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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주사위

21c-park 2007. 6. 27. 09:04

신과 주사위

 

아이작 뉴턴이 남긴 지적 유산은 우주가 탄생한 시점부터 작동을 시작해, 그 이후 충실한 기계처럼 미리 정해 주 홈을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해 온 시계장치 우주라는 상이다. 그것은 완전히 결정론적인 세계, 우연성이 끼여들 여지가 한 치도 없는, 그래서 그 미래가 현재에 의해 완벽하게 결정되는 세계관이다. 위대한 수리 천문학자인 피에르 시몽 드 라플라스는 1812 년에 '확률에 대한 분석이론(Analytic Theory of Probabilities)'에서 그 우주상을 다음과 같은 뛰어난 문장으로 표현했다.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는 모든 힘과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삼라만상의 상호 위치를 남김없이 알고 있는 지성이 있다면, 그리고 그 지성이 분석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자료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면, 또 그 지성이 우주의 가장 거대한 천체들에서부터 가장 가벼운 원자들에 이르는 모든 것의 움직임을 하나의 공식으로 압축시킬 수 있다면, 그런 지성에게 불확실한 것이라곤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성의 눈앞에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모습도 환치 펼쳐질 것이다.

미래가 완전히 예측 가능하다는 똑같은 관점은 더글러스 애덤스가 1979 년에 발표한 과학소설 '히치하이커를 위한 은하 가이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서 벌어지는 기억에 남는 한 사건에서도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철학자인 매직타이스와 브룸폰델은 슈퍼 컴퓨터 '디프 소트(Deep Thought, 심오한 지성)'에게 지금까지 인류가 풀지 못한 생명, 우주, 그리고 만물에 관한 수수께끼의 답을 계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열렬한 SF 팬이라면 그로부터 5백만 년이 지난 다음 컴퓨터가 '42'라는 답을 내놓았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서야 철학자들은 컴퓨터가 내놓은 답변은 분명하고 정확했지만, 문제 자체는 그렇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라플라스의 생각은 문제점은 그가 내놓은 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우주가 이론상으로 예측 가능하며, 그 예측이란 뉴턴의 운동법칙의 특수한 수학적 특성의 정확한 제시일 따름이다,사실에 대한 그의 해석에 있었다. 그의 생각은 잘못된 질문에 기반을 둔 엄청난 오해였다. 오늘날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은 보다 적절한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결정론과 예측 가능성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라플라스의 결정론이 전혀 맞지 않는 모형이라는 숱한 사례들과 마주치게 된다. 아무 일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다가도 발목을 삐거나 부러뜨리는 사고가 일어난다. 테니스 시합을 하다가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나기도 한다. 경마에서 좋아하는 말에 내기를 걸었는데, 6 마신(말 마, 몸 신) 차이로 앞서 나가던 말이 마지막 바퀴에서 넘어지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양자론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면서 했던 유명한 말처럼,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주사위가 신을 가지고 노는 곳에 가까운 것 같다.  과연 우주는 라플라스가 주장했듯이 결정론적인가? 아니면 우리 주변에서 자주 벌어지듯이 우연에 의해 지배되는가? 라플라스가 옳았다면 우리 경험의 상당 부분이 그의 생각과 어긋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학의 가장 놀라운 새로운 분야 중 하나인 비선형 동역학(nonlinear dynamics)은,흔히 카오스 이론으로 알려져 있는,여러 가지 답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 새로운 수학은 질서와 무질서, 법칙성과 우연성, 예측 가능성과 임의성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현대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자연은 시간과 공간의 가장 작은 척도에서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 한다. 예를 들어 방사성 원자가,가령 우라늄과 같은,특정 순간에 붕괴할 것인가 아닌가는 순전히 우연의 문제이다. 붕괴하는 우라늄 원자와 그렇지 않은 우라늄 원자 사이에 어떤 물리적인 차이도 없다. 그야말로 전혀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배경이 필요하다. 하나는 양자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고전역학이다. 이 장의 대부분에서 우리는 고전역학을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잠깐 동안 양자 역학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자네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한다고 믿는가? 나는 완전한 법칙성과 질서를 믿네."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그이 동료인 막스 보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이 나오게 된 원인이 바로 이 양자적 불확정성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양자적 불확정성이라는 정통 물리학의 견해에 대해서는 무언가 분명한 의구심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 것이다.
  점차 많은 물리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이 옳았고, 지금까지의 양자 역학에는 무언가 빠진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원자가 붕괴하는 갑인 '숨겨진 변수(hidden variable)'일 것이다(그런데 이것이 종전까지의 견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학자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은 프린스턴 대학의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다. 그는 완전히 결정론적이지만, 양자적 불확정성이라는 종전의 견해를 지지하는데 이용되어 온 수수께끼와 같은 현상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수정판 양자역할을 고안해 냈다.  그런데 봄의 개념도 그 자체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양자적 불확정성만큼이나 불안스러운 일종의 '멀리 떨어진 작용(action at a distance)' 이라는 문제에서 상당한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다.  양자역학이 가장 작은 미시 규모에서 나타나는 불확정성에 대해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의 거시 규모에서 우주는 결정론적 법칙에 따른다. 이런 현상은 '티코히런스(decoherence, 일관성 붕괴)'라 불리는 효과의 결과이다. 이 효과는 충분히 큰 규모의 양자적 계가 거의 모든 불확정성을 상실하고 뉴턴적계와 흡사하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실제로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 크기의 대상에 대해 고전역학을 복원시키는 셈이다.
  말, 기상,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주사위는 양자역학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뉴턴적 모형에서도 여전히 예측이 불가능하다. 말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런 이야기가 전혀 놀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생물들은 아침식사로 어떤 건초를 먹는가의 선택처럼 나름대로의 숨겨진 변수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날씨를 몇 개월 앞서 예보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기상을 다루는 대규모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개발했던 기상학자들이라면 무척 놀랄 것이다.
  그런데 주사위의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주사위를 우연성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잘못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주사위는 정육면체이다. 굴려진 주사위의 움직임은 궤도를 도는 행성들보다 예측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두 가지는 모두 동일한 역학적 운동법칙에 따른다. 주사위와 행성의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규칙적이고 수학적 형태를 갖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예측 불가능성이 결정론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전우주보다 훨씬 작은 계에 대해,가령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생각해 보자. 이것은 결정론적 계이다. 이론상으로 수도꼭지로 흘러 들어가는 물의 흐름은 균일하다. 그리고 물의 흐름이 일어났을 때 발생하는 일은 유체의 운동법칙에 의해 완전히 기술된다.
  그러나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인 실험을 통해서 이 분명한 결정론적 계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을 통해 우리는 일종의 수학적인 '수평사고(기존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방식. 옮긴이)'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 사고방식은 어떻게 이런 역설이 가능한지 설명해 준다.  수도꼭지를 아주 조금 돌리고 물이 흘러나오기까지 몇 초 동안 기다리면,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규칙적인 리듬으로 물방울이 떨어지게 할 수 있다. 이 경우보다 더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는 보기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수도꼭지를 조금 더 틀어 물의 흐름을 증가시키면 물방울이 아주 불규칙하게 떨어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런 흐름은 임의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런 불규칙한 흐름을 만들어 내려면 약간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수도꼭지를 아주 조금씩 돌리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꼭지를 너무 세게 돌려서 물이 계속 흘러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중간 정도 빠르기의 물방울이다. 여러분이 이런 흐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수분 동안 어떤 다른 패턴의 출현 없이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1978 년에 산타크루즈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우상 파괴적인 젊은 대학원 학생들이 '동역학적 계 집단(Dynamical Systems Collective)'이라는 그룹을 형성했다. 그들은 물방울 계에 대해 고찰하는 과정에서 물방울의 움직임이 겉보기처럼 임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마이크를 이용해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녹음하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시간 간격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그들은 단기적인 예측 가능성을 발견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3개의 물방울이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시점을 이야기해 준다면, 여러분은 다음 물방울이 언제 떨어질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마지막 3개의 물방울의 시간 간격이 0.63초, 1.17초, 그리고 0.44초였다면, 다음 물방울이 0.82초 후에 떨어질 것이라고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이 숫자는 실제 관찰 결과가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 예로 든 것이다). 실제로 만약 여러분이 처음 3개의 물방울의 시간 간격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계의 모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라플라스가 틀렸단 말인가? 그 요점은 우리가 그 계의 초기상태를 절대로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리적 계를 대상으로 지금까지 이루어진 가장 정확한 측정도 고작 소수점 이하 10내지 12자리까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가 무한히 정확하게, 소수점 이하 무한한 자리까지 측정을 계속할 수 있다면 라플라스의 주장은 옳을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라플라스가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측정의 오차가 얼마나 큰 차이를 불러오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들은 가령 소수점 이하 10자리까지 계산을 할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했다. 오차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오차가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차는 늘어난다. 일련의 단기 예측들을 하나로 모아 장기예측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처음 3개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시간 간격을 소수점 이하 10자리의 정확도로 알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다음 물방울이 떨어지는 시간 간격을 소수점 이하 9자리까지 예측할 수 있다. 그 다음 물방울은 소수점 이하 8자리...식으로 계속된다. 매단계마다 오차는 10배씩 늘어나고, 그에 따라 나는 매번마다 한 자리씩 자신감을 잃어 가게 된다. 따라서 미래 방향으로 10 단계가 지나면 그 다음 물방울이 얼마 후 떨어질지에 대해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된다(물론 정확도가 유지되는 자릿수가 다를 수도 있다. 가령 6개의 물방울이 떨어진 다음 소수점 이하 한 자리의 정확도가 상실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겨우 60개의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면 똑같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오차의 증폭이야말로 라플라스의 완전한 결정론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논리적 틈새인 셈이다. 완벽한 측정이 불가능한 한 아무리 작은 오차도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가령 소수점 이하 1백 자리까지 물방울의 시간 간격을 측정했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예견은 1백번째 물방울부터(좀더 낙관적인 추정을 근거로 삼는다 해도 6백 번째 물방울부터)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sensitivity to initial conditions)', 좀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면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라고 한다(동경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치면 한 달 후에 그 영향으로 플로리다에서 허리케인이 발생한다). 이 현상은 행동의 고도의 불규칙성과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규칙적인 것은 확실하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성은 그 움직임을 예측 불가능한,따라서 불규칙한,무엇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 때문에 초기조건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계를 '카오스적(chaotic)' 이라고 한다.
  카오스적인 운동은 결정론적 법칙에 따른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너무 불규칙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거의 임의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카오스는 단순하게 복잡하고, 패턴이 없는 움직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보다 훨씬 파악하기 힘든 현상이다. 카오스는 분명 복잡하고 겉보기로는 아무런 패턴도 갖지 않는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단순하고 결정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카오스는 무척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자리에서 그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카오스가 발견된 것은 세 가지 독립적인 연구가 하나로 합쳐진 결과였다.  하나는 반복되는 주기와 같은 단순한 패턴에서 좀더 복잡한 행동 유형으로의 과학적 초점의 변화이다. 두 번째는 컴퓨터이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동역학 방정식의 해를 훨씬 빠르고 수월하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동역학에 대한 새로운 수학적 관점, 다시 말해서 수리적 관점이라기보다는 기하학적 관점이다. 첫 번째는 카오스를 찾으려는 동기를 주었고, 두 번째는 방법을, 그리고 세 번째는 카오스에 대한 이해를 가져다주었다.
  동역학을 기하학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약 1백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수학자 중에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불장군이었지만, 그의 관점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정통 이론이 되었다, 처음으로 위상공간(역학계의 운동상태를 나타내는 공간. 옮긴이)을 발명해 냈다. 위상공간은 어떤 동역학적 계의 가능한 모든 운동을 나타내는 가상의 수학적 공간이다. 그러면 비역학적 보기로 상태계에서 나타나는 포식자와 먹이 사이의 집단동역학을 살펴보자. 이 보기에서 포식자는 돼지이고 먹이(피포식자)는 톡 쏘는 맛이 나는 자낭균류의 버섯의 일종인 트러블(truffle)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변수들은 두 집단의 크기, 즉 돼지의 개체수(1백만과 같은 참조 숫자에 대한 상대적인 숫자를 사용한다)와 트러플(돼지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의 개체수이다.  이 선택은 변수들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서 그 숫자는 전체 개체수뿐 아니라 자릿수를 가진 실수의 개체수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돼지의 참조 숫자는 1백만이고, 따라서 17,439 마리의 돼지 집단은 0.017439라는 수에 상응한다.
  트러플의 자연 증가는 기존의 트러플의 개체수, 그리고 돼지가 트러플을 먹어 치우는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돼지 집단의 증가는 기존의 돼지의 수와 돼지들이 트러플을 먹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각각의 변수의 변화율은 2개의 변수에 따라 달라지고, 관찰 결과는 집단동역학을 위한 미분방정식의 체계로 변환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방정식을 소개하지 않겠다. 우리는 의에서는 방정식 자체보다는 그 방정식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방정식들은 이론상으로 특정한 집단의 초기값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가령 우리가 17,439마리의 돼지와 788,444개의 트러플에서 출발할 경우 돼지의 변수에 0.017439, 트러플의 변수에 0.788444를 대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방정식은 그 숫자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암시적으로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암시적'인 것을 분명한 것으로 바꾸어 내는 작업, 즉 방정식을 푸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어렵다는 것일까? 고전적인 수학자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특정 순간에 돼지 집단과 트러플 집단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분명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공식을 찾으려 들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명백한 해법'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방정식이 매우 특수하고 제한된 형태를 띠지 않는 한 그런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대개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 대안이 컴퓨터상에서 근사치에 해당하는 해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근사치는 특정한 초기값에 한정해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만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줄 뿐이다. 반면 우리는 수많은 초기값에 대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푸앵카레의 생각은 '모든' 초기값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남김없이 보여 주는 상을 그려 내는 것이었다. 그 계의 상태, 즉 특정 순간의 두 집단의 크기는 좌표라는 오래 된 방법을 이용해서 평면상의 한 점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일례로 우리는 돼지의 집단을 수평 좌표값으로, 그리고 트러플 집단을 수직 좌표값으로 표시할 수 있다. 앞에서 보기로 들었던 두 집단의 초기 상태는 수평 좌표값 0.017439와 수직 좌표값 0.78444에 해당하는 한 점으로 표시된다.  그러면 시간을 흐르게 해 보자. 두 좌표값은 시간이 한 시점에서 다음 시점으로 흘러가면서 미분방정식으로 표현된 규칙에 따라 변화한다. 그에 따라 좌표값에 상응하는 점도 이동한다. 움직이는 점은 곡선 궤적을 그린다. 그리고 그 곡선이 이 계 전체의 미래에 나타날 행동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여러분은 이 곡선을 지켜보기만 하면, 좌표의 수치에는 신경쓸 필요도 없이, 이 계의 동역학의 중요한 특성들을 '볼' 수 있다.  일례로 만약 그 곡선이 고리를 이루며 닫혀진다면, 두 집단은 같은 값이 계속 반복되는 주기적 순환을 따르게 된다.,그것은 경주장에서 자동차가 계속 같은 관람객 앞을 통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그 곡선이 특정 지점에 도달해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면, 두 집단은 정상상태로 안정되어서 더 이상 변화하지 않게 된다,이 경우는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와 같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우연의 일치로 주기와 정상상태는 생태학적으로,특히 이 두 가지가 집단 크기의 상한과 하한을 결정한다는 점에서,매우 큰 중요성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가 눈으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특성들이 실제로도 가장 중요한 특성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와 무관한 세부적인 사실들은 무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 정확한 형태(그것은 두 집단의 주기가 결합된 '파형'을 나타낸다)를 연구하지 않아도 거기에 폐쇄고리(closed loop)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초기값으로 다른 값을 취하려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두 번째 곡선을 얻게 된다. 그리고 초기값을 바꿀 때마다 새로운 곡선이 나타난다. 우리는 이런 곡선의 모든 집합을 그려서 모든 초기값에 대해 이 계의 가능한 모든 움직임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런 곡선들의 집합은 평면 위를 흘러가는 가상의 수학적 유체(흐를 류, 몸 체)의 유선(흐를 류, 선 선)과 흡사한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그 방면을 그 계의 위상공간(phase space)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곡선들의 집합은 그 계의 위상묘사(phase portrait)이다. 여러 가지 초기 조건에 상응하는 미분방정식이라는 기호에 기분을 둔 개념 대신 돼지-트러플 위상공간을 흐르는 점들의 시각적 구도인 것이다.
  이 평면과 일반적인 평면의 차이는 그 평면상의 점들의 상당수가 실재하는 점이라기보다는 잠재적이라는 사실뿐이다. 그 평면의 좌표는 적절한 초기 조건하에서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 돼지와 트러플의 숫자 해당한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에는 실제로 그런 숫자의 집단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기호에서 기하학으로의 정신적인 전이뿐 아니라 실재에서 잠재로의 철학적 전이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동역학적 계에서 이와 똑같은 기하학적 상(형상 상)을 상상할 수 있다. 거기에는 그 좌표가 모든 변수의 값인 위상공간이 있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초기 조건에서 출발하는 가능한 모든 행동들을 나타내는 곡선들이(이 곡선들은 미분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로 이루어진 계인 위상묘사가 있다.  이런 개념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다. 그 방정식의 해의 정확하고 상세한 수치 때문에 골치를 썩지 않고도 위상묘사의 폭 넓은 전개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인 놀라운 이미지 처리 능력(image processing abilities)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 움직임(그 중에서 자연이 선택한 것이 실제로 관찰되는 움직임이다)의 총체적인 범위를 조직하는 방법으로서의 위상공간이라는 상(형상 상)은 그 동안 과학에서 폭넓게 확산되었다.  푸앵카레의 위대한 혁신의 결과로 동역학이 끌개(attractor)라 불리는 기하학적 형태로 시각화될 수 있었다. 어떤 최초의 점에서 동역학적 계를 출발시키고 장기적으로 그 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면, 여러분은 그 계가 위상공간 속에서 분명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그 곡선은 나선을 그리며 폐쇄고리가 될 수도 있고, 그런 다음 영원히 그 고리 위를 회전하기도 한다. 게다가 초기 조건을 다르게 선택해도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형태가 동일한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그 형태를 끌개라고 부른다. 어떤 계의 장기적인 동역학의 그 끌개에 의해 결정되며, 끌개의 형태가 어떤 종류의 동역학이 발생하는지 결정한다.  예를 들어 정상상태로 안정되는 계는 하나의 점으로 이루어진 끌개를 갖는다. 동일한 움직임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식으로 안정화되는 계는 폐쇄고리의 끌개를 갖는다. 따라서 폐쇄고리 끌개는 진동자에 상응하는 셈이다.  5장에서 소개했던 진동하는 바이올린의 현에 대한 설명을 상기하라. 바이올린의 현은 결국 처음 출발한 위치로 돌아오는 일련의 움직임을 일으키고, 영원히 그 움직임을 계속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이 말이 바이올린의 현이 물리적인 고리를 그리며 움직인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현의 진동이 폐쇄고리를 이룬다고 말하는 것은 비유적인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현의 운동이 위상공간의 동역학적 풍경(landscape)속에서 원을 그리며 진행한다는 뜻이다.
  카오스는 그 자체의 독자적이고 기묘한 기하학을 갖고 있다. 그것은 '기이한 끌개(strange attractor)'라 불리는 신비스러운 형태와 연관된다. 나비효과는 기이한 끌개상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운동을 미리 예측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이한 끌개도 끌개'라는 사실 자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 탁구공을 하나 던졌다고 상상하자. 여러분이 그 탁구공을 공중에서 던졌든, 물 속에서 놓았든 상관없이 그 공은 표면으로 떠오를 것이다. 일단 표면에 도달하면 공은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매우 복잡한 경로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그 경로가 아무리 복잡하다 하더라도, 탁구공 자체는 수면 위에,또는 수면에 매우 근접한 위치에,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비유에서 수면이 끌개에 해당한다. 따라서 카오스라 할지라도, 출발점이 어디든 간에, 그 계는 끌개에 매우 근접한 위치로 귀결하게 된다.
  카오스는 수학적 현상으로 훌륭하게 정립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카오스를 실세계에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과학에서 차지하던 실험의 전통적인 역할은 이론적 예견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비효과가 실제로 작용한다면,모든 카오스적 계에 대해서,어떻게 예견을 실험할 수 있단 말인가? 카오스 자체에 검증 불가능성이 내재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카오스는 본질적으로 비과학적인 무엇이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분명 '아니다'이다. 그것은 예측이라는 말이 두 가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하나는 '미래를 예언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나비효과는 카오스가 존재할 때 이런 행위를 방해한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어떤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미리 기술한다'이다.  동전던지기를 1백 번 한다고 생각해 보자. 마치 점쟁이가 한 해의 운세를 점치듯 동전의 어떤 면이 앞으로 나올지 예측하려면, 동전을 한 번 던졌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일일이 목록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점쟁이처럼 미래의 시시콜콜한 사실을 예언하지 않더라도 '대략 절반 정도는 앞면이 나온다'는 과학적인 예측을 할 수 있다. 이 보기처럼 그 계가 임의적인 경우에도 말이다.  통계학이 예측불가능한 사실들을 다룬다는 이유로 통계학을 비과학적인 학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카오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러분은 카오스적 계에 대해 모든 종류의 예측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분은 진정한 임의성에서 결정론적 카오스를 분간해 내기 위해 충분한 예측을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그 끌개의 형태이다. 그 형태는 나비효과에 의해 변화하지 않는다. 나비효과가 미치는 영향은 계가 같은 끌개 위에서 다른 경로를 택하게 만드는 정도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끌개의 일반적인 형태는 실험적인 관찰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카오스의 발견으로 그 동안 법칙과 그 법칙이 만들어 내는 움직임 사이의 관계에,소위 인과관계,대한 우리들의 이해에 근본적인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결정론적 원인이 반드시 규칙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었지만, 이제는 결정론적 원인이 자칫 임의성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을 만큼 불규칙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동안 단순한 원인이 단순한 결과를 낳는다고(마찬가지로 복잡한 원인이 복잡한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되었지만, 단순한 원인이 복잡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법칙을 이해했다고 해서 미래의 행동을 예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렇다면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 어떻게 이런 모순이 나타날 수 있을까? 그 답은 부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달걀을 휘저어 섞는 달걀 교반기나 과일을 가는 데 쓰이는 믹서와 같은 가전용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달걀 교반기나 믹서에 달린 2개의 날의 운동은 무척 단순하고 예상 가능하다. 라플라스가 예견했듯이 2개의 날은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회전운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달걀 교반기 속에 들어 있는 설탕과 달걀의 운동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 과정에서 두 재료는 섞인다. 이것이 달걀 교반기를 이용하는 목적이다. 그러나 달걀 교반기의 두 날은 서로 꼬이지 않는다. 따라서 작동을 끝낸 다음 2개의 날을 풀어 내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머랭 과자(달걀 흰자위를 섞어서 굽는 과자. 옮긴이)의 원료의 운동과 교반기 날의 운동이 그토록 다른 것은 왜일까? 혼합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동역학적 과정이다. 가령 특정한 설탕가루가 최종적으로 어느 위치에 가 있게 될지 예측한다고 가정해 보라! 두 재료의 혼합물이 한 쌍의 교반기 날 사이를 지나면서 문제의 설탕가루는 좌우로 흩어지고, 처음에는 한데 몰려 있던 재료들이 멀리 떨어지고 제각기 독립적인 경로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 과정은 실질적으로 나비효과이다. 초기조건의 작은 차이가 엄청나게 큰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합은 카오스적인 과정인 셈이다.  역으로 모든 카오스적 과정은 일종의 푸앵카레의 가상위상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수학적 혼합을 포함하고 있다. 밀물과 썰물은 예측할 수 있지만 기상은 예측이 불가능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두 가지 자연현상 모두 같은 종류의 수학과 연관되지만, 기상의 동역학은 위상공간을 혼합시키는 반면 조수의 동역학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여러분이 하는 행동은 그렇지 않지만 여러분이 행동을 하는 방식에는 혼합이라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카오스는 자연의 운행에 대해 그 동안 우리가 품고 있던 안락하고 쾌적한 가정들을 허물어 뜨린다. 카오스는 우주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낯설고 기이한 곳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많은 전통적인 과학의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단지 자연의 법칙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다른 한편, 카오스는 우리가 완전히 임의적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이 실제로는 단순한 법칙들의 결과일 수도 있음을 말해 주다. 자연의 카오스는 규칙들로 속박되어 있다. 과거에 과학은 겉보기에 임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나 현상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현상들이 분명한 패턴을 갖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법칙들에 의해 지배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생각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바로 우리들의 코밑에도 단순한 법칙들이 수없이 많다. 전염병을 지배하는 법칙, 심장병을 지배하는 법칙, 또는 메뚜기 떼의 대량발생을 지배하는 법칙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그런 법칙들을 알아낸다면, 그 결과로 닥칠 수 있는 재앙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카오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법칙들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법칙들도 포함되어 있다. 카오스는 그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새로운 일반 패턴들을 포괄하고 있다. 가장 먼저 발견된 패턴들 중 하나가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패턴이다. 흐름의 속도에 따라 수도꼭지에서 율동적으로, 또는 카오스적으로 물방울이 떨어질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과 '임의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모두가 수학적으로 똑같이 기술될 수 있지만, 작은 차이를 갖는 변형 규칙에 따를 뿐이다. 그러나 물이 수도꼭지를 통과하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동역학의 유형이 바뀌게 된다. 동역학을 나타내는 위상공간 속의 끌개는 변화를 계속한다. 그리고 예측 가능하지만 고도로 복잡한 방식으로 변화한다.  그러면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문제를 먼저 살펴보자. 똑똑똑, 반복적인 리듬으로 하나하나의 물방울은 이전의 것과 똑같다. 그러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가 약간 빨라지도록 수도꼭지를 아주 천천히 돌려보자. 이번에는 리듬이 똑똑똑똑으로 바뀐다. 따라서 똑똑이라는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물방울의 크기뿐 아니라 한 방울이 떨어지고 다음 방울이 떨어지기까지의 시간 간격의 차이도 작용한다.
  물방울이 좀더 빨리 떨어지게 만들면 이번에는 4개의 물방울로 이루어진 '똑똑똑똑'의 패턴을 얻게 된다. 물방울의 반복 순서는 이런 식으로 계속 2배로 늘어난다. 수학적 모형에서 이 과정은 16, 32, 64 방울식으로 무한히 계속된다. 그러나 주기가 계속 2배로 늘어날수록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의 차이는 작아진다. 그리고 이런 식의 배가(더할 배, 더할 가)가 무한히 일어나는 속도가 있다. 이지점에서는 어떤 물방울의 순서도 정확히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것이 카오스이다.  우리는 푸앵카레의 기하학적 언어를 이용해서 물방울에서 일어난 일을 나타낼 수 있다. 수도꼭지의 끌개는 폐쇄고리에서 시작되었다. 폐쇄고리는 주기적인 순환을 나타낸다. 이 고리를 여러분의 손가락에 감긴 고무밴드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손가락에 감긴 고무밴드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이 고리는 2개의 인접한 고리들로,마치 고무밴드를 손가락에 두 번 감듯이,나뉘다. 고무밴드는 원래 길이의 2배가 된다. 주기가 2배로 늘어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다음 똑같은 방식으로 고리의 주기는 2배로 늘어나고...이런 식으로 계속 배가된다. 만약 이런 배가가 무한히 계속된다면, 여러분의 손가락은 고무줄 스파게티로 둘러져 있을 것이다. 그 고무줄 스파게티가 카오스적 끌개이다.  카오스의 창조 과정에 대한 이 시나리오를 주기배가 캐스케이드(period-doubling cascade)라고 한다. 1975 년에 물리학자인 미첼 파이겐바움은 실험을 통해 측정될 수 있는 특수한 수가 모드 주기배가 캐스케이드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수는 대략 4.669이며, 수학과 자연계와의 연관성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되는 신비스러운 수 중 하나로 파이(3.14)와 거의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
  파이겐바움이 발견한 수 역시 기호를 갖는다. 그 기호는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델타이다. 파이는 원의 원주의 길이와 지름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그와 마찬가지로 파이겐바움의 수 델타는 물방울의 주기와 물이 흐르는 속도의 관계를 말해 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주기가 배가 할 때마다 수도꼭지를 돌려야 하는 추가량은 4.669배로 감소한다.  수 파이는 원을 포함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정량적인 기호이다. 마찬가지로 파이겐바움의 수 델타도 모든 주기배가 캐스케이드에 대한 정량적인 기호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어떻게 생성되었든 간에, 그리고 어떤 실험방법을 통해 이해되었든 간에 상관없이 적용되는 양적 기호라는 듯이다. 액체 헬륨, 물, 전기회로, 진자(진동할 진, 아들 자), 자석, 그리고 진동하는 기차바퀴 등등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동일한 숫자가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가 카오스라는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의 새로운 패턴, 그리고 정성적인 현상에서 발생하는 정략적인 패턴, 수(셈할 수)인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자연의 수의 하나이다. 파이겐바움의 수는 새로운 수학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 주었고, 이제 우리는 그 세계에 대한 탐험을 막 시작한 상태이다.  파이겐바움이 발견한 정확한 패턴과 그와 유사한 다른 패턴들은 극도로 정밀한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사실은 자연법칙의 결과가 패턴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그 법칙들은 여전히 거기 존재하며, 따라서 패턴이라는 점이다. 카오스는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겉보기로는' 임의적인 움직임인 것 같지만 엄밀한 법칙에 의해 나타난 움직임이다. 카오스는 숨겨진 질서의 한 형태이다.
  전통적으로 과학은 질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카오스가 과학에 분명한 이익을 가져다 분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카오스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자극에 대해 쉽게 반응을 일으키게 해 준다.  상대의 서브를 기다리고 있는 테니스 경기자를 상상해 보자. 그 경기자가 가만히 서 있을까? 아니면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규칙적으로 움직일까? 둘 다 아니다. 그들은 양쪽 발을 이용해서 불규칙하게 움직인다. 한편으로 상대를 혼란시키려고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가 어떤 구질과 방향의 서브를 보내도 맞받아칠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공이 오든 신속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 그들은 여러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카오스적 계는 비카오스적인 계보다 외부 사건에 대해 훨씬 신속하게, 그리고 훨씬 적은 노력으로 반응할 수 있다. 공학적 제어 문제에서는 이런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일례로 우리는 일부 난류에서 카오스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난류가 임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고도로 빠른 반응으로 초기의 난류 발생 영역을 상쇄시키는 방법으로 비행기의 표면을 스치는 기류에서 난류가 적게 일어나도록 만들어, 비행기의 진행에 대한 저항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증명이 가능하다. 생물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위 환경에 신속하게 반응하기 위해서 카오스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일부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이런 개념을 매우 유용한 실용적인 기술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에는 윌리엄 디토, 알란 가핑클, 짐 요크 등의 학자들이 포함된다. 그들은 그 방법을 카오스 제어(chaotic control)라고 부른다. 이 제어방법의 기본 개념은 나비효과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 조건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움직임에 엄청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 자체가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충분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뿐이다. 카오스적 동역학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게 되자, 그 과정을 정확하게 실행하는 제어 전략을 고안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방법을 활용해서 성공을 거둔 여러 가지 사례가 있다.  인공위성은 경로 수정을 위해서 히드라진이라 불리는 연료를 사용한다. 카오스 제어를 활용한 최초의 성공사례 중 하나는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히드라진을 이용해서 문제의 위성을 원래의 궤도에서 이탈시켜 소행성과 돌시키는 작전이었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문제의 인공위성이 달 주위를 다섯 바퀴 회전하면서 매회전마다 히드라진을 조금씩 태워 궤도를 계속 수정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 작전으로 여러 차례 충돌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 성공은 3체문제(지구-달-인공위성)에서 나타나는 카오스적 현상과 나비효과를 한데 결합시킨 것이었다.
  이와 똑같은 수학적 개념이 난류 속에서 자기 리본은 제어하는 과정에 이용되었다. 이 방법이 이후 잠수함이나 항공기를 지나는 난류를 제어하는 원형으로 이용되었다. 카오스 제어는 불규칙하게 박동하는 심장을 규칙적인 리듬으로 복귀시키는 데에도 이용되었고, 이후 지능형 페이스메이커가 발명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최근에는 이 방법이 뇌조직 내의 전기적 활동에서 율동적인 파형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서 간질 발작을 해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카오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성장산업이다. 한 주일도 거르지 않고 카오스 현상에 내재한 수학에 관한 새로운 발견, 자연계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 카오스를 새롭게 적용시키려는 노력들, 그리고 카오스의 새로운 기술적 응용례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그 중에는 2개의 팔이 카오스적으로 회전해서 적은 에너지로 더 깨끗하게 접시를 닦을 수 있는 일본의 발명품인 카오스 접시 세척기, 그리고 스프링 제작에서 품질관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카오스 이론을 응용한 데이터 분석법을 사용한 영국의 공작기계도 포함된다.
  그러나 아직도 숱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카오스에 관해 최종적으로 풀리지 않은 문제는 양자(헤아릴 량, 어조사 자)라는 불가사의한 세계일 것이다. 그 세계를 통치하는 사람은 '레이디 럭'(Lady Luck ; 확률을 의인화시킨 것임. 옮긴이)이다. 방사성 원자는 '임의적으로' 붕괴한다. 그 현상이 갖는 규칙성이란 오직 통계적인 의미에서 뿐이다.  충분한 양의 방사성 원자는 뚜렷한 반감기를 갖는다. 반감기란 절반에 해당하는 원자가 붕괴하는 기간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 원자들 중에서 어느 쪽 절반이 붕괴할지는 예측하지 못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의를 제기한 것은 바로 이 의문에 대한 것이다.  붕괴하지 않을 절반과 붕괴할 절반 사이에 실제로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원자는 붕괴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양자역학의 외면상의 임의성이 거짓일 가능성은 없을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결정론적 카오스일까? 한 원자가 우주라는 유체(흐를 류, 몸 체)의 진동하는 작은 방울이라고 생각해 보자. 방사성 원자는 매우 활력적으로 진동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물방울들로 나뉘어질 수,즉 붕괴할 수,있다. 이 진동은 너무 빨라서 하나하나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에너지 준위와 같은 평균적인 양(헤아릴 량)만은 측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고전 역학은 실제 유체의 한 방울이 카오스적으로 진동한다고 말해 준다. 그 운동은 결정론적이지만 예측할 수 없다. 때때로 '임의적으로' 그 진동이 작은 물방울을 분리시켜 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비효과 때문에 그 물방울이 정확히 언제 흐름에서 분리되는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건은 분명한 반감기와 같은 매우 정확한 통계학적 특성들을 갖는다.  겉보기에 임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방사성 원자의 붕괴도 규모만 미시적으로 축소되었을 뿐 그와 유사한 것일까?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통계적 규칙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규칙성이 그 속에 내재하는 결정론을 따르는 것일까? 그 밖에 '다른 곳에서' 통계적 규칙성이 올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아직 이런 매혹적인 개념들이 실제로 작용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그 개념이 최근 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초끈 이론(theory of superstring)의 기본정신과 비슷하지만 말이다.
  초끈 이론에서는 소립자를 진동하는 다차원 고리(loop)의 일종으로 생각한다. 둘 사이의 주된 유사성은 진동하는 고리와 진동하는 물방울이 모두 그 동안 받아들여지던 물리적 상(형상 상)에 새로운 '내부 변수(internal variables)'를 도입시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드러진 차이는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양자적 불확정성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초끈 이론은 종래의 양자역학과 마찬가지로 이 불확정성을 순전히 임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물방울과 같은 계의 경우, 일견 불확정적으로 보이는 것도 실제로는 결정론적이면서 동시에 카오스적인 동역학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우리가 그런 양자적 불확정성을 생성시키는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초끈 이론의 유리한 특성들을 가지면서 동시에 내부 변수가 카오스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구조를 새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구조라면 신이 굴리는 주사위를 결정론적으로 만들어, 아인슈타인이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수학적 본성 - 이언 스튜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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