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원두막

뉴타운과 지하방

21c-park 2006. 11. 3. 07:36

대한민국 집부자 1위는 도대체 집을 몇 채나 갖고 있을까? 수십채, 아니면 수백채? 정답은 1083채다. 지난 국감 때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해 가구별 주택소유 현황에서 들춰낸 통계다. 집부자 2위는 819채, 3위는 577채, 4위는 521채 …. 집장사나 임대 사업자가 아닌 순수한 개인도 수백채를 가진 상위권이 여럿 있다니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가구 수 대비 주택 수)은 몇 해 전 105%를 넘었다. 현실 반영률이 떨어지긴 하지만 수치대로라면 집이 남아돈다는 얘기다. 현실은 거꾸로다. 자기 집에 사는 비율(자가점유율)은 1970년대 70%대에서 지금은 55%대로 떨어졌고, 넷 중 한 명꼴이던 전월세 비율은 40%대로 높아졌다.

 


 

주택 수가 늘어날수록 집 가진 사람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은 ‘집부자 통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세 이해가 된다. 전체 가구의 6.5%(104만명)가 전체 주택의 21%를 소유하는 현실에서 ‘집은 많은데 내집은 없는’ 서민들의 탄식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해마다 수십만 가구가 쏟아진다는데 도대체 그많은 집들은 누구한테 가는 걸까? 서울의 일반 재개발 지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통상 30~40% 이하다. 서울 뉴타운 지역은 그 비율이 더 낮다. ‘강북의 강남’을 짓겠다며 용적률을 낮추다 보니 절대 가구 수는 줄고 분양값은 높아진 탓이다. 문제는 땅과 집이 있는 가구주가 아니라 세입자다. 재개발 지역 거주자의 70~80%는 분양권도 이주비도 받을 수 없는 세입자들이다.

 



 

임대아파트 입주권이 있지 않으냐고? 그건 그림의 떡이다. 절대 숫자도 턱없이 부족한데다 그나마 너무 비싸다. 더구나 민간 건설사는 고급형을 짓겠다며 억대 보증금에 수십만원대 임대료로 잇속 챙기기에 바쁘다. 보증금을 마련 못해 속을 태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당 아닌가.

현재의 도심 재개발 방식은 집 없고 가난한 서민들을 더욱 궁지로 내몰 뿐이다. 땅과 집을 가진 가구주의 재산권만 있을 뿐, 실제 거주자인 세입자의 주거권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개발 방식도 그럴진대 소규모 재개발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강북도 강남처럼 잘살아 보자는 취지의 뉴타운 사업은 더 심하다. 능력있는 몇몇 원주민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여유있는 외지인 차지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난곡 재개발 지역이 최근 입주를 시작했다. 60~70년대 청계천과 서울역에서 밀려난 도시 노동자들이 정착해 살던 곳이다. 아파트 숲으로 변한 뒤 거주자 셋 중 둘은 이곳을 떠났다. 봉천동·미아리·마포의 판잣집에 의탁해 수십년을 살아온 이들도 육중한 포클레인에 밀려 삶터를 옮겼다. 앞으로도 수십여 곳의 뉴타운 개발이 예정돼 있다니, 속절없는 피난 행렬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영세 세입자 대부분은 도심을 떠나면 생계를 이을 수 없다. 도시 경제의 맨 밑바닥에서 밥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무려 150여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지하방과 옥탑방, 판잣집과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감수하면서도 서울 등 수도권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도심에서 서울 외곽으로, 다시 도심 지하방과 벌집을 전전하는 도시 노동자들한테 재개발은 축복이 아닌 재앙이요, 정부의 주거안정 대책은 천상의 소리일 뿐이다. 비록 퀴퀴한 지하방이라도 고단한 몸 눕힐 방 한 칸이면 좋고, 계절 따라 냉온탕을 오가는 옥탑방이라도 가족끼리 오순도순 부대낄 수 있으면 족하다는 이들이 아닌가. 가진이들의 재산권 때문에 누군가의 생존권이 짓밟힌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김회승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