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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이야기

*손편지 이야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반. 집을 나서자 찬바람 이 옷깃을 파고든다. 달그림자를 앞세우고 걸으면서 가끔 불이 켜진 아파트를 바라본다. 몇 번의 신호등을 건너 도착 한 경의선 전철은 그날도 여지없이 빈자리가 없다. 잠이 덜 깬 사람들은 못다 이룬 잠을 청하기도 하고 열 심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밀린 숙제를 하듯 소통하는 사 람도 눈에 띈다. 뜨개질하는 여인의 손이 매혹적이다. 화 장할 시간이 없었는지 젊은 아가씨는 부지런한 손놀림으 로 얼굴을 다듬고 있다.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 이 유난히 돋보이는 새벽이다. 오늘은 전철 안에서 2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용문에 있 는 탄약대대 두 번째 강좌로 군부대는 기 밀문제 때문에 컴 ​ 퓨터를 준비해야 한다. 대상에 따라 요즘 쟁점..

지워진다는 것은

*지워진다는 것은 핸드폰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삭제했다. 미움도 경계의 대상도 아닌 이름을 지운다는 게 하나의 의식처럼 간단해 서 슬프다. 평소에 다정하게 늘 보고파 그리워했던 사람은 아니지만,가끔 쓸쓸하고 외로운 바람 한 줄기 긋고 가는 계절풍 같은 사람이 었다. 남편의 친구인 그는 꿈을 먹고 사는 만년 소년이었다. 책,영화,술,여행이 전부였던 그는 술로 외로움을 달랬고 허전하고 쓸쓸할 땐 영화나 여행으로 빈 가슴을 채웠다. 가 까운 곳에 살면서도 삶의 무게가 다른 그는 자주 찾던 우리 집도 어느 날부터 멀리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자주들러 놀아주기도 하고 식사를 같이하는 일이 잦았는데 아이들 이 크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갔다.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살던 친구에게 남편은 유독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

가족사진

*가족사진 피 향이 빗소리에 스며든다. 사부작사부작 작은 리듬 이 차분함을 더해준다. 비의 가락과 향기가 섞여 가라앉은 분위기를 들어 올린다. 커피를 마시다 식탁 위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올려다 본다. 세 남자와 한 여인이 내려다보고 있다. 부탁할 말이 라도 있는 듯 어색한 표정의 가족사진. 얼마나 벼르고 별 러 찍었던 사진이 었던가. 사관생도인 큰아이는 주말이어 야 하고 대학생인 작은아이는 목표를 찾느라 틈을 주지 않 았다. 진급 공부에 몰입된 남편은 언제나 부재중. 아주 특 별한 날만 가족에게 반짝 내주는 시간은 늘 허기처럼 고프 기만 했다. 전업주부인 나는 어지러운 집 안을 쓸고 닦으 며 가족의 품위 유지에 힘을 벤다. 네 사람이 각자 어렵게 깜을 내서 찍은 사진은 우리 집 보물이 되었다. 가족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