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원두막

IT종사자들의 애환

21c-park 2006. 10. 25. 09:35

 

IT종사자들의 애환

 

 

 “사장님이 갑자기 회의 때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황당했습니다.”

음악포털 ㅇ사에서 일하던 김아무개(28·여)씨는 회사가 인수돼 지난 6월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김씨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 모두 마찬가지다. 인수한 기업에서 회원 데이터베이스(DB)만을 원하고, 인력과 그들이 보유한 노하우 등은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노동조합을 만들어 저항했지만, 돌아온 것은 고작 1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위로금뿐이었다. 인터넷 업계에서 인력의 가치를 이처럼 평가절하하는 것은 일반화되어 있다.

 

생산과 고용의 불일치=정보통신산업은 생산이 늘어나도 고용 증가속도는 그에 못미친다.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자료를 보면, 국내 정보통신산업 종사자는 68만여명으로 2000년 52만여명에서 연평균 5.5%씩 늘었다. 같은 시기 생산액은 148조2천억원에서 233조2천억원으로 9.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생산은 증가했지만 그에 따른 일자리 창출효과는 미미하다는 얘기다.

 

인터넷 사업은 일정한 관리 인력을 유지하면 사업이 성장해도 고용을 크게 늘릴 필요가 없다. 반면 경쟁에서 뒤처진 업체는 대규모 인원감축을 한다. 인터넷마케팅업체 애드웹의 임성기 대표는 “인터넷비지니스는 제로섬 게임에 가까워 선두업체가 독식하는 양상”이라며 “선두업체의 경우 수익이 크게 늘어도 일정 규모 이상으로 인력을 늘리지 않고, 하위업체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독점의 심화=국내 검색시장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또 ‘미니홈피’로 통하는 1인미디어 서비스는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의 싸이월드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분야별 1위 기업이 대부분의 파이를 가져간다. 이는 선두기업일수록 자금력과 데이터베이스, 회원 등이 풍부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진다.

 

또 과거 각 사이트가 가졌던 개성은 사라지고 한 사이트에서 대부분의 서비스가 가능한 ‘토털화’ 경향이 심화되면서 특정 업체의 독점적 수익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경쟁에서 뒤처진 업체는 점점 사정이 나빠지고,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한때 800만 회원을 자랑하던 네띠앙이 폐쇄되는 것으로 그 실태를 입증했다. 엠파스 박성봉 대표는 “점점 포털 사이트 서비스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해 더는 신규 사이트가 선보이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독점의 바다’에서 능력이 있는 인터넷 산업일꾼이라고 해도 선두업체로 흡수되지 않으면 열악한 사정의 중소업체를 전전할 수밖에 없다.

 

불투명한 전망=최근 인수·합병을 발표한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가 엠파스, 코난테크놀로지와 한 몸이 되는데는 불과 2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업체간 합종연횡이 빈번해 종사자들은 한치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엠파스의 한 관계자는 “인수·합병이 종사자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보통신 업계에서는 너무 잦아 회사와 연결해 개인 삶을 예측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사업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업계는 사용자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초광속으로 변한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를 좇아가지 못하면 금세 도태되고 만다. 이때문에 아이티 분야의 사회적 노동 평균 수명은 10년이 채 안된다. 25살에 정보통신업계에 발을 들어놓으면 30대 중반에 정년을 맞는 셈이다.

 

지난 95년부터 인터넷업계에서 일해온 최아무개(36)씨는 앞으로 3년 뒤 정년을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 최씨는 “갈수록 젊은 인력은 쏟아지는데 윗자리는 좁아져 나이를 먹을수록 갈 곳이 없어진다”며 “보통 회사들이 30대 중반을 넘기면 관리자 입장인데 이사가 되지 않으면 정리되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한겨레>

 

 

 

 

정보통신산업 생산액과 인력 추이

 

지금 시장엔 IT유랑족이 배회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아이티(IT) 강국으로 불린다.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선두권이고, 시가총액 4조원을 넘는 닷컴이 등장할 정도로 업계도 성장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의 뒤에서 닷컴 종사자들은 평균 근속년수가 2년이 채 안 될 정도로 불안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빛을 따라 움직이다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그들의 부나비 같은 삶을 몇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편집자

 

“10년차 경력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입니다.”

포털사이트 파란을 운영하는 케이티하이텔(KTH)의 최준 노동조합 위원장의 말이다. 기술이 급변하는 인터넷 업계에서는 경험과 경륜이 오히려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연차가 늘수록 회사 부담을 더 키우는 존재이다. 최 위원장은 “장기근속자들은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는데도 인사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인력의 빠른 회전을 경영진이 노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오정’이 아니라 ‘삼오정’ ‘사공정’=외환위기를 겪은 뒤 정년이 사라지면서 ‘사오정’(45살이 정년)이란 유행어가 생겼다. 인터넷 업계 종사자들은 이보다 짧은 ‘삼오정’(35살이 정년) ‘사공정’(40살이 정년) 신세가 되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근무하는 이 아무개(36)씨는 요즘 앞날 걱정에 한숨이 절로 난다. 이씨는 “1997년 음반쪽에서 업무를 시작해 인터넷 업계까지 들어왔다”며 “인터넷 발달로 음반 시장이 어려워져 회사를 그만뒀는데, 인터넷 업계에서는 나이를 먹을 수록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밝혔다. 또 “젊은 인재들은 쏟아지지만 윗자리는 좁아져 내 나이면 중소 인터넷 업계에서 팀장, 부장을 해야하는데 그런 자리가 별로 없다”며 “마흔 넘어서 뭘할까 하는 걱정에 잠을 제대로 못잔다”고 말했다.

 

 

 

 

 

 

기술은 발달하고 시장은 쑥쑥 성장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지는 셈이다. 지난 1997년 이후 ‘벤처열풍’을 타고 대박을 터뜨린 이도 많았다. 2년전까지만 해도 엔에이치엔에서 스톡옵션으로 10억원을 모아 회사를 관둔 사람도 있었다. 이후 인터넷 업계는 일반적인 직장으로 자리잡았고, 월급쟁이로 안착했다.

 

게임업계는 마찬가지다. 엔씨소프트, 넥슨 등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도 생겨났지만, 3~4명으로 운영되는 영세기업도 상당하다. 게임 분야가 비디오게임, 온라인게임, 피시게임 등 다양하지만 국내에서는 온라인게임만이 성공을 거두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6개월 수명의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대박 아이템을 내놓지 않으면 묻힐 수 밖에 없고 종사자들 역시 마찬가지 운명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20대 중반에 게임업계에 뛰어들어 30대 초반에 ‘대박’을 터트리지 않으면 은퇴하는 것이 정설”이라고 밝혔다.

 

엔에이치엔에서 다른 인터넷 업계로 옮긴 ㄱ씨는 “제조업체에서 20%만이 성공을 거둬 진급을 한다면 인터넷 업계는 5%가 승진을 거둘까 말까한다”며 “나이가 들수록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종사자들=인터넷 업계에 8년차 이상의 종사자들은 대개가 3~4번의 이직 경험이 있다. 자기계발, 연봉, 복리후생 등 더 나은 자리를 찾아 네이버, 다음으로 스카우트 된 경우도 있다. 반면 중소업체에서 근무하다 쫓겨난 뒤 다시 비슷한 업계로 흘러나가는 경우도 있다.

 

현재 구직활동 중에 있는 권아무개(32)씨는 한달 전까지만해도 한 게임회사에서 대리로 일했다. 하지만 올들어 경영사정이 나빠지자 60여명 직원 가운데 권씨를 포함해 절반 가량을 내보냈다. 권씨는 현재 다시 게임업계 쪽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그는 “지난 2001년 첫 직장생활을 할때부터 이쪽 분야에서만 일해와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엔에치엔의 ㅂ팀장은 현재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초창기에 합류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고, 연봉도 꽤나 받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도 진급을 위해 가파른 경쟁률을 뚫어야하지만 인터넷 업계는 특히 심하다”며 “인터넷 서비스의 경우 정형화된 틀 속에서 운영되는 것이 많아 굳이 나이 많은 직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신규 서비스 출시를 위해 입사했다가 서비스 실패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엔에이치엔이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와 비슷한 서비스인 ‘엔토이’를 선보이기 위해 90여명을 뽑았다가 서비스가 실패로 팀 자체가 해체하기도 했다. 신규 서비스 성공률이 10~20%에 불과해 실패할 경우 부서를 옮기거나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목소리를 내기 힘든 형편이다. 인터넷 업계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된 곳은 케이티하이텔 한 곳 뿐이다. 포털사이트 ㅋ닷컴은 생겼다가 와해되고, 게임 ㅇ사는 올초 만들려다 회사측의 방해로 실패했다. 더욱이 거의 모든 직장이 연봉제로 운영하고 있다. 손쉽게 들고 나갈 수 있는 구조속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문에 인터넷 업계 종사자들은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인터넷 업계가 정보통신기술의 한분야로 자리매김하면서 빠른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10년 가량의 역사 동안 직장인으로서 바라봐야 할 적정한 ‘역할모델’(role-model)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가파른 성장속에서 이곳저곳을 헤매며 분주히 이직을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짧으면 30대 중반, 길면 40대 중반 이후에 뭘 해야할지 몰라 갈등하고 있다.

 

 

오광균 다음커뮤니케이션 인력개발 팀장은 “직원들 평균 나이가 29.8살로 아직 젊다”며 “향후 이(e)비지니스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데다 개인 삶에 대한 예측도 불가능해 관련 종사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새로운 트렌드가 계속 생겨나고 네띠앙 등이 망해가는 모습에 더욱 그렇다”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의 직무 역량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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