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와인은 격식과 무격식의 모두를 포용한다

21c-park 2007. 6. 27. 09:21
와인와인은 역시 우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와인 글래스에 담아 마셔야만 하는 것일까? 세계 5위의 와인 수출국, 칠레에서는 소주부터 위스키까지 모든 술의 감성을 와인에 담아 편안하게 즐기고 있다. 품격과 격식 이전에 생활로서 함께하며 와인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1 베라몬테의 와인 저장고.
2, 3 산티아고 근교에 자리한 베라몬테 와이너리는 전시장과 시음장을 겸하고 있다. 와이너리 내에는 귀빈을 위한 시음 공간과 과거에 포도를 짜던 기계들을 모아 놓은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포용한다와인의 종류와 와이너리가 너무 많아 섣불리 아는 척 할 수 없었던 와인의 나라, 칠레. 칠레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어떤 와인이 좋은 지 굳이 머리 아프게 익힐 필요는 없다. 그냥 시음해 보고 맛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아니면 바꾸면 되고.


그래도 대강은 알고 마셔야, 칠레 포도 품종
칠레로 떠나기 전, 젊은 시절 칠레를 여행하며 수많은 와인 생산지에서 와인을 테이스팅했던 ‘와인21닷컴’의 최성순 대표에게 조언을 구했다. “칠레는 전 지역이 좋은 와인들을 생산하기 때문에 지역적인 특성이나 브랜드보다는 칠레에 맞는 포도 품종을 따져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와인 라벨에 ‘칠레’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면 진하고 부드러운 맛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경험해봐야 할 칠레 최고 품종의 와인으로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카베르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을 추천했다. 더불어 칠레에서 재배되는 레드 와인 품종으로는 카베르네 프랑 Cabernet Fran·말벡 Malbec·프티 베르도 Petit Verdo·피노 누아 Pinot Noir를, 화이트 와인으로는 샤르도네 Chardonnay·세미용 Semillon·소비뇽 블랑 Sauvignon Blanc·리슬링 Riesling을 추천했다.

“최근에 카르메네르 Carmenere 품종이 칠레에서 유일하게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본래 이 품종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생산되었으나 ‘필로세라’라는 진드기 때문에 모두 사라졌던 품종이죠. 유럽의 어느 양조학자가 칠레를 방문하면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이 품종은 예전에는 메를로 품종과 너무 흡사하여 구분을 하지 못했었다고 하더군요.” 메를로와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피망과 같은 스파이시한 맛과 부드럽고 풍부한 맛 때문에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카르메네르. 자, 이 정도면 대강은 알게 되었겠지?


내 입맛을 먼저 알아야, 칠레 와인
해변 도시인 비냐델마르로 가기 위해 번잡한 산티아고를 벗어나 서쪽으로 향한 지 20분쯤 되었을까? 갑자기 넓은 평원이 나타난다. 그 넓은 평원은 모두 포도나무로 덮여있다. “산티아고 근교에 있는 대부분의 와인 공장은 휴게소를 겸하고 있습니다. 꼭 와인을 마시지 않아도 식사를 하고 쉬어갈 수 있지요. 여기서 포도밭과 와인을 찍으시죠.” 와인 농장이 휴게소라니, 포도 수출국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입구에 들어서니 거대한 대형 버스 세 대가 이미 농장 건물 앞에 서 있다. 베라몬테 Veramonte라는 와인 브랜드를 생산하는 이 농장은 규모가 크고 시설이 깔끔한 데다, 산티아고 근교에 자리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관광 명소가 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입구로 들어서니 그의 말대로 50명도 넘는 사람들이 시음을 하느라 북새통이다. 시음하고 구입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시음만 하는 사람들인 듯하다. 관광버스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지라, 한 귀퉁이에서 시음을 하면서도 남는 게 있을지 괜히 걱정이 된다. 칠레 와인협회에서 상을 받은 다섯 종의 와인을 마음껏 시음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1 베라몬테 와이너리에서 무한정 와인을 시음하고 있는 관광객들. 
2 베라몬테는 일곱 종의 와인을 생산한다.

비냐델마르에 도착해 제일 그럴듯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점심을 식사를 주문했다. 주문한 것은 해산물과 소고기 스테이크 두 종류. 이럴 땐 화이트 와인을 먹어야 하나, 레드 와인을 먹어야 하나? “생선엔 화이트 와인, 육류엔 레드 와인이란 공식은 없어요. 한국 분들만 꼭 그 이상한 공식을 따르더군요.” 와인 주문을 가이드에게 맡기고 지켜보니 메뉴를 휙 넘겨 보고는 곧 바로 주문을 한다. 잠시 후 와인이 나오자 일반 물컵에 조금 따라서 시음을 한 가이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른 와인을 주문한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보다 못해 그냥 먹자고 말하자 겨우 네 번째에서 그의 와인 감별은 끝났다. “시음만 한 것은 가격에 포함되지 않아요. 그러니 마음껏 골라도 돼요. 어차피 저렇게 딴 와인들은 요리할 때 재료로 사용하니 그들도 큰 손해는 없지요.” 대단히 훌륭한 방식이다. 어차피 와인도 술이라 편안한 분위기가 우선인데, 우리는 와인을 마시기 전에 늘 한참을 고민해야 하지 않는가? 자칫 비싼 돈 주고 맛없는 와인을 마실까 봐. 비록 와인 잔에 레드 와인을, 물컵에 화이트 와인을 따라 마시기는 했지만 여태 먹어본 와인 중에 가장 편안하고 맛있는 와인이었다.

비냐델마르 관광이 끝나고 산티아고로 돌아온 후 저녁 식사를 위해 양고기 구이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곳이 비냐델마르의 레스토랑보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곳임은 테이블에 놓인 식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한 접시에 푸짐하게 올라오는 양고기 구이. 접시에 고기를 덜고 나자 가이드가 다시 와인을 주문한다. 이번 주문은 한 번에 끝난다. 우아하게 앉아 칼질을 하며 와인을 조금씩 음미하면서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데, 가이드가 낮에 먹은 와인과 비교해 지금의 와인이 어떤지를 물었다.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니 그는 잠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이유를 말했다. “와인은 낮에 먹은 것이 훨씬 비싼 와인입니다. 한국 분들은 대부분 이 와인이 더 맛있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입맛이 다른가 봅니다.” 입맛이라. 그러면서 그는 양고기를 칼질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인다. “양고기는 손으로 뼈를 잡고 뜯어야 제 맛입니다. 굳이 나이프를 쓸 필요는 없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손으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건 유럽식일까? 칠레식일까?

우리는 와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물론 와인에는 최고 와인과 그에 따른 격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고 와인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과 다를 수 있으며, 와인을 언제나 우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서만 마시라는 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월드컵 때 축구를 보다 열 받은 선배가 집에 맥주가 없어서 와인 다섯 병을 물컵에 따라 마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와인에 대한 어떤 기준이 웃음을 터뜨리도록 만들었을까? 이제는 좀 편하게 마시자. 자신의 입맛을 먼저 알고 난 뒤에. 자신의 입맛을 알려면 일단은 많이 마셔보는 것이 우선!


칠레 와인협회가 선정한 2007년 칠레 베스트 어워즈. 총 10개 부문의 수상작 중에서 4개의 베스트 어워즈를 국내에서 만나보자.


1. Best Carmenere

오드펠, 오자다 카르메네르 2004 Odfjell, Orzada Carmenere 2004 풍부한 블랙 페퍼, 바닐라, 자두, 체리, 말린 과일, 담배, 차, 감초와 초콜릿 향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5만6000원 문의 (02)2203-0355

2. Best in Show
카사스 델 보스케 리제르바 2006 빈티지 Casas del Bosque Reserva 2006
고농축된 과일의 향미가 와인에 그대로 담겨 와인의 기품과 그 맛을 잘 표현한다. 3만7000원. 문의 (02)3219-0326

3. Best Value Red
몽그라스 리제르바 카베르네 소비뇽 2005 Montgras Reserva Cabernet Sauvignon 2005
짙은 루비색이며, 블랙 체리와 오크 향의 강렬한 아로마를 지니고 있다. 육류와 기름진 스튜, 파스타나 부드러운 치즈와 잘 어울린다. 2만9000원. 문의 (02)3665-1423

4. Best Value White
미구엘 토레스 산타 디그나 소비뇽 블랑 2006 Santa Digna Sauvignon Blanc 2006
목으로 넘길 때 실크와 같은 부드러움이 느껴지며, 다양한 아로마와 함께 신선한 산도가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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