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원두막

신사임당 VS 유관순

21c-park 2007. 11. 8. 08:40

 

 

신사임당 VS 유관순

 

 

 

 

 

한국은행은 2009년 발행될 고액권 지폐에 들어갈 인물로 10만원권은 백범 김구, 5만원권은 신사임당이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과학계를 대표하는 장영실이 끝내 탈락하고, 독립운동에 앞장 선 진취적인 여성상의 유관순이 탈락함으로써 과학계와 여성계의 강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또, 한국은행 측에서 초상 인물 선정에 참여한 자문위원의 명단을 끝내 공개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초상 인물 선정과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10만원권에는 남성, 5만원권에는 여성이 선정된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선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엔 '여성을 끼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분위기가 기저에 깔려있다.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해서 여성을 한 명 넣어주지만 '10만원권은 남성, 5만원권은 여성'이라는 암묵적 약속, 결국 남성이 여성의 위라는 뜻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남성우월주의, 남성중심사상이 어느정도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5만원권에 들어갈 인물로 유관순이 아닌 신사임당이 선정된 것은 이러한 결론의 명확한 방증이다. 한국은행은 신사임당을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결국 한국은행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은 '어진 아내', '순종적인 여성'인 것이다. 꽤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분명히 밝히지만 신사임당을 폄훼(貶毁)하려는 의도는 없다. 시대의 요구를 읽자는 것이다. 신사임당은 훌륭한 아내였고, 어머니였다. 그 덕목이 결코 가벼운 가치는 아니다. 하지만 21세기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닌 능동적인 여성,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가 아닌 스스로 주체가 되는 여성을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사임당과 유관순의 소리 없는 싸움은 의외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한국은행이 신사임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대한민국 남성들이 어떤 눈으로 여성을 바라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주었고, 여전히 '밀실'에서 이뤄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문화미래 이프의 엄을순 대표의 "여성을 한 명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여성인가가 문제"를 인용(引用)· 변용(變用)하자면 "여성을 한 명 넣는 것도 중요하고, 몇 만원권에 여성을 넣는 가도 중요하고, 어떤 여성을 선정하는가도 중요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