壞되 고 그 眷屬이 自己의 집에 모혀잇거늘 元一이 悲慘을 이긔지 못하 야 곳 도라와서 先生 그 事由를 告白하니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開闢이란 이럿케 쉬운 것이라. 天下를 水國化하야 모든 것을 淪沒 케 하고 우리만사라 잇스면 무슨 福利가 되리오. 大抵 濟生醫世는 聖人의 道오. 災民革世는 雄伯의 術이라. 이졔 天下가 雄伯에게 괴 로운지 오랜지라. 내가 相生의 道로써 化民靖世하리니 새셰상을 보 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우니 너는 이졔로부 터 마음을 잘 고치라. 大人을 공부하는 者는 恒常 남 살니기를 生 覺하여야 하나니 엇지 億兆를 死滅케하고 홀로 잘되기를 圖謀함이 올흐리오 하시니 元一이 이 일로부터 두려워하야 無禮한 言辭로 先 生 괴롭게 한일을 뉘웃치고 元一의 아우는 그 兄이 先生 追從 하고 家事를 돌보지 아니함을 뮈워하야 恒常 先生을 詬辱하더니 兄 으로 부터 이 事實을 듯고는 先生 詬辱한 罪의 報應으로 家屋이 倒壞됨이 아닌가하야 일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37. 그 後에 古阜 立石里 朴 昌國의 집에 이르시니 昌國의 妻는 先生의 親妹라. 마참 벗은 발로 밧게 다니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녁여 가 라사대 이 도랑에 毒蛇가 잇스니 벗은 발을 물면 엇지 하리요 하시 고 길게 휫바람을 부시니 문듯 큰 毒蛇 한 마리가 풀밧흐로부터 나 와서  밋혜 이르러 머리를 들고 가만히 잇더니 이윽고 昌國이 밧 그로부터 들어오다가 毒蛇를 보고 大驚하야 곳 喪杖을 드러 打殺하 거늘 先生이 그 피가 에 잇슴을 보시고 가라사대 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면 害가 잇스리라 하시고 親히 그 血痕을 밟아 毒氣를 除 하시니라.


38. 十二月에 咸悅로부터 銅谷으로 가실새 길이 심히 질어서 행로가 困難한지라 先生이 「御在函羅山下」라 써서 불살으시니 泥路가 곳 어러서 구더지거늘 이에 말은 신발로 登程하시니라


39. 丙午 正月 三日에 銅谷에 계실 새 여러 從徒에게 一晝夜동안 言語 와 吸烟을 禁하시니라.


40. 五日에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날은 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희는 우슴을 조심하라. 만일 웃는者가 잇스면 이 神明이 公事를 보지 아니하고 도라가리니 그가 한 번 가면 어느 다시 올지 모르 리라 하시거늘 여러 사람이 特別히 조심하더니 밖에 鄭 成伯이 웃음으로 一座가 다 함 웃으니라. 그날 午後에 成伯이 문듯 惡寒 大痛하야 三日間을 委席하더니 先生이 압헤 눕히시고 어르만지시니 곳 나으니라.


41. 銅谷압헤서 酒店營業을 하는 丁 槐山이 極히 貧寒하되 매양 先生을 至誠으로 供待하더니 正月에 先生이 그 집에 들니시니 槐山이 先生 供待하려고 狗湯을 土鼎에 이다가 문듯 土鼎이 여짐에 槐山 의 妻가 落膽하야 울고 섯거늘 先生이 矜惻히 녁이사 辛京元을 命 하사 그의 經營하는 鐵店에서 鐵鼎一座를 가저다 주엇더니 일로부 터 槐山의 家勢가 漸漸 裕足하여지니라. 그 後에 槐山이 泰仁方橋 로 移居할 에 그 鐵鼎을 環坪 鄭東朝에게 팔엇더니 槐山은 도로 貧寒하여지고 東朝는 裕足하게 되엿슴으로 모든 사람이 그 鐵鼎을 福鼎이라 稱하니라.


42. 하로는 龍華洞 朴 奉敏의 酒店에 이르사 술을 차즈시니 마참 술이 러젓다 하거늘 先生이 술을 비젓든 그릇을 가저오라 하사 물을 채워 부으시고 손으로 저으신 後에 마시시며 여러 從徒에게 난호아 주시니 그 맛이 本來 비졋던 술과 갓흐니라.


43.


44. 하로는 金山寺 靑蓮菴 僧 金 玄贊다려 일너 가라사대 明堂쓰기를 願하나냐 하시니 玄贊이 對하야 가로대 平生至願이로소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러면 밋고 잇스라 하시고 그 後에  金 秉旭다 려 일너 가라사대 明堂을 쓰려나냐 하시니 秉旭이 對하여 가로대 至願이로소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러면 밋고잇스라 하시더니 그 後 數年이 되도록 다시 그에 對한 말삼을 아니하심으 로 兩人은 다만 先生의 만 바라고 잇다가 하로는 秉旭이 엿주어 가로대 前者에 許諾하신 明堂은 언졔나 주려 하시나잇가.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아들을 願함으로 그에 明堂을 쓰엿나니 임 의 發蔭되엿나니라 하시니 元來 秉旭이 無子함을 恨하다가 明堂을 許諾하신 後에 小室을 어더서 아들을 나앗더니 이 일을 일으심 이 라. 秉旭이 甚히 虛誕히 녁이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先天에는 埋白 骨而葬之로대 後天에는 不埋白骨而葬之라 하시니라. 그 後에 玄贊 이  뭇거늘 가라사대 "明堂은 임의 썼거니와 이졔 發蔭이 되엿나 니라." 하시니 大抵 玄贊도 明堂을 許諾하신 後에 退俗하야 娶妻하 고 아들을 나앗슴으로 이 일을 일으심이러라.


45. 金 甲七이 親墓를 緬禮하기 爲하야 모든 器具를 準備하엿더니 先生 이 일너 가라사대 내가 너를 爲하야 緬葬하여 주리라하시고 準備한 棺槨과 모든 物品을 모다 불살니신 後에 그 재를 압내에 버리며 하 눌을 보라 하시거늘 甲七이 命하신대로 하면서 하눌을 우러러보니 문듯 異常한 구름이 北天으로부터 南天가지 첫더라.


46. 十月에 全州府人 文 泰潤이 와뵈이거늘 先生이 그 携帶한 褓子를 보시고 가라사대 이 房은 安閑한 工夫房이라. 속모르는 사람을 그 대로 바더드리지 아니하나니 그 褓를 너뵈이라. 그 가운대 반다 시 戰爭의 張本이 잇스리라. 泰潤이 붓그러운 빗으로 그 褓를 으 니 그 叔姪間에 金錢關係로 爭訟하는 書類가 잇는지라. 泰潤이 엿 주어 가로대 이런 不美한 일이 잇슴으로 先生의 神聖하심을 듯고 解決策을 무르러와서 붓그러운 마음으로 참아 稟達치 못하엿나이 다. 先生이 가라사대 戰爭은 家族戰爭이 큰 것이니 一家의 亂이 天 下의 亂을 러내나니라 하시고 한 封書를 주시며 가라사대 이 封 書를 그대 족하의 집에 가서 불살으라 하시거늘 泰潤이 그대로 하 엿더니 그 後로 果然 和解되니라.


47. 이 달에 辛 元一이 乾材藥局을 배셜하고 貿藥하러 公州令市에 갈 새 先生 와 뵈입고 엿주어 가로대 方今 길이 질어서 行人의 不便 이 極甚하오니 請컨대 公衆의 交通便宜를 爲하야 길을 얼어 굿게 하여지이다 하거늘 先生이 許諾하시고 술을 가저 오라하사 마스시 니 그날 밤 부터 길이 얼어붓허서 歲末지 녹지 아니하니라.


48. 金 益贊을 다리고 全州 細川(세내)을 지나실 새 日人獵師가 雁群이 만히 나려 안즌 곳에 獵銃을 견으고 發射하려 하거늘 先生이 가라 사대 君子不忍見이라 하시고 왼발로 을 한 번 구르시며 서시니 그 獵銃이 發射되지 못하는지라. 獵師는 異常히 녁여 銃을 檢査하 되 理由를 알지 못하고 無數히 힘드리며 헤매든 차에 雁群이 다 멀 리 날러 가거늘 先生이 발을 옴겨 길을 行하시니 獵銃은 그졔야 發 射되니라.


49. 佛可止 金 成國의 집에 머무르실 새 雉群이 만히 덧밧에 나리거늘 成國이 金 德贊으로 더부러 網罟를 만히 만들어 텃밧에 張羅하야 잡으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너히는 잡을 공부를 해라. 나는 살 닐 공부를 하리라. 하시더니 일로부터 雉群은 만히 나리되 한 마리 도 網罟에 걸리지 아니하니라.


50. 佛可止로부터 全州로 向하실 새 東南으로부터 大雨가 모라오거늘 先生이 길 가운대 흙을 파고 춤을 밧허 무드시니 모라 오든 비가 문듯 두 갈래로 난호여 한 갈래는 東天으로 向하고 한 갈래는 西天 으로 向하야 몰려가니라.


51. 黃 應種, 金 甲七을 다리고 院坪을 지나실 새 院坪 압다리를 건너 시면서 왼발로 길을 한 번 구르시고 길가에 서시더니 이윽고 乘馬 客 三人이 오다가 다리 건너便에 이르러 馬足이 에 붓허서 옴기 지 못함으로 御者가 無數히 힘드려 ?다가 할 일업시 멈추고 섯더 니 한 御者가 말곱비를 놋코 다리를 건너와서 先生 절하고 빗겨 서시기를 빌거늘 先生이 우스시며 빗겨서시니 말이 비로소 달녀가 니라.


52. 藥房에 계실 새 하로는 早朝에 해가 ?서 압졔비山 봉오리에 반튼 ? 오르거늘 先生이 여러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러한 難局에 處하야 靖世의 을 품은 者 能히 日行을 멈추는 權能을 가지지 못 하면 不可할지니 내 이졔 試驗하여 보리라 하시고 축인 담배 세대 를 가라 피우시되 해가 山?을 솟아오르지 못하더니 先生이 煙竹을 ?여 ?에 던지시니 해가 문듯 數丈을 솟으니라.


53. 丁未 四月에 古阜 客望里로부터 泰仁으로 가실 새 몬저 辛 元一을 보내사 사관을 定하라 하시고 翌日에 客望里를 나 그 압 酒店에 이르사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나는 여긔서 留宿하리니 너는 몬저 泰仁에 가서 元一과 함 자고 明日早朝에 下馬亭에서 나를 기다리 라 하시니 亨烈이 奉命하고 泰仁에 이르러 元一을 만나서 함 자고 翌日에 元一로 더부러 下馬亭에 이르니 마참 市日임으로 사람이 만히 모아들더라. 先生이 亨烈 元一을 만나서 길가 술집에 坐定하 시고 元一을 불너 가라사대 내가 오날 霹靂을 쓰리니 술을 가저오 라. 元一이 술을 올님에 잔을 잡으사 두어 번 두르신 後에 마스시 니 문듯 바람이 이러나고 暴雨가 쏘다지며 霹靂이 大發하니라. 이 윽고 비가 개이거늘 元 一을 命하야 가라사대 辛 京元의 집에 가면 알 일이 잇스리니 니 갓다오라. 元一이 應命하고 京元의 집에 가 니 마참 나무장사가 비를 避하야 京元의 집에 드러와서 말하되 나 는 오날 놀나운 일을 보앗노라 나무를 지고 오는 길에 老婦와 少婦 가 길에서 싸호는 것을 보앗는대 그 內容을 들은 즉 少婦는 老婦의 子婦로서 乳兒를 난지 七日이 못되야 昨夜에 夫喪을 當한지라. 治 喪도 아니하고 乳兒를 버리고 逃亡함으로 老婦는 少婦를 차 맛나 서 乳兒를 다려다 길으라고 哀乞하되 少婦가 듯지 안코 頡頏하다가 문듯 落雷를 마저서 少婦가 죽엇스니 일로 볼진대 天道가 昭明하다 하거늘 元一이 도라와서 그 들은 말을 告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내 가 오날 아참에 客望里 酒店을 지날 에 한 少婦가 이슬을 며 니 지나가더니 그 後로 老婦가 달녀오며 少婦의 자최를 뭇는 故 로 그 事由를 자세히 들으니 實로 人道上 容恕치 못할 罪惡이라. 하물며 그 作配는 저희들리 지은 것이라 하니 大抵 父母가 지어 준 것은 人緣이오, 스사로 지은 것은 天緣이라. 人緣은 오히려 고 칠 수 잇스되 天緣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어늘 이졔 人道에 悖戾하 고 天緣에 沒義하니 엇지 天怒가 없으리오 하시니라.


54. 五月五日 端陽節에 從徒들과 里中人이 聯合하야 先生을 모시고 學 仙菴으로 소창하려 갈 새 中路에 暴雨가 크게 몰녀오거늘 先生이 煙竹으로 모라오는 비를 向하야 한 번 두르시니 문듯 비가 다른 곳 으로 몰녀가더니 學仙菴에 當到한 後에 비가 나리니라.


55. 六月부터 數朔동안 井邑 大興里 車 京石의 집에 게실 새 朴 公又가 從遊하기 一朔前에 川原 市場에서 耶蘇敎人과 交爭하다가 큰 돌에 마저서 가삼가 傷하야 一時 昏倒하엿다가 겨우 回甦하야 數旬間 治療를 바든 後에 겨우 行起는 하되 아즉지 胸部에 손을 대지 못하고 起臥에 크케 苦痛을 感하는 中임으로 그 事實을 先生 告 達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前者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胸部를 처서 死境에 이르게 한 일이 잇스니 그 일을 生覺하야 잘 뉘웃치 라.  네가 몸이 快復한 後에는 加害者를 차저서 죽이려고 生覺하 나 너에게 傷害를 바든 者의 척神이 그에게 붓허서 報復한 바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네마음을 잘 풀어 加害者를 恩人과 갓 치 生覺하라. 그러면 곳 快復되리라. 公又가 그 말삼에 크게 服膺 하야 加害者를 憎惡하든 마음을 풀어바리고 後日에 만나면 반다시 禮待하겟다는 生覺을 두엇더니 數日後에 川原 耶蘇敎會에 十二郡 牧師가 會集하야 大傳道會를 開催한다 하거늘 先生이 公又다려 일 너 가라사대 네 傷處를 낫게 하기 爲하야 十二郡 牧師를 召集하엿 노라 하시더니 그 後 三日만에 公又의 傷處가 全快하니라.


56. 하로는 가물치膾를 올엿더니 先生이 잡수신 後에 門밧게 건이르시 다가 하눌을 우러러보시고 우서 가라사대 그 긔운이 르다 하시거 늘 從徒들이 하눌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갓흔 異常한 긔운이 가물치 모양을 일우어 虛空에 서 東天으로 向하여 가더라.


57. 하로는 從徒 五六人이 琴師를 불너서 伽耶琴을 타게 하고 愉快히 놀더니 先生이 禁止하사 가라사대 저 虛空을 보라 나는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 從徒들이 모다 우러러보니 구름과 갓흔 異常한 긔운이 彈琴하는 形狀과 五六人의 列坐한 모형을 일우어 虛 空에  잇더라.


58. 中伏日에 先生이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늘 電光이 나지 아니하 면 蟲災가 생겨 農作을 害하리니 잘 삷히라 하시거늘 모다 注意하 야 저물도록 삷히되 電光이 나지 아니하는지라. 先生이 하눌을 向 하야 가라사대 天地가 엇지 生民의 災害를 이럿케 도라보지 아니하 나뇨 하시며 말은집을 어서 火爐불에 저서 살으시니 문듯 北方 에서 電光이 發하는지라.  가라사대 北方사람만 살고 他方사람은 다 죽어야 올흐냐 하시니 다시 四方에서 電光이 번적이더라.


59. 하로는 辛 元一, 朴 公又外 三四人을 다리시고 泰仁 살포정에 이르 사 旅舍에 드러쉬시니 문듯 雷聲이 일어나며 電光이 大發하야 집에 나리려하거늘 先生이 虛空을 向하야 지스시니 電光이 곳 그치는 지라. 公又는 先生이 井邑에서 글을 써서 壁에 붓처 雷聲을 大發케 하시고  이번에 한 말삼으로 雷電을 그치게 하심을 보고는 비로 소 先生서 天地造化를 任意로 쓰시는 줄 알고 일로부터 더욱 敬 畏하더니 하로는 先生이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네가 오래동안 食 告를 잘 하엿스나 이졔 만날 사람 만낫스니 食告는 나에게로 돌닐 지어다 하시니 公又가 더욱 깃버하야 平生所願을 일운 줄 다르면 서 곳 그리하겟나이다라고 對答하니라. 元來 公又는 다른 東學信徒 의 通例와 갓치 "大神師應感" 이라는 生覺으로 食告를 하지 안코 恒常 "하누님 뵈여지이다"라는 祈願으로 食告를 하엿더니 이졔 先 生의 말삼하시는 바를 듯건대 반다시 마음으로 生覺하는 것을 洞察 하심이며  天地造化를 任意로 쓰시는 것을 볼진대 分明히 하누님 의 降臨하심이 無疑하다고 生覺하니라.


60. 하로는 先生이 車 京石에게 일너 가라사대 너는 降靈을 바더야하리 라 하시고 "元皇正氣來合我身"을 닑히시며 房門을 열으시니 京石이 문듯 放聲大哭하다가 이윽고 그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우름은 神明에게 罰을 당하는 소리라 하시니라.


61. 하로는 京石에게 일너 가라사대 너의 先墓 九月山 金盤死雉의 穴蔭 을 옴겨오리라 하시고 京石으로 하여금 舞蹈케 하시고 公又로 북을 치이시니라.


62. 하로는 鄭 南基의 집에 이르시니 南基의 弟가 무슨 일로 父親에게 叱責을 當하고 不遜한 말로 對答한 後에 밧그로 나갓다가 다시 안 으로 向하야 들어오더니 문듯 문압헤 웃둑서서 動作을 못하고 을 흘니며 連하야 소리를 질음에 家人이 驚慌罔措하야 엇지 할 줄을 모르는지라. 이윽고 先生이 도라보시며 가라사대 엇지 그럿케 困苦 를 當하나냐 하시니 그졔야 能히 屈伸하며 精神을 도리키거늘 家人 이 그 緣由를 무르니 對하야 가로대 밧게 精神이 慌迷하며 숨이 막혀서 呼吸을 通치 못하며 骨節이 구더저서 屈伸을 못하엿노라 하 거늘 先生이 무러 가라사대 그에 네 가삼이 답답하더냐 對하여 가로대 甚히 답답하야 暫時라도 견댈 수 업더이다. 先生이 가라사 대 그 所遭로써 네 父親의 가삼을 해아려보아라 너의 父親에게 그 럿케 不敬한 말을 하엿스니 그 가삼이 엇더하엿스랴 今後로는 허물 을 뉘웃처 다시는 그리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63. 十一月에 銅谷에 계실 새 朴 公又가 뵈이려 오는 길에 偶然히 興이 나서 "모시러 가자. 모시러가자. 부처님 모시고 우리 집으로 도라 오자." 라고 노레를 連唱하엿더니 銅谷에 이르러 先生 뵈이니 가 라사대 내가 네 집에 가기를 願하나냐 하시거늘 公又가 깃버하며 가로대 至願이로소이다 하고 先生을 모시고 도라오다가 龍巖里 水 砧幕에 들어 쉬실 새 門을 열고 南天을 바라보시며 놉다 놉다 하시 거늘 公又가 바라보니 구름이 가득 엇는대 하눌이 方席한닙 널비  通하며 바람이 쓸쓸불고 눈이 나리는지라. 先生이 公又다려 일 너 가라사대 나와 親舊로 지내자하시니 公又는 그 말삼이 惶恐하기 도하고 怪異하게도 녁엿더니  가라사대 긔운이 적다 하시거늘 公又- 不知中에 엿주어 가로대 바람이 좀 더 불리이다 하엿더니 果然 바람이 크게 부는지라,  가라사대 나와 親舊로 지내자 하며 긔운이 적다 하시거늘 公又  가로대 바람이 놉하지리이다 하엿더 니 그는 風勢大作하야 沙石을 날니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龍虎 大師의 긔운을 公又에게 붓처 보앗더니 그 긔운이 적다 하시니라.


64. 하로는 公又를 다리고 井邑으로 가실 새 公又다려 "風雲造化"를 心 誦하라 하심으로 公又가 그대로 心誦하다가 문듯 이저버리고 그릇 "天文地理"를 心誦하더니 先生이 도라보아 가라사대 그릇 차지니 다시 生覺하라 하시거늘 公又 놀내여 生覺하니 果然 그릇 차젓는지 라. 일로부터 고처 心誦하며 大興里지 왓더니 이날 밤에 비와 눈 이 섯겨오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네 한 번 그릇 生覺함으로 因하야 天氣가 한글갓지 못하다 하시니라.


65. 戊申 二月에 從徒를 다리고 어대를 가실 새 보리밧가으로 지내시더 니 從徒들이 서로 말하되 此世에 貧富의 差別로 因하야 穀類中에 오직 먹기 어려운 보리가 貧民의 食糧이 되여 먹을 에 恒常 괴로 움이 만흐니 보리를 업세여 버려야 衆生이 괴로움을 免하리라 하거 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의 말이 有理하니 보리를 업세 여버리자 하섯더니 四月에 大旱하야 牟麥이 枯死함에 農民이 크게 騷動하는지라. 從徒들이 그 事由를 告하야 가로대 이제 만일 麥凶 이 들면 餓死하는 者가 만흐리이 다하거늘 先生이 지저 가라사대 前者에 너희들이 보리를 업세여 버림이 可하다하고 이졔 다시 麥凶 을 呼訴하나냐. 내 일은 비록 戱談 한 마대라도 度數에 박히여 天 地에 울녀나가나니 이 後로는 모든 일에 실업슨 말을 삼가하라하시고 全州 龍頭峙에 가사 金 洛範을 命하야 거친 麥飯한 그릇과 土醬한 그릇을 가저오라하사 가라사대 窮民의 飮食이 이러하리라 하시고 土醬에 밥을 말아셔 다 잡수시니 문듯 黑雲이 이러나며 비가 나려 서 牟麥이 勃然히 生氣를 어더서 豊作을 일우니라.


66. 公又가 從遊함으로부터 先生의 巡遊하실 에 만히 陪從하엿는대 어대셔든지 머무르시다가 다른 곳으로 나려 하실 에는 밤이면 月暈이 나터나고 낫이면 日暈이 나터나는 것을 微驗 하엿슴으로 어 느 던지 日月暈만 나터나면 出行하실 줄 알고 몬저 신발과 行裝 을 단속하야 命을 기다리면 반다시 불으사 가자 하시며 出發하엿나 니 大抵 先生은 어대를 가시든지 미리 말삼을 아니하섯더라.


67. 하로는 井邑수퉁店에서 留宿하실 새 公又가 侍側하엿더니 李 道三 이 와서 그 이웃 버들里에서 二十歲 된 女子가 범에게 물녀갓다 는 말을 告한대 先生이 公又다려 하눌에 蟲星(俗에 좀성이라함)이 보이는가 보라 하심으로 公又가 나가서 우러러 보고 나터나잇슴을 告하니 先生이 木枕으로 마루장을 치시며 蟲星아 엇지 사람을 害하 나냐 하시더니 翌日에 그 女子가 살어왓는대 衣服은 破裂되고 몸의 傷害는 크지 아니하더라.


68. 天道敎主 孫 秉熙가 敎徒의 信念을 皷舞키 爲하야 湖南各地에 巡廻 할 次로 全州에 와서 머물거놀 先生이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네 가 全州에 가서 孫 秉熙를 돌녀 보내고 오라 邪說로 群衆을 誣惑하 야 疲弊가 極度에 達하엿스니 그의 巡廻가 不可하니라. 公又가 領 命하고 翌日에 發程하려하다가 다시 命하지 아니하심으로 異常히 녁여 停止하엇더니 數日後에 孫 秉熙가 豫定을 고쳐 京城으로 도라 갓다는 報가 들니니라.


69. 金 甫京이 熊浦에 小室을 두고 本家를 돌보지 아니하거늘 先生이 글을 써주어 가라사대 네 小室을 對하여 불살으라 그러면 조흔 일 이 잇스리라. 甫京이 그대로 하엿더니 박게 淋病에 걸녀서 本家 로 도라와 月餘를 머물럿더니 그 小室이 다른 곳으로 간지라. 先生 이 甫京을 불너 경계하야 가라사대 이졔는 家室이 安靜하야 吉運이 열니리니 本妻를 사랑하야 저바리지 말라 하시고 淋病을 낫게 하여 주시니라.


70. 하로는 龍頭峙 旅舍에서 金 德贊, 金 俊贊 等 數人을 다리시고 公 事를 行하신 後에 마참 雜技軍이 모아들어 윳판을 벌리니 이것은 先生의 一行을 誘引하야 金錢을 앗으려 함이라. 先生이 가라사대 저들의 願을 일우어 줌도 한 解寃이라 하시고 돈 五十兩을 놋코 윳을 치실 새 말삼대로 윳이 저서 頃刻間 에 그들의 돈 八十兩을 다 앗은 後에 품싹이라 하시며 五錢을 남기시고 七十九兩五錢을 돌녀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다 不義의 일이니 各히 집에 도라가서 職業을 求하야 安堵하라 하시니 그들이 크게 感服하고 도라가니라. 從徒들이 말삼대로 윳이 지는 法을 무르니 가라사대 던지는 法을 一定하야 變改치 아니하면 그리되나니 이도 한 一心의 法이니라.  일너 가라사대 現今 朝鮮의 情勢는 失業者가 增加하야 賭博으로 業하는 者가 續出하리니 日後에 法禁이 嚴刻하여지면 그들은 饑餓 에 질 수 밧게 업슬지라. 그럼으로 이졔 祿을 붓처주엇노라 하시 니라.


71. 하로는 여러 從徒를 다리고 益山裡里를 지나실 새 津頭에 이르니 船 夫가 업고 배만 잇거늘 先生이 親히 櫓를 저어 건너신 後에 하눌 을 우러러보시고 웃으시거늘 모다 우러러보니 구름과 갓흔 異常한 긔운이 櫓저어 가는 模型을 일우어 徐徐히 가더라.


72. 그 後에 泰仁 今上里에 지나실 새 마참 날이 가무러서 移秧을 못하 더니 東學信徒 柳 漢弼이 그 前日에 구름이 임을 보고 비가 올 줄 밋어 말은 논에 鋤種으로 모를 옴겻더니 이내 비가오지 아니하 야 苗가 말으거늘 極히 焦悶하야 가로대 가뭄이 이럿케 甚하야 雨 意가 업스니 鋤種한 것을 다시 가라서 豆太나 심을 수 밧게 업다하 며 길게 歎息하거늘 先生이 드르시고 가라사대 移種한 것을 가라서 다른 穀種을 심음은 怪變이 아니냐 하시며 柳 漢弼을 압세우고 그 곳에 가사 그 慘狀을 보시고 西天을 向하야 雨師를 부르시니 문듯 黑雲이 피여나며 急雨가 나리거늘 漢弼은 엇진 닭인지 알지 못하 고 다만 預知術이 잇는가 하야 異常히 녁이더라.


73. 六月에 金 秉旭이 委人하야 白 南信의 親墓에 墓賊이 들어서 頭骨 을 盜去하엿다는 事由를 稟達하니 先生이 사흘 밤을 明燭하사 喪家 와 갓치 지내시고 南信에게 傳言하사대 頭骨을 차지려 힘쓰지 말고 幽僻한 곳에 處하야 外人의 交際를 으라. 處暑節에는 盜賊이 스 사로 頭骨을 가저오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사흘밤 徹夜하는 것은 從徒들이 질기지 아니하야 가로대 이갓치 힘을 드리되 當事者 는 모르오니 무슨 功을 알리잇가. 先生이 가라사대 그의 알고 모름 이 무슨 關係가 잇느냐 하시니라. 南信이 命하신 대로 幽僻한 白雲 亭에 處하더니 七月에 그 墓下 洞長이 自發的으로 洞會를 열고 議 論하되 우리가 이 墓下에 居하야 道義上 泛然히 지낼 수 업스니 擧 洞이 出動하야 附近을 搜索하되 만일 頭骨을 찻는 者가 잇스면 墓 主에게 말하야 厚賞케 함이 可하다 하고 洞民을 總動員하야 附近 山麓을 搜索하니 이에 墓賊이 生覺하되 墓主가 安然히 잇서 大金 을 費하야 頭骨을 차지려 하지 아니하니 찰하리 이 機會에 頭骨을 가저가면 盜名도 免하고 相當한 厚賞을 어드리라하고 그 頭骨을 가 지고 洞長에게 가서 告하되 내가 各方에 搜索하여 다행히 차젓다 하거늘 洞長이 그 사람을 다리고 白雲亭에 오니 이날이 處暑節이더 라.


74. 先生이 이날 早朝에 龍頭峙에 가섯더니 金 秉旭이 와서 頭骨차진 事由를 告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盜賊은 엇더케 措處하엿나뇨. 秉旭이 對하여 가로대 警務廳으로 보내엿나이다 하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잘 說諭하야 돌녀 보내는 것이 可하거늘 엇지 그리 하엿 나뇨 하시고 靑依一件을 지어오라하사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懲役에 나 處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果然 그 사람이 處役하니라. 從徒들이 반다시 處暑節에 찻게 된 닭을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매양 私 事라도 天地公事의 度數에 붓처두기만 하면 그 度數에 이르러 公私 가 다 함 니나니라 하시더라.


75. 金 德贊이 先生 恒常 倨傲하더니 하로는 公事를 行하실 새 크게 雷電을 發하시니 德贊이 두려워 하야 避席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罪 지은 바 업거늘 엇지 두려워 하나뇨. 德贊이 더욱 惶怯하 야 所措를 莫知하더니 그 後로는 先生을 極히 敬畏하니라.


76. 白 南信의 族人 龍安이 都賣 釀酒業의 免許를 엇고 全州府中에 잇 는 數百 小賣酒家의 家釀을 禁止하니 이에 先生이 龍頭峙 金周甫 酒店에 계실 새 周甫의 妻가 가삼을 치며 가로대 다른 버리는 업고 다만 酒業으로 家眷이 사러 왓는대 이졔 釀酒業을 廢하면 무 슨 버리로 사러가리오 하거늘 先生이 불상히 녁이사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엇지 男將軍만 잇스리오, 맛당히 女將軍도 잇스리라 하시 고 紙片에 女將軍이라 써서 불살으시니 周甫 妻가 문듯 神氣를 어 더서 府中을 돌며 號令하야 頃刻에 數百酒婦를 統率하고 龍安의 집 을 襲擊하야 形勢가 不穩하거늘 龍安이 大驚하야 群衆에게 謝過하 고 都賣經營을 中止하니라.


77. 하로는 從徒들을 다리고 全州 多佳町을 지나실 새 한 喪人이 뒤를 르며 살녀 주시기를 哀乞하며 나지 못하되 先生이 도라보지 안코 가시거늘 從徒들이 민망하야 엿주어 가로대 저 사람이 무슨 일로 저러는지 모르나 그 情狀이 可矜하니 돌녀 보내심이 엇더하니 잇가. 先生이 도라보시고 몸에 가젓든 붓을 여 먹을 찍으사 喪人 의 이마에 한 墨點을 처주시며 가라사대 네 褓子를 저 川邊에 버 리라 하시니 그 喪人이 命하신대로 褓子를 버리고 울며 가거늘 先 生이 가라사대 저 사람이 罪를 만히 지엇스니 졔 罪에 졔가 죽나니 라. 그 褓子는 行妖하는 器具니 몃 時間을 지낸 뒤가 아니면 펴보 지 말라 하시거늘 그 뒤에 從徒들이 褓子를 펴보니 돌을 싼 것이러 라. 그 喪人은 그곳에서 울며 난 뒤로 곳 失性하야 四方으로  여다니다가 몃 칠 後에 죽으니라.


78. 하로는 辛 京元이 急히 사람을 보내여 禀하되 警官의 調査가 甚하 야 날마다 와서 先生의 住所를 뭇나이다. 先生이 來人에게 글을 써 주시며 가라사대 이 글을 京元 에게 傳하야 한 번 보고 곳 불살으 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니라.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邦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

心也者 鬼神之 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京元이 奉讀한 後에 곳 불살넛더니 그 後로는 警官의 調査가 그치 니라.


79. 金 秉旭의 差人 金允根이 先生 와 뵈입고 稟하되 近日에 날이 가 물어서 作物이 다 말으오니 先生은 喜雨를 주사 萬民의 焦燥를 눅 키소서. 先生이 德贊을 命하사 그 길으는 家猪一首를 잡어서 烹宰 하야 여러 從徒들로 더부러 함 잡수실 새 밋처 맛치지 못하야 雷 雨가 大作하거늘 允根이 踴躍하야 가로대 先生은 진실로 萬民을 求 活하는 上帝시라 하니라.


80.


81. 泰仁 白巖里 金 明七이 山中 傾斜地를 新墾하야 煙草를 심엇는대 肥料를 施하야 붓을 하엿더니 문듯 急雨가 나림으로 明七이 가삼을 치며 울어 가로대 내 農事는 煙草栽培 인대 施肥培土한 後에 이 럿케 急雨가 나리니 沙汰가 미러 내려서 다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불상히 녁여 가라사대 근심을 풀어라 그 災害를 免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비개인 後에 明七이 가보니 조금도 被 害가 업고 他人의 耕作은 全部 沙汰의 害를 닙어서 이 해에 煙農이 大凶하니라.


82. 하로는 丁 槐山의 酒店을 지나실 새 마참 古阜禍亂에 知面된 鄭 巡 檢이 이르거늘 先生이 술을 사서 待接하섯더니 날 에 돈 十圓 을 請求하며 족기속에 손을 너어 돈 十兩을 훔처 가거늘 先生이 일 너 가라사대 모든 일을 義롭게 할지어늘 엇지 이럿케 無禮를 行하 나냐 하시더라. 鄭 巡檢이 全州에 가서 다시 書信으로 돈 四十圓을 請求하거늘 先生이 亨烈로 하여금 若干의 돈을 求하여 보내시며 가 라사대 義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몃 칠 後에 鄭 巡檢이 古阜 로 도라 가다가 井邑 한 다리에서 群盜에게 被殺된지라. 先生이 들 으시고 가라사대 巡檢은 盜賊을 懲治하는 職責을 가젓거늘 도 로혀 非義의 物을 즐기니 盜賊에게 죽음이 當然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神明의 行하는 바니라 하시니라.


83. 하로는 金 永西와 鄭 南基가 와 뵈인 後에 兩人이 서로 私語로 酬 酌하되 南基는 日本語學을 배운 사람을 불어워 하야 가로대 近來에 는 日本語를 通한 사람은 顯達도 쉽고 돈버리도 容易하더라 하며 永西는 俳優를 불어위 하야 가로대 近來에는 劇戱를 잘하여도 돈버 리가 잘되더라 하야 서로 그런 일을 等閑視하엿슴을 後悔하더니 문 듯 南基는 손을 흔들며 流暢한 口調로 日本語를 말하고 永西는 喪 人이라. 喪巾을 흔들며 일어나서 喪服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 이면서 歌舞를 演奏하야 汗出沾背하거늘 一座가 大笑하는지라. 先 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너히는 早速히 所願을 成就하엿다 하시니 兩人이 비로소 精神을 차려 붓그러워하는지라. 다시 일너 가라사대 大人을 배우는 者 맛당히 마음을 正大히 하야 그칠 곳을 알어야 할 것이오, 한가지라도 分外의 생각을 가지며 실업슨 말을 함이 不可 하다 하시니라.

84. 하로는 孫 秉旭의 집에 가시니 從徒들이 만히 모엿슴으로 秉旭이 그 妻를 식혀서 午飯을 지을 새 日氣가 甚히 더움으로 그 妻가 괴 롭게 녁여 부억에서 홀로 不平한 말을 하엿더니 문듯 와사症이 發 하거늘 黃 應種이 보고 놀내여 先生 告한대 가라사대 이는 不平 한 말을 하다가 竈王에게 罰을 바듬이라 하시고 글을 써주사 秉旭 의 妻로 하여금 부억에 불사르며 謝過하라 하시니 秉旭의 妻가 그 대로 하야 곳 나으니라.


85. 大興里에 졔실 새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남과 싸홈을 만히 하엿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리하엿나이다 다시 일너 가라사대 네게 豹丹이 들어서 싸홈을 잘하니 이졔 豹丹을 여내고 人丹을 너흐리 라 하시더니 이 後로는 公又의 性質이 溫和하게 되야 싸홈을 즐기 지 아니하고 或 싸홈하는 사람이 잇스면 恐怖心이 생겨서 곳 멀니 避하니라.


86. 八月 어느 날 金 德贊이 先生 엿주어 가로대 오늘 내 妹家에 잔 채가 잇스니 소풍 겸하야 나어가사이다. 가라사대 내술을 몬저 마 시라. 德贊이 가로대 무슨 술이니잇가. 가라사대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朴公又가 술과 熟鷄를 가저와서 先生 올니니라.


87. 이해 겨울 어느 날 아참에 大興里로 부터 泰仁 새올 崔 昌祚의 집 으로 가실 새 朴 公又는 해가 올으면 길이 즐가하여 즌 신발을 하 엿더니 先生이 보시고 진 신발을 하엿나냐하시며 손으로 東嶺에 솟 아 올으는 해를 向하야 셰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으지 못하다가 살 포정 旅舍에 들어 쉬시니 그졔야 해가 문듯 놉히 솟아 올으더라.


88. 崔 昌祚의 집에 일으사 霹靂表를 무드시니 즉시 雷聲이 大發하야 天地가 震動하거늘 곳 거드시고 翌日에 銅谷藥房에 이르시니 辛元 一이 엿주어 가로대 震黙大師는 七星을 七日동안 가두엇다하니 올 흐니잇가 가라사대 이졔 試驗하리라 하시고 이날부터 三個月동안 七星을 가두신 後에 가라사대 現世에 天文學者가 만타하되 七星이 나터나지 아니한 일을 發表한 者가 업다 하시니라.


89. 崔 昌祚의 집에서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눈을 만히 흘겨 보 앗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다시 일러 가라사대 집으 로 도라가라 하시거늘 公又가 先生 하직하고 집으로 도라올 새 길에서 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름에 眼疾이 大發하야 한 달 동안을 苦痛하다가 하로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이 나 엇는지라. 곳 先生 와 뵈이니 가라사대 眼疾로 辛苦하엿나냐. 對 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先生이 웃으시더라. 元來 公又는 性 質이 慓悍하야 싸홈을 즐기고 눈짓이 곱지 못하더니 일로부터는 性 質이 부드럽고 눈짓이 고아지니라.


90. 公又가 술이 過하야 酒失이 만터니 하로는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술을 즐기니 酒量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만히 주시거늘 公又가 連 하여 바더 마시고 醉한지라. 다시 가라사대 한잔 술밧게 못된다 하 시더니 이 後로는 一二杯만 마서도 곳 醉하야 더 마시지 못하니라.


91. 金 德贊이 그 子婚을 지내려할새 모든 사람이 物品과 金錢으로 扶 助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나는 扶助할 것이 업스니 日氣로나 扶助 하리라 하시더니 이에 天候가 連日 險惡하여 甚히 憂慮하든 中인 대 그 期日에 이르러서는 例外로 溫和하니라.


92. 十一月에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井邑으로 가리니 이 길이 吉行이라. 이 後에 일을 네게 알니리라 하시더니 이날에 車 輪京이 와 뵈입고 高夫人이 眼疾로 苦痛함을 알외니 가라사대 이졔 도라갓 다가 明日에 泰仁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라. 輪京이 곳 도라갓다가 翌日에 살포정으로 오니 先生이 아즉 오시지 아니하엿거늘 곳 소루 원 酒店에 이르니 店主가 말하되 先生서 새올 崔 昌祚의 집으로 가시면서 車輪京이 와 뭇거든 그곳으로 보내라 하셧다하거늘 輪京 이 새올로 갈 새 日本兵 數百人이 道中에 留陣하야 居住와 出行理 由를 뭇더라. 새올에 이르러 先生 뵈이니 날이 임의 저물더라. 이 날밤에 輪京을 命하사 밤이 맛도록 자지 말고 밧게 잇어 돌라 하시고 닭의 소리가 난 後에 輪京을 다리고 白巖里로 向하야 나 시니라.


93. 白巖里 金 京學의 집에 이르사 朝飯을 잡수시고 다시 井邑으로 가 실 새 或 압서기도 하고 或 뒤서기도 하사 四五步를 걸으신 後에 가라사대 이 길에는 外人을 對하는 것이 不可하다 하시고 井邑 老 松亭에 이르사 가라사대 좀 遲滯함이 可하다 하시고 半時辰을 지내 신 後에 다시 나사 그 모통이 큰 못가에 이르니 馬兵이 만히 오 다가 되도라간 자최가 있더라.


94. 거긔서 大興里로 가려면 兩條路가 分岐되야 한 길은 井邑郡을 通過 하는 大路오. 한 길은 狹路라. 輪京이 어느 길로 行할 것을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君子 엇지 狹路로 行하리오 하시고 大路를 取하야 井邑郡을 通過하시니 左右側에 外人의 商店이 만히 잇스되 한 사람 도 밧게 나선 者가 업더라. 大興里에 니르사 高 夫人의 眼疾을 낫 게 하시고 因하야 戊申 臘月 公事를 行하시니라.


95. 하로는 京石의 黑周衣 한 벌을 가저오라하사 닙으시고 內衣를 벗으 신 後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從徒에게 무러 가라사대 이러하면 日本人과 갓흐냐. 모다 對하야 가로대 갓흐니이다. 다시 벗으시고 가라사대 내가 幼時에 書塾에서 글 배울 에 한 아해로 더부러 먹희롱을 하다가 그 아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도라가서 다 시 오지 아니하고 다른 書塾에 通學하다가 그 後에 病들어 죽엇는 대 그 神明이 怨恨을 품엇다가 이졔와서 나에게 解寃을 求함으로 엇더케하면 解寃이 되겟나냐고 무르니 그 神明이 내가 日本服을 슬 혀하는 줄을 알고 日服을 닙으라 함으로 내가 이졔 그 神明을 慰勞 함이로라 하시니라.


96. 大興里에서 戊申 臘月公事를 行하시고 巳酉 正月 三日에 官災를 避 하사 白巖里 金 京學의 집으로 가셧더니 泰仁邑에서 京學의 兄이 사람을 보내여 京學을 불너 가거늘 先生이 발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俚言에 발福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幸이오, 잘못가면 不 幸이라 함을 일음이라 하시고 곧 나사 獨行으로 崔 昌祚의 집에 가셧다가 다시 그 압 松林을 通하야 崔 德兼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 시니 모든 사람이 계신 곳을 알지 못하니라. 元來 京學의 兄은 京 學이 術客에게 迷惑하야 家産을 돌보지 아니한다는 말을 듯고 一面 으로는 京學을 불으고 一面으로는 官府에 告하야 術客을 잡어 懲治 하려 함이라. 京學이 집을 나 邑으로 가다가 中路에서 巡檢에게 붓들녀 帶同되여 집으로 되도라와서 先生을 찻다가 업슴으로 崔 昌 祚의 집지 왓다가 찻지 못하고 도라가니라.


97. 五日에 銅谷에 이르시니 數日後에 泰仁으로부터 無事히 된 顚末을 報告하거늘 가라사대 "井邑일은 하로 公事인대 京石에게 맛겻더니 一朝에 으고 泰仁일은 하로 아참 公事인대 京學에게 맛겻더니 一日을 걸녓스니 京石이 京學보다 낫다." 하시고  가라사대 京石 은 兵判가음이오. 京學은 爲人이 直腸이라. 돌니기 어려우니 돌니기 만 하면 善人이 되리라 하시니라.


98. 하로는 公又, 應鐘을 다리시고 泰仁邑 旅舍에 이르사 辛 京元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날은 白 巡檢을 만나야 하겟을스니 그를 다려 오라. 말삼이 맛치자 白 巡檢이 그 집 압흐로 지나거늘 京元이 나가서 先 生의 계신 곳을 알니니 白 巡檢이 곳 여 들어와서 先生을 捕縛하 는지라. 先生이 公又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네게 잇는 돈 百兩을 내 게 傳하고 崔 昌祚의 집에 갓다오라 하시니 公又가 應命하고 가거 늘  應鍾과 京元을 불너 各히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白 巡檢에게 돈 百兩을 주시며 가라사대 그대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 래엿노라, 이것을 적다고 하지 말고 用에 보태여 쓰라. 白 巡檢이 致謝한 後 捕縛을 으고 물너가니 大抵 그가 先生을 붓드러서 돈 을 앗으려 하는 줄을 알으시고 그 所欲을 채워주심이러라.


99. 하로는 全州 佛可止 金 成國의 집에 계실 새 金 德贊이 侍側하다가 先生의 무슨 말삼 헤 속으로는 실업게 알면서 거즛 應諾하엿더니 다시 일너 가라사대 이졔 龍巢里 金 議官의 집에 가서 자고오라 하심으로 德贊이 應命하고 龍巢里에 갓다가 金 議官집 門압헤서 醉 한 사람을 만나 悖辱을 만히 當하고 憤을 이긔지 못하야 되도라 오 거늘 先生이 門밧게 나서 바라보시고 웃어 가라사대 웨 자지 아니 하고 도라오나냐 하시며 술을 주어 가라사대 사람을 사굄에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어늘 엇지 마음을 스사로 속이나냐 하시니 德贊이 처음에는 先生이 無故히 龍巢里에 보내여 悖辱을 當하게 하신 것을 不平히 녁엿다가 이 말삼을 듯고 비로소 先生의 말삼 헤 속으로 는 실업시 알면서 거짓 應諾한 것을 洞燭하사 실업슨 醉한 사람을 만나도록 懲罰하신 줄을 닷고 일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야 비록 一思一念 이라도 삼가하니라.


100. 六月에 銅谷에 계실 새 從徒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을 걱정하 거늘 先生이 甲七다려 일너 가라사대 淸水一 盆을 길어다 놋코 上 下衣를 벗고 淸水압헤 合掌하고 서 잇스라. 이졔 네게 將令을 붓처 서 西洋으로부터 雨師를 불너 넘겨 萬民의 渴仰을 풀어주리라. 甲 七이 命하신 대로하야 水盆압헤 섯스니 문듯 西天으로부터 黑雲 이 이러나며 大雨滂沱하거늘 이에 命하사 淸水를 쏘다버리고 옷을 닙으라하시며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희들도 잘 修鍊하면 모든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


101. 이에 淸州에서 怪疾이 猖獗하고 羅州에도 熾盛하야 人心이 洶洶 한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南北에서 마조 터지니 장차 無數한 生命 이 殄滅되리라 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代贖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新衣五件을 急히 지어서 한 벌씩 갈어 닙으시고 泄瀉하여 버리신 後에 가라사대 弱者가 걸 니면 다 죽겟도다하시더니 그 後로 怪疾이 곳 寢息되니라.


102. 매양 月夜에 길을 가실 에 구름이 달을 가렷스면 손으로 달을 向 하여 右旋하야 구름을 둥그럿케 열어 헛치사 달빗을 내빗최이며 目 的地에 達하신 後에 다시 손으로 달을 向하야 左旋하시면 구름이 다시 合하야 原狀대로 回復되니라.

103. 院坪市場 金 京執의 酒店에 단골 主人을 定하시고 오랫동안 逗留하 실 새 누구든지 先生의 말삼을 憑托하야 酒食을 請하면 代金 有無를 不許 하고 다 許諾하더니 泰仁 靑石골 姜 八文이 酒食을 만히 먹은 後에 돈을 携帶한 것을 主人에게 發見되엿스나 先生의 말삼이 잇다고 거즛 憑托하야 돈을 支拂치 안코 갓더니 일로부터 挾滯하야 腸症을 일우어 死境에 이르 거늘 申 京守가 그 事由를 알왼대 先生이 對答지 아니하시더니 그 後에  危急함을 來告하거늘 가라사대 못슬 일을 行하야 神明에게 罪 를 어더 그릇 죽엄을 하게 되엿스니 할 일업다 하시더니 그 後에 곳 死亡 하니라.


104. 從徒들이 매양 근심된 일이 잇슬에 그 事由를 先生 稟告하면 無爲中에 自然히 풀니게 되는대 만일 稟告한 後에도 오히려 근심을 놋치 아니하면 慰勞하야 가라사대 내가 임의 알엇스니 근심하지 말 라 하시니라.


105. 매양 從徒들에게 일을 命하심에 반다시 期日을 定하여 주사 어긔지 안케 하시며 만일 命을 바든 者가 或 그 期日에 日氣의 不調로 因 하야 어김이 잇슬가 念慮하면 先生이 일워 가라사대 내가 너희 에게 엇지 不調한 날을 일너주겟나냐 하셧나니 大抵 先生의 定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不調한 가 업섯나니라.


106. 매양 從徒를 어느 곳에 보내시되 使命을 말삼치 아니하신 가 만 히 잇셧스나 從徒들은 恒常 그럿케 經驗하엿슴으로 다시 뭇지 안코 命하신 곳에 가면 반다시 무슨 일이 잇더라.


107. 가물 에 비를 주실 새 淸水동우에 小便을 좀 타면 그 비로 因하 여 穀類가 豊穰하고 蟲災가 잇슬 에는 苦草가루를 풀어 너으면 곳 蟲災가 것치더라.


108 더울 에 出行하시면 구름이 日傘과 갓치 太陽을 가리워 볏이 이지 아니하니라.



제 4 장 문도의 종유와 훈회


1. 壬寅 四月에 金 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公事를 行하시니 亨烈과 金 自賢, 金 甲七, 金 甫京, 韓 公淑 等이 次第로 從遊하니라.


2. 癸卯 正月에 全州府에 巡遊하사 徐 元圭 藥局에 머무르시니 元圭와 金 秉旭, 張 興海, 金 允贊등이 從遊하니라.


3. 張 興海가 그 幼子를 甚히 사랑하거늘 先生이 興海다려 일너 가라 사대 福은 우으로부터 나리는 것이오, 아래에서 치올으지 아니하는 것이니 父母를 잘 敬愛하라 하시니라.


4. 甲辰 六月에 金 亨烈의 집에 이르사 亨烈다려 全州府에 가서 金 秉旭에게 만날 期會를 約定하고 오라 命하시니 亨烈이 領命하고 全 州에 가서 秉旭을 만나 그 翌日 夜半에 만나기로 約定하고 도라오 는 길에 張 孝淳의 死亡한 消息을 들은 지라. 亨烈이 先生 復命 하고 이어서 孝淳의 死亡을 報하야 가로대 이 사람은 우리 손에 죽 어야 할 것인대 절로 病死하엿스니 恨스러운 일이로소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것이 무슨 말이뇨 죽은 사람은 불상하니라 하시니라.


5. 先生이 비록 至賤한 사람을 對할지라도 반다시 尊敬하시더니 亨烈 의 奴子 池 南植에게도 恒常 尊敬하시거늘 亨烈이 엿주어 가로대 이 사람은 곳 나의 奴子오니 尊敬치 말으소서. 先生이 가라사대 이 사람이 그대의 奴子이니 내게는 아모 關係가 업나니라하시며  일 너 가라사대 이 마을에는 兒少로부터 熟習이 되여 倉猝間에 말을 고치기 어려울지나 다른곳에 가면 엇든 사람을 對하든지 다 尊敬하 라. 이 後로는 嫡庶의 名分과 班常의 區別이 업나니라.


6. 하로는 亨烈이 엇든 親族에게 不合意한 일이 잇서서 모질게 叱責하 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아즉 言行이 덜 풀녀서 毒氣가 남어 잇도다. "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 니라. 말은 마음의 소리오, 行事 는 마음의 자최라. 말을 善하게 하면 福이 되여 점점 큰 福을 일우 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惡하게 하면 禍가 되여 점점 큰 禍를 일우 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7. 乙巳 八月에 咸悅 會仙洞 金 甫京의 집에 이르사 累月間 滯留하실 새 甫京이 咸悅邑人 金 光贊을 薦擧하야 從遊케 하고  蘇 鎭爕과 臨陂軍 屯里 金 性化 等이 相繼 從遊하니라.


8. 하로는 先生이 少時에 지으신 글이라 하사 "運來重石 何山遠, 粧得 尺椎古木秋"를 從徒들에게 외워 주시며 "先生文明이 아닐넌가"라고 心告하고 바드라 하시고 "霜心玄圃 淸寒菊, 石骨靑山 瘦落秋"를 외 워주시며 "先靈文明이 아닐넌가"라고 心告하고 바드라 하시고 "千里湖程孤棹遠 萬方春氣 一筐圓"을 외워주시며 "先王文明이 아닐넌 가"라고 心告하고 바드라 하시고 "時節花明 三月雨, 風流酒洗 百年 塵"을 외워주시며 "先生 先靈 先王合德文明이 아닐넌가"라고 心告 하고 바드라하시고 "風霜閱歷 誰知己 湖海浮遊 我得顔 驅情萬里山河友 供德千門日月妻"를 외워주시며 "우리의 得意秋가 아닐넌 가"라고 心告하고 바드라 하신 후에 "時勢를 斟酌컨대 大人輔國正知身 磨洗塵天運氣新 遺恨警深終聖意 一刀分在萬方心"이라 唱하시며 가라사대 이 글은 閔泳煥의 挽章이니 "一刀分在萬方心"으 로하야 世事 알게되리라" 하시고  가라사대 "四五世無顯官先靈生儒學死學生二三十不功名子孫入書房出碩士"라 하시니라.


9. 丙午 十月에 耶蘇敎堂에 가사 모든 儀式과 敎義를 聞見하신 後에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足히 取할 것이 업다 하시니라.


10. 하로는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世上에 學校를 넓이 세워 사람 을 가라침은 將次 天下를 크게 文明케하야 써 天地의 役事를 식히 려 함인대 現下의 學校敎育이 學人으로 하여금 卑劣한 功利에 지 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밧게서 成道하게 되엿노라.


11. 丁未 四月에 辛 元一을 다리고 泰仁 關王廟 祭員 辛 敬彦의 집에 가서 머무르실 새 敬彦과 辛 京元, 金 京學, 崔 昌祚, 崔 乃敬, 崔 德兼이 從遊하니라.


12. 五月에 龍巖里 水砧幕에서 머무르실 새 그 압 酒店에서 井邑人 車 京石을 만나시니라. 京石이 全州로 가는 길에 이 酒店에서 午飯을 먹고 나려 할 새 先生이 대 삿갓에 푸단님으로 金 自賢等 數人을 다리고 오시니 京石이 그 소탈한 가운대 씩씩한 긔운을 신 儀表 와 純眞한 가운대 巧飾이 업스신 言語動止를 보고 非凡히 녁여 말 삼을 請하니 先生이 溫和하게 對答하신 지라. 京石이 禮畢에 무러 가로대 失禮이오나 무슨 業을 하시나잇가. 先生이 웃으시며 가라사 대 醫業을 行하노라.  무러 가로대 어느 곳에 머무르시나잇가. 가라사대 나는 東亦客西亦客天地無 家客이로라 하시더라. 京石은 元來 東學信徒로서 孫 秉熙를 조치다가 모든 것이 마음에 合하지 아니하야 다시 길을 고치려 하든 차이라. 이날 先生을 뵈임에 모든 行儀가 凡俗과 다름에 異常히 녁여 짐짓 나지 아니하고 저몰기를 기다려서 先生의 도라 가시는 곳을 라가니 곳 龍巖里 水砧幕이 라. 그 食事와 凡節이 너무 粗率하야 一時라도 견대기 어렵더라. 先生이 京石의 나지 아니함을 괴로워하사 물너가기를 督促하되 京石이 나지 아니하고 自己의 집으로 가시기를 懇請하니 先生이 或 震怒도 하시며 或 凌辱도 하시며 或 驅逐도 하시되 京石의 觀察 에는 모든 일이 더욱 凡常치 아니할  아니라 東學歌詞에 "如狂如醉 저 냥반을 간 곳마다 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누구다려 한말 이며" 라는 句節에 感悟하야 드대여 나지 아니하고 十日間을 머 무르면서 師事하기를 固請하거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네가 나를 으려면 모든 일을 全廢하고 나의 가르치는 바에 一心하여야 할지 니 이졔 도라가서 모든 일을 整理하고 다시 이곳으로 차자오라. 京 石이 이에 하직하고 집에 도라가서 모든 일을 整理하고 六月 一 日에 다시 龍巖里에 와서 先生 뵈입고 井邑으로 가시기를 懇乞하 니 先生이 다시 拒絶하시다가 三日後에야 許諾하여 가라사대 내가 깁흔 목물에 져서 허덕거리다가 겨우 벗어나서 발목 물에 當하엿 는대 이졔 네가 다시 깁흔 물로 어들인다 하시니라.

13. 水砧幕을 나 院坪에 이르사 群衆을 불너 술을 주시며 가라사대 이 길은 南朝鮮 배질이니 짐을 채워야 나리라 하시니 모든 사람 은 그 意味를 알지 못하니라. 다시 나시며 가라사대 大陣은 日行 三十里라 하시니 京石이 聞命하고 里程을 헤아려서 古阜 松內에 이 르러 知友 朴 公又의 집으로 先生을 모시니 公又도 한 東學信徒 로서 마참 四十九日間 禱天 하든 러라.


14. 先生이 京石,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졔 만날 사람 만낫스니 通情神이 나온다. 나의 일은 비록 父母兄弟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西洋 大法國 天啓塔 天下 大巡이라. 東學呪에 "侍天主 造化定"이라 하엿스니 내가 天地를 開闢하고 造化政府를 열어서 人天의 混亂을 安定케 하려하야 三界를 周視하다가 너의 東土에 그처 殘疲 에 헤매인 民衆을 몬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밋는者는 無窮한 寧福 을 어더 仙境의 樂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東學이라. 弓乙歌에 "朝鮮江山名山이라 道通君子 다시난다." 하엿스니 이 일을 일음이니 라. 東學信者間에 崔 水雲이 更生하리라고 傳하나 죽은 者가 다시 사라오지 못하는 것이오. 내가 곳 代先生이로다.


15. 翌日에 松內를 나 井邑 大興里로 向하실 새 公又를 도라보시며 가라사대 만낫 슬적에 하시니 公又가 문듯 東學歌辭에 "만나기만 만나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 라는 句節이 感悟되야 드대여 라 나서니라.


16. 이 날 大興里 京石의 집에 이르사 글을 써서 西壁에 붓치시니 문듯 雷聲이 大作하거늘 先生이 速하다 하시고 그 글을 여 무릅 밋헤 너으시니 雷聲이 곳 그치는지라. 公又는 크게 驚服하고 村人은 밧게 일어나는 白日 雷聲을 異常히 녁이니라.


17. 이 後에 東學信者 安 乃成, 文 公信, 黃 應鍾, 申 京守, 朴 壯根 等 이 相繼從遊하니라.


18. 이에 金 光贊은 銅谷에 잇서 車京石의 從遊함을 厭惡하여 가로 대 京石은 本來 東學餘黨으로 一進會에 參加하야 不義를 만히 行하 엿거늘 이졔 道門에 들임은 先生의 不正大하심이라. 우리가 힘써 마음을 닥거 온 것이 다 쓸대업게 된다하고 날마다 先生을 원망하거늘 亨烈이 민망하야 先生 와 뵈입고 光贊의 不平가진 일을 告 하며 가로대 엇지 이런 性格가진 者를 門下에 두셧나이가. 先生이 가라사대 龍이 물을 求할 에 비록 荊棘이 當道할 지라도 避치 아니하나니 도라가서 잘 撫諭하라 하시니라.


19. 하로는 京石에게 "溪分洙泗派, 峯秀武夷山, 襟懷開霽月, 談笑止狂瀾, 活計經千卷, 行裝屋數間, 小臣求聞道, 非偸半日閑"의 古詩를 외 워 주시고 京石을 다리고 淳昌 籠巖 朴 壯根의 집에 가사 그 머음을 불너 무르사대 昨夜에 무슨 본 일이 잇섯나냐. 머슴이 對하야 가로대 어재밤 에 한 老人이 籠岩을 열고 甲冑와 長劍을 내여주 며 이것을 가저다가 主人을 차저 傳하라 함으로 내가 바더다가 이 房에 두엇는대 곳 車 京石의 안즌 자리니이다 하니라. 大抵 그 地 方에서는 籠岩속에 甲冑와 長劍이 드러 잇는대 將軍이 나면 내여 가리라는 俗言이 傳하여 오니라.


20. 그 後에 淳昌으로부터 도라오실 새 泰仁 古縣里 杏坍에 이르사 京 石다려 일너 가라사대 孔子가 杏坍에서 講道하엿나니 이졔 여긔서 네게 한 글을 專하리라 하시고 古書一章을 외워주시며 잘 服膺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부주장지법(夫主將之法) 무람영웅지심(務攬英雄之 心) 상록유공(賞祿有功) 통지어중(通志於衆) 여중동호미불성(與衆同好靡不 成) 여중동오미불경(與衆同惡靡不傾) 치국안가(治國安家) 득인야(得人也) 망국패가(亡國敗家) 실인야(失人也) 함기지류(含氣之類) 함원득기지(咸願 得其志)"


21. 그 後에 井邑에 계실 새 京石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는 今後로 出入 을 廢하고 집을 직히라. 이것이 自獄度數니라.


22. 十一月에 東谷에 이르사 公事를 行하시고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머리를 그리니 너도 한 머리를 그라. 亨烈이 마음으로 는 즐겨하지 아니하나 强然히 應諾하엿더니  甲七을 불러 가라사 대 내가 머리를 그리니 明日 大願寺에 가서 錦谷 住持를 불너오 라 하시거늘 亨烈이 크게 근심하엿더니 그 뒤에 다시 말삼치 아니 하시니라.


23. 하로는 亨烈에게 古書一章을 외워주시며 잘 服膺하라 하시니 이러 하니라. "夫用兵之要, 在崇禮而重祿, 禮崇則義士至, 祿重則志士輕死, 故祿賢不愛財, 賞功不逾時, 則士卒並, 敵國削"


24. 그 後에  亨烈에게 古詩를 외워주시며 잘 記臆하라 하시니 이러 하니라. "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急地尙思緩, 安時不忘危, 一生從此計, 眞個好男兒"


25.  亨烈에게 古詩를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明月千江心共照, 長風八隅氣同驅"


26. 하로는 亨烈을 命하사 紙片에 六十四卦를 點치고 二十四方位字를 둘너 쓰이사 太陽을 向하야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與我同居하자 하 시고 亨烈을 도라보시며 가라사대 잘 밋는 者에게 海印을 傳하여 주리라 하시니라.


27.  가라사대 선배는 반다시 몸에 紙筆墨을 가저야 하나니라.


28. 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선배는 大學經 一章 章下를 알어두어야 하나니라 하시고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右經一章 盖孔子之言而曾子述之, 其餘十章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 舊傳頗有錯簡 今因程子所定 而更考經文 別有序次如左"


29.  亨烈에게 秦誓章을 외워주시며 잘 記憶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如有一介臣斷斷猗, 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 人之有技若己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 不啻如自其口出, 是能容之以保我子孫黎民, 尙亦職有利哉, 人之有技, 冒疾以惡之, 人之彦聖而違之, 俾不達, 是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30. 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는 모든 말을 뭇는 者가 잇거든 듯고 實行이야 하든지 아니하든지 바른 대로 일너주라 하시니라.


31. 하로는 泰仁 白巖里 金 京學이 와 뵈입거늘 先生이 命하사 金 自善 의 집에 留宿케 하시고 翌日에 自善의 집에 이르사 京學다려 昨夜 에  본 것을 말하라 하시니 京學이 엿주어 가로대 에 一匹狗가 테 지 아니한 우물에 지는 것을 보고 죽을가 念慮하야 차가 서 救해 내려 하엿더니 그 개가 다시 우물에서 여나와 다른 곳으 로 가더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俚言에 姜姓을 개라 하나니 네가  을 올케  었다 하시니라.


32. 朴 公又가 三年동안 先生을 侍從하며 天地公事에 만히 奉公하엿는 대 매양 公事後에는 各處 從徒에게 巡廻演布하라 命하시며 가라사 대 이 일은 곳 天地의 大巡이라 하시니라.


33. 戊申 六月에 先生이 光贊에게 무러 가라사대 네가 平居에 나를 엇 더한 사람으로 稱呼하엿나냐. 對하야 가로대 村兩班이라고 稱呼하엿나이다.  무러 가라사대 村兩班은 너를 엇더한 사람이라고 稱呼하겟나냐. 對하야 가로대 邑아전이라 할 것이외다. 先生이 가라 사대 村兩班은 邑아전다려 邑아전놈이라하고 邑吏는 村兩班다려 村兩班놈이라 하나니 이것이 다 不平줄이라. 이제 너와 내가 서로 和解하면 天下가 다 和平하리라 하시니라.


34. 하로는 金 亨烈이 出行하엿다가 耶蘇敎人에게 無數한 凌辱을 當하 고 도라와서 先生그 事由를 알외니 先生이 가라사대 淸水一器를 놋코 스사로 허물을 삷혀 뉘웃치라. 亨烈이 命하신 대로 하엿더 니 그 後에 그 사람이 病들어서 死境에 이르럿다가 어렵게 回春하 엿다 하거늘 亨烈이 듯고 알왼대 先生이 가라사대 이 後로는 그런 일을 當하거든 조금도 그를 원망치 말고 스사로 몸을 삷히라. 만일 허물이 네게 잇는 에는 그 허물이 다 풀닐 것이오. 허물이 네게 업는 에는 그 毒氣가 근본으로 도라 가나니라.


35. 七月에 白巖里에 계실 새 金 永學이 京學의 薦人으로 와 뵈이거늘 七日이 지나도록 더부러 말삼치 아니하시니 永學이 크게 憤恚하는 지라. 公又,元一이 일너 가로대 誠意로써 師事하기를 請하면 밝히 가라치시리라. 永學이 그 말을 조차 先生 師事하기를 請한대 先 生이 許諾하시더니 문듯 크게 지즈시거늘 永學이 한편오로는 恐惧하고 한편으로는 憤하야 門外로 나간지라. 이윽고 永學을 불너 가라사대 너를 지즌 것은 네 몸에 잇는 두 척神을 물니치려함이 니 너는 不平히 생각지 말라. 永學이 가로대 무슨 척神이닛가. 닷지 못하겟나이다. 가라사대 네가 十八歲에 殺人하고 今年에도 殺人하엿나니 잘생각하여보라. 永學이 생각하니 十八歲에 南原에서 全州吏 金某와 交語하다가 그 無禮한 말에 怒하야 火爐를 던저 그 頭部를 打傷 하엿더니 일로부터 呻吟하다가 翌年 二月에 身死하엿고 今年春에 長城 麥洞에 居住하는 外叔 金 堯善이 義兵에게 掠奪 을 當한 故로 義兵大將 金 永伯을 長城 白羊寺에서 차저보고 그 非 行을 지젓더니 永伯이 謝過하고 犯人을 調査하야 砲殺한 일이 잇 슴으로 비로소 恍然히 달어 알왼대 先生이 가라사대 正히 그러하다 하시니라.


36. 大興里에 계실 새 하로는 車 京石, 安 乃成, 朴 公又를 다리고 압내에 나가 沐浴하실 새 京石을 命하사 白鹽一掬을 가저다가 물우에 리게 하시고 물에 들어서시며 가라사대 고기잡이를 하리라 하시더니 문듯 京石의 다리를 잡고 가라사대 큰고기를 잡엇다 하시거늘 京石이 가로대 내 다리로소이다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그럿케 되엿나냐하시고 노으시니라.

37. 安 乃成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는 반다시 農事를 부즈런히하야 밧그 로 奉公의 義務를 다하며 안으로 先靈의 祭祀와 養老育英의 일을 힘써 나의 도라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38. 八月에 銅谷에 계실 새 車 京石이 從遊함으로부터 家業을 不治하야 家産이 날로 零替 하는지라. 그 아우 輪七이 不平히 생각하되 先生 을 르면 福을 밧는다 하더니 이졔 福은 멀어지고 貧苦가 라드 니 이는 한갓 誣惑에 不過함이라. 내가 先生 가서 質問하리라 하 고 銅谷으로 오다가 途中에서 비를 만나고 진흙에 업드러저서 衣服 을 망처 가지고 先生 와 뵈이니 先生이 놀낸 빗으로 일너 가라사 대 이 附近에 義兵이 出沒함으로 官兵이 四方으로 偵察하니 만일 네가 冒雨行路한 모양을 보면 義兵으로 誤認하야 困辱을 줄 것이니 僻處에 隱居하야 내가 불을  지 기다리라하시고 亨烈로 하여금 잘 隱匿케 하엿다가 翌日에 輪七을 불으사 돈 五十兩을 주시며 가 라사대 내가 數日後에 井邑으로 가리니 도라가서 기다리라. 輪七은 무렴에 싸엿슬 아니라 數日後에 井邑으로 오시겟다는 말삼을 듯 고 마음이 좀 풀녀서 質問은 後日로 밀우고 도라가니라.


39. 數日後에 先生이 古阜 臥龍里에 가사 京石에게 傳命하사대 나를 보 랴거든 古阜學洞으로 오라 하시거늘 翌日에 京石이 學洞으로 와서 뵈이니 先生이 돈 五十圓을 주시면서 가라사대 너를 불으기는 이 一極을 주려함이라. 내가 輪七을 두려워서 네 집에 가지 못하노라. 京石이 돈을 밧고 惶懼하야 엿주어 가로대 무슨 일로 그리하시나잇 가. 가라사대 日前에 輪七이 殺氣를 고 銅谷에 왓는대 돈이 아니 면 풀기 어렵기로 돈 三圓을 주어서 돌녀보냇노라. 京石이 慌忙히 도라와서 輪七을 불너 무르니 果然 事實을 自白하니라.


40. 翌日에 學洞을 나실 새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나의 이번 길은 한 사람의 절을 밧기 爲함이니 이번에 바든 절이 天下에 넓이 밋치 리라 하시니라.


41. 己酉 節日에 京石이 그 祖先에 享祀하려 하거늘 先生이 그 供備한 饌需를 가저오라하사 여러 從徒들로 더부러 잡수시며 가라사대 이 것이 곳 節祀라 하시니 그 後로는 매양 節祀와 忌辰을 當하면 天師  供享하니라.


42. 先生이 狗肉을 즐기사 가라사대 이 고기는 上等人의 飮食이니라. 從徒들이 그 理由를 무른대 가라사대 이 고기를 農民이 즐기나니 이 世上에 上等人은 곳 農民이라. 先天에는 道家에서 이 고기를 忌 하엿슴으로 魍魎이 應치 아니하엿느니라.


43. 하로는 金 自賢이 그 祖母의 葬禮를 行하려고 運轝하야 所定地로 向하거늘 先生이 銅谷압헤 金礦터를 가라치시며 "이곳에 埋葬하 라." 하시니 自賢이 듯지 안커늘 先生이 가라사대 "畵龍千年에 眞龍이 이름을 모른다." 하시니라.


44. 하로는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古阜故里에 가면 모든 族屬의 高行者를 對할  반다시 行列을 라서 말하게 되나니 이것은 倫理上 傳統이라 무슨 關係가 잇리리오마는 모든 神明은 그 不敬한 言辭를 글니녁여 반다시 罰을 주나니 그럼으로 나는 이 일을 어려 워서 親族과 交通을 稀少케 하노라.


45. 하로는 亨烈을 命하사 光贊, 甲七에게 太乙呪를 만히 닑으라 하시 고 金 炳善(光贊의 姪)에게 桃李園序를 口誦千讀하라 하시고 京石, 乃成에게 侍天主呪를 唇舌不動하고 만히 黙誦하라 하시니라.


46. 四月에 龍頭峙에 머무르실 새 光贊다려 일너 가라사대 네가 金 秉 旭의 집에 잇스면서 내가 傳하는 글을 一一히 淨書하야 가저오라 하시고 亨烈로 하야금 글을 傳하야 淨書 하여 온 後에 光贊다려 일 너 가라사대 이 글을 世上에 傳함이 可하냐. 對하여 가로대 대로 하소서. 先生이 가라사대 井邑에 한 冊을 두엇스니 그 글이 낫 허나면 世上이 다 알이라 하시고 드대여 불살으신 後에 銅谷으로 도라오시니라. 그 글은 다만 光贊의 記憶된대로 一節을 傳하여 온 것이 이러하니라.


"士之商職也 農之工業也 士之商農之工職業也 其外他商工.

留所(疑有闕文) 萬物資生, 羞耻, 放, 蕩, 神, 道, 統

春之氣放也, 夏之氣蕩也, 秋之氣神也, 冬之氣道也.

統以氣之主張者也, 知心大道術, 戊申十二月二十四日左旋


四三八 天地魍魎主張

九五一 日月竈王主張

二七六 星辰七星主張

運 至氣今至願爲大降

無男女老少兒童咏而歌之 

是故永世不忘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47. 하로는 金 德贊에게 洋紙一枚를 주시며 七星經을 쓰라하시니 德贊 이 字樣의 大小를 무른대 가라사대 隨意하여 쓰라 하심으로 德贊이 대로 쓰니 紙面에 滿載하고 다만 三字쓸만한 餘白이 남엇거늘 이 에 그 餘白에 七星經 三字를 쓰라하사 불살으시니라.


48. 하로는 全州 金 俊贊의 집에 계실 새 金 洛範에게 무러 가라사대 近日에 關廟에 致誠이 잇나냐 對하야 가로대 잇나이다. 가라사대 그 神明이 이 地方에 잇지 아니하고 멀니 西洋에 가서 大亂을 일으 키나니 致誠은 헛된 일이니라.


49. 하로는 車 京石, 金 光贊, 黃 應鍾을 압헤 셰우신 後에 公又에게 몽치를 들니고 輪京에게 칼을 들니사 하여금 너희들이 이 後에도 지금 스승을 모시고 잇듯이 變改함이 업겟나냐. 日後에 만일 마음 을 變改함이 잇스면 이 몽치로 더숙이를 칠 것이오, 이 칼로 割腹 을 하리라고 警告하야 써 屈服케 하시니라.


50. 매양 銅谷 압 大樹下에서 소풍하시며 金山안과 龍華洞을 가라처 가 라사대 이곳이 내 墓址라. 將次 밧이 될 것이오. 이곳에 人城이 싸이리라 하시고  "天皇地皇人皇後에 天下之大金山寺"라고 말삼하시니라.


51. 하로는 여러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大運을 바드려 하는 者는 書傳序文을 만히 誦讀하라하시고  가라사대 "且生於數千載之下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亦己難矣"의 一節은 淸水를 놋코 닑을만한 句節이라 하시니라.


52. 하로는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道通이 乾坎艮震巽離坤兌에 잇 나니라 하시니 柳 贊明이 侍坐하엿다가 大聲으로 乾坎艮震巽離坤兌 를 닑고 나가니라.


原文: 崔 德兼이 엿주어 가로대 天下事는 엇더케 되오릿가. 先生이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를 쓰시며 가라사대 이러하리라. 自賢이 가 로대 이것을 解釋하기 어려우니이다. 先生이 다시 그 우에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를 쓰시고 京石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두 줄은 뵈 는 바듸와 머리 빗는 빗과 갓흐니라 하시니라.


53.  가라사대 二十四節候文이 조흔 글인대 世人은 다 모르나니라. 俚言에 節候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해의 無知蒙然한 것을 철不知라 하야 少年도 知覺을 차린 者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老人도 沒知覺 하면 철不知한 兒孩와 갓다 하나니라.


54. 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大祥이란 祥字는 祥瑞라는 祥字니라.


55. 하로는 公事를 行하시고 "大丈夫 大丈婦"라 써서 불살으시니라.


56. 하로는 某處에서 少婦가 夫喪을 當한 後에 殉節하엿다하거늘 先生 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惡毒한 鬼神이 無故히 人命을 殺害한다 하시 고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 이러하니라.


"忠孝烈國家之大綱然 國亡於忠 家亡於孝 身亡於烈"


57. 하로는 金 松煥에게 古詩를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小年才氣拔天摩, 手把龍泉幾歲磨, 石上梧桐知發響, 音中律呂有餘和, 口傳三代詩書敎, 文記千秋道德波, 皮幣已成賢士價, 賈生何事怨 長沙"


58. 先生이 自己에게 對하야 甚히 不敬하며 凌辱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禮로써 優待하심으로 從徒中에 或 不可히 생각하는 者가 잇스면 곳 일워 가라사대 저들이 나에게 不敬함은 나를 모르는 緣故라. 만 일 나를 잘 알면 너희들과 조금도 다름이 업스리라. 저희들이 나를 알지 못하고 不敬하며 凌辱함을 내가 엇지 介意하리오 하시니라.


59. 하로는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過去에는 道通이 나지 아니 하엿 슴으로 陰害를 이긔지 못하야 成事되는 일이 적엇으나 이 後로는 道通이 낫슴으로 陰害하려는 者가 도로혀 害를 닙으리라.


60.  가라사대 耶蘇敎徒는 耶蘇의 再臨을 기다리고 佛敎徒는 彌勒의 出世를 기다리고 東學信徒는 崔 水雲의 更生을 기다리나니 누구든 지 한 사람만 오면 각히 저의 스승이라 하야 르리라.


61.  가라사대 내가 出世할 에는 天地가 震動하고 雷聲霹靂이 大作 하리니 잘못 닥근 사람은 죽지는 아니하나 안질 자리가 없서서 參 席하지 못할 것이오. 갈 에는 라오지 못하고 업드러지리라.


62. 하로는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大人의 行次에 三哨가 잇나니 甲 午에 一哨가 되엿고 甲辰에 二哨가 되엿고 孫秉熙는 三哨를 맛텃나 니 三哨 헤는 大人이 나오나니라 하시고 孫 秉熙의 挽詞를 지어 불살으시니 이러하니라.


"知忠知義君事君, 一魔無藏四海民, 孟平春信倍名聲, 先生大羽振日新"


63. 하로는 朴 公又가 先生 엿주어 가로대 道通을 주시옵소서. 先生 이 지저 가라사대 이 무슨 말이뇨. 各 姓에 先靈神 一名式이 天 上公庭에 參列하여 잇나니 이졔 만일 한사람에게 道通을 주면 모 든 先靈神들이 모아드러 偏僻됨을 詰難할지라. 그럼으로 나는 私情 을 쓰지 못하노라. 이 後에 一齊히 그 닥근 바를 라 道通이 열니 리니 孔子는 다만 七十二人만 通藝를 식엿슴으로 엇지 못한 者는 모다 含寃하엿나니라. 나는 누구에게나 그 닥근 바에 라서 道通 을 주리니 上才는 七日이오. 中才는 十四日이오. 下才는 二十一日 만이면 各各 成道하게 되리라.


64.  가라사대 先天 英雄時代에는 罪로써 먹고 살며 後天 聖人時代에 는 善으로써 먹고 사나니 罪로써 먹고사는 것이 長久하랴. 善으로 써 먹고 사는 것이 長久하랴. 이졔 後天衆生으로 하여금 善으로써 먹고살게 할 度數를 노앗노라.


65. 古阜 校洞 申 京守가 猪一首를 飼畜하다가 盜失하고 先生 와서 그 事由를 告한 대 先生이 가라사대 그 돗을 찾지 말라. 네가 前生 에 그 사람의 집에 가서 돗을 잡어 온 일이 잇섯나니라.


66.  가라사대 蒼生이 大罪를 지은 者는 天罰을 밧고 小罪를 지은 者 는 人罰 或은 神罰을 밧나니라.


67. 世俗에 傳하여 나려온 모든 儀式과 虛禮를 글으게 녁여 가라사대 이는 묵은 하눌이 글으게 민 것이니 將次 眞法이 나리라.


68. 除禮 陳設法을 보시고 가라사대 이는 묵은 하눌이 글읏 定한 것이 니 모든 饌需는 긋하고 맛잇는 것이 貴한 것이오. 그 노혀잇는 위치로 因하여 貴重케 되는 것은 아니니라.

69. 喪服을 보시고 미워하야 가라사대 이는 乞人 죽은 鬼神이 지은 것 이니라.


70. 하로는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나의 일은 엇든 蕩者의 일과 갓흐 니 古代에 엇든 사람이 志操가 堅實치 못하야 放蕩히 지내더니 하 로는 홀로 생각하되 내 一生에 아모것도 成就한 바 업고 이졔 한갓 老衰에 이르게 되니 엇지 恨할 바 아니리오. 일로부터 改心하야 仙 人을 차저 仙學을 배우리라하고 黙然良久에 문듯 心神이 飄揚하야 飄然히 昇天하야 한 仙人을 만나니 그 仙人이 가로대 네가 이졔 放 蕩을 뉘웃치고 仙學을 하니 其志가 嘉尙이라. 내가 네게 仙學을 가라치리니 네가 淨地에 道場을 設하고 多數한 同學을 모아 기다리 라. 내가 장차 臨場하야 仙學을 傳授하리라. 그 사람이 聽命한 後 에 仙人을 辭하고 精神을 收拾하니 氣味가 灑落한지라. 이날로부터 淨地를 갈히고 同志를 求하니 그의 放蕩한 前習에 懷疑하야 聽從한 者가 적고 다만 그와 平素에 氣味가 投合된 者 幾個人이 會合하야 宴을 設하고 道場을 開하엿더니 문듯 天空으로부터 五雲이 燦爛하 고 仙樂이 淸亮히 들니더니 俄而오 그 仙人이 臨場하야 一齊히 仙 學을 傳授하엿나니라.


71.  가라사대 나의 일은 呂 洞賓의 일과 갓흐니 呂 洞賓이 人間에 有緣者를 갈혀 長生術을 傳하려고 빗장사로 變裝하야 街道에서 외 처 가로대 이 빗으로 빗으면 흰 머리가 검어지고 굽은 허리가 펴여 지고 衰한 氣力이 强壯하여지고 늘근 얼골이 절머지나니 이 빗갑이 천냥 이로라 하거늘 世人이 虛誕하게 생각하야 信從치 아니함으로 한 老婦에게 試驗하니 果然 所言과 갓흔지라. 모든 사람이 그졔야 다투어 모아드니 洞賓이 드대여 昇天하니라.


72.  가라사대 四十八將을 느려 세우고 玉樞門을 열 에는 精神차리 기 어려우리라.


73. 俚言에 집으로 만든 鷄龍이라 하나니 世上이 막 일너 주는 것을 모 르나니라.

74. 車 京石에게 일너 가라사대 東學은 차정으로 亡하엿나니라.


75.  가라사대 運數를 열어 주어도 이긔여 밧지 못하면 그 運數가 本 處로 도라오기도 하고  남에게 그 運數를 앗기기도 하나니라.



제 5 장  치 병


1. 壬寅에 先生이 醫法을 花亭里 李 京五의게 처음 베푸시니라. 李 京 五는 大願寺 住持 朴 錦谷과 親誼가 잇슴으로 그 病勢가 危篤함을 錦谷의게 말하야 醫士를 넓니 求하여 주기를 請하니 錦谷이 先生의 神聖하심을 암으로 그 일을 禀告하야 神力을 베풀어 주시기를 懇請 하거늘 先生이 京五를 가보시니 그 病症은 左足無名指가 저리고 쑤 시어 午後로부터 새벽지 다리가 부어 올나 다리 全部가 큰 기둥 과 갓치 되엿다가 아참으로부터 浮氣가 내려 正午에는 原狀을 回復 하야 이러케 三四年동안을 寸步를 옴기지 못하고 坐躄이 되여 잇더 라. 先生이 가라사대 이 病症이 진실로 怪異하도다. 모든 일이 적 은 일로부터 큰일을 헤아리나니 내가 이 病으로써 準的을 삼아 天 下의 病을 다사리기에 試驗하리라 하시고 손으로 만저 내리신 後에 簷末로부터 러지는 雨水를 바더서 씻으라 命하섯더니 京五- 命하 신 대로 簷水를 바더 씻음에 곳 나으니라.


2. 全州 宇黙谷 李 京五의 幼兒가 腹痛이 잇서 여러 날 大小便을 不通 하야 生命이 危篤한지라. 京五가 幼兒를 안고 와서 施療하심을 請 한대 先生이 幼兒를 압헤 눕히시고 손으로 배를 내려 만지시니 곳 小便을 通하는지라. 그릇에 小便을 바더서 두엇다가 내여본즉 그릇 바닥에 무슨 粉末이 沈澱되여 잇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것은 糖粉 이라. 幼兒가 만히 먹으면 汗門이 막히고 이러한 病이 發하기 쉬우 니 注意하라 하시니라.


3. 癸卯 三月에 全州府에서 머무르실 새 張 孝淳의 女가 幼時로 부터 蛔腹을 알어 每年 三四回를 月餘式 苦痛하더니 이해에는 數朔을 連 痛함에 生命이 危殆에 瀕하거늘 孝淳이 그 일을 알외고 施療하시기 를 哀乞하니 先生이 그 女婿를 불으사 夫婦리 壁을 間隔하야 서 로 등을 마추어 서라 하시니 그 女婿 - 命하신대로 함에 妻의 痛症 은 곳 낫고 그 病勢를 옴겨서 알커늘 先生이 손으로 만저 나수시니 라.


4. 金 允根이 무근 痔疾로 數十年을 알어 오다가 이해에는 더욱 甚하 야 起動을 못하고 누엇거늘 先生이 불상히 녁이사 每朝에 侍天呪 七遍식 닑으라 하섯더니 允根이 그대로 하야 數日만에 곳 나으니 라.


5. 古阜人 李 道三이 癎疾이 잇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나를 르라 하시고 누어서 자지 못하게 하엿더니 食後이면 腹痛이 發하고 大便에서 痰이 석겨 나오다가 十四日만에 나으니라.


6. 甲辰 九月十日에 咸悅 會仙洞 金 甫京의 집에 가시니 개가 甚히 짓 고 나오더라. 이? 甫京이 病들어 누어서 크게 危篤하므로 先生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우스시며 가라사대 主人의 病은 임의 저 개에게 옴겻스니 근심말나 하시더니 果然 甫京의 病은 곳 快復 되고 그 개는 病들어 三日만에 죽으니라.


7. 十二月에 銅谷에 이르시니 金 甲振이 積年된 癩病으로 面部와 手足 에 浮腫이 나고 眉毛가 젓더니 先生의 神聖하심을 듯고와 施療를 哀請하거늘 先生이 甲振으로 하여금 正門밧게서 房을 向하야 서게 하시고 金 亨烈과 그外 數人으로 하여금 大學經一章 章下를 誦讀케 하신 後에 돌녀보내시더니 일로부터 甲振의 病이 全快하니라.


8. 銅谷里前에서 酒商하는 全 順一이 長病으로 오랫동안 委痛하다가 先生 뵈입기를 至願하거늘 先生이 韓 公淑을 다리고 그집에가사 順一다려 일너 가라사대 나잇는 곳에 酒案一床을 차려오라 하시고  일너 가라사대 醫師가 나니 病人은 門밧게 나와 送別하라 하 시니 順一이 强作하야 사람을 붓들고 이러나서 門밧게 나와 送別함 에 病勢가 곳 快差하니라. 그 後로 順一이 酒案을 차려오지 아니하 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사람이 口味를 엇지 못하야 辛苦하리라 하시더니 果然 順一이 口味가 도라서지 아니하야 數朔을 辛苦하니 라.


9.  그 이웃집에 酒商하는 金 士明의 아들 成玉이 六,七歲되엿는대 어느 날 急病에 걸녀 죽거늘 半日이 넘도록 살니려고 百方周旋하여 도 回甦할 餘望이 업는지라. 할 일 업시 그 母가 死兒를 안고 銅 谷藥房에 다다르니 先生이 그 外門에 當到할 에 미리 알으시고 문듯 가라사대 藥房이 運否하려고 屍體를 안고 오는 者가 잇다 하 시더라. 成玉의 母는 屍體를 先生의 압헤 누이고 號哭하면서 살녀 주시기를 哀乞하거늘 先生이 우스시며 死體를 무릅우에 올녀 누이 시고 배를 만저 나리시며 虛空을 向하야 "眉叟식혀 尤菴 불으라." 고 큰소리로 웨치신 後에 춤을 흘녀서 死兒의 입에 너으시니 死兒 가 문듯 肛門으로 醜汁을 소드며 큰소리를 치고 回甦하거늘 이에 米飮을 지어서 먹이시고 걸녀서 도라가게 하시니라. (成玉은 現今 壯年인데 銅谷에 居住함)


10. 銅谷 金 昌汝가 累年 積滯로 飮食을 먹지 못하야 形容이 憔悴하거 늘 先生이 불상히 녁이사 平床우에 누이신 後에 배를 어르만지시며 亨烈을 命하사 "조래천하팔자곡(調來天下八字曲) 누류인간삼월양 (淚流人間三月兩) 규화세침능보곤(葵花細沈能補袞) 평수부종빈읍결 (萍水浮踵頻泣玦) 일년월명임술추(一年月明壬戌秋) 만리운미태을궁 (萬里雲迷太乙宮) 청음교무이객소(淸音鮫舞二客簫) 왕겁오비삼국진 (往劫烏飛三國塵)" 이라는 글을 닑어 주엇더니 그 後로는 昌汝의 滯症이 全快되니라.


11. 全州 龍頭峙 金某가 안즌방이로서 轎子를 타고 와서 施療를 哀乞하거 늘 先生이 그 사람을 압헤 안치시고 煙竹을 들어올니시며 가라사대 이 煙竹을 라 차차 이러서라 하시니 그 사람이 그 徐徐히 들어올 니는 煙管을 라서 무릅과 다리를 漸漸펴며 이러서거늘 이에 亨烈 을 命하사 "예고신(曳皷神) 예팽신(曳彭神) 석란신(石蘭神) 동서남 북중앙신장(東西南北中央神將) 조화조화운오명령우(造化造化云 吾 命令吽"이라는 글을 닑은 後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庭中에 驅步케 하시고 光贊을 命하사 회초리로 죵아리를 려 니 것게 하시고 轎子를 버리고 徒步로 돌녀 보내실 새 謝金 三十兩을 바다 큰 길가 酒店에 나가사 來往 行人을 불너 술을 사주시며 가라사대 다리를 펴주니 고맙다 하시니라.


12. 金溝 水流面 龜尾洞 崔 雲益의 아들이 病들어 死境에 이르럿슴으로 雲益이 와서 살녀주시기를 請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病人의 形 貌가 甚히 醜陋하야 一生에 恨을 품엇슴으로 그 魂이 이졔 支那  潘陽에 잇서서 도라오기를 슬혀하니 엇지 할 수 업노라. 雲益이 그 病子의 形貌를 보는 듯이 알어 말삼하심을 神聖히 녁이며 回甦치 못하리라는 말삼에 더욱 슯허하야 구지 藥을 請하는지라. 先生이 四物湯 한 貼을 지으사 貼紙에 九月飮이라 써주시니 雲益이 藥을 가지고 집에 도라간즉 그 아들은 발서 죽엇더라. 雲益이 도라간 後 에 從徒들이 九月飮의 을 무른대 가라사대 "九月葬始皇於驪山下" 라 하엿스니 살지 못할 을 表示함이로라. 만일 구지 藥을 請하야 엇지 못하면 恨을 품을 것임으로 그 을 慰勞하기 爲하야 藥을 주 엇노라 하시니라.


13. 銅谷 朴 順汝의 母가 年이 六十餘에 病들어 매우 危篤하야 回春될 希望이 업슴으로 治喪諸具를 準備하고 葬禮에 쓸 술지 비저 너엇 더니 先生이 들으시고 順汝의 집에 가사 順汝로 하여금 市場에 가 서 初終에 쓰는 모든 물건을 쓰이지 안케 하여 주라는 心告를 誠意  하고 도라오라 하시고 四物湯 한 貼을 달이신 後 그 病室正 門 밧 階下로부터 十二步를 行하사 을 長方形으로 파고 그 藥을 부 으며 가라사대 病이 임의 葬期에 이르럿스니 藥을 에 써야 되리 라 하시고 도라오시니 病人은 일로부터 곳 回甦하니라. 이에 順汝 - 市場으로부터 도라오거늘 先生이 무러 가라사대 市場에서 누 구에게 心告하엿나뇨. 順汝 對하여 가라사대 先生님 心告하엿나 이다. 先生이 우스시고 그 비저 너엇든 술을 가저오라 하사 이웃사 람들을 불너 난호아 먹이시니라.


14. 丙午 三月에 京城 黃橋 金 永善의 집에 머무르실 새 이웃에 잇는 吳 議官이 三年前부터 肺病에 걸니어 임의 危期에 이르럿더니 永善 에게 先生의 神聖하심을 듯고 와 뵈인後 施療를 懇請하거늘 先生이 글을 써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을 그대의 寢室에 갈머두라. 吳氏가 그대로 하엿더니 그날밤부터 穩睡하고 모든 다른 病祟도 다 녀 完快하니라.


15. 吳 議官의 妻가 少時로부터 晴盲이 되야 앞을 보지 못하더니 그 夫病이 快差되엿슴을 듯고 눈을 게 하여 주시기를 哀願하는지라. 先生이 그 盲人의 寢室正門에 이르사 陽傘대로 을 그어 돌니신 後에 白鹽을 좀 먹이시고 해 이는곳에서 四聖飮 한 貼을 다려서 을 파고 부으시니 그 눈이 煌然히 밝어지니라. 吳 議官의 夫妻는 크게 感泣하야 至誠으로 先生 供養하며 一行의 經用을 負擔하 니라.


16. 銅谷附近에 사는 金 道一이 先生 甚히 倨慢하더니 腹痛이 發하 야 여러날 苦痛하거늘 先生이 道一을 가보시고 손으로 그 胸部로부 터 臍上지 만져 내리고 도라오시더니 그 後로는 臍上腹部에는 痛 症이 업서지고 臍下腹部에는 痛症이 依然한지라. 道一이 사람을 보 내여 先生 다시 만저주시기를 請하니 先生이 道一을 불너오사 房 中에 누이시고 門밧게서 건이르시다가 들어오시며 문득 道一을 지저 가라사대 네가 엇지 長者의 압헤 누엇나뇨 하시고 從徒들을 命하사 일으켜 逐出하시니 道一이 크게 憤怒하야 도라갓더니 그 病 이 그부터 곳 快差하거늘 道一이 비로소 그 지럼이 葯이엿슴을 달으니라. 從徒들이 지럼으로 治療하시는 理由를 무른대 가라 사대 그 病症은 蛔虫의 作用이라. 내가 한 번 만짐에 蛔虫이 臍下 에 나려가서 敢히 擡頭치 못하는대 만일 다시 만지면 녹아서 죽을  아니라 사람의 生命지 危殆할지라. 그럼으로 病人을 憤怒케 하야 蛔虫이 그 긔운을 타고 올나와서 本處로 도라 安靜을 엇게 한 것이니 이것이 醫術이니라.


17. 道一이 病이 나은 後로 腰痛이 나서 풀니지 아니하야 집행이를 집 고 先生 와 뵈이니 先生이 가라사대 病나은 뒤에 오히려 집행이 를 집고 다님은 웬일이뇨. 道一이 對하야 가로대 腰痛이 나서 그리 하나이다. 先生이 光贊을 命하사 그 집행이를 거 버리섯더니 일 로부터 腰痛이 곳 快差하니라.


18. 다시 道一을 命하사 가라사대 西天에 紅雲이 잇는가 보라 하시니 道一이 나가보고 復命하야 가로대 紅雲이 ? 잇나이다. 先生이 가 라사대 金山을 엇기가 어렵다 하시니라.


19. 亨烈이 脚痛으로 因하야 發寒頭痛하며 飮食을 全廢하고 苦悶하거늘 先生이 六十四卦를 暗誦하라 命하시니 亨烈이 그대로 함에 곳 寒氣 가 물너가며 頭痛이 그치고 脚痛도 全快하거늘 極히 異常히 녁여 그 理由를 물은대 先生이 가라사대 八卦 가온대 五行之理가 잇고 葯은 곳 五行의 긔운을 應함인 緣故라 하시니라.


20. 丁未春에 全州 伊西面 佛可止 金 成國의 집에 계실 새 同面 鸛洞 (항새믈)에 사는 文 致道가 先生의 聲名을 듯고 차저 뵈이려 할 새 오는 길에 伊城洞 宋 大有에게 들녀 同行하려 하엿더니 宋 大有는 마침 손이 있어서 同行치 못하고 그 從弟를 同行케하며 가로대 내 從弟가 肺病으로 苦痛한지 數年에 危期에 니르럿으니 姜 先生 말삼을 잘하야 良藥을 어더 줌을 바라노라 하며 돈 二圓을 그 從弟 에게 주며 가로대 이것이 略少하나 가지고 가서 酒肴나 한 供養 하라. 그리고 償還할 에 利息은 업시하라. 病人이 그 돈을 바덧 다가 償還하라는 말을 듯고 一圓을 돌녀주며 가로대 一圓이면 足하 외다 하고 致道를 라서 先生 와 뵈이니라. 致道가 先生 그의 病勢를 알외고 施療를 請한대 先生이 가라사대 吝嗇한 者는 病을 고치지 못하나니라. 致道가 對하야 가로대 이 사람이 元來 貧乏하 야 吝嗇 할 거리가 업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주는 것을 가지고 오지 아니하엿스니 엇지 吝嗇이 아니리오. 病이란 저의 미듬과 誠 意로 낫나니라. 致道는 이 말삼을 듯고 그 神聖無比 하심을 놀내고 病人은 붓그러워하야 도라가니라. 致道가 돈 一圓을 내여 金 成國 에게 부탁하야 畧干의 酒肴를 準備하야 先生 올니니 先生이 무러 가라사대 이것이 어대서 난 것이냐 하시니 成國이 致道의 供養임을 알외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돈이 오날 저녁에 多數한 增殖을 어 들 것인대 부질업슨 일이로다 하시니 대개 그 돈은 그날 저녁에 노 름 資本을 하려 하엿던 것이라. 致道가 더욱 놀내여 天神의 降世이 신 줄로 미드니라. 致道- 물너감을 告한대 선생이 가라사대 病人은 오날 저녁부터 麥飯을 먹게 하라. 그러면 病祟가 곳 니리라. 致 道가 應命하고 病人에게 그대로 일너더니 과연 麥飯으로써 未幾에 全快하니라.


21. 丁未에 亨烈의 從弟 俊相의 妻가 左右 발바당에 腫瘡이 나서 모든 藥에 效驗을 보지 못하고 마참내 死境에 이르럿거늘 俊相이 와서 施療를 請한대 先生이 가라사대 그 患處가 곳 龍泉穴이라. 다사리 기 어려울 것이니 죽는 날만 기다릴 수 밧게 업슬 것이오. 만일 誠 意를 다하야 다사리랴 할진대 一百 兩의 金錢을 消費하여야 하리 라. 俊相이 엿주어 가로대 家勢가 甚히 貧乏하야 一百 兩의 金錢을 出辦키 어려우니 家屋이라도 放賣할 밧게 업나이다. 先生이 가라사 대 그러면 그 家屋을 내게 팔으라. 俊相이 드대어 承諾하고 賣渡文 記를 써 올리니 先生이 바더서 燒火하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어서 患處를 만저 낫게 하야 주신 後에 그 집은 俊相으로 하여금 如前히 居住케 하시고 다만 한 便 房一間을 修理하야 藥局을 設하시니라.


22. 銅谷 朴 順汝가 半身不遂症으로 오래동안 委席하야 活動力을 全失 하엿슴으로 先生 사람을 보내여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金 自賢 에게 무러 가라사대 順汝의 病을 다사림이 올흐냐, 그대로 두어 죽 게 함이 올흐냐. 네가 마음을 플어야 하리라. 自賢이 異常히 녁여 가로대 살녀 주심이 올흐니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順汝가 네게 不 平을 친 일이 만흐니 그러면 너와 함 가서 治療하리라 하시고 自賢을 다리고 順汝의 집에 이르사 휫바람을 한 번 부르시고 病든 다리를 주물너 내리시며 인 물 한 그릇을 먹이섯더니 그 病이 곳 完快되니라. 大抵 自賢이 社交關係로 順汝에게 不平을 가젓는대 先 生이 그 일이 척이 되야 잇슴을 알으시고 무르심이라.


23. 東谷 李 載憲의 妻가 病든지 數年에 形骸만 남엇거늘 載憲이 先生 와 뵈입고 施療를 懇請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그 病은 病人이 平 素에 他人에게 惡言을 만히 하야 그 報應으로 發한 것이니 날마다 悔改하면 病이 졔절로 나으리라. 載憲이 命하신대로 그 妻를 曉諭 하여 날마다 허물을 뉘우치게 하엿더니 그 뒤로 곳 나으니라.


24. 龍巖里압 酒店에 지나실 새 그 酒婦가 連珠瘰癧으로 末境에 이르러 서 先生 施療를 哀乞하거늘 先生이 글을 써서 그 집 개에게 더지 시니 그 개는 곳 업드러저 죽고 酒婦의 病은 곳 나으니라.


25. 朴 公又의 妻가 겨을에 물을 깃다가 氷板에 업드러저서 허리와 다 리를 重傷하야 起動치 못하고 누엇거늘 公又- 크게 걱정하야 淸水 를 놋고 멀니 先生의 계신 곳을 向하야 그 妻의 傷處를 낫게 하 야 주시기를 至誠으로 發願하엿더니 그 妻가 곳 나어 이러 나니라. 그 뒤에 公又- 先生 와 뵈인대 先生이 우스시며 가라사대 "네가 內患으로 얼마나 念慮하엿나냐." 하시니라.


26. 戊申에 車 京石의 小室이 指頭에 바늘 닌 것이 독이나 점점 팔이 저리다가 마참내 半身不遂가 되엿거늘 先生이 六十干支를 쓰시고 한 干支식 닑은심을 라서 傷하엿든 指頭로 힘 집흐라 하신 後 에 다시 命하사 술잔을 들고 건일게 하시니 일로부터 血氣가 流通 되여 곳 快差하니라.


27. 大興里 附近 巨沙幕에 사는 張 成遠의 幼兒가 病들어서 낫이면 낫고 밤이면 身熱과 咳嗽로 잠자지 못하고 數朔동안 苦痛하거늘 成遠이 病兒를 안고 와 施療를 請한대 先生이 가라사대 이 病祟는 곳 西洋 으로부터 멀니 건너 온 飛鼈이니 낫이면 나가 놀고 밤이면 들어오 는 것이라. 不可不 다른 곳으로 옴겨야 나을 터인대 山으로 옴기면 禽獸도 한 生命이오. 바다로 옴기면 漁鼈도 한 生命이니 電線 에 부처서 四方으로 흣터 가게 하리라 하시고 成遠을 命하사 鐵絲 數尺을 求하야 病兒의 머리우에 둘넛다가 電柱밋헤 버리라 하시니 成元이 그대로 하야 곳 나으니라


28. 金 京學의 八歲된 幼兒가 病들어 여러 날을 委痛하거늘 先生이 病 室에 들어가 보시고 지저 가라사대 너의 父親이 들어오는대 일어 나지 아니하니 그런 道理가 어대 잇나냐 하시니 病兒가 두려워하야 일어나니 곳 病이 나으니라. 京學이 父親이라는 말삼을 異常히 녁 여 생각하니 일 즉 俗例를 라 金山寺 彌勒佛에 팔은 일이 잇섯는 대 先生은 곳 彌勒佛이신 닭이라.


29.: 그 後에 京學이 病들어 危篤하거늘 先生이 알으시고 四物湯을 달여 에 붓고 月色을 仰見케 하시니 곳 나어 이러나니라.


30. 金 洛範이 텬포瘡으로 苦痛하다가 하로는 先生이 龍頭峙에 계실 새 洛範이 至誠으로 奉侍하더니 先生이 문듯 震怒하사 지저 가라사 대 네가 엇지 長者압헤서 그럿케 怠慢하뇨 하시니 洛範이 다만 俯 首하야 一方으로는 悚懼히 생각하며 一方으로는 異常히 녁이다가 그 後에 집으로 가 허물을 생각하되 닷지 못하고 悚惧히 지내더 니 그 後로 텬포瘡이 곳 快差하거늘 비로소 先生의 震怒와 譴責이 곳 葯임을 다르니라.


31. 水流面 會坪里에 사는 十八九歲된 少年礦夫가 큰돌에 傷하야 다리 가 부러지고 筋肉이 러저 마참내 그대로 구더서 다리가 攣曲하야 屈伸치 못함으로 先生 와서 施療를 哀乞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내 눈에는 피가 흐르나니라 하시며 몸을 여서 骨節과 血脉을 衝動케 하라 하시니 그 少年이 몸을 솟 아 한 번 에 卽時 그 攣曲되엿든 다리가 펴여 任意로 屈身케 되 니라.


32. 銅谷 李 正三이 髮底腫이 發하야 크게 苦痛하거늘 先生이 보시고 光贊을 命하사 백호를 처주시니 그 腫이 곳 나으니라.


33. 銅谷압헤서 酒商하는 平壤女의 아들이 年五歲인대 坐躄이 되여 起 立치 못함으로 先生 안고 와서 施療를 晴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明朝에 牛肉과 眞油를 좀 먹이고 안고 오라 하시니 平壤女가 窮乏 한 所致로 牛肉은 사 먹이지 못하고 眞油만 먹인 後에 안고 와서 그 事由를 알외니 先生이 누으사 아모 말삼도 아니하신지라. 平壤 女가 甚히 未安하야 病兒를 리며 가로대 病身이 되려거든 찰하리 죽으라하니 病兒가 울며 문듯 다리를 펴고 이러나서 避하야 다라나 거늘 平壤女- 그 光景을 보고 甚히 깃버하야 선생 謝恩하되 先生 은 아모 말삼도 아니하시니라.


34. 黃 應鍾이 先生을 뵈이려고 泰仁 새울 崔 昌祚의 집에 이르니 마침 哭聲이 들니거늘 應鐘이 들어가지 아니하고 昌祚를 불러내서 온 事 由를 말하니 昌祚- 들어가서 先生 告한 後에 나와서 일너 가로대 이제 내 집에 계시나 지금 보시는 일이 잇스니 좀 遲滯하라 함으로 應鐘이 그 압 旅店에 나가서 기다리려하더니 다시 곳 부르시거늘 들어가 先生 뵈이니 先生이 昌祚의 七歲된 아들을 무릅우에 뉘여 안으섯는대 곳 氣息이 러진 屍體러라. 大抵 昌祚의 아들이 그 압 날에 急病으로 因하야 死亡하엿슴으로 昌祚가 先生의 계신 곳으로 차저가 死兒를 回甦케하여 주시기를 哀願하야 先生이 그에 방장 昌祚의 집에 오사 死兒를 살니려 하심이라. 손으로 死兒의 腹部를 만지시고 수저로 淨水를 서 死兒의 입에 너으니 死兒가 左脚을 움즉이거늘 先生이 지저 가라사대 네가 엇지 어른 압헤 누엇나 냐 하시니 死兒가 문듯 눈을 고 精神을 찰여 이러나거늘 先生이 모든 사람에게 私語를 禁하시며 가라사대 이 아해가 머나먼 千里길 을 往還하엿스니 沈靜히 잇서야 할지라. 內室로 옴겨 누이고 미음 을 다려먹이라 하섯더니 翌日에 그 아해가 外室에 나오거늘 그 입 에 眞油를 발으시고 밥을 먹이시니라.


35. 그 後에 孫 秉旭의 妻가 병들어 死境에 이르거늘 黃 應鍾이 그 事 由를 先生 告하니 先生이 應鐘을 다리고 秉旭의 집에 이르사 病 房門밧게 안저 閑談 하시더니 應鐘이 秉旭다려 先生 供待할 술을 準備하라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나 먹을 술은 잇스니 準備하지 말라 하시더니 果然 秉旭의 妻母가 先生의 來臨하심을 알 고 酒肴를 가지고 오니라. 先生이 술을 마스신 후에 應鐘다려 일너 가라사대 臥病에 人事絶이니 病人을 붓드러 이르키라하시니 應鐘 이 病人을 붓드러 이르키거늘 다시 가라사대 病은 임의 나엇스나 이 後로 孕胎는 못하리라하시더니 果然 그 後로는 孕胎하지 못하니 라.


36. 先生의 父親이 病들어서 危篤하거늘 黃 應鍾이 先生 病報를 알외 려고 銅谷에 이르러 先生의 住處를 무르니 全州 陵所에 계시다하거 늘 다시 그곳으로 發往하니 銅谷에서 距離가 七十里러라. 陵所에 이르러 先生뵈입고 病報를 알왼대 先生이 술을 주신 後에 돈 十 圓을 주시며 가라사대 날은 임에 느젓스나 不快한 마음을 두지 말 고 곳 도라가다가 淸道院 金 松煥의 집에 들어자고 明早에 銅谷 金 甲七에게 가서 나의 苧周衣 한 벌을 가지고 집에 도라가 父親을 닙히고 이 돈으로 滋養物을 사서 잘 供養하라. 應鍾이 날은 임의 저물엇스나 敢히 違命치 못하고 陵所를 낫더니 行한지 한 時間이 못되엿는대 밧게 路傍에 石碑가 보이거늘 자세히 삷히니 곳 淸道 院이라. 應鐘이 놀내여 생각하되 陵所에서 여긔가 六十里어늘 한 時間이 못되여 當到하게 됨은 반다시 先生의 道力에 밀녀옴이라 하 니라. 松煥의 집에 들어 자고 翌早에 銅谷에 들녀 周衣를 가지고 客望里에 이르러서 그 父親에게 周衣를 닙히니 곳 精神이 回甦하야 辨別力이 생기거늘 이에 滋養物을 사서 供養하니 元氣도 곳 回復되 니라.


37. 金 俊贊의 母가 多年 肩臂痛을 알어 팔을 屈身치 못하고 委痛하더 니 兄 德贊이 先生을 모시고 이르거늘 俊贊이 그 小室의 宿室을 치 우고 先生을 모셧더니 先生이 가라사대 네 母親이 肩臂痛으로 苦 痛하나냐 俊贊이 對하야 가로대 그러하니이다.  私語하야 가라사 대 밧 人心은 조흔대 안 人心이 조치 못하도다 하시거늘 俊贊이 異 常히 녁여 內室에 들어가 삷히니 小室이 自己의 宿室을 치운 것을 不平히 하야 怒氣를 우고 잇슴으로 俊贊이 잘 慰撫하니랴. 翌日 에 그 母親의 肩臂痛이 제절로 나어 屈身을 任意로 하니 일로부터 俊贊은 크게 敬服하야 先生을 르니라.


38. 黃 應鍾의 아들이 病들어 危篤하거늘 應鐘이 淸水를 놋코 先生의 계신 곳을 向하야 낫게 하여주시기를 發願하니 그 病이 곳 낫는지 라. 翌日에 銅谷에 와서 先生 뵈이니 先生이 무러 가라사대 어졔 구름을 타고 나려본즉 네가 손을 부비고 잇섯스니 엇진 일이뇨 하 시거늘 應鐘이 그 事由를 알왼대 先生이 우스시니라.


39. 金 俊贊의 아들이 病들어 死境에 이르거늘 니 銅谷에 와 先生 그 事由를 알외니 先生이 아모 말삼도 아니하심으로 마음이 焦燥하 야 곳 도라오기를 告한대 先生이 挽留하사 밤을 지내고가라 하심으 로 命을 어긔지 못하야 눈으로 밤을 새이고 翌日早朝에 집으로 도라가니 病子가 나어서 快活히 遊戱하는지라. 그 病勢 快差된 를 무르니 先生 病勢를 稟하든 時刻과 相符하니라.


40. 金 俊相의 妻가 胸腹痛이 잇서서 年二三回씩 支離하게 苦痛하야 形 容이 憔悴할  아니라 家事를 收拾치 못하야 産業이 恒常 簫然하 야 家樣을 이루지 못하거늘 俊相이 先生 그 事由를 알외여 施療 를 請한대 先生이 불상히 녁이사 四聖飮 一貼을 지어 주시며 衣藏 속에 深藏하라 하시거늘 俊相이 命하신 대로 하엿더니 그 後로는 그 症祟가 다시 發作되지 아니하니라.


41. 大興里 申 才人의 아들이 胸腹痛으로 死境에 이른지라. 申 才人이 先生 와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猪一首를 烹宰하여 오라. 才人이 命하신 대로 行하려 하더니 문듯 다시 가라사대 未久 에 猪肉 三片이 이르리니 돗을 잡지 말라 하시더니 이윽고 車輪京 이 祭祀지낸 집에 가서 酒案을 가저오니 果然 酒案에 猪肉三片이 잇는지라. 드대여 才人에게 주어 그 아들을 먹이게 하시니 胸腹痛 이 곳 나으니라.


42. 大槪 從徒中에 무슨 病故가 잇서 來告하는 者가 잇스면 그 病勢의 如何를 무르신 後에는 아모 施療法이 업시 나으며 만일 危境에 이 른 사람이면 그 病祟를 가름하야 알으시면 곳 나엇나니 가령 腹痛 이 잇는 사람이면 문듯 배가 압흐다고 한 번 말삼하시고 머리 압흔 사람이면 머리 압흐다고 한 번 말삼하실 름이니라. 그럼으로 하 로는 亨烈이 엿주어 가로대 病을 낫게하여 주시며 아해를 낫게 하 여 주시고도 아모 말삼을 아니하시니 그 功을 알어 줄 사람이 업겟 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病만 낫고 아해만 나면 可할지니 功을 알 必要가 잇스리오. 功德을 남에게 알게 하려는 것은 小人의 일이라 하시니라.



제 6 장  천 지 공 사


1. 壬寅 四月에 金 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冥府公事를 行하시며 일너 가라사대 冥府公事의 審理를 라서 人世의 모든 일이 決定되나니 冥府의 混亂으로 말미얌어 世界도 한 混亂케 되나니라 하시고 崔 水雲, 全 明淑, 金 一夫로 冥府의 正理公事를 主케 한다 하시면서 날마다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라.


2. 金 亨烈의 집이 貧乏하야 麥飯으로써 先生 供養하더니 八月 秋夕 節을 當하야 할 일 업시 食鼎을 팔아서 節饌을 準備하려하니 先生 이 가라사대 솟이 들석이니 彌勒佛이 出世하리로다 하시고 亨烈로 하여금 牛尾한개를 求하야 불을 피우고 두어 번 둘너 낸 後에 亨烈 을 命하사 太陽을 보라 하시니 亨烈이 우러러 봄에 日暈이 둘너 잇 더라. 先生이 가라사대 이졔 天下大勢가 方病大腫이라. 내가 腫을 破하엿노라 하시니라.


3. 癸卯 春에 先生이 亨烈과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古代에는 東西洋의 交通이 업섯슴으로 神明도 한 넘나들지 못하엿더니 이 졔는 汽車輪船으로 輸出入되는 貨物表를 라서 通行함으로 朝鮮神 明을 西洋으로 드려보내여 役事를 식히려 하노니 財主를 어더서 길 을 워야 할지라. 財主를 薦擧하라. 金 秉旭이 全州 富豪 白 南信 을 薦擧하거늘 先生이 南信다려 무러 가라사대 所持한 財産이 얼마 나 되나뇨. 南信이 對하야 가로대 三十萬兩은 되나이다.  무러 가라사대 二十萬兩으로써 그대의 生活은 넉넉히 하겟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러하리이다.  가라사대 이졔 쓸 곳이 잇스니 돈 十萬兩 을 드리겟나냐. 南信이 黙然히 생각하다가 드대어 許諾하거늘 이에 十日로 限定하야 證書를 바더서 秉旭의게 맛기섯더니 期限이 이름 에 南信이 돈을 準備하야 刻紙로 二十枚를 올닌대 先生이 글을 써 서 불살으시고  秉旭에게 맛기신 證書를 불살으신 後에 刻紙 十二枚는 돌녀주시며 가라사대 돈은 임의 要緊히 써서 일을 잘 보앗 스니 多幸이라 하시니 南信은 現金으로 쓰지 아니하신 것을 未安히 녁이고 다시 엿주어 가로대 現物의 時勢를 보아서 貿易하야 利를 增殖함이 엇더하니잇가. 先生이 가라사대 그것은 不可하니라 하시 고  가라사대 南信의 일이 龍頭蛇尾와 갓다 하시니라.


4. 그 뒤에 先生이 여러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地方을 守護하는 모든 神明을 西洋에 보내여 大亂을 지으리니 이 뒤로는 外人들이 主人업는 뷘 집 들듯 하리라. 만일 모든 神明이 일을 맛치고 도라 오면 졔 집일은 제가 맛허 하리라.


5. 이 해 여름에 金 秉旭이 觀察府의 委囑으로 南原에 가서 오랫동안 滯留하야 稅金을 督收하니라. 이에 朝廷은 露西亞를 結託하야 日 本을 抑制코저 할 새 日本에 亡命한 朴 永孝 一派를 親日派로 指目 하야 그 黨派를 大擧 剿滅하니 秉旭이 한 連累가 된지라. 十月에 京城으로부터 多數의 巡檢隊가 突然히 全州府에 이르러 秉旭을 搜 索하다가 南原에 滯在한 줄 알고 星夜로 南原에 發向하니라. 이에 先生이 南原에 이르사 秉旭을 차저서 그 收入한 稅金을 舘主에 게 保管케하고 곳 伴行하사 들밧게 나가시니 秉旭은 그 緣由를 모 르더라. 十餘里를 行하사 秉旭의 先墓齋舍에 들어 계시사 墓直을 命하야 南原에 가서 形勢를 삷혀 오라 하시니 墓直이 奉命하고 곧 南原에 갓다가 도라와 多數한 京巡檢隊가 이르러 秉旭을 搜索하는 狀況을 告하니 秉旭이 비로소 크게 두려워 하니라. 翌日에 轎子를 準備하야 秉旭을 태우고 全州로 回程하사 徐 元圭의 葯局으로 들어 가시니 元圭가 秉旭을 보고 大驚하야 가로대 君이 엇지 死地를 벗 어낫스며  엇지 이러한 危地로 들어 왓나뇨. 너무 急禍임으로 通 知할 겨를이 업서 君의 家族은 다만 驚惶罔措하야 號哭으로 지낼 름이니라 하거늘 秉旭이 그 仔細한 經過를 드르니 京巡檢이 全州 를 나서 南原 到着 할 와 自己가 先生을 라 南原을 脫出할 가 겨우 一二 時間의 差異가 잇는지라. 秉旭이 歎息하야 가로대 先生은 실로 天神이시라. 만일 先生의 救援이 아니엿더면 엇지 死 地를 벗어낫스리오 하니라. 그 에 巡檢들이 南原에 가서 秉旭을 찻지 못하고 全州로 도라와서 四下로 크게 차즈니라. 元圭의 藥局 이 通路大街에 잇슴으로 秉旭이 그 幽僻치 못함을 근심하거늘 先生 이 가라사대 모든 것을 내게 信賴하야 근심을 풀어 버리라. 내가 將次 네 일을 으리라 하시니라. 秉旭이 元圭의 葯局에 오래동안 머므르되 知面한 사람의 出入이 업고  昏夜에는 先生이 忌憚업시 秉旭을 다리고 거리를 다니며 소풍하되 한 번도 아는 사람의 눈에 우지 아니하니라.


6. 先生이 秉旭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네 禍厄을 풀기 爲하야 日露 戰爭을 促成하야 日本을 도와서 露勢를 驅逐하리라 하시니 從徒들 이 그 말삼을 不信하야 서로 이르되 一人의 禍厄을 으기 爲하야 兩國의 戰亂을 促發케한다 함도 妄誕한 바어니와 弱少한 日本을 도 와 天下莫强의 露勢를 驅逐한다 함은 더욱 虛荒한 말이라 하더니 十二月에 日露戰爭이 勃發하야 日兵이 勝勢를 타서 國境을 通過하 니 이에 國禁이 解弛하여저 朴泳孝의 嫌이 드대여 니니라.


7. 그에 先生이 秉旭에게 무러 가라사대 日露가 國家의 虛弱을 乘하 야 서로 勢力을 角逐하니 朝廷은 黨派가 分立하야 或은 日本을 親 善하려 하며 或은 露國을 結托하려하니 君은 엇든主義를 올히 녁이 나뇨. 秉旭이 對하야 가로대 人種의 別과 東西의 殊로 하야 日本을 親善하고 露國을 멀니함이 올타 하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대의 말이 有理하니라. 이졔 만일 西勢를 물니치지 아니하면 東洋은 永 久히 西人의 蹂躙한 바 되리라. 그럼으로 西勢를 물니치고 東洋을 安保함이 올흐니 日本人이 天地에 큰 일이 되나니라 하시고 이에 天地大神門을 열고 날마다 公事를 行하사 四十九日을 한 度數로 하 야 東南風을 불니시더니 밋처 期限에 數日이 차지 못하야 한사람이 와서 治病하여 주시기를 懇乞하는지라. 先生이 公事에 專心하사 그 사람의 懇乞하는 말을 듯지 못하고 아모 對答이 업스시니 그 病人 이 드대여 恨을 품고 도라가더니 그 後로 문듯 東南風이 그치거늘 先生이 그졔야 다르시고 사람을 그 病人의게 보내사 公事의 專心 으로 因하야 듯지 못하신 事實을 告하야 安心케 하시고 곳 病을 낫 게 하여주시니 바람이 다시 繼續하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한 사 람이 寃恨을 품음에 能히 天地긔운을 막는다 하시니라. 그 後로 露 軍이 海陸으로 連敗하니라.


8. 東學信徒가 甲午의 慘敗를 當한 後에 敢히 擡頭치 못하고 潛勢를 保守하여 오다가 日露戰役의 機會를 타서 日本에 結託하야 一進會 를 組織하니 四方이 響應하야 燎原의 勢를 呈함에 人民은 甲午의 亂暴에 鑑하야 危惧之心을 품은 지라. 先生이 從徒다려 일너 가라 사대 저들의 擧動에는 各히 自力을 資케 할 것이오. 甲午와 갓치 民害를 짓지 못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率先하야 模範을 지음이 可 하니라 하시고 畧干의 田地와 家屋을 放賣하사 全州府에 이르러 모 든 乞人의게 散盡하시더니 果然 一進會員이 마참내 各自의 財産을 蕩盡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저들이 나를 본바드니 살녀줌이 올흐 니라 하시고 冠을 벗고 삿갓을 쓰시며 衣服은 안이 검고 밧기 희게 하사 가라사대 저들이 黑衣를 닙으니 나도 黑衣를 닙노라.  하눌 을 가라처 가라사대 저 구름이 속은 검근고 밧흼이 나를 模型함이 라 하시니라.


9. 丙午 二月에 先生이 여러 從徒를 다리고 益山 萬中里 鄭 春心의 집 에 이르사 僧衣 한 벌을 지어 壁에 걸고 四明堂을 외우시며 山河 大運을 돌니실 새 七日間을 房에 불을 넛치 아니하시고 春心을 命하사 牛頭一個를 煮熟하야 門 압헤 노은 後에 배를 運漕하리라 하시고 鄭 伯成을 命하사 僧衣를 부억에 불살으시니 문듯 雷聲이 汽笛소리와 갓치 發하며 石炭煙氣가 觸鼻하며 온 집안 동량이 暴風 에 動搖되는 배 속과 갓하야 一室中에 잇는 사람이 다 暈倒하야 或 嘔吐도 하며 或 精神을 일흐니 이에 參座한 者는 蘇 鎭燮, 金 德 裕, 金 光贊, 金 亨烈, 金 甲七, 鄭 春心, 鄭 成伯과 밋그 家族이라. 金 德裕는 門밧게서 구러지고 春心의 家眷은 各히 그 寢室에 昏 倒하고 金 甲七은 人事不省하며 呼吸을 不通하거늘 先生이 淸水를 甲七의 입에 흘녀 너으며 불으시니 곳 蘇甦된지라. 차레로 淸水를 얼골에도 리며 或 먹이기도 하시니 모다 精神을 回復하니라. 金 德裕는 肺病으로 重期에 이르럿든바 일로부터 完快되니라. 先生이 가라사대 六丁六甲을 쓰러 들일 에는 살어날 사람이 적으리라 하 시니라.


10. 그 後에 銅谷으로 도라오사 數日을 지내신 後에 다시 大公事를 行 하시려고 京城으로 나실 새 가라사대 戰艦은 淳昌으로 돌녀대리 니 亨烈은 地方을 잘 직히라 하시고  모든 사람을 命하사 各自의 所願을 記錄하여 오라하사 그 조희로 眼鏡을 싸 너으신 後에 鄭 南 基, 鄭 成伯, 金 甲七, 金 光贊을 다리시고 群山으로 가서 汽船을 타기로 하시고 辛 元一과 그外 四人은 大田으로 가서 汽車를 타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는 水陸並進이라 하시니라.  辛 元一에게 命 하야 가라사대 너는 몬저 入京하야 "天子浮海上"이라 써서 南大門 에 부치라. 元一이 領命하고 一行을 거느리고 大田으로 나니라.


11. 先生이 群山에 이르사 여러 從徒에게 무러 가라사대 바람을 것고 감이 올흐냐 놋코 감이 올흐냐 하시니 光贊이 對하야 가로대 놋코 감이 올흐니이다 하거늘 이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烏梅五枚式 準備하라 하시고 汽船을 타시니 바람이 크게 이러나서 배가 甚히 搖 動하야 모든 사람이 眩暈嘔吐하거늘 各히 烏梅를 입에 물어 安定케 하시고 이날 밤에 甲七을 命하사 各人의 所願을 記錄한 조희로 싼 眼鏡을 北方으로 向하야 바다물에 던지라 하시니 甲七이 船上에 올나서 方向을 辦別치 못하야 躊躇하거늘 先生이 다시 불너 들여 물어 가라사대 엇지 니 던지지 아니 하나냐. 甲七이 對하야 가로 대 方向을 辦別치 못한 緣故니이다. 가라사대 電光이 發하는 곳으 로 던지라. 甲七이 應命하고 다시 船上에 올나 삷히니 문듯 電光이 發하거늘 이에 그 方向으로 더지니라. 翌日에 仁川에 나리사 곳 汽 車를 밧구어 타시고 京城에 이르러 各히 禁煙하라 하시고 光贊의 引導로 黃橋에 잇는 그의 從弟 永善의 집에 드시니 辛 元一 一行은 몬저 當到하엿더라.


12. 元一은 當到 卽時에 "天子浮海上"이라는 文字를 써서 南大門에 부 치니 온 京城이 크게 騷動하야 人心이 洶洶함으로 朝廷은 嚴重히 警戒하더라. 京城서 여러가지 法을 行하시고 十餘日後에 모든 從徒 는 다 돌녀 보내시고 오직 光贊만 머무르게 하시다가 數日後에 다 시 萬頃으로 보내시며 通知 잇기지 기다리라 하시니라.


13. 四月 晦에 先生이 萬頃 金 光贊의 住所에 이르시니 이에 崔 益鉉 이 忠南 洪州에서 擧義함에 마참 날이 가물어 人心이 洶洶하야 서 로 安業치 못하고 義兵에 投入하는 者가 날로 增加하야 軍勢가 大 振하거늘 이에 數日동안 萬頃에 머루르시면서 비를 만히 내리시니 人心이 비로소 安定하야 各히 農畝로 도라감으로 義兵의 形勢가 드 대여 萎縮하야 崔 益鉉은 마참내 淳昌에서 被擒하니라.


14. 先生이 崔 益鉉 彼擒의 報를 드르시고 萬頃을 나 益山 萬中里로 가시며 가라사대 今番 崔 益鉉의 動을 일즉 鎭壓하지 아니하면 朝 鮮 全土가 慘禍中에 들어 無辜한 生民이 全滅을 當할지라. 崔 益鉉 의 擧事가 한갓 蒼生만 死滅에 驅入할 이니 내가 엇지 忍見할 바 리오. 그럼으로 이졔 公事로써 鎭壓하엿노라 하시고 崔 益鉉의 挽 章을 지어 從徒에게 주시니 "讀書崔益鉉, 義氣束劍戟, 十月對馬島, 曳曳山河橇?" 이라. 그 후에 果然 그러하니라.


15. 이 公事를 맛치시기 前에 京城에서 金 甲七을 돌녀 보내실 에 命 하야 가라사대 銅谷에 가서 亨烈, 成伯으로 더부러 四十九日동안을 每日 紙燈 一個式 合力하야 製造하고  각히 草鞋 一部式 지어두 라 하심으로 甲七이 도라와서 일일히 命하신 대로 行하엿더니 그 後에 先生이 萬頃으로부터 銅谷에 이르사 紙燈에 各히 "陰陽"二字 를 쓰신 後에 다 불살으시고 甲七다려 銀杏二個를 求하여 오라 하 시니 甲七이 四方으로 求하여도 엇지 못하다가 그의 從弟에게 二個 가 잇슴을 發見하야 가저다 드리니 紙燈 살은 재 속에 너은 後에 다시 甲七을 命하사 그 재를 모도와 가지고 압내에 가서 한 줌식 물에 워내리며 하눌을 우러러 보라 하시거늘 甲七이 命하신 대로 하야 하눌을 우러러 보니 구름이 쟤가 집어 우는 대로 물에 러 저서 펴여 흐르는 模樣과 갓치 무듸 무듸 피어나더라.


16. 그 後에 "全州 銅谷 解寃神, 慶州 龍潭 報恩神"이라 써서 亨烈의 집 壁上에 부치시니라.


17. 그 後에 群山에 가사  公事를 보시고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 이러 하니라. "地有群倉地, 使不天下虛, 倭萬里淸萬里洋九萬里, 彼天地虛 此天地盈"


18. 丁未 秋에 淳昌 籠巖에 머무르시며 公事를 行 하실 새 從徒다려 일 너 가라사대 許 眉叟의 重修한 成川 降仙樓 一萬二千 고물은 祿줄 이 붓터잇고 金剛山 一萬二千峯은 怯氣가 어 잇스니 이졔 그 怯 氣를 除袪하리라 하시고 金 亨烈을 命하사 金 光贊, 李 道三으로 더부러 銅谷에 가서 白紙를 一方寸式 오려서 侍字를 써서 四壁에 부치되 한 사람이 하로에 四百字式 써서 十日에 맛치라. 그리고 그 동안에 朝夕으로 淸水 二十四器식 길어 놋코 밤이면 七星經 三七遍 식 念誦하라 하시거늘 亨烈이 命하신 대로 行한 後에 甲七을 籠巖 으로 보내여 일을 다 마첫슴을 告하니 先生이 羊一頭를 사주시며 가라사대 나의 도라가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그 後에 先生이 銅 谷에 이르사 羊을 잡어 그 피를 一萬二千侍字의 머리에 발으시고 가라사대 그 글자 모양이 아라사 兵丁과 갓다 하시고  가라사대 沙器는 金堤로 보내리라 하시더니 마참 金堤 水閣 林相玉이 이르거 늘 淸水 깃든 沙器를 狗湯에 씨처 주시며 가라사대 人夫를 만히 부릴 에 쓰라 하시니라.


19. 淳昌 避老里에 계실 새 黃 應鍾이 이르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古阜 사람이 오니 바돌판을 可히 운전하리라 하시고 "英雄消日大中華, 四海蒼生如落子" 라는 글을 외우시고 그 後에 崔 水雲과 全 明淑의 寃을 으신다 하사 司命旗를 各一幅식 지어서 놉흔 솔가지에 다 럿다가 다시 여서 불살으시니라.


20. 十二月에 古阜 臥龍里에 이르사 申 京守의 집에 머므르시며 從徒 二十餘人을 同里 文 公信의 집에 모으시고 "天地之主張, 萬物之首唱, 陰陽之發覺"이라 쓰시며 棋局 中央에 다섯 將點을 列置함과 갓 치 "情誼" 二字를 紙面四隅와 中央에 列書하사 文 公信의 집 壁上 에 붓치시고 堯의 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를 解說하야 가라사대 天地 가 日月이 아니면 空殼이오. 日月은 知人이 아니면 虛影이라. 唐堯 가 비로소 日月의 法을 알어서 를 百姓에게 알럿스니 天惠와 地利가 일로부터 人類에게 遺漏업시 享有케 되엿나니라 하시고 朴公又 다려 일너 가라사대 後天 五萬年 첫公事를 行할 터인대 公又가 아니면 못할지니 公事를 말하라. 公又- 知識이 업서 告達 할 바를 모른다 하야 謙讓하다가 良久에 엿주어 가로대 先天에는 靑春少婦 가 守節한 다하야 空閨를 직혀 寂寞히 늙어버리는 것이 不可하오니 後天에는 이 蔽害를 除하사 젊은 寡婦는 젊은 鰥夫를 늙은 寡婦는 늙은 鰥夫를 各各 가려서 知舊를 一一히 請하야 公衆禮席을 버리고 禮를 갓추어 改嫁케 하시는 것이 조흘 줄 아나이다. 先生이 賞贊하사 가라사대 네가 아니면 이 公事를 못하겟슴으로 네게 맡겻더니 대단히 잘하엿도다. 이졔 決定한 公事가 五萬年을 나려 가나니라.


21.  公信의 집 門에 孔門을 러 놋코 公又를 爲首하야 모든 從徒를 列立케 하시고 煙竹을 들며 가라사대 서로 替番하야 물초리를 門孔 에 대고 입으로 북소리를 하며 돌라. 從徒들이 命하신 대로 몃번함 에 四方에서 天鼓聲이 大發하는지라. 이에 天地大神門을 열고 公事 를 行하실 새 金 亨烈, 金 自賢, 文 公信, 朴 壯根, 李 化春等 二十 餘人의 從徒에게 일너 가라사대 너희는 文 公信의 집에 잇서 비록 官吏가 올지라도 畏怯치말고 나의 住所를 뭇거든 隱暐치 말고 實告 하라. 만일 官吏에게 붓들녀서 禍厄을 當하기에 畏怯心이 잇거든 各히 解散하라. 모든 사람은 다만 異常히 알 름이러니 마참 所管 面長 梁某와 同里 里長이 文 公信의 집에 들어오거늘 先生이 문듯 지저 가라사대 너희들이 엇지 이런 天地公事場에 들어오나뇨 하 시거늘 面,里長이 그 말삼을 듯고 義兵으로 誤解하야 官府에 告發 하니라.


22. 十二月 二十五日에 武裝巡檢 數十人이 突然히 文 公信家를 包圍하 고 모든 사람을 捕縛 한 後에 先生의 去處를 뭇거늘 모든 사람이 비로소 先生의 말삼을 닷고 申 京守의 집에 계심을 直告하니 巡檢들이 다시 달녀가서 先生을 붓드러 合二十一人을 古阜 警務廳으 로 拿去하니라. 이 일이 나기 前에 金 光贊과 朴 公又는 井邑 車 京石의 집으로 보내시고 申辛 元一은 泰仁 辛 京元의 집으로 보내시 니 대개 朴 公又는 여러 번 官災에 困辱을 當하엿슴을 알으시고 그 禍를 免케 하심이오, 光贊과 元一은 性質이 過剛함을 忌하야 不參 케 하심이러라. 二十六日에 警官이 先生과 밋 從徒를 訊問한 後에 모다 獄中에 拘置하니라.


23. 이 몬저 先生이 이 일에 쓰기 爲하야 若干의 金錢을 準備하야 甲七 에게 맛기사 京石에게 傳하라 하섯더니 甲七은 이 일이 난 後에 井邑에 가서 그 金錢을 京石에게 傳하니 京石이 古阜로 와서 衾具와 食事를 差入하니라. 看守中에 亨烈과 自賢을 아는 사람이 잇서서 그의 便宜를 돕기 爲하야 다른 從容한 獄房으로 옴기거늘 亨烈이 看守에게 請하야 先生지 옴기시게 되니라. 先生이 다른 房으로 옴기신 後에 亨烈과 自賢다려 일너 가라사대 三人會席에 官長의 公事를 處決한다하니 우리 三人이면 무슨 일을 解決치 못하리오.  自賢다려 가만히 일너 가라사대 비록 十萬大衆이 이러한 禍厄에 젓슬지라도 秋毫의 傷害가 업시 다 니게 하야 다리고 나가리니 安心하라 하시니라. 除夕에 雷電이 大發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 는 西洋에서 天子神이 넘어옴이라 하시고  가라사대 天子神은 넘 어 왓스나 너희들이 血心을 가지지 못함을 因하야 將相神이 應하지 아니한다 하시니라.


24. 戊申 元日에 눈이 크게 나리고 日氣가 酷冷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大公事를 處決함이라 하시니라. 警官이 여러 사람을 取調하여 도 아모 義兵의 證據를 엇지 못하고 先生의 말삼은 狂言으로 돌니 더라. 正月十日에 獄門을 열고 여러 사람을 釋放한 後 오직 先生만 남겨 두엇다가 三十日 驚蟄節에  釋放하니라.


25. 이에 車 京石, 安 乃成이 金錢 一百 二十兩을 가지고 와서 新依를 지어 드리려 하거늘 先生이 禁止하시고 그 金錢을 모든 巡檢과 貧窮한 사람에게 난호아 주시고 三日을 留하신 後에 臥龍里 黃 應 鍾의 집으로 가시니 車 京石이 르니라.


26. 在囚하섯슬 에 모든 從徒들은 先生서 天地를 開闢하사 仙境을 열어 各히 福祿을 마련하여 주실 줄 미덧니 밧게 이런 禍地에 지게 되니 이는 虛無한 말로 우리를 欺誑함이라 하야 모다 先生을 怨望하고 文 公信, 李 化春, 朴 壯根 三人은 더욱 憤怒하야 자조 悖說을 發하며 警官에게 先生을 搆毁하더니 三月에 이르러 李 化春 은 義兵에게 砲殺되고 朴 壯根은 義兵의게 毆打를 當하야 折骨이 된지라. 先生이 드러시고 文 公信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도 마음을 곳치라. 그러치 아니하면 天怒가 잇스리라.  가라사대 "李 化春은 鬼神으로나 조흔 곳에 가게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라.


27. 二月二日에 本宅으로붓허 泰仁 辛 京元의 집에 이르사 그곳에서 一 朔동안 머므르실 새 崔 昌祚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猪一首를 宰하야 鷄卵으로 전야를 부처 竹器에 담어서 淨潔한 곳에 두고  내 衣服 한 벌을 지어두라. 將次 쓸대가 잇노라. 昌祚가 應命하고 猪肉전야 와 衣服을 만드러 두니라.


28. 三月에 銅谷에 이르사 亨烈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네가 泰仁에 가서 辛 京元, 崔 乃敬을 다리고 白巖里 崔 昌祚의 집에 가서 일즉 準備 하여 둔 衣服 한 벌을 三人이 한가지식 난호아 입고 猪一首를 잡어 서 煮熬한 後 오늘 저녁 人跡이 그칠 를 기다려 그 집 正門밧게 을 파고 그 압헤 淸水一器와 火爐를 놋코 淨器에 胡酒와 文魚와 전야를 넛고 그우에 豆腐로 덥허 그 구덩이 속에 넛코 다시 한 사 람은 猪肉전야를 들어 淸水와 火爐를 넘기고 한 사람은 그것을 밧 고 한 사람은 다시 바더 그 구덩이 속에 너은 後에 흙으로 덥흐라 하야 詳細히 일너주고 니 도라오라. 亨烈이 奉命하고 泰仁에 가 서 一一히 指揮한 後에 니 도라와 집에 드러서니 밤이 깁고 검은 구름이 하눌을 덥허서 暴雨가 쏘다지며 雷電이 大作하는지라. 先生 이 무러 가라사대 이 즘 일을 行하겟나냐. 亨烈이 對하야 가로대 行할 가  되엿겟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邊山과 갓흔 불덩이 가 낫허나 굴면 온 世界가 焦土될지라. 그럼으로 이졔 그 불을 무 덧노라 하시니라.


29. 四月에 白 南信으로부터 돈 千兩을 가저오사 銅谷 金 俊相의 집에 房一間을 修理하고 葯局을 벌이실 새 木工 李 京文을 불너 葯藏과 机를 製造하라 命하시고 그 長廣尺寸과 製造方法을 一一히 가라치 시며 期限을 定하야 完工하라 하섯더니 木工이 期限內에 完工치 못 하거늘 先生이 木工으로 하여금 그 材木을 한곳에 모하놋코 그 압 헤 跪坐케 하신 後에 그 違期함을 지즈시며 한 封書를 木工에게 주어 불살니시니 문 듯 白日에 번개가 번적이는지라. 木工이 戰慄 하야 을 흘니더라. 다시 命하사 速히 完工하라 하시니 木工은 手戰症이 나서 한 달이 넘은 後에 비로소 完工하거늘 先生이 木工다 려 일너 가라사대 葯藏에 번개가 들어야 할지니 네가 몸을 정히 싯고 衣冠을 整齊하고 淨水一器를 葯藏압헤 노은 後에 誠心으로써 절하라. 木工이 命하신 대로 行하니 문듯 晴天에 번개가 크게 發하 더라. 葯藏과 机를 藥房에 安置한 後에 甲七을 命하사 每日 早朝에 藥房을 淨掃하시며 窓戶를 緊閉하야 사람의 出入을 禁하시고 二十 一日을 지낸 뒤에 비로소 房을 쓰실 새 通監, 書傳各 一秩과 鐵硏子, 藥刀등 모든 藥局 器具를 備置하시니라.


30. 그 後에 全州 龍頭峙에 이르사 朴 公又 다려 일너 가라사대 天地에 서 藥긔운이 平壤으로 나렷스니 네가 明日 平壤에 가서 藥材를 求 하여 오라 하시거늘 公又가 應命하고 行裝을 收拾하야 다시 命令이 잇기를 기다리더니 이날 밤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고 數日後에 銅谷 으로 도라오사 栗木으로 藥牌를 製造하사 牌面에 "萬國醫院"이라 刻하야 字畫에 鏡面朱沙를 박으신 後에 公又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이 藥牌를 院坪 길거리에 부치라. 公又가 應命하고 院坪으로 가려 하거늘 先生이 무러 가라사대 이 藥牌를 院坪에 부칠 에 警官이 무르면 엇더게 對答하려 하나뇨. 公又가 對하야 가로대 萬國醫院을 設立하야 죽은 者를 다시 살니며 눈먼 者를 보게 하며 안즌방이를 것게 하며 其外 모든 大小疾病을 다 낫게 한다 하겟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네 말이 올흐니  그대로 하라 하시고 藥牌를 불살으시 니라.


31. 藥藏은 아래에 큰 간을 두고 우으로 藥 넛는 間이 縱三橫五 合十五 間인대 한가운대 간에 "丹朱受命"이라 쓰시고 그 속에 牧丹皮를 넛 코 "烈風雷雨不迷"라 쓰시고  七星經을 洋紙에 縱書하신 後 그 末端에 "禹步相催登陽明"이라 橫書하야 藥藏 우으로부터 뒤로 내려 부첫스며 机안에는 "八門遁甲"이라 쓰시고 그 글자를 눌너서 "舌 門" 二字를 烙印하신 後 그 周圍에 二十四點을 紅色으로 으시니 라.


32. 그 後에 全州로부터 藥材를 買入하섯는대 마참 비가 오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藥湯水라 하시니라.


33. 藥材는 二十四種인대 人蔘이 들지 아니하엿거늘 黃應鍾이 엿주어 가로대 俗言에 "藥局에 人蔘이 지지 안는다" 하는대 엇지 이 二十四種中에 藥中靈長이 되는 人蔘이 들지 아니하엿나잇가. 先生이 가라사대 蔘精은 가는 곳이 잇나니라. 應鐘이 가로대 어대로 가니 잇가. 가라사대 亨烈에게로 갓나니라 하시니라.


34. 藥房壁上에 "士農工商, 陰陽"과  其外 여러 글자를 만히 써 부치 시고 白紙로 褙附한 後에 自賢을 命하사 그  가는 대로 食碗을 대고 褙附한 곳을 올여 이니 陰字가 낫허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正히 合하도다. 陰과 陽을 말할 에 陰을 몬저 닑나니 이는 地天泰니라 하시며  가라사대 藥藏은 곳 安葬櫳이며  神櫝이니라 하시고  가라사대 이 조희를 들 날이 速히 이르러야 하리라 하 시니라.


35. 그 後에 藥房에 備置한 모든 物目을 記錄하사 朴 公又와 金 光贊을 주시며 가라사대 이 物目記를 金山寺에 가지고 가서 그곳에 奉安된 釋迦佛像을 向하야 마음으로 다른 곳으로 移安한다는 생각을 하면 서 불살으라 하시니 兩人이 金山寺에 가서 命하신 대로 行하니라.


36. 先生이 가라사대 中天神은 後嗣를 두지 못한 神明이오. 黃泉神은 後嗣를 둔 神明이라. 中天神은 依托이 업서서 黃泉神에게 부처 물 과 밥을 어더 먹어왓나니 그럼으로 寃恨을 품엇다가 이졔 내게 하 소연을 함으로 일로부터는 中天神에게 福을 맛기여 偏私가 업시 均 分케 하려 하노라.


37. 하로는 여러날 동안 글을 쓰신 洋紙로 크게 卷軸을 만드신 後에 光 贊, 亨烈, 甲七, 允根, 京學, 元一 等에게 命하사 가라사대 너희는 窓戶를 緊封하고 房中에서 이 글軸을 火爐에 불살으되 煙氣가 房안 에 充滿케하야 다 燒火한 뒤에 門을 열라. 일을 하려면 火地晋도 하여야 하나니라. 모든 사람이 命하신 대로 擧行할 새 煙氣가 房中 에 充滿하야 呼吸을 通하기 어려음으로 允根, 元一은 밧그로 나가 고 남은 사람은 다 타기를 기다려서 門을 여니라.


38. 하로는 黃 應鍾이 이르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黃泉神이 이르니 黃巾 力士의 숫대를 불살으리라 하시고 甲七을 命하사 집 한 뭇을 물 축 여 잘나서 숫대를 만드러 火爐에 불살으시니라.


39. 하로는 白巖里 崔 昌祚의 집에 계시사 昌祚를 命하사 布袋를 지어 서 租三斗와 집재를 混和하야 너은 後에 黃 應鍾다려 일너 가라사 대 이 布袋를 가지고 너의 집에 가서 항아리에 물을 붓고 그 속에 담어두고 每日 한 번식 물을 둘너 저으며 또 食醢 일곱 사발을 비 저 너으라. 내가 三日後에 너의 집에 가리라. 應鍾이 領命하고 도 라가서 그 布袋를 물에 담어두고 매일 한 번식 둘너 저으니 물빗이 灰色이 되고 하눌빗도 한 三日間을 灰色이 되야 햇빗이 나지 아 니하니라.


40. 三日後에 先生이 應鍾의 집에 이르러 가라사대 이졔 山河의 大運을 거두어들이리라 하시고 이날 밤에 白紙로 僧帽를 만드러서 應鍾의 머리에 씨우시고 布袋에 너엇든 벼를 내여 그 집 사방에 리며 白紙 一百二十枚와 洋紙 四枚에 글을 써서 食醢에 調合하야 深更 人跡이 업슬 를 타서 시금 흙가운대 뭇고 僧帽 쓴 대로 洗面하라 하시니 應鍾이 命하신 대로함에 兩眉間에 콩알과 갓흔 큰 사마귀가 생겨서 손에 거치더라. 翌早에 벼 리든 곳을 두루 삷히니 한 낫 도 남어 잇는 것이 업더라.


41. 그 後에 朴 公又다려 마음으로 六任을 定하라 하시거늘 公又가 마 음으로 六任을 생각하여 定할 새 한 사람을 생각하니 先生이 문듯 不可하다 하시거늘 다시 다른 사람으로 밧구어 定하엿더니 이날 저 녁에 公又의 心定한 六人을 불으사 하여금 深夜에 燈불을 고 房 가운대서 돌아다니면서 侍天呪를 닑게 하시니 문듯 한 사람이 구러지거늘 모든 사람이 놀내여 呪聲을 그치니 先生이 가라사대 놀내 지 말고 如前히 돌며 呪聲을 繼續하라 하심으로 다시 繼續하야 한 食頃을 지낸 後에 呪聲을 그치고 불을 밝혀보니 孫 秉旭이 구러 저서 죽엇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몸이 不淨한 연고라 하시고 물을 먹음어서 얼골에 픔으시니 秉旭이 精神을 겨우 도리키거늘 불 너 가라사대 나를 불으라 하시니 秉旭이 목안소리로 겨우 先生을 불으니 긔운이 곳 恢復되는지라. 이에 일너 가라사대 侍天呪에 큰 긔운이 박혀 잇도다 하시고  일너 가라사대 너를 그대로 두엇더 면 田畝사이에 업드러저서 牛馬에게 밟힌바가 되엿스리라.  일너 가라사대 이 後에 怪病이 全世를 猛襲하야 몸 도리킬 틈이 업이 이 와갓치 人命을 죽일 가 잇스리니 그 危急한 에 나를 불으라 하 시니라.


42. 六月에 大興里에 계실 새 公又를 命하사 各處에 巡廻하야 여러 從 徒로 하여금 二十一日間을 잠자지 말고 每曉에 한 時間식만 자라 하시니라. 京石이 여러날 자지 못함으로 甚히 疲困하야 밧가에 昏倒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天子를 圖謀하는 者는 다 죽으리라 하시 니라.


43. 하로는 여러 從徒에게 일너 가라사대 이졔 天下에 水氣가 沽竭하엿스니 水氣를 돌녀야 하리라 하시고 그 뒷山 避亂洞 安氏 齋舍에 가 사 그 압 우물을 댓가지로 한번 저으시고 가라사대 陰陽이 골으지 못하니 齋舍에 가서 엇더한 緣故인지 물으라. 安 乃成이 應命하고 齋舍에 들어가 물으니 齊直은 三日前에 死去하엿고 그 妻만 잇거늘 도라와서 事由를 알왼대  가라사대 다시 行廊에 가서 보라  긔 운이 支持하여 잇도다. 乃成이 그 行廊에 드러가서 보니 行商하는 男女 二人이 들어 잇거늘 도라와서 事實을 告한대 先生이 이에 齋舍 廳上에 올으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西天을 바라고 萬修를 高唱 케 하시며 가라사대 이 가운대 東學歌詞를 가진 者가 잇스니 가저 오라 하시니 果然 한사람이 歌詞를 내여 올니고 물너나거늘 先生이 그 冊中間을 펴고 한 절을 닑으시니 하엿스되 "詩云伐柯伐柯여 其則不遠이라. 내압헤 보는 것을 어길 바 업지마는 이는 都是사람이 오 不在於近이라. 目前之事 쉽게 알고 深量업시 하다가서 未來之事 갓잔하면 그 아니 내 恨인가."라 하니라. 처음에 微聲으로 한 번 닑으시니 白日에 문듯 雷聲이 發하거늘 다시 크게 닑으시니 雷聲이 大礮소리와 갓치 이러나서 天地를 轟動하며 火藥내음이 觸鼻하고  地震이 强烈히 이러나서 모든 사람이 精神을 일코 업드러지거늘 先生이 乃成을 命하사 各히 이르키시니라.


44. 하로는 先生이 泰仁 새올서 白巖里로 가실 새 公又가 侍從하더니 문 듯 關雲長의 形貌로 變하사 도라보시며 무러 가라사대 내 얼골 이 關雲長의 形貌와 갓흐냐 하시니 公又는 놀내여 엇더케 對答하는 것이 조흘지 몰나서 알지 못한다고 對答하엿더니 그와 갓치 셰 번 을 물으심으로 이에 對하야 가로대 關雲長과 恰似하니이다 하니 그 後로는 本貌를 回復하시고 京學의 집에 이르러 公事를 行하시니라.


46. 翌日에 韓 公淑이 이르거늘 先生이 親히 술을 부으사 公淑을 주며 가라사대 내 일을 만히 하엿스니 술을 마시라. 公淑이 對하여 가로 대 先生의 일을 한 바가 업나이다. 가라사대 한 일이 잇나니라. 公 淑이 덩둘하야 술을 바더 마시고 이윽히 안젓다가 엿주어 가로대 지난 밤 에는 한 일이 잇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에 한 일도 한 일이니라. 左右가 公淑에게 그 을 물으니 公淑이 가로대 꿈 에 先生서 내 집에 이르사 天下의 戶口를 成籍하여 오라 하시기 로 應答하고 五方神將을 불너서 成籍하여 올님에 先生서 바더드 리신 것을 보앗노라.


47. 하로는 公又에게 "天地大八門, 日月大御命, 禽獸大道術, 人間大積善, 時乎時乎鬼神世界"라 써주시며 申 京守의 집 壁上에 붓치라 하사 가라사대 京守의 집에 壽命所를 定하노니 네가 모든 사람을 對 할 에 그 善處만 取하야 好意를 가질 것이오. 或 惡處가 뵈일지 라도 잘 容恕하야 憎惡心을 두지 말라 하시니라. 이에 公又는 申 京守의 집에 함 居住하는 故로 公又를 식히심이러라. 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릇하야 萬方에 펴여 나리는 것임으로 "京"字 이름 가진 사람의 긔운을 써야 할지라. 그 럼으로 京守의 집에 壽命所를 定하노라 하시고 因하야 金 京學의 집에 大學校를 定하시고 辛 京元의 집에 福祿所를 定하시니라.


48. 하로는 銅谷에 계실 새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이졔 火遁을 무덧스니 너의 집에 불을 注意하라. 만일 너의 집에서 火災가 나면 火神의 勢力이 擴大하야 全世에 大禍를 치리라. 亨烈이 놀내여 家人을 董督하야 終日토록 불을 조심 하니라.


49. 하로는 銅谷에서 밤중에 글을 쓰시며 金 甫京에게 命하사 가라사대 東天에 별이 낫허 낫는가 보라. 甫京이 밧게 나가서 우러러보고 對 하야 가로대 黑雲이 하눌을 가리워서 별이 보이지 아니하나이다. 先生이 門을 열으시고 東天을 향하야 입으로 한 번 부시니 구름이 헛처지고 별이 낫하나니라.


50. 九月에 先生이 洋紙七片에 各히 "病自己而發" "葬死病衰旺冠 帶浴 生養胎胞"를 써서 對하야 亨烈을 주시며 가라사대 全州府에 가서 某某등 七人에게 分給하고 도라오라. 여러 從徒가 그 意義를 무른 대 先生이 가라사대 말하여도 모를 것이오 成編後에는 스사로 알 게 되리라. 亨烈이 領命하고 全州府에 이르러 金 洛範, 金 秉旭, 金 光贊, 金 俊贊, (金 允根) 五人의게 分給하고 其外二人은 맛나지 못하야 傳하지 못하고 도라왓더니 先生이 기다려서 傳하지 아니함 을 지즈시니라.


51. 十月에 金 洛範을 命하사 白米二十斗를 藥房에 들여 두엇더니 亨烈 이 마침 絶粮되여 甲七로 하여금 그 白米에서 半斗를 갈라 내엿더 니 先生이 알으시고 지즈시니라.


52. 이 달에 古阜 臥龍里에 이르사 가라사대 이졔 無秩序와 混亂을 발 우려면 皇極神을 옴겨와야 하리니 皇極神은 淸國 光緖帝에게 應氣 하여 잇다 하시며  가라사대 皇極神이 이 으로 옴겨 오게 될 機緣은 宋尤菴의 萬東廟 ?設로부터 發源되엿나니라 하시고 여러 從徒를 命하사 每夜에 侍天呪를 誦讀케 하시고 親히 調子를 먹이 사 몃날을 지낸 後에 가라사대 이 소리가 運喪하는 소리와 갓다 하 시고  가라사대 運喪하는 소리를 御路라 하나니 御路는 곳 人君 의 길이라. 이졔 皇極神의 길을 틔웟노라 하시더니 그?에 光緖帝 가 崩하니라.


53.


54. 十一月 二十八日에 先生이 井邑 大興里 車 京石의 집에 이르사 布政所를 定하시고 公事를 行하시니 大略 如下하니라.


55. 하로는 洋紙에 二十四方位字를 돌녀쓰시고 中央에 "血食千秋道德君子"라 쓰신 後에 가라사대 天地가 艮方으로부터 始作되엿다하나 그 것은 그릇된 말이오. 二十四方에서 한거번에 일운 것이라 하시고  가라사대 이 일은 南朝鮮 배질이라. 血食千秋道德君子의 神明이 이 배를 運漕하고 全 明淑이 都槎工이 되엿나니라. 이졔 그 神明들에게 엇더케 하야 萬人에게 仰慕를 바드며 千秋에 血食을 그침 업 시 바더 오게된 理由를 물은즉 다 一心에 잇다고 對答하니 그럼으로 一心을 가진 者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法을 行하신 後에 불살으시니라.


56. 이에 皇極數를 돌니시며 여러 從徒들에게 所願을 무르시고 다시 京石에게 所願을 무르시니 京石은 裂地를 願하거늘 先生이 가라사 대 너는 兵部가 맛당하다 하시니 京石이 不快히 녁이는지라. 先生 이 가라사대 直臣이 아니면 兵權을 맛기기 어려움으로 이졔 特히 네게 맛기노라 하시니라.


57. 하로 밤에는 여러 從徒를 京石家前 柳樹下에 버려 세우시고 北으로 向하야 휫바람을 한 번 부시니 문듯 方丈山으로부터 一條의 雲霞가 이러나서 四方을 둘너 문턱을 일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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