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열수필집/1부 종이밥상

*풍경소리

21c-park 2023. 12. 17. 12:47

*풍경소리

가게 앞을 지나치는데 낯익은 소리가 발목을 잡는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선다. 2층은 식당이고 1층은

갤러리 형식을 갖춘 작은 미술관이다. 작가들의 작품과 함

께 꼼꼼한 설명이 있어서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복잡

한 도심 속에 이런 볼거리가 있다는 게 참 반갑다. 갤러리

앞 항아리와 나무 화기에는 야생화와 자잘한 꽃들이 옹기

종기 모여 웃고 있다.

가끔 마음이 복잡하거나 울적할 때 찾아간다. 어김 없이

풍경 소리가 달려와 반긴다. 시원스러운 물줄기처럼 가슴

에 스며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 시름이 한꺼번에 사

라진다. 먼지 한 가닥도 말끔하게 씻어준다.

가득히 차오르는 청량함에 이끄려 기분마저 가벼워진다. 풍경 소리는

마치 먼 데서 온 편지 같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이 보

낸 한통의 편지가 되어 헛헛한 마음을 차곡차곡 채워준다.

주인의 색다른 문화와 이색적인 운영 방법이 마음을 끈

. 점심때는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아기자기한 소품과 인테리

어에 푹 빠져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지루함을 느낄 틈도

없이 차례가 된다. 어느 특정 대상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

들도 이곳에선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되는 행운도 함

께할수있다.

풍경이 운다. 고요하고 낭랑한 소리는 갤러리와 식당을

들러 퍼져 나간다. 이 소리에 취해 나무들의 키가 한 뱀씩

자라고 새와 꽃, 동식물이 함께 귀 기울인다. 한적한 절간

이 아닌 도심의 한복판그것도 복잡한 대로변 식당의 추

녀 끝이다.

바람은 깊은 산새와 고요와 적막을 상대로만 불지 않는

. 바쁜 사람들의 가슴속도 헤집어 보고 복잡하고 시끄러

운 마음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한다. 풍경 소리도 가

슴 따스한 사람이 그리워 달려오는지 모르겠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소리에 닫혔던 마음이 훈훈해진다. 침묵을 깨고

소생한 영혼이 깨어나는 소리 같다.

일찍 봄 냄새를 맡은 탓인지 긴 겨울의 끝자락이 깨어난

. 거북 등을 가진 용에서 세 발 달린 금계와 설화 속의 온

갖 동물들까지 그 소리의 여운에 잠긴다고 하니 사람이 어

찌 취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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